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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삼별초의 난이 발생하다 |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 등대 점등 | 청계천 통수식 거행 | 6년제 의무교육 시행 | 제1회 조선 미술 전람회 개최 6월 2일 성삼문, 박팽년 등 단종 복위 계획을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다 | 시인 김지하, 「오적」 발표로 구속 | 한성농공은행 개업 | 캐롤 주교, 나환우 시설 ‘성 라자로원’ 개원 | 「대한민보」 창간 6월 3일 6·3 사태가 발생하다 | 송나라의 대성악 고려에 전래 | 이승만,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시사하는 ‘정읍 발언’ 연설 | 일제, 「사찰령」 공포 6월 4일 조선의 성종, 사가독서제를 부활시키다 | 최익현, 「창의토적소」 발표 | 최초의 공중욕탕 평양에서 개설 | 과학 로켓 ‘과학 1호’, 서해안에서 발사 6월 5일 임오군란이 발생하다 | 소설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충무공 이순신의 현충사 낙성식과 영정 봉안식 거행 | 프로야구 선수 박찬호,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100승 달성 | 독립운동가 백정기, 나가사키 이사하야 감옥에서 순국 6월 6일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하다 | 조선총독부, 토지조사사업 완료 | 수양 동우회 사건이 발생하다 | 경찰, 반민특위 습격 사건 발생 | 제1회 현충기념일 행사 거행 6월 7일 대한북로독군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다 | 13도창의군 대장 이인영이 체포되다 | 「조선호적령」 제정 | 음반 사전 심의 제도, 사실상 폐지 6월 8일 46년 재임한 조선 숙종 사망하다 |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설치 | 미군기의 폭격으로 독도 주민 16명이 사망하다 | 유엔군과 북한군, 한국전쟁 포로 문제에 관한 협정 타결 6월 9일 강화도령 철종이 왕위에 오르다 | 국내 최초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발전기 점화 | 김대건 신부, 해주 감영으로 이송 | 연대생 이한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부상 | 「한국일보」 창간 6월 10일 6·10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다 |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나다 | 신미양요 일으킨 미 함대 초지진 상륙 | 제2차 화폐개혁 단행 | 월간 「야화」, ‘하와이 근성 시비’로 판매 금지 조치 6월 11일 수양대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하다 | 보우 스님, 제주목사 변협에게 장살 | 음주측정기를 이용한 음주 운전 단속 실시 | 의병장 허위가 체포되다 6월 12일 대원군,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다 | 한국은행 창립 | 청소년 축구팀, 제4회 멕시코 대회에서 4강 진출 | 우리나라 두 번째 민간 비행사 장덕창, 모국 방문 비행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가지다 | 여중생 2명, 미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다 |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 허가 6월 14일 태봉 왕 궁예가 돌에 맞아 죽다 | 김규식·여운형, 좌우 합작 회담 시작 | 「부정축재처리법」 공포 | 영화 촬영 중이던 헬기 추락으로 7명 사망 6월 15일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다 | 제1차 서해교전 발생 |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순직 | 제2공화국 출범 | 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6월 16일 고려,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하다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와 함께 방북 | 시인 김수영 교통사고로 사망 | 세조, 간경도감 설치 6월 17일 조선, 대마도 정벌에 나서다 | 임경업 장군, 심문 중 옥중에서 죽다 | 「만세보」 창간 | 한글 로마자 표기법 단일안 합의 | 고종, 「육전조례」 간행 6월 18일 영조, 난장형을 폐지하다 | 조선, 수성금화도감 설치 | 이승만 대통령, 반공 포로 전격 석방 | 축구선수 차범근, 서독에서 은퇴 | 월간 「말」 창간 6월 19일 연천 군부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다 | 「중외일보」 종간 |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내한 | 장서각 설립 |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발표 6월 20일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 안시성 싸움이 시작되다 | 일제, 산림 자원 수탈 위해 「산림령」 공포 | 상용 인터넷 서비스 개시 | 조선 물산 장려회, 평양에서 창립 6월 21일 신라 김유신, 고구려를 정벌하다 | 조선야구협회 창립 | 대한무역진흥공사 설립 6월 22일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 이라크 무장 단체에 피살되다 | 고종, 각종 도고 행위를 금지하다 | 「한일기본조약」이 정식으로 조인되다 | 대각국사 의천이 목판 인쇄한 ‘교장’ 첫 공개 |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 개통 6월 23일 대한제국, 군국기무처를 설치하다 | 세브란스 병원, 국내 최초로 존엄사 시행 | 박정희 대통령, ‘6·23 외교 선언’ 발표 | 조선교육회 설립 | 한국은행, 5만 원 권 지폐 유통 6월 24일 연암 박지원, 압록강을 건너다 | 구마고속도로 착공 | 대한제국, 일제에 의해 경찰권 완전 박탈 | 김구, 신탁통치 