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1998년 1999년 |
윤형두의 다른 상품
|
나는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녔다.
도쿄(東京)에서 얼마쯤 떨어진 사가미하라(相模原)에 있는 오노(大野) 제일초등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시가와(石川) 선생이 학생들에게 일기장이란 노트를 한 권씩 주면서 매일 일기를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강요에 의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도 무엇인가 쓰지 않으면 불안해 하게 된 것 같다. 아버님은 그곳에 있는 제2육군병원에 군속으로 출근하시면서 집에 오시면 그날 일어난 일들을 적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도 청소도구 군납을 하시면서 금전출납부에 그날의 경리관계를 기재하시는 것 같았다. 어릴 때 그런 분위기가 나는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습관에 의해 꾸준히 일기를 썼다. 그런데 객지 생활을 하면서 그 일기장들을 고향인 여수시 돌산면 우두리 779의 13호 어머니가 사시는 해변가집 콜렉션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서 농장 안에 간직해 두었는데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으로 쓰나미가 집을 쓸고 갈 때 바닷물에 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서울 생활의 기록과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을 겪은 후 1954년 휴전 이후의 일기라기보다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쓴 글 등은 관악구 봉천동 집에 두었다가 1971년 2월 12일 [다리]지 필화사건으로 구속이 되어 [반공법 사범]이란 누명으로 서대문 교도소에 구치되자 어머님이 혹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내 일기장을 모두 불태워버려 그 흔적이 없다. 그 후 생활이 안정된 후 1987년부터 1997년까지의 생활기록을 5권의 사초집으로 묶어 간행하여보니 내 개인사가 정리되어가는 것 같아 써놓은 일기를 바탕으로 계속 정리해보려 한다. 당의통략(黨議通略)을 쓴 이건창(李建昌)은 “마음은 한 치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고 말은 깜짝할 사이에 나오는 것으로 마음은 허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다 보지 못하고 말은 실수가 있더라도 또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글이란 것은 한번 붓으로 종이에 쓰면 오래도록 멀리 전해져서 이미 가리거나 마멸시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종이에 쓴 글도 없어지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을 책으로 엮어 남기려는 것이다. 아테네 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인류기록유산 공유 프로젝트인 기억은행을 만들어 고령자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기억과 지혜를 수집하여 사이트를 통해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특히 한 분야 한 업종에 종사한 사람들의 사소한 기록이나마 후세에 전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나는 80여 년간 살아온 기록과 60여 년간 몸 담아온 출판계에서 얽힌 사연과 또한 모아놓은 자료들을 사초(私草)라는 글 모음에 같이 남겨두어 후세인에게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글쓰기의 행위는 모든 구성의 최고의 가능성이다. 이념적 객관이 지닌 역사성의 초월적인 깊이는 바로 이 가능성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다. 자기 역사를 자기가 쓰지 않으면 자기라는 인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분명 앎보다 삶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 사람이 얼마만큼 진실하고 참되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지식을 가진 자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학기(學妓) 노릇을 하며 세상을 망치고 어지럽혀 왔는가 그런 세상에 살았다. 소박한 진실이 화려한 수사보다 고귀하다고 본다. 지난날의 족적(足跡)을 뒤돌아보며 사는 것은 내 미래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보약이요 영약이다. 나는 지난날의 나를 알고 나를 이해하고 또 하나의 나를 그리기 위해 글을 쓴다. - 저자의 서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