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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한국 협동조합운동 100년사 Ⅰ : 이상과 시련
서문 : 『한국협동조합운동 100년사』를 펴내며 총론: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협동조합운동의 이상 1부. 일제하 협동조합운동의 사상과 실천 (1919~1945) - 「역사의 창1」 1919년, 한국협동조합운동사의 원년 - 소비조합의 출현과 협동조합론의 발 - 기독교계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이념 - 조선농민사의 농민공생조합운동 - 협동사회 실현을 위한 협동조합운동사의 도전기 - 일제하 노동·농민운동과 사회주의 협동조합 2부. 협동조합운동의 재출발, 시련과 극복(1945~70년대 초반) - 해방 이후 협동조합운동의 부흥과 좌우대립 - 한국전쟁 후 다시 시작한 협동조합운동 - 신용협동조합의 초기 성장과 정부 개입에 의한 변화 - 「역사의 창2」 신협인의 눈으로 본 초기 신협 활동 - 원주지역의 협동조합운동과 생명운동 - 무교회신앙과 협동조합 정신: 생명운동과 공동체 생산양식 - 일기자료에 나타난 1960~70년대 농민생활과 농협 부록 : 협동운동100년사 부록 : 한국 협동조합·공제조합 통사 목록 총론 :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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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운동에 새로운 조선의 꿈을 담은 실천에는 민족주의자들, 천도교,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사회각계각층이 참여했다. 이들의 운동은 소비조합, 또는 협동조합운동이라 불리었고 1920년대-30년대 전반에 걸쳐서 끊임없이 시도되던 것이다. --- p.22
현재의 운동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협동조합을 둘러싼 많은 이론과 실제는 우리의 현재 운동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중의 적지 않은 부분은 과거 협동조합운동의 역사 속에서 이미 제기되거나, 실험되거나, 해결되거나, 또는 미해결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적 경험 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일제하 이래 우리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적 경험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여기에 우리가 우리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를, 그를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논의와 경험을 발굴하고, 반추하고, 축척하는 이유가 있다. --- pp.50-51 기록상 많은 편차가 있지만 운동사가 1920년대 후반기 조선에 협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동사 주도층은 사회주의 성향의 지역사회운동 세력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등과 폭넓게 연대했다. 민족주의·사회주의 양대 운동과 이념의 간극을 극복하고, 민족운동·사회운동의 작은 험로를 개척해나갔던 것이다. --- p.118 일제는 소비조합의 경우에도 혁명적 농민운동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사례들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혁명적 농민운동을 지탱하는 한 축이 소비조합이라고 판단하고 그에 대한 항상적인 감시와 집회 금지, 어떠한 행동이 있을 경우에는 검거라는 방식을 취했다. 결국 농민조합이 말살당하는 과정에서 소비조합도 사라지고 말았다. --- p.147 해방 후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새롭게 부흥했으나 좌우대립의 상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좌익 계열은 러시아 사회주의혁명과는 구분되는 점진적, 계급 연합적이며 생활의 영역을 중시하는 온건한 인민민주주의 개혁을 추구했으며, 이를 뒷받침할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기반의 하나로 협동조합을 중시하며 활동했다. 그러나 이 활동은 미군정의 탄압 속에 좌절되고 관련자들 일부는 북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에 맞서 우익 계열은 노동 현장에서 좌익계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고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소비조합을 적극 활용하였고, 이를 미군정이 지원했다. 그러나 이 소비조합 운영은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의지가 바탕이 되지 못했고 생필품 자체의 부족, 생필품 유통과정에서 미군정 및 사업주와의 결탁 등 조합 간부들의 부패 등이 문제를 낳으며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 pp.178-179 협동교육연구원은 직접적으로는 신협의 모태지만 신협에 국한되지 않는 1960년대 이후 한국 전체 협동조합운동의 중심이었다. 협동교육연구원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협동조합 교육을 실시하는 국내 유일의 민간단체였으며, 규모는 작았지만 협동조합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시하는 성인교육 기관이었으며, 신용협동조합운동을 포함한 협동조합운동 전반에서 중심 역할을 해냈다. --- p.209 원주지역의 생명협동운동은 1960년대 가톨릭이 주도하였던 신협운동에서 시작하여 1970년대 민간 주도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의 추진, 더 나아가 ‘생명의 세계관’에 입각한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생명운동의 제창과 한살림운동의 전개까지 다양한 제반 운동을 시도하였던 특징을 지녔다. --- p.281 자치와 자립, 참여와 협동, 공유와 분배의 원칙을 충실히 지향하는 곳이 홍성의 협동조합 공동체이며 이 현상의 실천적 기반이 무교회 신앙이다. 부산모임과 청십자의료협동조합에서 보듯이 인간의 실천 능력과 인격을 예수의 차원으로 고스란히 끌어올린 이가 장기려 선생이며 또한 이찬갑과 그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삶으로서 증거하고 있다. --- p.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