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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의 술잔
하성란
문학동네 199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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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루빈의 술잔
2. 내 가슴속의 부표
3. 꿈의 극장
4.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의 등허리였을까
5. 시즈카오 현의 한 호텔은 후지산이 보이는 날만 숙박료를 받는다
6. 지구와 가까운 소행성과의 랑데부
7. 두 개의 다우징
8. 풀

해설/신수정 타자라는 소행성과의 만남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Seong-nan Ha,河成蘭

깊은 성찰과 인간에의 따뜻한 응시를 담아낸 섬세한 문체로 주목 받아온 작가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탁월한 묘사와 미학적 구성이 묵직한 메시지와 얼버무려진 작품을 쓰며, 평소 일상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자신의 대답을 적어 내려가는 노란 메모 노트를 늘 인터뷰 시에 지참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작품 속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낸다. 거제도가 고향인 부친이 서울에 올라와 일군 가족의 맏딸
깊은 성찰과 인간에의 따뜻한 응시를 담아낸 섬세한 문체로 주목 받아온 작가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탁월한 묘사와 미학적 구성이 묵직한 메시지와 얼버무려진 작품을 쓰며, 평소 일상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자신의 대답을 적어 내려가는 노란 메모 노트를 늘 인터뷰 시에 지참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작품 속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아낸다.

거제도가 고향인 부친이 서울에 올라와 일군 가족의 맏딸이기도 한 그녀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인문계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여상(女商)을 졸업한 뒤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청춘의 초반부를 보냈다. 뒤늦게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소설을 쓰면서 '언젠가는 그 소설의 울림이 세상의 한복판에 가 닿는다고 믿는 삶'을 꿈꿨다.

습작시절, 신춘문예 시기가 되면 열병을 앓듯 글을 쓰고 응모를 하고 좌절을 맛보는 시기를 몇 년 간 계속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6년 그녀가 스물 아홉이던 해, 첫 아이를 업은 상태에서 당선 소식을 받았으며, 1990년대 후반 이후 늘 한국 단편소설의 중심부를 지키고 있다.

일상과 사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스타일로 '정밀 묘사의 여왕'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단편 미학을 다듬어온 공로로 동인문학상(1999)·한국일보문학상(2000)·이수문학상(2004)·오영수문학상(2008)을 잇달아 받은 중견작가이다. 그녀의 소설은 지나치게 사소한 일상에 몰두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거시적 입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 심리와 사물에 대한 미시적 묘사를 전개하면서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곰팡내 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꽃을 찾아간다'는 1999년 동인문학상 심사평은 여전히 하성란 소설의 개성과 미덕을 잘 말해준다.

대학 동문인 부군과 함께 운영하는 출판기획사에서 일하면서 창작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 곳은 그녀에게 생긴 첫 작업실이기도 한 셈인데, 그 전에는 부엌과 거실 사이에 상을 하나 펴놓고 새벽녘 텔레비전에서 계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썼다. 어느 대학 기숙사에 방을 얻어 한 달 동안 글 쓰겠다고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2009년부터 방송대학TV에서 '책을 삼킨 TV' 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얼마 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작품을 심사하기도 하였다. 현재 살아있고 같이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특히 '권여선'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저서로는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여름의 맛』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사진산문집 『소망, 그 아름다운 힘』(공저) 등이 있다. 최근 동료 여성작가들과 함께 펴낸 9인 소설집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에 단편 「1968년의 만우절」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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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7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1쪽 | 148*210*30mm
ISBN13
9788982810749

책 속으로

저는 지금 진지......글씨를 쓰다 말고 여자는 종이를 구겨 도로 핸드백 속에 넣는다. 경비원이 계단을 올라가는 여자를 불러세운다. 집배원이 댁까지 몇 번이나 다녀간 모양이에요. 할 수 없이 제가 대신 받아놓았어요. 경비원의 머리에는 그새 더 많은 검버섯이 핀 것 같다. 등기 속달 우편물을 받아들고 계단을 올라간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에 서서 우편물을 뜯는다. 새 여권이다.

--- p.68-69

여자는 나뭇잎을 꺼내든다. 책상 위로 상자에서 흘러나온 나뭇잎이 가득하다. 상자 속의 나뭇잎을 다 날려도 소식은 오지 않을 것이다. 지쳤어요. 나뭇잎 위에 글씨를 쓴다. 볼펜을 쥔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뭇잎에 구멍이 뚫리고 금세 조각조각 찢겨진다. 여자는 책상 위에 놓인 과자 상자를 통째 들고 창가로 간다. 창을 열고 한줌 가득 움켜쥔 나뭇잎을 날린다. 상자 안에는 이파리가 너무 많다. 상자를 창틀에 대고 쏟아붓는다.