반대 운동 전개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다 |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한 고종 밀사 3명, 헤이그 도착 | 대북 쌀 지원 개시 | 권투 선수 김기수, 한국 첫 세계 챔피언 등극 |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발생 | 한국 최초의 월간 종합지 「개벽」 창간 6월 26일 김구, 경교장에서 암살당하다 | 국내 첫 여성 한글지 「가정잡지」 창간 | 이광수 장편소설 「이순신」, 동아일보에 연재 시작 | 탈북한 장길수 일가족 7명, 베이징 유엔판무관실 진입 6월 27일 고려의 최영, 고봉에 유배되다 | 봉선사 완성 | 제3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 발표 |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실시 |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6월 28일 조선 22대왕 정조가 승하하다 | 사할린 의용대, 자유시 참변으로 272명 사망 | 공산주의 운동가 이주하 처형 | 울릉도에서 처음으로 교통사고 발생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 6·29 민주화 선언을 하다 | 진주성 함락 | 제2차 서해교전 발생 |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다 6월 30일 의기 논개, 왜장 게야무라와 함께 강물에 뛰어들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 합의문 공식 서명 | 조선 노동당 탄생 | 황국협회 결성 | 성산대교 개통 |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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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1270년 6월 1일, 삼별초는 장군 배중손의 지휘 아래 왕족인 승화후 온을 국왕으로 받들어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삼별초는 곧 강화도에 있는 곡식과 재물, 사람들을 1,000여 척의 배에 싣고 진도로 그 근거지를 옮겼다. 그곳이 남쪽의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선을 차단하고 넓은 논밭을 배경으로 장기전을 치르는 데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p. 16
성종은 즉위 7년(1476) 6월 4일에 세조의 왕위 찬탈로 폐지되었던 사가독서제를 다시 부활시켰다. 성종은 즉위 17년까지 사가독서제를 실시했는데, 각각 채수·유호인·조위 등 6명과 조지서·박증영·이달선 등 8명이 선발되어 학문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는 국가가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여 문운文運을 진작시키기 위해 실시한 ‘전문 연구 인재 양성’ 정책이었다. ---p. 43 1959년 6월 10일 월간 잡지 「야화」가 호남 사람들의 성격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다가 판매 금지를 당하였다. 강원도 출신의 시인 조영암은 「야화」 7월호에 전창근이라는 필명으로 「하와이 근성根性 시비是非」라는 글을 썼다. 그 내용은 호남인들의 근성을 형편없이 깍아 내리는 것이었다. ---p. 105 마침내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기해 남침을 개시하였다. 3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치밀한 준비를 해온 북한군에게 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아시아에서 가장 막강한 규모’라는 칭찬을 받았던 국군이었기에 더욱 허탈하였다. ---p. 226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동에 있는 ‘서대문 경교장’ 2층 집무실에서 갑자기 4발의 총성이 울렸다. 육군 소위 안두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을 저격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항일 독립 투쟁을 이끌어온 73세의 노老혁명가 김구는 어이없게도 대한민국 국군 장교의 45구경 권총이 뿜은 총탄에 절명하고 말았다. 백범의 죽음은 한반도 통일 정부 수립을 갈망하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p. 235 이중섭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향토적 성격이 짙은 것들이었다. 특히 1950년대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 만 「새」와 「아이들」 등의 작품을 통해 따뜻한 정서와 특유의 해학미를 보여 주었다. 이중섭은 한글 자모를 이 용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는데, 이것은 일제의 국어 말살 정책에 대한 반발이었다. 즉 그림을 통해 한글을 지 키겠다는 것이었다. 들판에 나가 하루 종일 소를 그렸던 것도 바로 이때였다 . ---p. 97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원성왕 대에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가 설치되어 관리를 뽑기도 하였지만 골품제의 제약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었다. 그러다가 고려 광종 대에 이르러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비로소 과거제가 시행되었다. ---p. 147 1928년부터 최남선은 본격적으로 친일의 길로 돌아섰다. 총독부 소속인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내놓고 일본과 결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곳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여 일제의 조선 침략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던 단체 였다. 그 후 최남선의 친일 행각은 점점 도를 더해갔다. 먼저 그는 총독부 최고의 영예직인 중추원 참의로 임명 되었다. 조선사편수회에서의 공로에 대한 대가였다. ---p. 230 ---p.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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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이 역사가 된다
