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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과 깡통의 궁전
동남아의 근대와 페낭 화교사회
강희정
푸른역사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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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프롤로그

제1부 아편 권하는 사회

1장 영국 식민지 페낭의 탄생
페낭 점령의 ‘졸렬함’
자유주의란 이름의 ‘해골정부’
자유항과 자유이민|징세청부제|행정 없는 ‘해골정부’

2장 아시아인의 도시 조지타운
방치된 ‘자유방임’
다인종 다문화의 항구도시

3장 페낭 화인사회의 형성
교역하는 디아스포라와 페라나칸 화인
‘카피탄 치나’ 코라이환
상商과 공工, 그리고 방?
페낭 빅 5와 ‘쿠콩시’
화인사회의 정부 ‘비밀결사’

4장 아편과 쿨리
돈이 열리는 나무 ‘아편팜’
‘새끼돼지’ 또는 쿨리
쿨리와 악마의 연기

제2부 깡통과 거상의 시대

5장 흑과 백, 쌍둥이 골드러시
주석을 품은 페낭의 아편팜
엘도라도 혹은 ‘페낭 화인의 식민지’|주석-쿨리-아편팜 시스템
페낭 아편팜에 포획된 쿨리
죽음에 이르는 배부름|‘광산 매점’의 비밀

6장 ‘페낭 화인권’과 페낭 화인
말라카해협 북부의 지휘부, 페낭
말레이의 정치 속으로: 페낭과 페락|건덕당의 지부: 페낭과 푸켓|‘돈의 땅’과 객가 3인방: 페낭과 메단
‘확장된 가족’: 페낭 화인권의 혼맥

7장 비밀결사 시대의 종언
1867년 페낭 폭동
화인보호관제, ‘우유에서 크림을 걷어내다’
표류와 좌초 사이: 평장회관
주석 시대의 두 권력: 쿠톈테익과 청켕퀴

8장 페낭의 ‘벨 에포크’
열세 살 메단 소녀가 본 페낭
‘적수공권’의 거부 신화
아편과 깡통의 궁전

제3부 고무바퀴 아래의 페낭 화인사회

9장 페낭 화인권과 ‘악마의 밀크’
고무, ‘근대 산업의 근육’
유럽 자본가와 인도인 노동력
해협 북부 경제권력 이동
페낭 화인권의 포획과 상전商戰

10장 ‘테스토스테론’의 화인사회와 여성
여성노예와 ‘여인관’
소녀 저자?仔 무이차이
‘둘랑 워셔’의 다른 이야기
아마, 삼수이, 호커, 여공

11장 상상된 ‘말라야’와 화인의 정체성
영국의 ‘해협화인 정체성’
중국의 ‘해협화교 정체성’
바바의 ‘페라나칸 정체성’
‘페낭 디아스포라’와 아편반대운동
또 하나의 정체성 ‘페낭 디아스포라’|‘민족적 시위’ 아편반대운동
기로에 선 1930년대 화인사회

에필로그: ‘아편과 깡통의 궁전’과 페라나칸
주석
참고문헌
부록: 페낭 화인 인명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강대 동남아학 교수이자 동아연구소 소장이다. 중국과 한국 미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발 딛지 않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술로도 영역을 넓혔다. 한·중·일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드문 미술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동양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많아 꾸준히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쓰고 있다. 서울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어릴 적 어린이잡지에서 유물을 다룬 기사를 보고 매료돼 동양미술이 내 길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강대 동남아학 교수이자 동아연구소 소장이다. 중국과 한국 미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발 딛지 않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술로도 영역을 넓혔다. 한·중·일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드문 미술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동양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많아 꾸준히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쓰고 있다. 서울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어릴 적 어린이잡지에서 유물을 다룬 기사를 보고 매료돼 동양미술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다. 3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하며 미술사가 고리타분하지 않은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나 쉽게 동양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동양미술 전도사를 자처한다. 동양미술의 아름다움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 이 세계를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 작업에 뛰어들었다.

