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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란 무엇인가
의지의 무의식적 기원 주제 바꾸기 원인과 결과 선택, 노력, 의도 진실은 우리에게 나쁜 것일까? 도덕적 책임 정치 결론 부록_ 주 | 찾아보기 |
Sam 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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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아침을 커피나 홍차를 한두 잔 마시면서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는 커피 두 잔이었다. 왜 홍차가 아니었을까? 알 도리가 없다. 오늘은 홍차보다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고,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홍차 말고 커피를 골랐던가? 그렇지 않다. 그 선택은 내 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마저도 내가 (나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증인으로서) 조사를 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바꾸어’ 커피를 좋아하는 내 안의 내가 미처 눈치채기 전에 홍차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 그러나 이런 충동 또한 무의식적 요인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왜 오늘 아침에는 이런 충동이 생기지 않았을까? 왜 나중에는 이런 충동이 생겨날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어떤 것은 하고 다른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도는 의식에 근원을 두지 않는다. 의도는 오히려, 그것과는 반대될 수도 있는 여느 생각이나 충동이 그렇듯이, 의식 속에 ‘나타난다’. ---「의지의 무의식적 기원」 중에서
생리학자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은 인간이 자신이 움직이기로 결심했다고 느끼기 300밀리세컨드 전부터 뇌의 운동피질에서 활동이 나타난다는 것을 뇌파검사EEG를 사용하여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또 다른 연구소에서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사용하여 이 연구를 확장했다. 피험자들은 스크린에 나타나는 무작위 순서의 글자들로 구성된 ‘시계’를 보면서 두 개의 단추 중 하나를 눌러야 했다. 그들은 어떤 단추를 누를지 결정하는 순간 어떤 글자가 보이는지 보고했다. 실험자들은 피험자들이 그 결정을 의식적으로 내리기 ‘7~10초’ 전에 어떤 단추를 누를지에 관한 정보를 포함하는 뇌 부위 두 군데를 발견했다. ---「의지의 무의식적 기원」 중에서 어떤 이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행동하지 않을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냥하는 것은, 그 의도의 출처가 어디든 간에, 여전히 시정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적 존재로서 우리의 정신적 삶과 그에 따른 행동의 성격에 깊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로 옮기기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실제로 자유 의지를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따져보자. 그러려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모든 요인들을 인식해야 하고, 그 요인들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망쳐버리는 패러독스가 놓여 있다. 즉 무엇이 그런 영향력에 영향력을 행사한단 말인가? ---「의지의 무의식적 기원」 중에서 나는 나의 욕망에 영향을 줄 길이 전혀 없다. 대체 어떤 영향력 행사 수단을 써야 한단 말인가? 다른 욕망들은 어떻게 하고? 만약 내가 원했다면 달리 행동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만약 내가 다른 세계에 간 적이 있다면 다른 세계에 살았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양립가능론은 결국 이런 신조를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꼭두각시는 자기를 조종하는 줄을 사랑하는 한 자유롭다.’ ---「주제 바꾸기 」 중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뉴요커The New Yorker]에 기고한 환상적인 글에서 복수를 향한 우리의 욕망이 미처 충족되지 못할 경우 우리가 때로는 큰 대가를 치른다고 지적한다. 다이아몬드는 두 사람의 경험을 비교한다. 그의 친구인 대니얼은 뉴기니 하이랜드 지역의 원주민으로서, 아버지와도 같았던 삼촌이 죽자 그 원수를 갚았다. 또 다른 한 명은 다이아몬드의 작고하신 장인어른으로, 그는 홀로코스트 중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자를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자를 경찰에 넘겼다(살인자는 1년 징역 후에 석방되었다). 처음 사례의 복수와 두 번째 사례의 복수 포기가 낳은 결과는 매우 극명하다. 뉴기니 하이랜드 지역의 복수 문화는 논란의 소지가 많으나, 대니얼은 복수를 통해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의 장인은 그 후 60년간 ‘회한과 죄책감으로 고통받았다.’ 확실히 복수는 우리들의 강한 심리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다. ---「도덕적 책임」 중에서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는, 우리가 대개 처벌로 억제할 수 있을 만한 행동에 한해서만 사람들이 그런 특성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도저히 통제하지 못할 행동에 대해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재채기를 불법화한다면, 위반의 대가가 아무리 막대하다 해도 많은 이들이 법을 어기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유괴 같은 행위는 언제나 의식적 숙고와 지속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므로, 저지되어야만 한다. 처벌에의 위협 때문에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중단할 수 있다면, 당신의 행동은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이라는 틀에 박힌 관념에 딱 맞아떨어진다. ---「도덕적 책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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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 추천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잇는 세계적 석학 샘 해리스의 문제작 “자유 의지는 환상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논쟁의 결정판 살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을 한다. 