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사람들에게 사슴뿔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인식됐습니다. 자르고 또 잘라도 계속해서 자라는 사슴뿔은 무한한 생명력을 상징했죠. 이 믿음은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뿔이 강조된 사슴 장식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런 모습의 미술품은 유라시아 초원 곳곳에서 발견돼요.
---「1부 1장 ‘초원의 기억’」중에서

한족 장례 미술 전통은 한족 고유의 사후관과 연관이 깊습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사람의 영혼이 혼(魂)과 백(魄)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살아 있을 적에는 혼과 백이 조화를 이루다가 죽음에 이르면 혼백이 분리돼, 혼은 천상 세계로 가고 백은 지상에 남는다고 믿었지요. 한족의 장례 풍습은 분리된 혼과 백이 저마다의 길로 잘 떠날 수 있게 기원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족은 지상에 남는 백을 위해 크고 화려한 무덤을 조성했어요. 백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자기 집인 무덤에서 잘 지내라는 의미였죠.
---「1부 3장 ‘중국으로 가는 길’」중에서

화론이란 결국 그림 자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그림 자체는 실생활에 아무 쓸모가 없어요. 그림으로 대체 뭘 할 수 있겠어요? 기껏해야 아궁이에 넣어 불쏘시개로 쓰는 것밖에 더 하겠어요? 한마디로 우리는 그림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림이 왜 필요한가? 그림이라는 게 뭔가? 저 화가는 왜 저런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가? 이 그림은 왜 좋고, 저 그림은 왜 나쁜가? 이렇게 물을 수는 있겠죠. 이에 대한 중국식 답이 바로 화론이에요.
---「2부 1장 ‘대나무 숲에서 노니는 마음’」중에서

남조 사람들은 북방 이민족에게 중원이라는 자기 안방을 빼앗긴 후 좌절감과 불안에 시달리며 유약해진 마음을 미술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 유약함이야말로 남조 회화에 미묘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선사했어요. 남조 회화에서는 상실감과 슬픔, 아름다움이 교차합니다. 한편 자유와 사랑, 고집과 자부심도 뒤엉켜 있죠. 전통을 지키며 수려한 미술을 꿈꿨던 남조 회화에는 대나무 같은 꼿꼿함도 있습니다.
---「2부 2장 ‘용이 날아간 순간’」중에서

북조 회화에서는 무엇보다 면을 메우는 채색이 중요했습니다. 채색이야말로 면을 부각하고 입체감을 살리는 데 효과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남조 사람들은 북조와 달랐어요. 윤곽선 없이 색을 빽빽하게 칠한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한족이 그림에서 가장 중시한 건 언제나 필, 즉 붓질이었어요. 더욱이 남조에서는 색을 칠할 때도 먹의 농담을 조절해 전체적으로 투명한 느낌이 들도록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래 남조 그림을 보세요. 옅게 색을 칠해 바탕색이 비칩니다. 수채화 느낌이 나죠. 반면에 북조 회화는 크레파스로 칠한 듯 불투명한 느낌을 줘요.
---「2부 2장 ‘두 개의 그림’」중에서

남북조시대에 외래문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배계층이었습니다. 로마나 페르시아에서 중국 비단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듯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까지 전해진 문물 역시 값비싼 것들이었죠. 북제 고위 관리였던 서현수도 외래문물에 둘러싸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 증거를 보여주는 유물이 바로 옆에 있어요. 이 반지는 묘주의 관 근처에서 발견됐습니다. 한눈에 봐도 이국적인 모습이 이란이나 중앙아시아 쪽에서 제작된 장신구로 추정됩니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으로 보이죠. 사파이어에 새겨진 형상이 헤라클레스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거든요.
---「2부 4장 ‘호는 한의 모자를 한은 호의 모자를’」중에서

호풍이란 오랑캐 호(胡) 자에 풍속 풍(風) 자를 써서 오랑캐의 풍속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오랑캐는 한족을 제외한 모든 이민족을 일컫는 말이에요. 남북조시대에 유행한 호풍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중국 북방을 차지한 유목민의 풍속과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서방의 이민족 문화가 그것이죠. 서방 문화는 중국을 기준으로 실크로드의 서쪽 지역, 즉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전해진 문화를 말합니다. 남북조시대에 도자기의 외형이 길쭉해진 이유도 서방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2부 5장 ‘흙과 불의 연금술’」중에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소그드인들은 3~8세기에 실크로드를 장악하며 유행을 선도했어요. 로마에서 중국에 이르는 길인 실크로드의 최고 상인으로 성장해 동서양의 물자는 물론이고 문화와 예술까지 전파한 주역이었죠. 이 무렵 중국에 불어닥친 호풍도 8할이 소그드 상인의 활약 덕분이었습니다. 소그드인들이 주도한 호풍은 중국 사람들의 복장부터 사상,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에 영향을 미쳤어요.
---「3부 1장 ‘실크로드의 트렌드 세터’」중에서

물론 소그드인들이 특정 시기에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페르시아 미술이 소그드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요. 하지만 소그드인들은 그와 별개로 자신들의 문화와 미술을 창조한 사람들이었어요. 심지어 소그드인 고유의 문자와 언어도 있었는 걸요. 그럼에도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미술은 오랫동안 페르시아 미술의 하위 범주로 취급돼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중앙아시아와 신장위구르 일대의 고고학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소그드 미술이 페르시아의 부속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이후 막연히 페르시아 미술이라 부르던 몇몇 미술 양식을 최근에는 소그드 미술이라 바꿔 부르는 추세입니다.
---「3부 1장 ‘실크로드의 트렌드 세터’」중에서

3~6세기의 중국은 시대의 혼란을 자양분 삼아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이민족들은 한족이 품에 꽁꽁 싸매고 있던 중국 땅을 한순간에 갈아엎고 새롭게 일군 주역이었어요.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이 시대의 미술입니다. 당시 호와 한의 이중주는 이전에 없던 다채로운 선율을 빚어냈어요. 그리고 이들의 연주는 다음 시대로 이어져 마침내 당나라 미술이라는 화려한 오케스트라로 세상에 울려퍼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