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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글을 시작하며 13 제1장 한국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한국어 존대법 21 1. 세상을 코딩하는 프로그램 언어 22 2. 쎄이요르인과 한국인의 차이 26 3. 한국인이 나이를 묻는 이유 31 4.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 한국 사람들 38 5. 여섯 살 남자아이가 이해한 존대법의 숨은 뜻 44 6. 동무와 동지의 차이 48 7. 외국인에게 한국어 존대법이 어려운 진짜 이유 52 8.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어 존대법의 파괴력 58 제2장 한국어 성경의 예수 존대 딜레마 65 1. 한국어 성경의 존대법 갈등 66 2. 반말하는 예수 70 3. 예수와 당신이 한국어로 대화한다면 75 4. 영어 성경과 한국어 성경의 차이 78 5. 아직 끝나지 않은 예수 존대법 논란 82 제3장 존대법의 두 얼굴, 존댓말과 반말 87 1. 인지력의 한계를 실험하는 한국어 존대법 88 2. 동방예의지국의 하대법 95 3. 반말 시비 101 4. 반말의 힘 107 5. 우리가 반말을 못 견디는 이유 111 6. 생명을 위협하는 언어폭력의 파괴력 116 제4장 권력에 아부하는 호칭 123 1. ‘미시즈 박’에 놀란 한국 사람들 124 2.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의 차이 131 3. 권력자의 힘에 비례하는 언론의 호칭 135 4. 김일성 극존대법 140 제5장 21세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존대법 147 1. 한국 엄마와 유대 엄마의 차이 148 2. 한국 기자들의 침묵 153 3. 권위를 실어주는 존대법 161 4. 형님 나라, 아우 나라 166 5. 학번제와 신입생 예절지침 171 6. 정확한 존대보다 안전한 과잉존대 178 7. 공손을 앞세운 책임 전가 182 8. 외국인이 터득한 존대법 전략 189 제6장 변화하는 사회, 진화하는 존대법 195 1. 히딩크의 반말 전략 196 2. 계급장 뗀 기업의 평등 호칭 201 3. 한국이 노벨상을 원한다면 206 4. 온라인에서의 존댓말과 반말 211 5. 평등어로의 변신-1 216 6. 평등어로의 변신-2 221 7. 공손함을 넘어 상호존중으로 226 글을 마치며 230 본문 주석 234 참고문헌 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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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을 향한 존대법 이야기
영어학자 김미경 교수는 한국어 존대법의 이율배반적인 양면성에 주목하며, 한국의 젊은이들을 향해 강변한다. “존대법으로부터의 해방은 단지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며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미래 한국의 생존의 문제이다. 한국이 미래로 글로벌 사회로 그리고 더 넓은 민주화로 한 차원 더 높은 비약을 지향한다면 조선시대식 존대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존대법의 숨은 논리를 우리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리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한국어 존대법 존대법은 한국어 문법의 핵심인 동시에 한국인의 정신과 삶의 방식을 조정하는 근원이다. 한국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존대법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존대법은 이 사람은 너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주입시키는 과정이며, 윗사람은 너보다 나은 사람이니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훈련시키는 동시에 사람의 높낮이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존대법은 논리성보다 윗사람에 대한 태도를 먼저 생각하게 만들고 윗사람과 평등한 관계에서 생각하고 대화하는 정신을 가로막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라하는 성실함으로 중학생들의 성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한국식 존대법 문화로 거기까지는 가능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세계적인 수준의 중학생 학업성적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생들의 국제 경쟁력은 최하위권이며 어른 대접이라는 존대법 예절에 가려진 아랫사람들에 대한 인권유린은 겉으로 보이는 민주화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어 존대법은 토론장의 발언권에서부터 노래방에서의 노래 부르기 순서까지 이 나라 구석구석 어디에서나 나이와 계급에 대한 우선권을 강요한다. 영어 성경과 한국어 성경의 차이 대부분의 한국인은 성경을 읽으며 예수가 왜 존댓말을 하는지, 왜 반말을 하는지 반문하지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이 ‘-하시오’로 권유하는 예수를 만나는 사람과 ‘-해라’로 명령하는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각각 다른 색깔의 안경을 쓰고 예수를 경험하게 된다. 혹자는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지존의 존재이다. 그러니 다른 모든 이는 그의 아래에 있으며 따라서 예수는 누구에게든 말을 놓아 ‘해라’로 말하는 것이 옳다. 또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는 가장 높은 분이지만 당신 자신을 종처럼 낮추어 섬기는 삶을 산 온유하고 자비로운 분이다. 그런 예수가 모든 이에게 반말을 하면 교만하고 무례한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다. 예수는 사랑으로 모든 이의 인격을 존중하여 ‘하시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 성경이 가지고 있는 존대법 갈등은 성직자나 번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모든 인간관계를 위아래로 나누고, 존댓말과 반말로 차별하는 한국어 존대법이 수정되지 않는 한 끝까지 남을 문제이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만인이 평등한 민주사회에서 언제까지 위아래를 구분하는 존대법이 존속되어야 하는가? 위아래를 나누지 않고,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이 되면 안 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