지은 책으로는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 일제강점기 석굴암론』, 『동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의 새로운 모색』, 『클릭, 아시아미술사』, 『해상 실크로드와 문명의 교류』, 『아편과 깡통의 궁전』, 『신이 된 항해자: 21세기 말레이 세계의 정화 숭배』 외에도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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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718g | 152*224mm
ISBN13
9791156121510

책 속으로

1786년 8월 11일 말라카해협 북단의 ‘사실상 무인도’인 페낭에 영국 국기가 게양됐다. 영국 동인도회사EIC를 대신해 말레이 술탄국 커다의 영지인 페낭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면서 프랜시스 라이트Francis Light(1740~1794)는 “풀루 피낭이라는 섬을 차지해 ‘프린스 오브 웨일즈섬’으로 명명한다”고 선언했다. --- p.27

1788년 페낭에서 징세청부제가 처음 시행됐다. 전매물품은 중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쌀 증류주 아락arak이었다. 3년간 페낭에서 아락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업자를 경매 방식으로 선정했다. …… 징세청부제는 통상 ‘팜farm’이라 하고, 전매권을 청부한 자를 ‘파머farmer’라 했다. ‘아락팜arak farm’이라 하면 아락 징세청부제를 가리킨다. 식민 당국은 아락팜으로 첫해 780달러의 전매료 수입을 올렸다. --- p.48

1786년부터 시작된 영국 동인도회사 체제 81년간의 식민지 경영 방식은 일관됐다. 싱가포르와 해협식민지를 전공한 역사가 콘스탄스 턴불은 영국 동인도회사 체제의 해협식민지 정부를 ‘해골 조직skeleton organization’이라 혹평했다. 달리 말해 식민지의 뼈대만 있을 뿐, 행정이란 근육이 없는 ‘해골정부’였다는 것이다. --- p.52

코라이환은 중국에 태어나 태국 남부와 커다를 거쳐 페낭으로 이주한 ‘신케’였지만, 페낭에서 현지 태생의 뇨냐와 혼인하고 화인사회의 지도자인 카피탄 치나에 임명된 교역하는 디아스포라로서의 ‘페라나칸’이기도 했다. --- p.96

페낭의 조지타운에서 차이나타운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수와 규모에서 압도하는 복건 출신 대성씨의 종친회관 ‘콩시Kongsi(公司)’들이다. 19세기 중반 조지타운에 다양한 이름의 콩시가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도심의 한 블록을 차지하는 쿠콩시Khoo Kongsi邱公司이다. --- p.109

페낭의 복건 출신 거상들은 사업 독점을 지키기 위해 무력이 요구될 때나 아편팜의 밀수 금지 등 통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면 언제나 건덕당과 그 동맹 결사들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건덕당 만큼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의흥회도 버마 남부, 태국 남서부, 말레이반도 서안, 수마트라 동안에 지부를 두었다. 건덕당과 마찬가지로 페낭의 의흥회도 여러 지부를 거느린 지역의 본부였다. --- p.131

인도총독부의 아편팜 경매에서 낙찰된 소수의 아편 무역상들은 중국으로 가는 길에 페낭에서 일정 양의 인도산 생아편을 페낭 식민 당국에게 넘겼다. 페낭 식민 당국이 이를 다시 경매로 넘긴 것이 페낭 아편팜이고, …… 일부는 페낭의 아편팜에서 소비되고 나머지는 인근 지역으로 수출됐다. …… 인도산 생아편을 가공하고 판매를 독점한 주역이 페낭의 아편파머, 즉 화인 거상들이었다. --- p.(141

페낭 건설 초기 후추농원 노동자의 대다수가 바로 ‘새끼돼지?仔’ 혹은 ‘쿨리’였다. 페낭에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가 모두 외상 뱃삯 방식에 의존한 쿨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유이민’을 표방한 영국 식민 당국은 이주노동자를 확보하는 데 골몰했지, 그들이 노예 혹은 돼지처럼 팔리는 존재인지는 안중에 없었다. --- p.151

아편은 말레이 귀족이나 중국인 부자에겐 기호품이었지만, 중국인 쿨리에게는 필수품이었다. …… 부자에게 거부로 가는 고속도로였다면, 쿨리에게 아편팜은 빚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 수렁이었다. --- p.160

19세기 페락과 푸켓에서 중국인 주석광산 성공의 4대 요소로 자본과 노동, 아편팜, 비밀결사를 꼽을 수 있다. …… 1880년대 후반에도 유럽인 광산업자들이 섣불리 주석광산에 뛰어들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런던 자본시장에서 돈줄은 얼마든 끌어들인다고 해도 이윤을 좌우하는 쿨리 노동력과 아편팜, 화인 비밀결사의 문제는 유럽인 자본가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었기 때문이다. --- p.185

19세기 후반 페낭 화인권의 독점과 폭력의 시대를 페낭 건덕당의 영수 쿠톈테익과 페락 해산회의 영수 청켕퀴보다 더 선명하게 상징하는 인물도 드물다. 이들은 흑백 쌍둥이 골드러시의 페낭 화인권을 이끈 화인사회의 엘리트이면서 영국 식민 당국과 유럽 자본가의 눈에는 ‘깡패’로 비쳤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 p.269

