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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기계의 성질과 상호기계성
1. 기계의 존재론 21세기 산만기계 노이즈의 기계와 올바른 노이즈 생활 기억의 기계 액체공포의 근원 맹목적성의 기계: 탄체 마이크 공포증 귀뚜라미의 존재론 2. 기계도시의 풍경 종이라는 기계 왜 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쓰지 않는가 감시카메라 사용법, 혹은 한국판 감시의 사회 명박산성, 저열하지만 뜻 깊은 기계 테크노스케이프: 모든 것은 모니터에 나타나기 위해 존재한다 비만 문제에 대한 기계비평적 비판 3. 보고서라는 기계 사진과 그래픽의 경쟁: 과학 기술의 경우 사고조사보고서 읽기: 괌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의 경우 |
李瑛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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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새로운 인간을 낳았다. 기계산책자. 19세기가 만보가, 즉 아무 목적도 없이 유유자적하면서 길거리를 걸으며 문명과 문화를 내려다보는 인간을 낳았다면, 21세기는 기계 자체에 매혹되어 세상 모든 일을 잊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작동 원리는 무엇일까, 재료는 무엇일까, 나아가 인간은 왜 이런 기계를 만들었을까, 이런 기계를 만든 것이 인간인가 기계인가 궁금해하는 인간을 낳았다. 그는 비평적 욕망을 가진 마니아다. 즉 자신이 애호하는 기계를 비평적으로 해석해보고 싶어 하는 자다. ---p.7
우리는 우리가 기계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기계의 조종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를 조종하는 기계는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듯이 어떤 특정한 개별적인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얽혀 있는 환경의 매트릭스이다. ---p.8 시골오지 마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우리가 묵은 민박집의 아이는 한쪽 눈으로는 컴퓨터 게임을 하고, 또 한쪽 눈으로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시선과 마음은 컴퓨터와 텔레비전이라는 두 개의 매체로 나뉘어 있었다. 입구에는 영기가 가득 서린 큰 성황당 나무가 서 있고 논에는 흰 백로가 노니는 그 마을에서 내가 본 것이 눈의 분열, 혹은 멀티미디어 시대의 산만함의 종말론적 풍경이었다고 하면 그 아이에 대한 지나친 비난일까? ---p.27 유튜브에 이르러, 기억은 개별적인 사물을 넘어서 방대한 네트워크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되었다. 네트워크가 모바일해지면서 기억도 대단히 모바일하고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사물에 들어 있는 기억은 사물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고, 사물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변하면 같이 변하는 휘발성이 강한 것이지만, 네트워크에 들어 있는 기억은 네트워크가 망가지지 않는 한 날아가지 않는다. 현대의 네트워크적 기억은 개인은 망각했을지라도 다중적 접속망에 의해 ‘집단적 기억효과’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재연해낸다. ---p.57 디지털 시대는 오류의 가능성을 즐길 권리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편재로 말미암아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불가능해져버렸다. 그래서 인간은 길을 잃어버리는 공포에서 해방되었고, 동시에 모르는 길을 가다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유쾌한 방랑의 즐거움도 빼앗기고 말았다. ---p.121 21세기의 한국에서는 감시가 기능이나 장치가 아니라 ‘덕목’이 된 것 같다. 감시가 없으면 불안한 사회, 감시가 당연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작용의 고리를 끊고, 시각적 표상의 장치들을 다시 소통의 영역으로 되돌려놓을 때라고 본다. 감시의 사실이 생산해내는 지식은 별로 건강하고 유익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p.167 컨테이너는 그 자체로는 극도로 단순한 장치이지만 글로벌한 규모로 보면 대단히 복잡한 장치이다. 복합물류 체계를 통해, 컨테이너는 배?트레일러?철도로 이루어지는 유연한 시스템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이동 경로를 거치며 지구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컨테이너가 광화문에서 시민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놓여 있다는 사실이 명박산성의 엄청난 아이러니이다. 그것은 글로벌 시대의 첨병이 국지적인 갈등을 진압하는 데 쓰인, 매우 희귀한 사물의 변전이라 할 수 있다. ---p.178 식품산업은 20세기 초에 나타난 대량살상무기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기관총이나 원자폭탄처럼 식품산업은 많은 사람의 몸을 일시에 바꿔놓는다. 살려면 먹어야 하는데 그 먹는 것 때문에 죽게 된다는 아이러니는 근대 문명이 추는 죽음의 춤의 한 막이다. ---p.221 오늘날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테크놀로지이므로, 그것의 붕괴는 당연히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가져온다. 그것이 꼭 처참한 사건일 필요는 없다.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와 같이, 얼마간의 인터넷의 두절이라는 사태만으로도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고 트라우마를 겪는다. 왜냐면 오늘날의 세계에서 사이버 스페이스는 실재 세계와 동의어이고, 인터넷의 두절은 잠시나마 세계가 붕괴되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p.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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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카메라, 내비게이션, 스마트폰, 크루즈미사일, 유튜브, 윈도우즈, 명박산성……
