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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선역
한 권에 담은 한나라 이야기 양장
반고안예선
뿌리와이파리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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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기紀
무제기武帝紀

표表
제후왕표諸侯王表

지志
예문지藝文志

전傳
소이릉전李陵傳
소무전蘇武傳
사마천전司馬遷傳
여태자전戾太子傳
차천추전車千秋傳
양운전楊?傳
주운전朱雲傳
곽광전?光傳
김일제전金日?傳
경방전京房傳
조광한전趙廣漢傳
한연수전韓延壽傳
장창전張敞傳
왕존전王尊傳
순리전循吏傳·황패전黃覇傳
혹리전酷吏傳·엄연년전嚴延年傳
화식전貨殖傳
유협전游俠傳·원섭전原涉傳
영행전?幸傳·동현전董賢傳
원후전元后傳
왕망전王莽傳
서전敍傳

전한 제계표
전한 연표(기원전 206~8)

저자 소개 2

자는 맹견(孟堅)이며 32년(광무제 8년) 부풍군(扶風郡) 안릉현(安陵縣)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반표(班彪)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기 후전』을 집필하던 중 사사로이 국사를 찬술한다는 중상모략으로 투옥되었다가, 동생 반초(班超)의 상소로 풀려나 후한 명제(明帝) 휘하에서 국사를 편찬하게 되었다. 전한의 왕조사를 편찬하라는 명에 따라 가업 『사기 후전』을 국사로 개편하여 본기 12편과 열전 70편을 완성했고, 이어서 지(志) 10편과 표(表) 8편을 더하여 『사기』의 기전체를 보완함으로써 이후 동아시아 정사의 모범이 된 체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조서와 상소문, 문학 작품 등 일
자는 맹견(孟堅)이며 32년(광무제 8년) 부풍군(扶風郡) 안릉현(安陵縣)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반표(班彪)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기 후전』을 집필하던 중 사사로이 국사를 찬술한다는 중상모략으로 투옥되었다가, 동생 반초(班超)의 상소로 풀려나 후한 명제(明帝) 휘하에서 국사를 편찬하게 되었다.
전한의 왕조사를 편찬하라는 명에 따라 가업 『사기 후전』을 국사로 개편하여 본기 12편과 열전 70편을 완성했고, 이어서 지(志) 10편과 표(表) 8편을 더하여 『사기』의 기전체를 보완함으로써 이후 동아시아 정사의 모범이 된 체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조서와 상소문, 문학 작품 등 일차 사료를 대거 보전했고, 「지리지(地理志)」로 인문 지리적 기틀을 세웠으며, 「예문지(藝文志)」를 통해 도서 분류 체계를 마련했다. 「예문지」 춘추(春秋)류에 『태사공(太史公)』 130편이 수록됨으로써 사마천 개인의 저작물이었던 『사기』가 사서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반고는 부흥한 제국의 질서 수립을 위해 새로운 유학 이념을 가다듬은 유학자이자, 『문선(文選)』 첫머리에 실려 있는 『양도부(兩都賦)』 2수와 『답빈희(答賓戱)』 등을 남긴 한부사대가(漢賦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한서』 편찬 중에 낙양 황궁인 백호관에서 열린 토론 내용을 선제(宣帝)의 명으로 기록한 내용이 『백호통의(白虎通義)』로 남아 있다. 흉노 전쟁에 참전했다가 반역에 연좌되어 옥사할 무렵 지은 『영사(詠史)』는 현존하는 오언시 중 가장 이른 작품으로 꼽힌다. 92년, 『한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반고가 남긴 유업은 누이동생 반소(班昭)에 의해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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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해 푸단復旦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순천향대에서 강의하며 중국 고전 산문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최초로 ‘수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남송南宋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隨筆』(공역), 범성대范成大의 장강長江 유람 일기인 『오선록吳船錄』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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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814g | 150*225*30mm
ISBN13
9788964621127

