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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크린 속을 닮은 우리 인생
나의 처음 글쓰기 | 지친 중년을 위한 콘서트 | 타인의 취향 | 기억 속의 삼일극장 |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구? | 고사리와 영화 | 실버영화관 | 바캉스? 영캉스! | 문화통장의 탄생 | 아타카 컬렉션 2.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기 나의 두 번째 글쓰기 | 나이 드는 것의 미덕 |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 내 마음이 감기에 걸렸어요 | 법정스님을 조문함 | 앰뷸런스 유감 | 잇츠 스노잉 나우 | 가을비 오는 소리 | 무례하고 불편한 이웃 | 내 친구가 한 말을 기억하며 3. 열 명도 훨씬 넘는 우리 식구 하숙집에서 그룹 홈으로 | 시골 목욕탕 | 힐링 푸드 | 많아도 너무 많다 | 건빵바지와 앞치마 | 나도 손님 하고 싶다구 | 나의 삶터 나의 부엌 | 모닝 누룽지 | 내가 참 잘한 일 하나 | 먹고사는 일 4. 그리운 그 시절 그 모습 엄마는 35년 전에 힙합 입었다 | 날씨는 화창한데 | 어머님의 유머 | 내 서방이 아닌 게 진짜 다행이다 | 고모의 소원 | 연우의 정원 | 아버지의 텃밭 | 몇 마리나 먹겠냐 | 장 사장, 장 씨, 장 선생 | 엄마와 부적(符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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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지리와 2학년 역사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석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그날은 1학년 지리시간이었다. 칠판에 ‘오세아니아’에 대해 판서를 하고 있었는데, 또르르 굴러가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잇츠 스노잉 나우(It’s snowing now)!” 판서를 멈추고 창밖을 보니 함박눈이 탐스럽고도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와~ 함성과 함께 교실은 창문에 매달린 아이들,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들, 겅중겅중 뛰는 아이들로 북새통이 되었다. 알에서 금방 나온 병아리 선생이 다시 수업을 하기엔 벅찬 상태였고, 이미 내 마음도 쏟아지는 함박눈에게로 가고 있었다. “나가요, 선생님~~~.” “나가라!” 아이들의 합창 소리에 나도 겁 없이 동조하였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가자니 문이 비좁아 창문을 열고 뛰어 나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복도는 질주하는 경주마들을 방불케 했다. 옆 반에서도 이미 수업은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아이들이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교실에 혼자 남겨졌다. 그때 창밖을 내다보던 마음이 오늘 아침 창밖을 내다보던 마음에 겹쳐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창밖을 보며 수업시간을 보내고 교무실로 들어서니 교감선생님이 한마디 하신다. “이 선생! 수업을 10분도 안 하고 애들을 내보내면 어쩌자는 겁니까? 다른 반 생각도 해야지!” “자~알 했어. 이런 날 수업하고 있으면 그게 선생이야? 가르치는 기계지. 마음이 없잖아, 마음이! 이 선생은 선생 자격 있어.” 죄송하다는 말을 채 마무리기도 전에 교무주임선생님이 껄껄 웃으며 끼어드셨다. 순간 조심스럽게 교감선생님을 쳐다보았는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흔들어주시는 게 아닌가. 마음이 놓였다. 해리 포터를 연상시키는 얼굴에 둥근 안경이 아닌 사각 검정 뿔테안경이 하얀 얼굴과 잘 어울렸던 그 아이의 ‘잇츠 스노잉 나우’는 문득문득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해준다. 지금은 50대 중반이 되었을 그 아이는 분명 맑고 밝게 잘 살고 있을 거다. --- p.92~93 오늘은 토요일인데도, 하숙생들이 아무도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줄 양으로 돈가스를 만들었다. 양배추를 채 썰고, 토마토, 블랙올리브를 썰어 접시에 담아놓고, 여러 종류의 소스를 병째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케첩 안 먹는 아이, 돈가스 소스를 싫어하는 아이 등 요즘 아이들은 입맛도 제각각이고 표현도 솔직해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걸 분명하게 말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아이들의 힐링 푸드는 과연 무엇일까? “태현아, 네 힐링 푸드는 뭐냐?” “힐링 푸드? 힐링 푸드? 그게 뭔데요?” “니가 힘이 들 때 먹고 싶은 거. 왠지 그 음식을 먹고 나면 힘이 날 거 같고, 기분이 좋아지는 거. 니가 좋아하고 맛있다고 생각되는 거.” “천호동 유가네 닭갈비요, 그거 댓다 맛있어요.” “그래? 그렇게 맛있어? 그리고 또 없니?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이 생각난다든지, 뭐 그런 거.” “없어요, 엄마가 라면 끓여준 것밖에 생각이 안 나네. 히히,” 일찍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공익근무를 하기 위해 귀국을 한 친군데, 부모님은 일본에 계셔서 우리 집에 누나와 함께 있게 되었다.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는 태현이 누나에게 물어봤다. “넌 힐링 푸드가 뭐니?” “훠궈요.” 훠궈는 중국식 샤브샤브를 말하는 것이다. 오누이인데도 참 다르다 싶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부산에서 온 아이는,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이라고 하고, 전주에서 온 아이는 엄마가 해주신 마파두부와 해물탕이라고 하고, 수원에서 온 아이는 딱히 집어서 말할 게 없이 다 맛있다고 하고, 다른 한 아이는 햄버거라고 한다. “너희들은 아직 세상을 산 연식이 짧아서, 힐링 푸드 같은 게 절실하지 않은가 보다.” 하며 웃었지만 ‘이게 세대차이구나.’ 싶었다. “이모는 힐링 푸드가 뭐에요?” 전주에서 온 간호사인 친구가 묻는다. “나는 연식이 오래 돼서 몇 가지가 있네 그려.” --- p.120~121 작은언니는 큰언니와 동갑인 형부와 이불가게를 하고 있다. 