1920년대 말까지 말레이반도에서 대형 고무나무농원은 대부분 유럽 자본이 장악했지만, 중국인 농원주와 노동자의 참여 비중이 결코 낮지 않았다. …… 하지만 1936년 이후 중국인 가운데 대규모 고무나무의 농원주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공황을 거치며 유럽인 고무나무 농원주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됐다. --- p.328

고무의 시대 이전 페낭 화인사회에서 화인 여성은 소수의 ‘뇨냐’를 제외하면, 노예이거나 매춘부이거나 무이차이mui tasi(妹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인 여성이 독자적으로 자유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이후의 일이다. --- p.354

페낭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매음굴이 확인되지만, 매춘부 인신매매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주석의 시대부터다. 인신매매 피해자 문제가 불거지자 해협식민지의 화인보호관서는 1896년 소녀보호령Girl’s Protection Ordinance을 제정했지만, 매매춘을 여성들의 자유의지로 간주해 실제로는 규제하지 않았다. 식민 당국은 비밀결사 불법화 등 화인사회에 관한 규제와 통제는 강화하면서도 화인여성의 인신매매에 관해서는 자유방임을 유지하는 양면성을 드러냈다. 매음굴은 1927년까지 합법이었다. --- p.360

고무의 시대에 둘랑 워셔, 농원 노동자, 아마에 이어 중국인 이주 여성이 가장 많이 경제활동을 했던 영역이 호커hawker였다. 물론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거나 난전을 여는 것도 남자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 여성 호커들이 눈에 띄게 생겨났다. --- p.383

영국의 ‘해협화인’과 중국의 ‘해협화교’라는 두 가지 정치적 정체성 압박 속에서 해협의 화인사회는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천명해야만 했다. 이는 해협 태생의 ‘바바’ 또는 ‘페라나칸’ 가운데에서도 잃을 것이 많은 거부 엘리트에게 특히 민감한 문제였다. 이러한 논의는 19세기 말 부자이며 고등교육을 받은 싱가포르의 엘리트가 주도했다. --- p.409

영국은 1930년대 들어 ‘타나 믈라유tanah Melayu’(말레이인의 땅), 즉 ‘말레이인의 국가’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느슨하게 상상된 나라인 영령 말라야를 독립된 말레이 술탄국의 연합국가로 만드는 구상이었다. 이는 사실상 화인사회와 바바 엘리트를 배제하는 움직임이었다.

--- p.436

출판사 리뷰

미술사가의 ‘외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다

지은이는 중국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가이다. 대학교에서 동남아 문화와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지역사를 다룬 이 책은 미술사가의 ‘외도’라 할 수 있다. 페라나칸 미술을 연구하던 지은이는 이름 없는 페라나칸들의 삶에 주목했다. 구체적인 삶의 역사가 누락된 문화 연구나 문화 담론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가질지에 의문을 품고 페라나칸 미술과의 대화를 뒤로 미룬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약 4년간 수차례 현지답사와, 중국과 일본의 관련 저서는 물론 영국인 식민지 행정관의 기록을 비롯한 구미 학자들의 선행 연구를 섭렵한 끝에 페라나칸의 역사에 관한 종합적 조감도를 그려냈다.

화교와 화인, 페라나칸, 외지의 중국인은 오늘날 국민국가의 서사와 민족주의의 편향성 아래 이야기될 뿐, 디아스포라의 전망이나 지역사의 관점에서 특정 시기, 특정 장소의 화인사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었는가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화인/화교를 바라본 관점은 문화적 중국인이란 고유성, 현지와의 혼종성 여부, 세계화시대의 탈국경과 탈민족주의 흐름 속에서 이들이 본토 중국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게 될 것인지 단편적으로 전망되어 온 정도이다.

화인 페라나칸이란 사안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동남아 각국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기존 연구 대부분이 단편적 주제나 특정 시기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 비추어 이 책의 종합적?체계적 연구는 우리 사학계의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다.