--- p.243

방과 후 집으로 와보니 대문이 잠겨 있다. 여자는 한참 동안 엄마를 부른다. 쓰레기통을 밟고 담으로 기어오른다. 마당으로 뛰어내리다가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그때 한 달이 넘게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 동안에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깁스를 너무 늦게 푸는 바람에 오른 쪽 다리는 석고와 같이 굳어져버렸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의사에게서는 심한 입냄새가 났다.

생선 내장들이 썩는 냄새였다. 의사는 네 오른쪽 다리가 성장을 멈췄다, 라고 말했다. 다행이도 넌 벌써 키가 다 자란 것 같구나.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여자는 그 말보다 의사가 입을 열 때마다 여자의 얼굴로 날아오는 그 악취가 더 신경에 쓰였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자의 키는 5센티미터가 더 컸다. 오른쪽 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 p.53

남자는 자신이 늘 서 있던 유리창 하나를 찾아 눈으로 더듬는다. 엉거주춤 선 남자를 비켜 사람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39층 남자의 책상 뒤에 박힌 유리창 하나는 찾을 수 없다. 광장에서 올려다보이는 빌딩 한 면만 해도 똑같은 유리창들이 삼백 개가 넘게 박혀 있다. 그림자 다리의 절반쯤에 도달했을 때 남자는 광장을 휘몰아부는 바람을 등에 지며 온몸을 옹송그린다. 그때 남자의 왼쪽 눈알을 찌르며 무엇인가 확 달겨든다.

반사적으로 두 손을 내휘두른다. 커다란 나방 같다. 나방은 남자의 왼쪽 눈에서 오른쪽 뺨까지 짧은 포물선을 그으며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손바닥으로 왼쪽 눈을 비비며 땅바닥을 살핀다. 바닥에 떨어진 나방이 바람을 타고 한 발자국 뒤로 날아간다. 남자는 발을 들어 허공에 대고 크게 찍는다. 나방의 한쪽 날개 끝이 간신히 구두의 앞창에 잡힌다.

한겨울에 왠 나방이지? 왠쪽 눈을 찡그린 채 구두등 위로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이파리다. 구두 밑창으로 반쯤 밟고 있는 그것에서 발을 뗀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새가 있었나. 남자는 빌딩 앞 화단을 눈으로 며칠 전 내린 눈ㅇ니 먼지가 섞인 채 듬성듬성 쌓여 있다. 디귿자를 엎어놓은 것 같은 빌딩의 옴폭 들어간 그곳, 세 개의 회전문이 뚫린 그 앞으로 큰 화단이 있다. 사발시계 모양의 둥근 화단은 지난 가을, 빌딩 건립 3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때 국화 전시회가 열린 이후로 움푹움푹 빈 구덩이가 패어 있을 뿐이다. 입이 벌어진 시멘트 부대처럼 구덩이 밑바닥에는 다른 곳보다 짙은 그림자가 고여 있다.

빌딩 그림자에 점령당한 화단을 계절이 한 발자국씩 더디게 온다. 봄의 한가운데 들어도 빌딩 앞으로는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분다. 모종을 옮겨 심은 화단의 화초들은 늦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오른손을 꺼내 이파리를 집어든다. 인도고무나무 잎새다. 바싹 마른 누런 잎몸 위로 잎맥이 툭툭 불거져 있다. 잎맥을 들여다본다. 잎맥을 피해 아주 작은 글씨기 씌여 있다. 글을 쓴 그때까지도 잎맥에 물이 남이 있었는지 볼펜 볼 끝에 짓눌린 자리의 글씨는 조금 번져 있다. 누가 내 발 좀 걸어주세요. 흙바닥에 힘껏 나동그라지게요. 나좀. 102./186-187

--- p.

-- 광고 문구 말이야. 아무래도 약하지 않아? 좀 강한 거 있잖아.

남자의 얼굴 앞으로 사장이 주먹을 쥔 손을 들어올린다. '넘버세븐'으로 통하는 중국산 발모제로 떼돈을 거머줘었다는 사장은 정작 대머리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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