책 속으로

반고가 『한서』를 편찬한 의도와 과정은 사마천의 『사기』와 비교해볼 때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한서』는 『사기』를 전제로 한 사서이기 때문이다. 『사기』는 상고시대부터 전한 무제 시기까지를 기록하였다. 따라서 『사기』와 『한서』는 한 고조부터 무제까지는 동일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두 사서는 같은 기간의 역사를 상당히 다른 입장에서 기술하였다. 중국 근대 학자 전종서錢鍾書는 역사 서술이 근원적·필연적으로 현재와의 연관성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렇게 언급하였다. “역사의 흐름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만, 역사 서술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두 사서의 차이는 전한과 후한이라는 다른 시대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7

반고는 『사기』에 실린 한 무제까지의 내용 중 조정과 황제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삭제하거나 수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그대로 채택하였다. 한 왕조의 권위와 정통성을 위해 윤색을 가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체에 걸쳐 무조건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무제 이후에서도 황제들의 무능함과 호색, 잔인함 등을 비호하지 않고 기록하였다. 이는 반고의 시대가 이미 전한을 어느 정도 객관화시켜 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배 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수정과 삭제가 필요했지만, 전한의 패인과 폐해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사마천의 한 왕조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다소 감정적이었다면, 반고는 전한의 실패를 교훈 삼아 후한 왕조를 더 찬란하고 장구하게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 p.9

고려와 조선시대의 글에는 전한前漢의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인용, 고증, 평론 및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셀 수 없이 많다. 당시 지식인들에게 중국의 역사와 전고에 대한 이해는 기본 요건이었으므로 『한서』의 독서는 필수적이었다. 16세기 중반 이후, 새로운 관점에서의 『한서』 읽기가 유행하게 된다. 기존에는 『한서』를 주로 역사서로 봤다면, 문학 작품으로서 『한서』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의 “문장은 반드시 진한 시대를 본받아야 한다(文必秦漢)”는 문학론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수용되면서 『사기』와 『한서』가 고문의 전범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문인들은 작문의 요체를 습득하기 위해 『한서』를 익혔고 『한서』의 정수만을 선별한 다양한 선집본이 유통되었다. --- p.13

무제 시기는 한나라의 전성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점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전한 역사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무제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반고가 『한서』를 집필하던 당시 『사기』의 「무제본기」는 편명만 남아 있고 내용은 실전된 상황이었다. 한 무제는 『사기』 중 부친인 경제와 자신에 대한 부분을 열람하고는 진노하여 집어던지고 삭제를 명하였다. 아마 조정과 황제에 대한 비판 등 불편한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전하는 『사기』 중 「무제본기」는 후대 사람이 「봉선서封禪書」를 편집하여 구성한 것으로 대부분 무제의 방사술과 봉선에 관한 내용이다. 따라서 『한서』의 「무제기」는 무제에 관한 유일하고 완정한 공식 역사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p.22~23

「예문지」는 황실 도서관인 비부?府에 소장된 모든 도서를 분야별로 나누어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한서』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이후 정사에는 모두 「예문지」가 포함되었다(일부 정사에서는 「경적지經籍志」라고 하기도 하였다). …… 「예문지」는 후한 시기 모든 도서의 목록과 그것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고 각 학문 영역의 원류와 변천을 논한 것이다. 고대부터 전한까지 모든 도서와 학문에 대한 총정리이므로 이를 통해 중국 학술의 원모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중국은 전통 시기 서적을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4부류로 나누었다. 이러한 4부 분류법은 『수서隋書·경적지』에서 시작되어 청대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예문지」는 바로 이 4부 분류법의 남상이라 할 수 있다. --- p.76~77

「혹리전」에 수록된 인물은 대부분 무제 시기에 활동하였다. 『사기·혹리열전』에는 가혹한 법의 시행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피가 수십 리를 흘렀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황제가 “그를 능력 있다고 여겼다”는 인정과 칭찬이다. 사마천은 이러한 구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결국 혹리를 양성한 것이 무제임을 비난하였다. 반고는 『사기』의 내용을 상당 부분 채택하였지만 조정과 황제에게 불리한 내용은 삭제하거나 수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제가 혹리의 능력을 인정하고 발탁하는 대목을 삭제하지 않고 모두 그대로 채택하였다. 혹리를 관리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닌 시대와 정치의 문제로 보았던 것이다. --- p.300~301

