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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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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敏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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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 작가 최민식의 신간
“1957년부터 나는 비연출 사진만을 찍어왔다. 내 힘이 닿는 한, 나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우리 민중 전체를 사진에 담으려 했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내가 살아온 시대의 모습이 이러했다는 역사적 증언을 기록으로 남기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사진집이 미술학도 최민식의 운명을 사진작가 최민식으로 바꾸어놓은 것처럼, 진실한 사진에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져온 저자에게 진실한 사진이란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애환을 렌즈에 담는 것이었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아낙네들의 지친 모습, 꾸밈없이 낯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시장바닥에서 잠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인의 모습 등 가난 속에서도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지는 그의 사진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사진이 주는 감동은 그가 인간을 일관되게 응시하고 인생의 진솔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의 카메라에는 인간에 대한 실존적인 연민이 들어 있고 카메라가 그것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울림 있는 서사를 만들고 있다. 최민식의 사진 속 인물들은 한국의 근대화에 위치한 주역들이 아니다. 밝은 얼굴의 존재 없는 환영이 아니라 빈곤한 거리의 진짜 얼굴을 한 사람들이다. 근대화에 밀린 인물들을 작가 최민식이 다시 사진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적 전형들 속에서 최민식은 일관되게 실존감이 담긴 ‘인간’을 주제화했다. 그 인간은 시민적 의식이 담긴 계몽적 개인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일상에 자리한 구체적 존재였다. 이번에 새로이 출간한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 역시 1957년 동경에서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로 끊임없이 지속되는 그의 ‘인간’ 탐구의 연속선상에 있다. 최민식은 지난해까지 인물을 다룬 『휴먼(HUMAN)』시리즈 14권을 만들었다. 인물, 인간, 삶을 다루되 낮은 데로 시선을 돌려 무엇이 인간의 실존적 조건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최민식의 사진은 그가 단순한 사진작가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스트라 불리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한국 사진 예술계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제1세대를 대표하는 최민식은 사진에 관한 자신의 고유한 철학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나에게 있어 사진창작은 민중의 삶의 문제를 의식하는 것, 민중의 참상을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인권의 존엄성을 호소하고 권력의 부정을 고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현실이 가진 구조적 모순을 알리기 위해서는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사랑이 먼저 사진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본 에세이의 서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가난을 경험한 그에게 가난한 자들의 얼굴은 타인이 아닌 최민식 본인의 얼굴이다. 그가 '인간'이라는 주제에 몰두해 가난하고 소외된 서민들의 모습을 담을 때 그는 대상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이들이 처한 비극과 부조리뿐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는 강인함과 일종의 희극적 여유로움까지 가감 없이 포착한다.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자란 최민식이 한국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밀항한 후 그 곳에서 우연히 접한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 스타이켄이 20세기 사진의 역사가 경험하는 중요한 변화 시점에 언제나 자리했던 인물이라면 최민식에게 사진은 한국이라는 공간의 역사적 기록이자 그의 꾸준한 예술적 행보의 기록물이다. 최민식은 시각적으로 예쁘기만 한 사진을 멀리하고 주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찍음으로써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부당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가난에 찌든 풍광들만 카메라에 담는 최민식을 당시 권력은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온 나라가 새마을 운동의 물결 속에 ‘새로운 정신’을 논해야 했던 시대에, 그 근대화의 이면에 가려진 우리의 그늘진,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작품들은 독재 권력이 애써 감추고 싶은 장면들이었을 것이다. 그 어두운 시기를 최민식은 사진예술에 대한 꿋꿋한 신념으로 지탱해 왔고, 힘든 현실에도 묵묵히 카메라를 들고 비참한 우리의 현실을 강렬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렇듯 전쟁과 가난, 정치적 변혁기에 유년기를 보낸 우리들의 모습과 사회적 약자를 담은 작가의 올곧은 사진들은 우리 사회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최민식에 대한 기록이다. 거기에는 그와 오랫동안 가까운 곳의 이웃들, 그리고 힘든 삶을 버텨가는 밑바닥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듯 그가 어두운 시대의 어두운 인물만 그린 건 아니다. 1960-1970년대 아이들은 여름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울에 모여 멱을 감았고 함께 물장구치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사진작가 최민식이 기록한 한국의 아이들은 가진 것도, 즐길 것도 과히 많지 않았지만, 그 삶이 그렇게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최민식은 “가난에 찌든 전쟁 직후 부산 피난민들의 군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작가일 뿐 아니라, 유년의 경이로운 기억들을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진과 에세이의 행복한 만남 랠프 월도 에머슨은 성공한 사람을 자신이 발견한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남기는 사람이라 적고 있다. 최민식의 이번 사진에세이집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는 한국의 표정을 담는 사진가에서 전지구적 문명에로 관심을 기울이는 저술가로까지 진화하는 그의 활달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작업은 인류학적인 작업이다. 사진들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얼굴들을 담아내고 있으며, 주제 면에서도 ‘자유의 소중함’, 네팔의 여인, 자갈치 어시장, 그리고 죽음 등 인간의 다양한 실존적 조건을 성찰하는 글들을 담고 있다. 고통과 부정의 정서는 보편적 휴머니즘으로 완성되고 있다. 수십 년간 하루같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서민들의 생활 주변에서 삶의 진실성과 가식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노력해 온 그가 이제 한 번 더 예술적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선 체험이 있어야 해요. 가난을 겪어 봐야 가난한 사람을 찍을 수 있어요. 직접 체험이 없으면 간접체험이라도 있어야 해요. 테레사 수녀,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고 느껴야 해요. 감각은 삶의 체험에서 오는 생각과 느낌이거든요. 가난한 사람을 찍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평화, 행복을 위해서예요. 함께 나누고 돕자는 의미이지요.” 사진은 우리가 일상에서 스치고 지나가거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포착해서 순간의 영속성을 지속시킨다. 이것이 사진의 위대한 매력이다. 우리 사진의 역사는 최민식이 사진작가로 살아온 길이고 서구와는 다른 우리만의 사진 예술의 행적이라 하겠다. 오랫동안 최민식의 사진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사진을 통해 지혜로운 삶을 열어 보이려 하고 인생을 반추한다. 최민식은 올해로 85세를 맞았다. 작가가 보고 싶어 하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