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희곡
봄날은 간다 6 산문 사랑의 여러 빛깔(들) 64 길 떠나는 집 73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밤 79 고백의 시간 86 작가 프로필 94 작품 소개 96 작가의 말 99 |
최창근의 다른 상품
|
여기 한 가족이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모여 피붙이보다 더 진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가족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과 딸. 어머니는 남사당패에서 만나 의남매를 맺은 남편과 결혼하지만 그 남편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핏덩이 하나를 데려다 놓고 집을 나간다. 어머니는 남편이 데려다놓은 아이를 자신의 친딸처럼 키운다. 고아원에서 보모로 일하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과 닮은 아이를 아들로 키운다. 오누이 관계가 된 아들과 딸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만 자신의 내력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질까봐 두려워한 어머니는 이들의 관계를 갈라놓으려고 애쓴다. 서로 사랑하게 된 아들과 딸은 두 사람의 사이를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 몰래 도망가려 하지만 차마 어머니 혼자 남겨두고 갈 수 없는 딸은 남고 아들만 떠난다. 혼자 남겨진 딸은 어머니를 원망한다.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딸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난다.
한 세월이 흐른 후 어느새 나이를 먹은 아들과 딸은 부부가 되어 어느 봄날 어머니가 묻혀있는 바닷가 언덕의 무덤을 찾아간다. 목수인 남편과 시인인 아내. 그들은 그 옛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입양해 기르려고 한다. 그들이 어머니를 찾아가며 떠올리는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들. 죽은 어머니는 그들의 뒤를 따라 어둡고도 환한 봄볕을 받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작품 속의 세 사람은 길을 간다. 언제 길을 나섰는지, 언제 그 길이 끝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게 그들은 어디론가 가고 있다. 작품의 제목처럼 또 그렇게 봄날은 간다. 그리고 우리네 인생도 흘러간다. |
|
최창근 형에 대해서라면, 거의 종교성마저 느껴지는 그의 인상적인 야윔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체형에 ‘마른’이라는 형용사를 쓰는 것은 아마 ‘수분이 빠져버린’ 몸처럼 보인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빠져나간 것은 수분이 아니라 욕심 같았다. 자기 자신과는 평온한 관계를 유지할 줄 아는, 덕분에 마음의 여력을 남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사람. 달리 사는 법을 모르는, 한결 같은 사람. 그가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내 멋대로의 짐작은 첫 만남에서 이미 시작됐다. 그를 알고 지낸 십년 동안 그와의 대화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되는데, 기이하게도 나는 ‘최창근이었던’ 사람과 ‘최창근일’ 사람조차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으로 그를 자주 떠올린다.
그런 그의 데뷔작은 ‘봄날은 간다’이다. 1998년 언젠가, 이 옛 노래 제목에,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보다도 먼저 최창근이 끌렸을 때, 그는 저 다섯 글자에서 흔히 연상되는 무상(無常)함 말고 어떤 초연(超然)함을 감지한 것은 아니었을까. ‘축축한 욕심이 다 빠져나간, 그래서 평온하게 마른’ 몸 같은 초연함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의 사랑을 다루되, 폭풍의 언덕 같은 광폭한 로망스로 나아가지 않고, 사랑의 힘으로 운명을 타이르는 연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극중에서 그들이 걷는 길은, 운명을 적대하지도 운명에 복종하지도 않는, 운명과 어울리며 그것을 긍정하는 길이다. 이를 한국적 운명애(運命愛)의 길이라고 하면 어떨까. - 신형철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