비평가의 눈과 산책자의 발걸음으로 써내려간 기계문명 오디세이 21세기는 새로운 인간을 낳았다. 기계산책자. 그는 기계의 사용자이면서 거리를 둔 관찰자이고 해석자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계문명의 무게와 소음에 얽매이지 않고 기계의 모든 감각적인 평면들 위로 유유히 산책한다. 그리고 기계를 읽어낸다. ─ ‘머리말’ 중에서 『기계산책자』는 사진비평가로 활동하다 기계에 매혹되어 기계비평이라는 낯선 분야를 연 이영준의 본격 기계비평서이다. 이번 책은 ‘기계’ 자체에 천착했던 이전 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계‘문명’에 초점을 맞춘다. 즉 기계와 인간 간의 인터페이스와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계산책자’란 이렇게 기계를 통해 인간 문명의 의미를 읽어내는 자의 이름이다. 그는 ‘전문가’처럼 기계 자체의 작동에만 얽매이지 않으며, 일부 ‘지식인’처럼 기술에 대한 무턱댄 불신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는 비평적 욕망을 지닌 기계 마니아, 즉 기계 애호가이자 비평가이다. 『기계산책자』는 이러한 비평가적인 경계에 서서 바라본 기계문명 보고서이다. 그는 내비게이션,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일상적 기계에서부터 우주선, 미사일, 비행기 같은 거대 기계에 이르는 다양한 기계들이 어떻게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읽어내며, 나아가 감시카메라나 명박산성을 이룬 컨테이너 같은 정치?사회적 기계가 갖는 함의를 밝힌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현대의 삶을 구성하고 결정하는지에 대한 독창적인 통찰에 다다르게 된다. 1부 기계의 존재론: 기계-인간 인터페이스와 새로운 주체 우리는 기계가 산만하다, 사람이 산만하다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양자 간의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즉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의 인터페이스가 총체적으로 산만함이라는 조건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기계적 상황이다. ─ ‘21세기의 산만기계’ 중에서 새로운 기계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낳는다. 저자는 자동차 주변기기들이나 윈도우즈 컴퓨터 등에서 한 곳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산만기계’의 탄생을 보고, ‘노이즈의 기계’에 대해 살피면서 근대가 인간에게 폭음과 침묵이라는 극단의 진폭을 강요하고 있음을 밝혀내며, 박물관, 건축물, 유튜브 등의 ‘기억의 기계’에서 오늘날 기억이 조직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기계의 액체성이 주는 ‘액체공포’를 통해 유동성이 가져오는 불안을 발견하고, 짱돌부터 미사일에 이르는 다양한 탄체를 진열하는 가상 전시에 대한 상상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맹목적성의 기계’인 탄체에 인간의 잔머리를 불어넣게 되는지를 살핀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계의 탄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단순히 기계의 발명자와 사용자에 머무르지 않으며, 역으로 기계를 통해 자신을 구성해내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기계는 새로운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내며, 이는 과거와 다른 삶의 조건으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과 맞닿아 있다. 2부 기계도시의 풍경: 현대 사회에서 기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동의 수단을 이용하여 이동을 막는다는 명박산성의 엄청난 모순은 우스운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담론적으로 풀어야 할 것을 토목적으로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명박산성은 역사로부터 배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내버리고 말았다. ─ ‘명박산성, 저열하지만 뜻 깊은 기계’ 중에서 저자는 이어서 다양한 기계들이 현대 도시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파헤친다. 분석의 한 축은 기계가 어떻게 정치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변형되고, 또 그것이 어떻게 사회를 다시 변형시키는가이다. 한때 꺼림칙한 대상이었던 감시카메라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분석하고 나아가 어떻게 감시의 시선이 역으로 오늘날 주체의 중요한 조건이 돼버렸는지를 밝히며, 이동성의 기계인 컨테이너가 정치적 안배에 따라 군중의 이동을 막기 위한 명박산성으로 변신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식품산업과 미디어가 어떻게 먹는 주체를 수동적인 소비자로 만드는지 분석한다. 다른 한 축은 무심코 지나쳐버리곤 하는 기계들을 다시 우리 눈앞에 불러내는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밀려나고 있는 듯한 종이가 갖는 의미를 기계비평적 시선으로 살펴보고, 카세트테이프와 탄창, 콩코드 여객기의 창 등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변화하는 풍경에 대해 성찰한다. 또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편리를 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순간 낯선 곳에 다다를 자유를 빼앗아갔다고 말한다. 3부 보고서라는 기계: 기계를 재현하는 것의 의미 사고는 주체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사고 직전까지 각종 데이터를 인지하고 판단하며 항공기를 조종하고 상황을 장악하고 있던 주체들은 사고가 나는 순간 희생자가 되고, 주체성은 사라지고 파편이 돼버리는 아노미 상태가 된다. 이때 사고조사보고서는 그 사태에 대한 저자로 나서서 내러티브를 재구성하고 사고의 성격과 본질을 규정하며, 사고 자체를 재연해낸다. ─ ‘사고조사보고서 읽기: 괌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의 경우’ 중에서 마지막 두 글에서는 기계 혹은 기계가 불러온 사고를 재현한다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성찰한다. 미항공우주국(나사)에서 발표한 우주개발 관련 보고서를 통해, 기계를 표상하는 매체로서 그림과 사진이 벌이는 흥미진진한 경쟁을 그려내고, 나아가 칼 세이건이 디자인하고 우주선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에 실린 외계 생명체를 향한 그림 메시지가 얼마나 인간적?서양적?백인남성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폭로한다. 또한 1997년 8월 6일 괌 공항에 착륙하다 추락해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를 다룬 사고조사보고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어떻게 사고가 가져온 집단적 트라우마를 내러티브적 복원을 통해 봉합하는지를 밝힌다. 특히 롤랑 바르트의 '스투디움'과 '풍크툼' 개념을 통해 추락 사고가 갖는 의미를 분석해내는 과정은 저자가 펼치는 기계비평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