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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머리말 일러두기 자서自序 1. 부임편赴任篇 제1조 수령의 임명[제배除拜] 제2조 부임의 행장[치장治裝] 제3조 하직 인사[사조辭朝] 제4조 부임의 행차[계행啓行] 제5조 임지의 부임[上官] 제6조 정사의 집무[이사?事] 2. 율기편律己篇 제1조 바른 몸가짐[칙궁勅躬] 제2조 청렴한 마음[청심淸心] 제3조 가정을 다스림[제가齊家] 제4조 청탁의 사절[병객屛客] 제5조 비용의 절약[절용節用] 제6조 은혜를 베풂[낙시樂施] 3. 봉공편奉公篇 제1조 덕화의 선포[선화宣化] 제2조 법규의 준수[수법守法] 제3조 예의로 교제[예제禮際] 제4조 문서의 처리[문보文報] 제5조 공물의 수납[공납貢納] 제6조 파견에 임함[왕역往役] 4. 애민편愛民篇 제1조 노인의 봉양[양로養老] 제2조 어린이의 보호[자유慈幼] 제3조 빈궁자의 구제[진궁振窮] 제4조 초상의 애도[애상哀喪] 제5조 병자의 우대[관질寬疾] 제6조 재난의 구제[구재救災] 5. 진황편賑荒篇 제1조 물자의 비축[비자備資] 제2조 구제의 권유[권분勸分] 제3조 구제의 방법[규모規模] 제4조 구제의 시행[설시設施] 제5조 민생안정책[보력補力] 제6조 상벌과 결산[준사竣事] 6. 해관편解官篇 제1조 수령의 교체[체대遞代] 제2조 퇴직의 행장[귀장歸裝] 제3조 유임의 청원[원류願留] 제4조 사면의 애원[걸유乞宥] 제5조 사망의 애도[은졸隱卒] 제6조 선정의 유풍[유애遺愛] |
다산茶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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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하늘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태워버려도 좋다.
올해 유네스코UNESCO에서는 다산 정약용(1762~1836) 탄생 250주년 관련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이번 유네스코 관련 기념일에 선정된 인물은 프랑스의 작곡가인 클로드 드뷔시(탄생 150주년), 장 자크 루소(탄생 300주년),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사망 50주기) 같은 세계적 위인들로 다산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다산이 조선 후기 실학 사상가로서 사회악을 분석하고 개혁안을 제시한 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다산은 정조라는 불세출의 군주에게 발탁되었으며 실학의 대가로서 후대 길이 그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인생길은 영달의 길만을 가지는 못하였다. 정조 사후 당파싸움의 소용돌이 말려 장기간 유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을 나라의 개혁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생각하였다. “아는 자는 적고 비방하는 자는 많으니, 만약 하늘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태워버려도 좋다.” 다산이 61세 때 직접 지은 묘지한 구절이다. 이는 ≪목민심서≫를 저술한 뜻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에 있으며, 또 백성과 나라를 위해 세운 방안이 이해되고 시행되기를 갈망하는 마지막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은 장기간의 유배생활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사서육경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 중 지금 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이른바 일표이서는 근세 실학의 대표서가 되었다. 특히 ≪목민심서≫는 유지 강진읍 근처의 다산서옥에서 그의 나이 57세인 순조 18년(1818)에 완성되었다. 그 내용은 지방 행정 책임자인 수령이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을 논한 것으로, 이는 애민사상, 준법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다산의 사상과 학문의 결정체이다. 공직자들의 필독서 “군자 학문수신이 그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 [자서] 다산은 백성을 직접 대면하는 목민관 중요성을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에 비유했다. ≪목민심서≫ 첫머리에도 “다른 관직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관만은 구할 것이 못된다.”라고 하였다. ≪목민심서≫의 편차는 수령이 되어 부임하여 관직을 물러날 때까지 12편으로 되어 있으며, 각 편마다 6조씩 조목을 두어 72조가 된다. 각 조를 강목형식으로 엮어, 강에는 대강을, 목에는 수령 등의 기본 정신과 자세를 기술한 뒤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실례를 들고 법규정을 예시하면서 비평과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다산은 수령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지켜야 할 도리를 여러 덕목 막나누어 강조하였다. “청렴은 수령의 본무 모든 선의 근원이며, 덕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수령이라 할 수 있는 자가 일찍이 없었다.” [율기편] “이 유혹되어도 안 되고 위협에 굴복해서도 안 되는 것이 법을 지키는 길인 것이다.” [봉공편] “백성들이 곤궁하면 자식을 낳아도 거두지 못하니 가르치고 길러서 내 자식처럼 보호하라.” [애민편]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은 옛사람의 의리이니, 갈리거나 그만두게 되어 슬퍼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해관편] 이런 다산의 ≪목민심서≫는 후세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70여 년이 된 오늘날에도 공직자들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방대한 ≪목민심서≫를 문고로 ≪목민심서≫는 다산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정사 및 역대 문집 등에서 목민관 일과 관련된 사례를 가려 뽑고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다룬 문헌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목민심서≫는 전문 연구자들이 아니고서는 일반인들이 이 책을 일독하는 것은 상당히 요원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이지만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드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문화문고는 동양과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과 인물 및 문화를 선별하여 문고로 간행하여 청소년과 일반인의 교양과 문화 수준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인 ≪목민심서≫를 학업과 일상에 바쁜 청소년과 일반인이 쉽게 읽도록 수령이 부임후 관직에서 물러나기까지를 문고로 간추려 이전등 육전 제외하였다. 또한 방대한 내용 중 중국의 사례와 전문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전문적 용어는 본문 속에 용해시켜 가독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고유명사와 용어 및 주요 어휘는 독자의 문장 이해를 위하여 한자 병기하였다. 또한 문고로 간행하여 저렴하고 휴대하기 간편하게 하였다. 본서를 통해 백성 사랑과 사회 개혁에 대하여 다산의 뜨거운 피가 젖어든 ≪목민심서≫의 정신을 되살려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