아편과 주석, 고무를 축으로 한 생생한 드라마

18세기 후반부터 150여 년간 페낭은 상업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산업혁명의 세계화가 맞물린 현장이었다. 지은이는 ‘돈이 열리는 나무’ 아편팜, ‘백색 골드러시’를 일으킨 주석, ‘근대 산업의 근육’ 고무를 키워드로, 페낭의 성쇠 과정, 중국과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등 화인사회의 역사적 축도를 보여준다.
아편은 징세청부제로 자본을 축적하고 비밀결사를 통해 자치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제국 속의 제국’을 형성했던 페낭 혁명의 시대의 상징이었다. 주석은 중국 남부의 가난한 농민들을 불러들이는 한편 중국계 거상들이 부상하는 ‘페낭 자본의 시대’를 끌어냈다. ‘악마의 밀크’라는 고무의 개발로 유럽 자본이 침투하면서 기존 거상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제국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말레이반도에서 거대한 지역 교역망을 형성했던 중국인 이주자들의 구체적 삶을 다층적으로 구성해냈다. 화인사회의 지도자인 ‘카피탄 치나’에 처음 임명된 중국 복건성 출신 거상巨商 코라이환에서, 오늘날 페낭의 명물인 ‘페라나칸 맨션 뮤지엄’이 된 ‘궁전’을 지은 ‘주석왕’ 청켕퀴, 1907년 화인 최초로 말레이국연방 입법위원이 된 룡피까지 신화적 부를 쌓은 인물들이 명멸한다. 여기에 아편팜 주도권을 둘러싼 비밀결사 건덕당과 의흥회의 혈투며 아편과 ‘광산매점’에 노동력을 수탈당했던 중국인 쿨리와 저자?仔들의 땀과 눈물, 매음굴의 ‘여인관’의 참상, 노예에 가까운 중국인 하녀 무이차이들의 한숨 등 피와 땀, 욕망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일국사를 넘어선 독특한 시각

동남아 각지의 화인사회가 대체로 지역마다 자율적인 공동체를 구성했으며, 부를 기준으로 분절된 위계적인 사회였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서양 제국주의자나 현지의 토착 권력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어떻게 구축했고, 중국인 이주민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꾸렸는지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보다는 중개인middlemen이자 매판 권력의 하수인, 혹은 현지 토착민의 중간 착취자란 관점이 유지됐다. 언어와 제례 등 중국의 전통 문화를 고수하거나 현지에 동화되어 중국계라는 희미한 과거만을 기억하는 종족 집단으로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강했다. 동남아 각지에 산재한 화인사회를 해당 지역의 ‘일국사一國史’ 내지 국민국가 서사의 일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동남아 화인 연구의 문제점을 미시사, 인류학,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와 ‘장기 지속’ 개념 등으로 돌파해보려는 시도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선행연구들에 힘입은 바 크다.

지은이는 화인 엘리트들의 욕망과 별도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숱한 밑바닥 화인들의 삶이 드러나도록 애썼다. 여기서는 이를 우유와 크림으로 구분했다. 기존 연구들이 대체로 ‘크림’의 서사였다면, 이 책은 미분리된 우유로서의 화인사회를 보고자 했다. 기존 동남아 화인사회 연구는 이방의 중국인 이주자들이 현지의 비중국인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중시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왕궁우가 통찰력 있게 지적했듯이 페낭이란 독특한 영국 식민지의 화인사회는 중국인과의 관계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주를 이뤘다고 본다. 페낭과 페낭 화인권에서 화인사회는 실로 중국인 간의 관계가 비중국인과의 관계보다 훨씬 비중이 큰 역사를 형성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 이 책의 차별성이다.

신남방정책의 디딤돌을 놓으며

2017년 정부가 천명한 신남방정책은 동남아 정책에서 인적 교류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경제적 교류에서 동남아와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교류로 관계의 밀도와 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집단인 화인사회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일이 핵심 과제가 된다.

페낭 화인권을 구축했던 페낭 화인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신남방정책을 구체화하고 현지로 다가가는 외교적 노력에도 시사하는 바 작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동남아와의 관계에만 관심을 두기보다 동남아 지역 내에서의 역학 관계 역시 고려해야 신남방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훨씬 높여줄 것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은 성장 삼각지대IMT GT(Indonesia-Malaysia-Thailand Growth Triangle)라는 지역 경제권 구상을 2000년대 후반에 천명하고 추진 중이다. 이 성장 삼각지대의 허브가 페낭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세기에 말라카해협 북단에서 페낭의 화인사회가 정치적 영토를 넘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경제권을 주도했던 ‘페낭 화인권’의 역사적 경험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신남방정책 또한 지역 경제권 구축 움직임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고, 그 성장 삼각지대의 허브인 페낭 화인사회 연구는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독자의 사고 지평을 넓혀주는 것에 대해 현실적 가치도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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