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토스카나 하늘 아래 역사는 숨을 쉰다
아르노 강은 시간처럼 흐르고 사연 많은 아르노 강과 베키오 다리 팔테로나 산기슭에서 카센티노 계곡으로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 아르노 강을 따라 천천히 피사까지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산실 영혼의 계곡, 카센티노 에덴동산의 장미에는 가시가 없다 발롬브로사 수도원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다 카센티노의 중심, 비비에나 프란체스코의 성흔을 찾아서 카스텔로 디 포피, 베키오 궁의 모델 은둔자의 안식처, 카말돌리 수도회 이야기 아름다운 카센티노 계곡 거장들의 고향 미켈란젤로의 전설의 고향, 카프레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고향, 빈치 앙기아리, 두 거장의 운명적 만남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코의 고향, 산세폴크로 포격에도 살아남은 「십자가 나무의 전설」 페트라르카의 고향, 아레초 『예술가 열전』을 집필한 바사리의 고향, 아레초 루카 시뇨렐리와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의 고향, 코르토나 존 호크우드의 성, 카스텔로 디 몬테키오 메디치의 땅 메디치 가문의 유래, 무젤로 계곡과 보르고 산 로렌초 메디치 은행이 설립되다 르네상스의 새벽, 조반니 디 비치 르네상스의 주역은 상인이었다 르네상스의 아침, 코시모 일 베키오 “하느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모두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임상옥과 세인트 고드릭은 훌륭했지만…… 두오모가 가장 잘 보이는 곳, 피렌체의 어머니 피에솔레 피에솔레의 작은 천사, 프라 안젤리코 미켈로초와 팔라초 메디치-리카르디 미켈란젤로가 젖과 끌과 망치를 빨아 먹은 곳, 세티냐노 예술가들의 친구, 피에로 일 고토소 미켈란젤로를 조각가로 키운 로렌초 일 마니피코 공중에 걸려 있는 길, 바사리 통로 메디치 가의 마지막 선물, 우피치 미술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서 베키오 다리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 치마부에,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다 미술의 혀를 풀어 준 조토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에는 천국이 없다 브루넬레스키의 돔 지식인들의 거장, 도나텔로 서양미술사의 방향을 결정지은 마사초 루카 델라 로비아와 피디아스 르네상스의 봄을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 낸 보티첼리와 고촐리 괴짜 수사 필리포 리피와 그 아들 필리피노 리피 스승의 붓을 꺾게 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의 영혼을 사로잡은 기하학 르네상스 인의 고전적 원형인 알베르티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청출어람, 기를란다요와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베르톨도,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의 영원한 상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팔맷돌을 굴리며 한쪽 다리를 거만하게 내뻗은 ‘다비드’ 차이콥스키 현악 6중주곡 「피렌체의 추억」 피렌체에서 피사까지 피렌체에 단테의 무덤은 없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집필을 알리다 『군주론』의 모델은 로렌초가 아니었다 밀라노로 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의 미소에 홀리다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바티칸의 방을 장식한 라파엘로 베르디는 ‘몬테카티니 테르메’에 머물렀다 푸치니의 고향, 루카 기울어진 탑의 도시, 피사 노랑제비꽃이 필 때 다시 돌아가리 유럽의 평화와 프랑스를 위해 노랑제비꽃이 필 때 다시 떠나가리 나폴레옹의 여인, 조세핀 용감한 토스카나 인들 잘 계시오 맺음말 |
이재규의 다른 상품
|
최초의 모습이 대홍수로 사라진 바 있는 베키오 다리는 현재의 모습 역시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1944년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퇴각하던 독일군이 아르노 강 양쪽 기슭의 집과 다리 들을 모두 파괴했으나 다행히 베키오 다리는 무사했다. 폭파를 명령하고 앞서 도망가던 독일군 장군이 무전으로 “베키오 다리는 파괴되었는가?” 하고 확인했을 때 폭파를 맡았던 장교가 “이 다리만은 안 됩니다”라고 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어쨌거나 오늘날 귀금속 상점과 선물가게 들로 빼곡히 들어차 인파가 끊이지 않는 베키오 다리는 그런 과거를 말없이 감추고 있다.