언니는 제일 좋은 노후 대책은 현역에 있는 거라고 하지만 장사가 그리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공연히 고생만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언니는 괜찮다고 말한다. “아무 때 가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인데, 집에서 우두커니 뭐하냐? 그래도 아침밥 해 먹고 도시락 싸가지고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장사가 좀 되는 날은 영감 좋아하는 갈치도 한 마리 사서 지져 주고, 한 이만 오천 원 정도 하는 거 사면 먹을 만하더라.” 참을성 없게 한마디 툭 튀어 나왔다. “아이구! 평생 잔소리쟁이에다가 자기 좋은 것만 하는 형부가 뭐가 이뻐서 그 비싼 갈치를 다 사준담?” 형부는 손님 쫓아버리기 선수다. 오죽하면 손님이 전화를 해보고 형부가 안 계실 때 다녀갈까. 내 말에 언니는 싱긋이 웃으며 나즈막한 소리로 대꾸한다. “몇 마리나 먹겠냐?” 그 소리에 같이 갔던 딸내미와 빵 터져버렸다. ‘몇 마리나 먹겠냐’에 이어서 ‘몇 마리나 더 해줄 수 있겠냐’고도 했다. ‘몇 마리나 먹겠냐’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언니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때보다 더 짠하게 들렸다. --- p.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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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일상이 되고 문학이 일상이 되는 시간
“이 분에게 있어 글쓰기는 일상 속에 매설된 소중한 쉼터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추스르고 갈무리하는 자기 확인의 길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문학이 될 수 있는 두 영역의 교감이 이 책에 실린 40편의 글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건빵바지와 앞치마』의 저자 이승일을 생각하면 엄마같이 포근한 하숙집 주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빼어난 요리 솜씨만큼 맛깔난 글을 모아 책으로 냈다. 자극적인 요리보다 정갈한 집밥 같은, 일상 속에 숨겨진 쉼터인 글들은 읽는 이에게 웃음과 위안을 동시에 안겨준다. ‘쪽팔리는 나의 민낯’을 책으로 만드는 일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겸양의 말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힘이 되어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무게를 실감하고 한 자 한자 정성껏 쓴 글들이 지닌 힘은 대단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소박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꿈’에 미소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나도 한번 써 볼까? “‘나도 한번 편지 써 볼까?’ 하고 생각했던 그 순간, 그 생각으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의 처음 글쓰기는 나의 자존감을 약간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고 순간순간 행복하다는 감정도 되찾아 주었다.” 학창 시절 위문편지나 백일장을 성가시게 여기던 저자가 중년에 문득 라디오 [여성시대]에 사연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글쓰기의 맛을 알게 되었다. 사연이 여러 번 채택되어 가족들에게 인정도 받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글쓰기가 자신감을 살려 주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게 공감해 준다는 것, 그것이 위로가 되었고 인정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바로 글쓰기가 지닌 매력을 잘 드러낸다. 더군다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어우르는 글감과 젊은 세대와도 위화감이 없는 넉넉한 품성이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객지 엄마가 되어 주련다 “아이들이 객지에 덜렁 혼자 나오게 되었을 때 일 년 정도는 그룹 홈 생활을 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게 타지에 적응이 된 후에 혼자 다시 독립하면 정말로 잘 살아낼 것이다. 하숙이든 그룹 홈이든, 나는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된 아이들에게 여전히 객지 엄마가 되어 주련다.” 저자는 어려운 시절 생계의 바탕이 되었던 하숙집을 시대에 흐름에 따라 접었다. 그런 후 방세, 난방비, 전기요금, 수도요금은 받고, 나머지는 구성원끼리 생활을 같이 하는 형태인 그룹 홈으로 변경했다. 이렇듯 사는 모습을 크게 달려졌지만 객지 엄마로서 식구들을 챙기는 마음은 여전하다. 이 책에 담긴 글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오래 전 이야기이든, 아니면 최근의 이야기이든 사람 사이의 정이 듬뿍 담겨 있기에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먹고사는 모습은 어차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웃음을 놓치지 않는 글솜씨는 마치 고향집처럼 푸근하다. 고맙습니다 늘 동행이 되어 주어서 “지난 어느 봄날, 남편이 카톡 보내는 걸 가르쳐달라고 했다. 몇 번을 묻고 또 묻고 하더니 며칠 후 드디어 카톡이 왔다. 첫 번째로 내게 보내는 거란다. 눈물이 살짝 났다. ‘평생 웬수’라고 말하는 내게 ‘절친한 친구’라고 응수하는 돈키호테.”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이기 때문에 늘그막 부부의 대화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이렇듯 흐뭇한 미소를 안겨주는 이런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하는 지인이 ‘인생 친구 하나, 인생 선배 하나 새로 잘 건졌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 같다. 꺼내볼 때마다 저자를 미소 짓게 만드는 ‘작은 티파니블루 상자’와 같이 읽는 이에게 흐뭇함을 안겨줄 『건빵바지와 앞치마』를 강력하게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