예를 들어 『사기·화식열전』에서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의 탁월한 경제적 능력을 인정하면서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도 자공이 공자를 보좌했기 때문”이며 공자는 이 덕분에 “세勢를 얻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가 자공 덕분에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표현은 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경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고는 사마천의 이러한 기술이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반고는 자공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예측이 잘 들어맞았던 것 뿐”이며 공자는 이를 “나무랐다(譏)”고 기술하였다. 상업과 치부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한서·화식전』 전반에 걸쳐 보인다. --- p.310~311

옛날에는 서문을 책의 말미에 두었다. 『사기』의 맨 마지막 권130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로 책의 서문에 해당한다. 『한서』에도 마지막 권100에 「서전」을 두었다. 즉, 『한서』의 서문인 셈이다. 서문은 책의 집필 경위와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태사공자서」는 가문의 내력과 자신의 경력에 대한 소개를 함께하고 있어 자전의 성격까지 겸하고 있다. 「서전」은 대체로 이 틀을 계승하였다. 그러므로 이경성李景星은 “「서전」은 『한서』 100편의 총괄”이라며 “『사기』를 읽을 때는 먼저 「태사공자서」부터 읽어야 하고 『한서』를 읽을 때는 「서전」부터 읽어야 한다”고 했다.

--- p.430

출판사 리뷰

지금, 왜, 다시 『한서』인가?

예로부터 ‘사한史漢’으로 병칭되었던 『사기』와 『한서』는 후세에 역사서의 표본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서로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서 독서전통에서 『사기』에 비해 『한서』가 갖는 위치는 참으로 미약하다. 현재 반고의 『한서』는 「열전」 선역본과 「예문지」나 「지리지·구혁지」 등이 출간되었지만, 『한서』의 체제를 그대로 살려 보여주는 책은 없었다. 이 책은 완역은 아니지만, 역사서 편집의 표준이 되었던 기·표·지·전의 체제를 그대로 따라 그중 가장 핵심적인 25편을 골라 풀어쓴 것이다.

사마천이 ‘자신만의 학설(一家之言)’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여 역사를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찾고자 했던 반면, 훨씬 세련되고 제고된 수준의 유학이 완성된 시기에 살았던 반고는 역사를 통해 왕조와 정치를 유지하는 이념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런 만큼 사마천이 역사와 인물에 대한 개탄, 분노, 슬픔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면, 반고는 중국적인 제도·사상·학술·문화가 만들어진 전한 시기에 대해 ‘거리 두기’ 시선을 유지하며 『한서』를 저술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지식인들에게 역사와 전고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한 권에 담은 한나라 이야기

이 책은 첫째, 기紀, 표表, 지志, 전傳의 네 가지 구성이 모두 포함되도록 하였다. ‘기’에서는 중국의 이념과 학술, 제도의 기본적 틀을 완성한 「무제기」를, ‘표’에서는 전한의 멸망 원인을 제후왕의 세력과 연계하여 분석한 「제후왕표」의 서문을 수록하였다. ‘지’에서는 중국 학술의 전체적 면모를 알 수 있는 황실 도서목록인 「예문지」의 서문을, ‘전’에서는 전한 시기의 중요 인물을 선별하였다. 마지막에 반씨 집안의 내력과 『한서』의 집필 의도, 전체적 구성에 대해 기술한 「서전敍傳」을 수록하였다. 「서전」은 『한서』의 서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체 100편에 대해 간략한 해제를 작성한 것이다. 『한서』의 구성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서전」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둘째, 이 책에서는 온전한 의미에서 반고의 편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제 이후, 『사기』와 중복되지 않는 부분을 선별하였다. 셋째, 전한의 역사에서 관건적인 인물이면서도 서사적 전개가 많아 가급적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편을 위주로 선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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