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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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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냄비 바닥에 야트막하게 남은 된장찌개를 소리나게 긁어 먹었을 것이다. 기억하기로, 그 무렵 영숙은 늘 허기져 있었다. 숟가락을 놓고 돌아서면 금세 배가 고팠다. 나중에야, 아주 나중에야 그 허기가 어쩌면 마음의 빈곳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아홉 살 때 허기는 그저 허기였다. 혼자서도 꾸역꾸역 된장 냄비가 바닥이 보이도록 긁어먹고도 일어설 땐 또 배가 고팠다. 영숙은 밥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그 위에 연두색 상보를 덮다가 양손으로 송편을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불룩해진 주머니를 쓰다듬으며 집을 나서니 사방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 p.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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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타고 4년 만에 돌아온 작가 김형경
빛나던 한때를 돌아보라. 목적 없이 내달렸던 눈먼 젊음을…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로 91년 <국민일보>의 1억원 고료 공모에 당선된 작가 김형경이 95년 자전적 소설 <세월>에 이어 4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를 두 권으로 내놓았다. 언더그라운드 대중음악 그룹의 부침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고뇌와 사랑을 밀도 있게 다룬 이 소설에서 김형경은 작가 특유의 차분한 글쓰기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30대 중반, 이제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로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주인공 영숙이 1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자신의 20대를 되돌아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눈에 보이는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절망하다 마침내 세상에 대한 허상을 벗고, 나름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바로 우리들 삶의 닮음꼴이 모아진 얘기이다. 가슴 밑바닥까지 절망하면서도 마침내 희망을 건져 내고야마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는 '절망하지 못하는 병' 이라 이름짓는다. 아무리 험한 산 앞에서도, 아무리 높은 파도 앞에서도 주저앉지 못하는 병. 주저앉을 틈도 없이 어느새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 동안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털어내고, 더욱 다채로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작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끝났다. 삶의 한 시기가, 사랑의 한 소절이, 열정의 한 마디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 었다. 영원이란 없는 거라고, 반디가 깜박깜박 빛을 발하듯, 그 빛나는 순간 순간들을 사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는 칼이 없다?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는 제목은 우리가 흔히 농담 삼아 말하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는 칼이 없다'는 명제를 연상케 한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 이런 것들은 인간이 삶에 장착해 놓은 안전장치임을 지적하면서, 형식과 내용이 다르고, 현상과 본질이 같지 않은 일들이 세상에 어디 한두 가지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너무 깊게 절망에 빠지지 말고 너무 많이 세상의 배면을 보지 말라는 충고가 이 명제에 들어있음을 작가는 의미깊게 상기시킨다. 이 작품의 소재 또한 지금까지 문학 작품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대중음악계의 내부를 깊이있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작가는 여기서 문화상품의 가치와 그것의 허구, 대중문화라는 것의 실체,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몇몇 힘있는 자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