그날의 역사를 그날그날 읽어 보며 교양을 쌓는 책 역사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역사를 알아야 할까? 왜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일찍이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인류사 전체를 아우르는 커다란 카테고리를 설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개념이다. 그러나 미시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집트에서 태양력과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건축술이 발달한 것은 나일 강의 범람에 따른 인간의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거나 또는 앞서 나가는 예술사조의 흐름 은 토인비의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역사의 사전적 의미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 ‘자연 현상이 변하여 온 자취’이다. 즉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실, 또는 그 흐름을 의미한다. 역사 자체는 관념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역사가 현대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이다. 기록과 흔적으로 존재하는 역사는 단 한순간도 현재와 단절된 적이 없으며, 눈앞에 펼쳐진 과거의 기록은 현재를 해석하는 도구 이자 미래를 미리 보여 주는 창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학교에서 반드시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이다. 역사를 바꾼 사건들, 유명 인물의 출생과 사망, 인류의 문화유산과 정신세계에 대한 방대한 기록 「6월의 모든 역사 - 한국사」는 매일매일 일어난 사건이 역사가 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6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의 중요 사건들을 날짜별로 기록하였다. 사건의 중요도에 따라 서술 분량을 달리했으며, 한국사적으로 중요한 모든 사건들을 최대한 담으려 노력했다. 단순한 사실(fact)뿐만 아니라 사건의 원 인과 과정 및 영향에 대한 모든 과정들을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날짜는 태양력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음력으로 기록된 사건이나 고대의 기록은 모두 현재 사용하는 태양력을 기준으로 환산하였다. 고대나 중세의 사건 가운데 날짜가 불명확한 것은 학계 의 정설과 다수설에 따라 기술하였다. 한 시대를 이끌어 갔던 유명 인물의 출생과 사망, 우리의 문화유산, 시대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 등 달력에는 기록되지 않은 지난 역사 속 6월의 오늘이 이 책 한 권에 펼쳐진다. 오늘 날짜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인류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역사 속 6월의 오늘, 우리나라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87년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해이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생 박종철 군의 죽음으로 촉발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한꺼번에 폭발한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6월 10일에 일어난 ‘6·10 민주화 항쟁’은 1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을 거리로 나오도록 하였다. 6월 항쟁은 군사 독재 정치가 종식을 고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정치 내용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바로 6·10 민주화 항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평소 괴롭히던 선임병의 자는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1984년 이후 군부대 총기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연천 군부대 총기 사건의 용의자 김동민 일병의 진술이다. 2005년 6월 19일,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내무반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소총 44발을 난사하여 동료 8명을 사망케 하였다. 그는 2008년 5월 7일 사형 판결을 받았고, 2012년 현재 장호원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하지만 얼마 전 인터넷에 사고 당시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군 발표에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주요 인물들의 삶을 비롯하여 정치·경제·문화 예술 등 전 영역에서 일어난 개별적인 사건들을 한데서 볼 수 있는 책이다. 매일매일 한국사의 흐름을 뒤바꾼 역사적 사실들을 기술하여 특정 시대와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