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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막에서
사막의 꽃·09 집시 여인·21 낙타에 팔려가게 된 와리스·31 사막 속으로·39 순결에 대한 남자들의 이중성·46 집 나간 언니를 만나다·52 떠돌이 와리스·58 2부 런던 런던행·69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74 끔찍한 고통·79 인샬라,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84 드디어 자립을 하다·91 수술대에 눕다·96 포르노 사진가 다시 나타나다·101 가슴을 보여주세요·108 본드걸이 되다·114 3부 새로운 세상 여권이 없어요·127 위장결혼에 휘말리다·133 또 다시 위장결혼·141 골칫거리 나이젤·147 런웨이를 걷다·152 엄마를 만나다·158 살아가는 이유·168 인터뷰의 여왕을 만나다·173 4부 새로운 도전 사막의 꽃 재단·183 전통과 고통·196 시에라리온에 핀 〈사막의꽃〉·207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다·219 2019 SEOUL WARIS DIRIE ·225 |
Seong-nan Ha,河成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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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리스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아프리카 사막에는 끔찍한 생리통에 시달리면서도 가축을 돌보고 물을 긷기 위해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수많은 소녀들이 있다. 성기의 입구가 반쯤 막힌 채 사막으로 걸어 나가 홀로 출산을 하다 피를 흘리며 죽는 여자들도 많았다. 할례를 받고 성인이 되어보지도 못한 채 죽어간 소녀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운좋게 피했다 해도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성 할례는 아직도 관습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되고 있었고 소녀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을 와리스는 외면할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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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오직 행동할 때만 바뀐다!”
저는 여성의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 수 없었고,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여성을 때리고, 강간하고, 파는 등 여성을 거래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향을 떠나면서 언젠가는 이 모든 부당함에 맞서 싸울 것이며 특히 어린 소녀들과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_와리스 디리 글을 쓰기 위해 와리스 디리의 삶을 다시 따라가면서 나는 어쩌면 그 ‘단 한 사람’이었을 와리스 디리의 용기에 대해 새삼 놀라고 그녀의 외로움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니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제 그녀는 그 악습에 ‘단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_ 하성란 “미래의 아이들은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육을 받고 자립성을 길러 혼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에서 최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그런 희망을 준 사람은 바로 와리스입니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와리스는 아버지가 늙은 남자에게 낙타 5마리를 받고 자신을 시집보내려 하자 집을 도망쳐 나온다. 친척 집에서 머물던 와리스는 영국대사가 되어 런던으로 가는 이모집 가정부가 되어 런던으로 간다. 이모네 집이 소말리아로 간 뒤에 혼자 런던에 남은 와리스는 우연히 사진작가 도노반의 눈에 띄어 피렐리 달력 모델이 되고, 이후 세계적인 모델로 활약한다. 모델로 잘 나가던 와리스는 [마리끌레르]에 자신의 할례경험을 이야기한다. 와리스의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를 계기로 와리스는 할례 철폐를 위한 운동에 나선다. 와리스 디리는 할례 철폐를 위한 UN 인권 특별대사로 활동했으며, 국제사회에서 여성할례 철폐를 위한 국제법 제정과 실질적인 근절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쓴 결과, ‘여성 할례는 범죄’라는 의식이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었으며 2012년 유엔 총회는 여성 할례를 전면 금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현재 와리스는 ‘와리스 재단’을 설립하여 여성 할례 철폐와 여성 인권을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