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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우상 | 5
사망진단서 | 37 잭팟 | 65 론리 플래닛 | 91 가만있으라 | 123 오동의 꿈 | 153 모래 욕조 | 189 싱글 루즈 | 219 작품 평론 | 249 |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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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를 기리는 기념관은 무료입장이었다. 전시물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사진들도 다양한 데다 설명도 만족스러웠다. 1958년 그가 게릴라전에서 승리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었다. 조그만 사진 하나가 아버지의 눈을 붙들었다. 산간 마을에 들어온 일단의 무장병력이 민간인을 죽이는 장면, 그 아래 설명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소탕 작전에 투입된 정부군에게 학살당했다. 게릴라에게 음식을 제공했다는 이유였다. 더듬더듬 한국어로 해설을 붙여드렸다. 아버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머쓱해진 내가 손바닥을 뻗어 더 둘러보기를 권했으나 아버지는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이 거칠어진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나도 사진을 재차 들여다보았다. 천으로 눈이 가려진 사내가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허리 깊이 구덩이의 위쪽 가장자리에 무릎이 꿇린 채였다. 구덩이 안에는 그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자와 아이 셋이 널브러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젖을 빨았을 갓난쟁이의 까맣게 열린 입, 흥건한 핏자국들, 그리고 사내 곁에 놓인 삽 한 자루. 그러니까 사내가 마주한 구덩이는 좀 전에 그가 파 놓은 것이었다. 군인은 사내의 뒤통수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먹은 게 얹힌 듯 속이 거북하여 서둘러 전시관을 빠져나왔다. 갓난쟁이의 울음소리가 자꾸만 등을 찔렀다. 기념관 앞마당에서 볕을 가려주던 정원수의 그림자가 제법 자라 있었다. 뒤따라 나온 아버지가 핏기 가신 얼굴로 입언저리를 씰룩거렸다
--- 「아버지의 우상」 중에서 죽음의 무게로 누른 시소의 끝은 그 반대쪽을 높이 들어 올리는 법.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그 끝에 널뛰듯 올라앉았다. 그녀는 쥐어짜듯 몸을 꼬며 사선을 넘고 있었다. 오빠 나를 데려가. 나도 이대로 죽고 싶어. 절규였다. 그녀가 몸을 활처럼 뒤로 휘더니 이윽고 긴 신음을 토해냈다. 지그시 감은 두 눈에서 물기가 방울져 내렸다. 나 느꼈어. 드디어. 그녀의 수줍은 미소가 눈물에 섞여 볼우물 안으로 흘러들었다. 방안에는 죽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삶을 마무리한 자가 안락(安樂)하게 누워 있었다. 나는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 --- 「사망진단서」 중에서 겉도는 대화중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돌아가면 죽을 거라는 증명을 이쪽에서 하라던가. 현재의 개연성을 근거로 장래의 위험을 인정해줄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금 불법 체류 중이지요?” “….”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면접관이 거부의 이유를 찾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자주 칭얼거렸다. 푸삼은 아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전의를 상실한 아내의 작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것도 불법인 거 아시죠?” 면접관은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책상 위의 서류에만 꽂았다. 눈이 마주치는 불편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놓은 듯했다. 부부가 이미 불법 체류 상태였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내전이 격화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전쟁이 끝났어도 그의 가족에게 닥칠 보복의 공포는 이제부터가 아닌가. 종교, 인종차별, 그리고 전쟁 등이 난민 신청 사유가 되는 건 분명했다. 그것은 국제법상 명시된 조항이었다. 인터뷰 시간은 20분도 채 주어지지 않았다. 면접관의 혀가 법과 규정의 견고한 테두리를 핥는 동안 시간은 짧은 심지마냥 타들어갔다. --- 「론니 플래닛」 중에서 “얌마 그걸 말이라고 물어? 그냥 매뉴얼대로 요령껏 하면 되는 거지.”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부대장이 내 대신 대꾸를 했다. ‘요령껏’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렸다. 평소의 내 말버릇을 그가 흉내 내고 있었다. 움찔했다. 나 자신도 전임자의 어투와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때문이었다. 나는 기억 속의 비좁은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 「가만있으라」 중에서 “밤새 한 숨도 못 잤는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가 보았다. 