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사진가로서의 자존심
예술과 구원 새로운 가치, 영상사진 너와 나의 소통, 예술가의 초상 우리 시대 마지막 토박이들, 백민 여름철 한때, 검은 모살뜸 인간적인 매력, 장승 우리는 우리 눈으로 우리나라를 보라 |
Myong-shim Yook,陸明心
육명심의 다른 상품
|
신혼여행 가서 삼각대를 받쳐놓고 둘이서 정답게 사진을 찍으면서 아내에게 카메라의 조작법을 생전 처음 배웠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나한테는 사진을 가르쳐준 첫 번째 선생님이다. 그런데 사진에 입문하고 보니 뜻밖에도 이 예술분야에서는 이제까지 사람들이 나에게 단점으로 지적했던 것들이 도리어 장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 21
느긋하게 약 두 시간 가까이 전체적인 파악을 하고 나만의 유일한 사진을 찍기 위해 장소를 물색했다. 이윽고 절 뒤편 후미진 곳에서 돌절구 하나를 발견했다. 크기가 1미터가 넘는 둥글납작한 타원형의 돌 한가운데가 둥글게 팬 확에는 물이 고이고 둘레에는 이끼가 가늘게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다, 하는 판단이 섰다. 서둘러 남들보다 30분쯤 먼저 점심을 먹고 남들이 한창 식사를 하는 틈에 한 모델을 가까스로 달래 그곳에서 남들의 눈을 피해 사진을 찍었다. 모델로 하여금 절구에 기대어 얼굴이 수면에 비치게 하고 서둘러 세 번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는 얼른 모델을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오후에도 이런 식의 연출사진을 두 번 더 찍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모두 합쳐서 24컷짜리 필름 한 통이었다. ---p. 23 우선 공간적으로는 미시적인 시각과 거시적인 시각을 비롯해서 팬 포커스(pan focus)나 아웃 포커스(out focus) 같은 광학적 시각이 내 눈을 새롭게 뜨게 했다. 시간적으로는 하이 스피드(high speed)나 슬로 타임(slow time)이며 패닝(panning) 같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이미지들이 나로 하여금 세상을 달리 보게 했다. 영상사진이 리얼리즘과 차별화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이러한 시각적인 새로운 경험과 이에 따르는 대상을 보는 방식의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결과도 리얼리즘에서는 주관성이 전혀 개입할 수 없는데 반해 영상사진에서는 개입할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다양한 잠재적인 가능성을 동원해서 대상을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영상적으로 새롭게 구축할 수 있었다. ---p. 30 이 사진가들은 저마다 각자 고유한 자기 세계를 가지고 '나는 너희와는 다르다'는 선언을 분명하게 하고 있었다. 내가 이들의 사진 작업을 알아본 것은 그것을 보고 따라가려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찍이 처음 카메라의 기초적인 조작밖에 못하는 내가 동학사에서 있었던 신록사진촬영대회에 임했을 때와 똑같은 생각에서였다. 즉, 남들이 어떻게 찍는가를 먼저 알아보고 나서 그렇게 찍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 틈새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벌써 이들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버린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막막하고 아득할 따름이었다. ---p. 72 현대사진의 키워드 '지금, 여기' 세계사진계는 사진가들이 저마다 제 나라의 자기 카드를 내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도 우리 카드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카드를 내놓아야 하나. 그때 젊은이들은 외국의 새로운 사진 풍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현대사진이란 특정한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세계는 패션세계처럼 외국에서 부는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쓰는 유행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대사진이란 어느 시대나 그 당대의 '지금, 여기'에서 저마다 정직하게 자기 삶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현대사진과 우리의 현대사진은 당연히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p. 115 이토록 보다 더 깊은 눈맞춤을 대표하는 실례가 수덕사에서 찍은 벽초(碧初) 스님이다. 벽초 스님은 만공(滿空) 스님의 가장 마지막 제자로 수덕사 문중에서는 가장 존경받고 받들어 모시는 큰 스님이다. 그런 어른이신데도 천진스럽기가 어린아이 같고 소박하기가 이웃집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다. 이 스님은 원체 본성이 대단한 분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도 항상 마음의 눈을 활짝 열고 사람을 맞이하기 때문에 자연히 이렇게 깊이 있는 눈맞춤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꼽는다면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박봉술(朴奉述) 명창이다. 박봉술 명창은 내가 워낙 판소리를 좋아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깊이 있게 교분을 맺고 있었따. 우리는 연령의 차이를 뛰어넘어 만나면 서로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서로 만나 눈길을 마주쳤다 하면 쌍방 간에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사이라서 이렇게 쉽사리 깊이 있는 눈맞춤을 찍을 수가 있었다. ---p. 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