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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믿고 싶다
듣고 싶지 않을 이야기 삼킬 수 없는 응어리 살아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소리 제2장 짧아지는 날들 640일 우리 버텨 봐요 모든 순간을 함께 해 뒤집어진 우산 별도 없는 밤 미안해요, 세상이 그렇네요 물고기 병원 봄날은 간다 제3장 가족 꿈처럼 괜찮아질까 요란한 밤이 찾아왔어요 잘한 것 같아 남겨진 기억들 제4장 엄마의 이름으로 나를 알아봐 줘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나만 몰랐던 세상 피보다 진한 어느 연못 고생 끝에 보는 미소란 제5장 떠나지 못한 여행 누구보다 가슴 아플 그대에게 4월 16일 8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니다 그리고 너는 내 안에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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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발로 밖에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부러워할까 두려워 한참 동안 대문 밖을 나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밖에 나갔을 때 집 앞에 있던 오래된 건물이 새 건물로 바뀐 걸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 p.8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는데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에 한편으론 고맙고 다른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나를 믿어줘서 그리고 말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해줘요. 나는 집안이 거덜 나도 상관없어요.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p.28 입원 후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게 왜 수면 내시경을 하지 않으려고 했냐고. 엄마는 만약 수면 내시경을 했으면 숨을 못 쉬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안도했다. 엄마가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살고 싶어 해서. 항상 죽고 싶다고 했는데. 인생살이를 하루살이로 여기는 줄 알았는데.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 p.74 녹음이 끝나자 엄마는 울었다. 나도 울었다. 그렇게 한 동안 둘이서 눈물을 쏟았다. 엄마는 아빠와 누나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엄마의 유언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엄마가 말한 그 상황은 온다. 싫어도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이 되었다. --- p.103 엄마의 몸이 마를수록 가난은 배불러만 갔다. 집에 돈이 없다. 아끼고 절약한다며 열심히 가계부도 적었건만 쓸데없는 짓이 돼버렸다. 쌓여가는 약값 영수증을 바라보며 저게 다 돈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 p.116 장례식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욕했다. 누나는 엄마를 저렇게 모시는데 아들이란 놈이 집구석에서 뭘 하는 거냐고. 귀가 간지럽다 못해 피가 나는 거 같았다. 누나와 나를 보는 시선마저 극과 극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153 우리는 엄마에게 최선을 다했다. 불타는 20대 청춘을 다 바쳤다. 엄마가 30~40대 젊음을 우리에게 바친 것처럼. 하지만 여전히 후회가 남는다. 조금 더 잘할 걸.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걸. 엄마에게 잘 해준 기억을 지운 채 아쉬운 마음만 자리를 잡았다. --- p.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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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부터 8년간 루게릭병 엄마를 돌보고, 그 엄마를 떠나보낸 아들
군대 입대를 앞둔 어느 날 엄마가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아들아, 엄마 2년밖에 못 산대.” 아들은 답했다. “엄마, 나 제대할 때까지 꼭 기다려.” 지옥 같은 유격훈련이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사히 마쳤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길고긴 송신음 끝에 울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살려 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귀가 먹먹했다. 아빠가 전화기를 뺏어 몇 마디를 하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첫휴가를 나와서 알았다. 엄마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제대 후, 어릴 적부터의 꿈인 소방관 시험을 치렀지만 백지 답안지를 제출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 곁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장래의 꿈도, 여학생이 수줍게 건넨 연락처가 적힌 쪽지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엄마를 간호해야 하는데. 엄마의 말이 점점 어눌해졌다. 모래에 빠지는 개미지옥처럼 몇 마디 하기도 힘겨워했다. 집 안에서 사람 소리가 사라졌다. 엄마는 녹음을 하자고 했다. 나중에 숨을 못 쉬어 긴급한 상황이 된다면 호흡기를 달지 말라고. 유언이었다. 녹음이 끝나자 엄마도 울고 아들도 울었다. 하루는 엄마가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말하는 것을 받아적고, 읽어주고 수정했다. 시 한편을 쓰는 데 보름이 걸렸다. 시들어가는 엄마의 글에서 소녀 감성이 풋풋했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엄마의 글에서 한 마디 한 마디 힘겹게 뱉어낸 삶이 응축되어 있다. 두 발로 밖에 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부러워할까 두려워 저자는 한참 동안 대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밖에 나갔을 때 집 앞에 있던 오래된 건물이 새 건물로 바뀐 걸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급기야 엄마는 움직이지 못하고, 목소리마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거실 소파에 누워 하염없이 TV를 바라보던 엄마는 작은 아우성을 외친다. 숨소리보다 작은 엄마만의 언어를 알아듣고 그때마다 아들은 달려간다. 엄마는 방에 들어가서 자겠다고 한다. 이내 다시 작은 아우성이 들린다. 잠이 안 온다고 다시 소파에 앉혀 달라고 했다. 몇 번을 반복하자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혹시, 고문관이세요? 엄마 이제 진짜 자는 거야, 알았지? 엄마는 미소를 띤 채 눈을 한 번 깜빡 했다. 10분 뒤,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쉰일곱 해를 마감했다. 그 후 아들은 엄마가 늘 가고 싶어하던 호주로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