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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이택광
1장 트위터라는 히스테리 기계 이택광 2장 소셜 미디어의 겉과 속 박권일 3장 PC통신부터 SNS까지 김민하 4장 셀러브리티를 위한 트위터 사용법 최태섭 5장 나에게 트위터란 김남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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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는 주체화의 과정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향해 끊임없는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히스테리적이다. 히스테리적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내화한 주체이기도 하다. 타자의 결여에 자신의 욕망을 일치시키는 히스테리적 주체야말로 복제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주관적인 것’을 변화시키는 주체이다. 강박적 주체와 달리 히스테리적 주체는 타인의 욕망에 관심을 보인다. 이 관심은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라기보다 타인에게 헌신할 수 있는 핑계 자체를 갈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p.28
트위터에서 보이는 현실, 즉 타임라인은 사실 자기 자신이 편집한 현실이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데도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세계 그 자체인 것처럼 또는 세계의 축소판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소셜 미디어는 세계를 좀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존경의 안경’이 되기 어렵다. 내 타임라인에 올라온 이야기들은 물론 의미 있고 소중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세계의 파편’일 따름이다. 이제 소셜 미디어의 내면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바로 ‘히스테리아 파라노이아’다. ---p.48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개념을 보면 마치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어떤 공적 활동에 적합한 솔루션이 트위터이고, 개인적 교분을 나누고 사적 활동의 통로로서 활용하기 적합한 솔루션이 페이스북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서비스들의 차이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적 활동의 통로로서 트위터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이 내세우고 있는 ‘소셜 네트워킹’의 필요성에는 동감하면서도 인터넷의 익명성이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페이스북을 공적 활동의 기반으로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pp.85-86 140자. 이런 알 듯 모를 듯한 글자 수가 채택된 이유는 트위터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트위터 본사의 의하면, 160자는 미국에서 핸드폰으로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텍스트 메시지의 글자 수다. 그중에서 20자는 사용자의 이름을 표시하기 의해 빼고, 나머지 140자가 사용자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이 140자 속에는 부연 설명과 우회로와 변명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덕분에 트위터는 사용자의 ‘의식의 흐름’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기가 쉽다. 물론 일반인 의식의 흐름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런데 그가 만약에 우명한 사람이라면? 곧바로 멘션 통에는 불이 붙고, 수백에서 수천 번 심하면 수만 번의 리트윗이 반복되다가 다음 날 아침에는 그 트윗을 주제로 한 수많은 신문 기사들을 접하게 될 터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트위터를 시작한 유명인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pp.92-93 트위터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웅 테세우스는 페리테스를 격퇴하고 전리품으로 얻은 쇠망치를 들고 다니며 악한들을 징벌했다. 프로크루테스는 ‘늘이는 자’라는 의미로, 그는 여행자들을 자신의 집에 끌어들여 쇠로 만든 침대에 강제로 눕히고 키가 침대보다 짧은 경우에는 늘여서 죽였고 튀어나올 경우에는 잘라서 죽였다. 이처럼 트위터는 자신만의 아집이 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폭풍 알티를 통해서 분노의 봉화를 피우고 지지자들을 멘션과 DM으로 포섭하면 충분히 이슈를 만들 수 있다. 이때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가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p.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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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발현되고 있는 ‘트위터 현상’을 짚어본다
이택광의 「트위터라는 히스테리 기계」는 트위터에서 드러나는 교환과 평등이라는 ‘근대성의 원리’를 주체화의 과정과 관련해서 논한다. 박권일의 「소셜 미디어의 겉과 속」은 트위터와 한국 사회의 정치 상황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김민하는 PC통신부터 인터넷까지 매체의 발달사를 통해 SNS가 시대적으로 갖는 의미를 자세히 설명한다. 최태섭의 「셀러브리티를 위한 트위터 사용법」과 김남훈의 「나에게 트위터란」은 앞에서 논의된 일반론을 좀 더 구체적인 경험과 사례에 대입해서 트위터의 본질을 해부하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일반의지 2.0』에서 말한 ‘총기록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의지는 보통과 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를 통해 SNS로서 트위터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거기에 담긴 정치적 의미, 일상생활과 트위터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논지를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