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아버지의 고향 / 하얀 그림책 / 퀴퀴한 동네 / 길 / 수습 시절 / 방황 / 어두운 활자 / 산길 / 종이 먼지 / 한국에서의 풍경 / 종전 전후 / 까치 / 모닥불과 산 / 철사와 대나무 / 진흙 / 우리 동네 / 소설을 쓰다
|
Seicho Matsumoto,まつもと せいちょう,松本 淸張,본명:마츠모토 키요하루
마쓰모토 세이초의 다른 상품
|
어머니는 일흔여섯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여든아홉까지 사셨다. 외아들인 나는 부모에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구속당했다.
내가 형제가 있었다면 조금은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집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이 ‘자서전’ 비슷한 것도 틀림없이 더 재미있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는 부모의 애착 때문에, 열여섯 살 쯤부터는 가계를 거든다고, 그리고 서른 즈음부터는 처자식과 부모를 부양하느라 나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러니 내게 즐거운 청춘이 있을 리 없었다. 칙칙하고 어두운 반생半生이었다. --- p.28 결국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신문에서 와세다 대학에서 나온 중학 강의록의 광고를 보고는 그것을 주문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지출마저도 그 이상 오래가지는 못했다. 끝내 장사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 p.49 유치장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내 책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아버지는 입으로는 정치가 어떻고 하면서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소심했다. 이런 책을 읽으니까 불순한 사상에 물든다면서, 그 뒤로 내가 소설을 읽으면 쫓아다니며 막았다. 나 역시 문학 따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생계를 안정시키지 않으면 온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고 마음을 잡았다.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더욱 그렇게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71~72 당시 아사히 신문사에서는 직급에 따라 대우가 달랐다. 예를 들어 월급날이 사원과 준사원은 25일이었고, 임시직 사원은 26일이었다. 국경일이나 회사의 기념행사에는 사원과 준사원만 강당에 모였고 임시직 사원은 참가 자격이 없었다. 그런 차별이 얼마나 임시직 사원들의 열등감을 부채질했는지 모른다. --- p.110 식구들이 바글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긋지긋했지만, 밖에 나가 돌아다닐 곳이 없었다. 만약 그때 내게 조금만 더 직접적인 동기가 주어졌다면, 어쩌면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주변으로는 그런 강한 동기조차 없었고, 그저 불쾌한 타성에 온몸이 젖어 있었다. 신경은 곤두서 있는데도 몸이 나른하고 머리는 무뎌지고 있었다. 책 한 권 읽을 기분도 들지 않았다. 독서를 하는 것도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빗자루 장사를 하느라 야간열차를 타고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와 사가 일대를 왕복하던 것도 어느새 먼 과거의 일이 되어 있었다. --- p.207 만년필이 없던 나는 샤프와 종이 질이 형편없는 수첩을 사서, 집과 신문사에서 틈틈이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첩과 샤프는 항상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잘될 때는 신문사에서는 원고지 한두 장을 채우기도 했지만, 대여섯 줄밖에 쓰지 못할 때도 있었다. --- p.225 |
|
돈도 학벌도 희망도 없이
인쇄공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그리고 결국에는 비장한 자기 세계의 길로 『아직 늦지 않았다』에는 세이초가 청년일 때 당시 인쇄업 종사자들의 세계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떠돌이 기술자나 야반도주하는 사장 등 여러 형태의 군상들과 어울리면서도 끝내 고급 기술자로 자립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이초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후 세이초는 출구 없는 가난과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점차 인쇄 전문 기술자, 광고 디자이너, 신문사 직원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하지만 학력 차별에 따른 소외감과 대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끝없는 생활고는 희망을 잃게 만들어, 그로 하여금 한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생각까지 품게 했다. 「어느 「고쿠라 일기」 전」, 「국화 베개」, 「깨진 비석」 등 그의 탁월한 단편소설들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재능은 있지만 소외된 채 비극적 인생을 마감하는 존재들이다. 결국 그들은 궁핍하고 고독했던 세이초 자신의 전반생이 만들어낸 문학적 분신이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소리쳐도 아무런 응답 없이 문을 닫아버린 세상 앞에서 자신들이 처한 불우한 인생을 괴로워하지만, 모두가 끝까지 자기만의 세계를 향해 고행길을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그 주인공들의 박복하고도 비장한 행보는 자서전 『아직 늦지 않았다』에서 묘사되는 청년 세이초의 초상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고난과 궁핍의 전반생은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를 만든 토양이자 빛나는 후반생의 초석이었다 1944년 세이초는 36살의 늦은 나이에 군대에 징집되었다가 전라북도 정읍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아 전역했다. 귀향한 세이초는 8명의 대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생계의 벽과 마주했다. 그는 월급만으로는 부족한 생계비를 메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빗자루를 판매하는 중개상이 되었다. 그때 판로를 넓히기 위해 지방 곳곳의 도매상을 찾아다녔는데, 당시에 경험한 숱한 기차 여행과 중소 도시 탐방이 훗날 『점과 선』, 『D의 복합』, 『시간의 습속』 같은 작품의 배경과 설정을 낳는 보물이 되었다. 세이초는 아사히 신문사의 광고부에 근무하던 중, 1950년에 『주간 아사히』의 소설 공모전에 출품한 「사이고사쓰」가 3등으로 입선되어 마침내 문단에 데뷔했다. 후문에 따르면, 원래 3등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같은 회사의 직원이라는 사정 때문에 3등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이 작품은 다음 해 제25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1953년에는 「어느 「고쿠라 일기」 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음으로써 명실공히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얻게 되었다. 마흔 살이 넘어 데뷔한 만큼, 아마도 작가 세이초로서는 불우했던 전반생이 이를 갈 만큼 분하고 초조한 세월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고난과 궁핍의 전반생은 빛나는 후반생의 초석이 되었고, 마치 작가로서 잃어버린 전반생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각오라도 한 듯 초인적인 집필을 이어갔다. 그가 집필한 소설만 장편 100여 편과 중단편 약 350여 편에 이르고, 그 밖에 발표한 작품 980편을 합해 출간한 저서만 약 750여 권에 달한다. 이 책 『아직 늦지 않았다』는 인간 마쓰모토 세이초의 ‘고난기’이자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탄생기’이기도 하므로, 지금도 역경 속에서 고투하는 젊은이들과 비록 늦었지만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수많은 늦깎이들에게 소중한 귀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