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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살계(殺鷄)
초록야차의 환시(幻視)
범잡이
천왕봉
붕괴
환희동의 5월
황홀한 젊음
해우(解憂)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소설가. 서울생으로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2012년 「살계」로 제32회 한국소설신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글길을 따라 걷다』(공저,2017), 『토박이와 함께하는 은평 산책』(공저,2016) 『신예작가 2014~2016』(공저), 소설집 『사람 동물원』(2017), KBS 라디오 독서실 방송극 『해우』(2016.0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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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0쪽 | 370g | 140*210*15mm
ISBN13
9791190526005

책 속으로

우철이 닭의 목에 칼을 댔다.
순간, 몸속에서 취기와는 다른 기이한 열기가 솟았다. 닭목의 중간을 겨냥하고 도끼질하듯 내리쳤다. 삼 분의 일쯤 잘렸을까,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내리치는 두 번째 칼에 목이 떨어져 나갔다. 순간, 다리를 휘저으며 몸을 일으키려는 듯 닭이 꿈틀거렸고 목에서 뿜어지는 피가 붉은 리본처럼 허공에 너울거렸다.
--- 「살계(殺鷄)」 중에서

한 시간 반. 휘발유가 소진되고 시동이 꺼졌다.
온몸뚱이가 왕달맞이꽃, 명아주, 벌개미취, 쑥, 바래기, 억새의 육편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역하고 진한 초향은 어느새 쪽빛 핏내로 내 시각과 후각을 점령했다. 보안경을 벗었다. 희뿌옇게 빛나던 사위는 초록색 안개로 가득했고 희뿜한 햇살 자리만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이후, 나는 청무에 갇혀 방위를 잃을 때까지 두 시간 더 예초기를 돌렸다. 얼룩무늬 작업복이 검푸른색으로 젖었고 소금꽃이 피기 시작했다.
하루 반나절 동안 나는 초록색 야차가 되었다.
--- 「초록야차의 환시(幻視)」 중에서

어렴풋이 잡히던 하늘이 정상에서 빗장을 열었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날이다.
뛸 때 뛰더라도 시야에 들이치는 장관을 밀어낼 필요는 없다.
지리산은 땅에서 가을을 빨아 하늘로 내뿜고 있었다.
여기가 남쪽이겠구나. 저게 덕산인가? 이쪽은 산줄기, 발아래 산맥들이 굽이치고 있다. 낮은 구름 한 무리가 부유하고 있다. 해발 1915미터.
--- 「천왕봉」 중에서

심한 백내장으로 간신히 형체만 볼 수 있는 반종욱의 앞에는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친구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자신의 곤궁한 상황에 혀를 차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무것도 내주지 않고 있었다.
“제미, 자네하고 나하고 동고동락하며 보낸 세월이 고작 이 정도인가! 자네가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반종욱의 음성이 높아졌다. 그의 심장이 쿨렁거렸다.

“어르신, 친구분 가셨어요. 아직도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반종욱의 귓가에 나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북적거리던 5월이 지고 있다.
데리사요양원 4층, 반들거리는 바닥을 주유하는 휠체어는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린 노인이 바퀴를 굴리고, 창가의 행운목과 고무나무 가지에는 빛바랜 슬픔과 후회가 맺혀있다.
자물쇠가 채워진 창문으로 두 시간 넘게 하늘을 관찰하던 노인이 혀를 차며 겉옷을 여몄다.
“겨울이 유난히 길다, 봄은 언제 오려는지…”
이른 더위가 세상을 덮고 있지만 환희동의 계절은 저마다의 시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 「환희동(歡喜洞)의 5월」 중에서

2011년 8월 1일 오후.
그가 떠났다.
사무실 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내리는 비 같지가 않다.
가늘게 내리는 비다. 어둑한 도화지에 떨어지는 흔적을 남기며 실처럼 거미줄처럼 지면에 내려앉는다. 복지관 마당에 만항하사의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빗방울의 끊김이 보이지 않는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비다.

--- 「해우(解憂)」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2017년 말 등단 5년 만에 첫 작품집을 낸다는 의욕만 앞서 스스로 돌아보기에 조금 민망한 소설집을 발간했다. 여러 선생님들과 독자들에게 감히 일독을 청할 만큼의 염치는 없었기에 주변 지인들에게만 한정적으로 소식을 알렸다. 2년이 지난 지금 두 번째 작품집인 『초록야차의 환시』에는 2012년 등단 작품인 살계와 2019년 가을에 발표한 환희동의 5월까지 몇몇 문예지에 게재한 8편의 단편을 실었다. 사실은 첫 작품집이나 다름없다. 당시 게재한 원고 거의 그대로인 작품도 있고, 몇 번의 퇴고를 거쳐 느낌이 조금 달라진 작품도 있다.

추천평

‘데레사요양원’의 4층 ‘환희동’은 치매 노인들이 머무는 구역이다. 지금은 저장된 생의 기억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무력한 존재들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주체적 판단과 의지를 지니고 삶을 이끌어갔던 사람들이었다. 연결되지 않는 구멍 나고, 엉키고, 조각난 기억을 지니고 있지만, 삶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중략…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한 유아기에 부모의 돌봄이 필요하듯, 생의 마지막 시기에 그런 돌봄을 받는 것이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또한 무(無)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박황의 ‘환희동의 5월’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정영자 (문학평론가)
작가의 시대적 소명이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박황 소설가의 글들은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모순과 이상과의 경계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기는커녕, 두 팔을 뻗어 마치 불교의 선(禪)과 합(合)을 이루려는 시도가 보인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살계(殺鷄)는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보편적인 의지와 종속에 관한 살계(殺戒)라 지칭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 이인규 (소설가)
소설은 허구의 산물임에도 박황 작가는 직접 부딪히고 땀을 쏟으며 치열하게 작품 속을 헤집고 다닌 듯 생생하다. 글이 날것인 채로 펄펄 살아있다. 그래서 흥미롭고 때론 힘이 들었다. 초록야차의 환시(幻視)를 읽는 내내 땅벌에 쏘인 작열감에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오색의 연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버둥거리는 닭 모가지를 단칼에 끊어내는 살계(殺鷄)에서는 사방으로 흩어진 피비린내와 가슴으로 흘리는 그의 눈물을 보았다.
- 이진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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