오늘 아침에는 커피를 마실지, 우유를 마실지, 아니면 아무것도 마시지 않을지 같은 단순한 문제들부터,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않을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지 혹은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는 이른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 일관된 믿음을 한번 곰곰이 따져보자. 과연 진실일까? 자유 의지는 도덕, 법률, 정치, 종교, 공공정책, 사적인 관계, 죄책감과 개인의 성취 등 우리가 중요시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건드린다. 사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샘 해리스는 이 책 《자유 의지는 없다》(원제: Free Will)에서 신경학과 심리학을 근거로 이 논쟁의 마침표를 찍는다. “자유 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본문 12쪽) 신경학과 심리학을 결합하여 자유 의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의 마침표를 찍다 만일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해보자. 유영철, 강호순, 오원춘 같은 연쇄살인범은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각종 범죄 사건들의 가해자들이 자신은 ‘의도한 바가 없다’고, ‘의식적으로 누군가를 해하려 의도한 적은 없었다’고, 즉 ‘고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일까? 그저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변명일 뿐일까? 만일 그들이 어릴 적 학대를 받아온 사실이나 뇌종양으로 뇌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우리는 또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인가. 저자는 또 말한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고 말한다면, “도덕적으로든 법률적으로든 죄를 저지른 자들은 그저 시간이 잘못 맞춰진 시계에 불과할 테고, 그런 자들을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의라는 관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본문 7쪽) “우리의 의식적인 정신의 무의식적인 기원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단 말인가?” (본문 11~12쪽) 이 책에서 샘 해리스는 “우리는 뇌가 매 순간 처리하는 정보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인식할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뇌파검사EEG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확인한 결과, 스스로 내린 결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뇌의 운동피질이 활동하고 있으며, 인간의 뇌가 우리가 무엇을 할지 이미 결정해놓았음이 밝혀졌다. 실험에 따르면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80퍼센트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른바,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책은 그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샘 해리스는 ‘인간을 자연 현상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형법제도가 훼손될 이유는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해볼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가? 이 책 《자유 의지는 없다》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우리의 믿음을 동요시킬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까지도 바꿀 것이다.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거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니힐리즘과 절망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행위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이른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의 저자 샘 해리스는 인간의 마음(의식)에 관한 진실을 밝히면서, 이것이 도덕을 약화시키거나 사회적·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어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사회에 위험한 자로 여기기 위해 굳이 자유 의지라는 개념을 반길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이다. “자유 의지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해서 내가 운명론자fatalistic가 되지는 않았다. 실은 자유롭다는 느낌이 오히려 늘었다. 나의 희망과 두려움, 노이로제가 덜 사사롭고 덜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앞으로 얼마만큼 변하게 될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미숙하고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결론을 도출하려 들지 않는 것처럼, 과거의 기나긴 시간 동안 그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바탕으로 그런 결론을 도출할 필요도 없다. 자기라는 체계에 투입되는 것들이 창조적으로 변화하면?이를테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관심을 끄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거나?당사자의 인생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문 58~59쪽) 샘 해리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방금 물을 한 컵 마셨고 그렇게 하기로 한 결정에 만족하고 있다. 나는 목이 말랐고 물을 마시는 것은 갈증이 날 때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한다. (…) 여기에 무슨 자유가 있는가? 만약 내가 달리 행동하기를 원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실질적으로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강제받는다. (…) 나는 ‘할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을 할 자유가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본문 28쪽) 아직도 자유 의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무엇을 이유로? 어떠한 근거 때문에? 인정하자. 샘 해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 의지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