선뜻 나를 부르지 못하고 이틀을 삭힌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할매가 미간을 좁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쳐진 눈 밑이 발갛게 부어 있었다. 온갖 상상이 꼬리를 물며 그녀를 덮쳤을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이 짧았다. 결혼을 준비하며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목을 가다듬어 직역을 했다. ‘한국 방문을 앞두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동두천의 기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요.’ 내 음성이 갈라졌고 목구멍이 좁아졌다. ‘차라리 엄마를 잊기로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어진 몇 마디의 변명과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문장은 눈으로만 읽었다. 메리가 돌려보낸 사진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편지에 다 쓰지 못한 단어들이 빨간 액자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 「오동의 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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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나 부러워 할 한의사라는 직업을 작파하고 돈 안 되는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권행백은 어쩌면 이 시대의 ‘돈키호테’라 불릴 만하다. 이념이 꺾이고 글로벌한 신자유주의와 실용주의가 득세하는 시대라 더욱 그러하다. 2015년 단편소설 「샤이 레이디」로 등단한 그는 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것도 아이러니와 알레고리적 기법을 구사한 작품들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이미 상재한 장편소설 「한옥마을 남쪽 사람들」과 세 편의 중편소설을 묶은 「악어」, 그리고 이 작품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들은 하나의 색깔로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스펙트럼이 넓다. 굵직하고 의미 있는 서사를 말 그대로 다채롭게 펼쳐놓았다. 시대를 향한 강렬한 응시, 총체성에 바탕을 둔 서사, 그것을 드러내는 활달한 문체, 이 세 가닥을 축으로 형상화한 서사는 요즘의 우리 문학에서 보기 드문 텍스트이기도 하다. 마이크로적 묘사에 치중한 개인의 내적 존재론에 함몰된 작품들에 물리다보니 공동체의 집합적 이상을 그린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던 참이었다.
현대는 정신적인 기점을 상실한 분노의 시대이고 비전과 방향 감각을 잃은 방황의 시대이기도 하다. 힐링, 먹방, 게임, 몰카 등 환락성 행위들에 대한 심리적 치유의 담론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시대정신을 담아낸 서사 담론이 절실했다. 권행백의 작품은 그런 요구에 적절한 응답이 될 듯싶다. 사회에 대한 성찰을 외면하는 세상에 정작 필요한 것은 ‘시대와 불화하는 서사적 응전의 담론’일 것이다. 생의 한 면에 촉수를 들이대는 이야기들이 개인의 실존 차원을 넘어 역사와 집단의 테제로 확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의 소설은 역사적 비극과 부딪쳐 깨어져 나가는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으므로 미적이면서 안정감 있는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면에서 그의 소설은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가볍게 비상하는 요즈음의 언어들과는 달리 세상의 무게가 실려 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는 미적 전위나 현실적 완결의 성취를 이루기보다 날것 그대로의 삶을 파고드는 데 힘을 기울인다. 주제, 소재, 상황 설정이 우리 사회의 예각적 모순과 맞닿아 있는 데다 당대의 사회 현상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의 우리 문학은 지난 시대에 품었던 꿈의 좌절, 그리고 변혁의 참담한 실패에 대한 자기 변명적 회한과 패배의식에 대한 반동으로 존재론적 물음에 지나치게 매달린 감이 없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의 소설은 그러한 경향성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인물에 대한 탐색이다. 그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험적 지식에 의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개별화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물들에 대한 탐색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권행백의 소설들은 유동하는 삶의 순간들을 두려움 없이 날것으로 붙잡기도 하고 때론 창조적 상상의 변용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여 좌절하고 상처 입은 인물들이 그것의 치유를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치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제 삶은 안정적이길 바라면서 타인의 삶은 충격적이길 원하는 속물임에 틀림없다, 그의 소설은 그런 독자들을 향한 죽비의 소리가 될 법도 하다. 작가 조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