--- p.19 벽화란 무엇인가? 정말이지, 그것은 글을 모르는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 주려는 목적으로 그려진 것 아니겠는가? 「십자가 나무의 전설」이 들려 주는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태초에 ‘지식의 나무’에서 꺾인 어린 나뭇가지 하나가 인류의 조상 아담의 무덤 위에 심어진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솔로몬을 방문한 시바 여왕이 그렇게 자란 지식의 나무를 알아보고는, 언젠가 바로 그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지상 최고의 왕이 매달릴 것이라고 예언한다. 세월이 무수히 흘러 시바 여왕의 예언대로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지식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고는 우여곡절 끝에 십자가는 콘스탄틴 황제의 모친 헬레나에게 발견된다. --- p.75 코시모는 그 방법을 맘껏 활용했다. 그는 속으로 “하느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모두 되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코시모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재산 수백만 플로린을 풀어 수도원, 교회, 도서관, 그리고 병원 등을 건설했다. 더불어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후원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코시모는 자신의 재력을 맘껏 투입하여 메디치 궁을 건설하고는 엄청난 수의 예술작품들을 수집했다. 도나텔로의 「다비드」 조각상, 보티첼리의 「수태고지」, 파울로 우첼로, 기베르티를 도와 피렌체의 두오모의 세례당 동문을 작업의 「산 로마노 전투」 등으로 메디치 궁 내부를 장식하고 베노초 고촐리로 하여금 「동방박사의 행렬」을 메디치 궁 예배당 벽에 그리게 했다. 도서관에는 고대 그리스 · 로마의 필사본을 소장했고, 인문주의 학자들을 후원했으며, 플라톤 아카데미를 창설하여 플라톤의 사상을 전파했다. --- p.107 보티첼리가 자신의 삶에서 유일한 사랑이 될 여인 피렌체의 뮤즈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만난 것도 메디치 가에서였다. 보티첼리에게 영원한 아프로디테인 시모네타는 꽃 같은 22세의 나이로 결핵으로 요절하고 만다. 보티첼리는 붓으로 마음 속 연인을 되살렸다. 그것이 처음으로 나타난 작품이 바로 「봄」이다. 붓끝에 산들바람을 묻혀서 흐드러진 꽃무리로 봄뜨락을 가꾸었다. 꽃이란 꽃은 모조리 피워 냈다.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시모네타의 얼굴이 등장한다.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자세를 약간 기우뚱하게 그려서 가만히 놔두면 꼭 넘어질 것 같다. 햇살이 가리비 조개껍데기 위쪽 가장자리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서풍에 밀려 키프로스 해안의 모래톱에 닿는 순간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뽐내는 미의 여신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간직한 여인의 얼굴을 지녔다. --- p.184 산 미켈레 성당은 전면 위에 용을 잡는 천사 미카엘의 모습을 묘사한 거대한 청동상이 서 있다. 성당 안에는 피렌체 출신 조각가 루카 델라 로비아가 제작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이 있다. 루카는 베르디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오페라의 별’로 추앙받는 자코모 푸치니의 고향이다. 1858년 태어나 22세 때까지 살던 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돼 푸치니를 기리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고, 그의 생가 바로 옆 작은 광장에 담배를 손에 들고 앉아 있는 푸치니의 유명한 생전 초상 사진을 재현해 만든 동상이 서 있다. --- p.266~268 |
|
아르노 강,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산실
아르노 강은 시간 그 자체인 듯 오늘도 말없이 천천히 흐른다.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에 아르노 강을 따라 르네상스가 꽃을 핀다. 르네상스라고 하면 얼른 피렌체와 그곳에서 활동한 수많은 예술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한 겹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피렌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르노 강을 따라 발달한 수많은 도시, 특히 에트루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도시들과 그곳에서 배출된 많은 예술가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이 240km에다 배도 제대로 다니지 않는, 별로 길지도 넓지도 않은 아르노 강 유역의 도시들에서 태어나 활동한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시인 단테와 페트라르카, 만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화가 조토와 보티첼리, 건축가 미켈로초와 브루넬레스키, 조각가 도나텔로……. 이름들만 열거해도 이곳이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산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들은 ‘미술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나 저마다 솜씨를 뽐내며 문화를 가꾸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아르노 강은 북쪽으로는 성모 마리아의 허리띠를 보관하고 있는 두오모가 있고 필리포 리피가 활동했던 도시라는 데 대단한 자부심을 지닌, 지금은 세계적인 섬유도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프라토를 지나서, 지금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메디치 가문이 알비치 가문과 세력 다툼을 할 때 피신했던 피스토이아를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아르노 강을 따라 예술가들의 영혼을 찾다 아르노 강 남쪽 일직선으로 조그만 마을이 하나 있다. 바로 르네상스의 또 한 명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태어난 빈치 마을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이름은 ‘빈치 마을 출신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이다. 사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별 볼품없는 서자 출신이라 변변한 이름도 없었던 것이다. 피스토이아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베르디가 작곡을 하기 위해 종종 머물렀던 온천 도시 몬테카티니 테르메가 나온다. 그로부터 3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작곡가 푸치니의 고향 루카가 있다. 루카를 지나 좀더 북으로 가면 미켈란젤로가 조각에 쓸 좋은 대리석을 구하기 위해 헤매고 다녔던 카라라를 만난다. 아르노 강 남쪽으로는 마키아벨리가 말년에 칩거하면서 『군주론』을 저술했던 산탄드레 인 페르쿠시나가 있는데 그 일대가 바로 세계적인 포도주 산지 키안티 지방이다. 엠폴리, 산 미니아토, 그리고 더 남쪽으로는 탑의 도시 산 지미냐노가 우뚝 서서 반긴다. 그 밑으로 메디치 가문이라는 말만 들으면 아직도 이를 간다는 유서 깊은 도시 볼테라가 있다. 메디치 가문은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신화가 되었다.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은 메디치 가문을 통해 통해 수집되어 학자들에게 전달되어 신학으로 발전되고 르네상스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천재가 활동하도록 세상을 다르게 해석한 천재들을 후원함으로써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한때는 토스카나 지방의 패권을 놓고 피렌체와 다투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피아차 델 캄포를 자랑하는 시에나에 눈짓하고 나면 이제 아르노 강의 최종 목적지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 그리고 갈릴레오가 ‘낙하의 법칙’을 실험했다고 알려진 기울어진 탑의 도시 피사를 끝으로 아르노 강은 끝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