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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부 선생님, 우리 아이 공부 그만 시키세요 제2부 자식을 위해서라는 말, 순 거짓말 제3부 스펀지 부모, 스티로폼 부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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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모두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과 매뉴얼에 따라 살아간다. 자발성을 발휘할 영역이 ‘개미 똥’만큼도 없다. 소위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아이들의 자유와 자율성이 담보 잡히고 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율적으로 사는 건 어른이 되어서 하고, 지금은 내 말대로 하라”고.
따라서 개똥철학의 핵심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이끌어가게 하라’다. 아이들에게 이런 능력을 배양해주는 것이 자녀 교육이라 생각한다. 이런 능력 길러서 뭐하게? 그렇다. 자기 자신에게만 머무는 삶에서 세상과 나누는 삶으로 가는 거다. -프롤로그에서 "아빠, 사실 제가 죽어라고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제 자신을 잘 알기에 공부를 죽어라고 해야 하는 인문고는 안 가려고요. 그 대신 내가 원하는 걸 가르쳐주는 공고에 가려고요." …… 딸아이가 가려고 하는 공고에 웹디자인과가 있는데, 잘 가르쳐준단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컴퓨터와 관련된 곳이어서 가기로 했단다. 거기 장학금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선택 요소로 한몫했다고. 자신의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대학입학금도 직접 마련하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있다. 영어나 수학과목도 필요에 의해서 찬찬히 해나가겠다며 벌써 영어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있다. 대학 진학으로 말하면 일류 이류를 따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과를 소신 있게 지원한 꼴이라고나 할까. -‘딸은 왜 인문고 성적으로 공고 갈까?’에서 아들아이의 방식은 ‘저금통 방식’이다. 아들아이는 딸아이와 달라서 자기표현에 서툴다. 뭔가 자신이 필요하다고 해도 잘 말하지 못한다. 어렵게 말한다. 그런 아들아이에게 딸아이와 같은 방식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해놓은 용돈을 주는 것은 딸아이와의 형평성에서 어긋난다. 생각다 못해 우리 부부가 고안해낸 방식이 있다. 바로 저금통에 용돈 채워주기 방식이다. 바깥에서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이 남으면 집에 가져온다. 그 돈은 항상 막내를 위한 저금통에 골인시킨다. 100원짜리와 500원짜리 동전이 대부분이다. 때론 1000원짜리 지폐도 있다. 그 저금통은 투명해서 얼마나 모였는지 한 눈에 다 보인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 저금통의 재산 정도를 알고 있다. 아들아이는 평소 돈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다가 돈이 모이면 날을 잡아서 안성 시내를 나간다. 친구들과 함께 PC방 가서 게임도 하고, 장난감도 산다. 아들아이도 이 방식이 좋다고 합의한다. 물론 아들아이가 가끔 ‘119 방식’을 주문한다. 그런 경우 우리 부부는 대환영이다. 아들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아들아이는 ‘저금통 방식’과 ‘119 방식’이 어우러져 있다. 딸아이는 오로지 ‘119방식’이다. -‘용돈, 각자 스타일대로 준다’에서 홀로 선다는 것을 한자로 ‘독립’이라고 한다. 독립이란 말 그대로 어떤 무엇에서 떨어져서 홀로 서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에 더 이상 기대지 않는 행위다. 그 ‘무엇’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이제 나도 온전한 그 ‘무엇’이 되고 싶다는 다짐이다. 나아가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소망의 몸부림이다. 불완전한 존재에서 온전한 존재로 나가려는 인간 선언이다. 이럴진대 ‘대한 독립 만세’를 그토록 외쳐대면서, ‘자녀 독립 만세’를 싫어할 까닭이 있을까. 이를 꺼려서 자녀를 계속 품으려는 것은 순전히 부모의 대리만족과 욕심이다. -‘홀로서기, 그 아름다운 이름이여’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설득한다. “지금 공부해둬야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된다. 놀 거 다 놀고 언제 공부 하냐. 지금 즐길 생각 말고, 미래를 위해서 고통을 감수해라. 지금 좀 힘들더라도 나중에 행복해야 하지 않겠니.”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아이들이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이 행복할까. 성공한다는 미래, 행복해질 거라는 내일이 내 뜻대로 오기는 하는 걸까. 그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다만 지금 현재가 우리의 시간이다. 이런 일반적인 진실이 왜 아이들에겐 배제되어야 하는가. 가혹하게 말해볼까. 1분 후에도 당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 미래는 와봐야 오는 것이다. 책을 쓰고 있는 나의 1분 후도, 책을 읽는 당신의 1분 후도 장담할 수 없다. 전동차 안에서 책을 읽는 당신, 그 전동차가 잠시 후 뒤집어져서 운명을 달리할지 누가 알랴. 진정 지혜로운 자는 항상 죽음을 준비하는 자가 아닐까. 꿈이 사람을 잡는다. 꿈이 현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거나, 꿈이 현재를 옥죈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꿈이 현재를 질식하게 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게 있을까. -‘꼭 꿈이 있어야 하나요’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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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독립은 곧 부모 독립이다
부모들이여, 자녀에게 그들의 인생을 돌려줘라! 어느 부모나 자기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자녀가 행복해질지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대세를 따라가 그 대세 안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는 것이 자녀가 가장 안정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방법이라고 여겨 자녀가 세상이 정해놓은 수순을 무리 없이 따라가길 바란다. 현재 어떤 모습인가보다는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에 자녀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아이들은 대부분 ‘미래의 주인공’이자 ‘현재의 엑스트라’로 살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은이 송상호 목사는 아내와 딸 하나, 아들 바다와 함께 안성에 터를 잡고 산다. 목사이되 목회 활동을 하지 않고 교회를 꾸리지도 않는다. 교회당 안에서 권위를 드러내는 목사 역할을 하기보다는 ‘더아모의 집(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을 일구며 제 자식, 남의 자식을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터를 만들어주며 살고 있다. 송상호 목사는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해서 뚜렷하게 정해진 ‘대안’이나 다 같이 따라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애당초 자녀 교육에는 정해진 답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녀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교육 철학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생각을 실천해 두 자녀를 양육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송상호 목사의 딸 하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썩 잘했다. 그런데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공고를 지원했다. 그 까닭은 주구장창 입시에 몰두해야 하는 인문계 학교보다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컴퓨터 디자인을 일찌감치 배울 수 있는 공고에 더 다니고 싶어서다. 학교에 다니는 이유도 ‘친구 사귀러’이다. 같은 이유로 입시 학원에는 다녀본 적이 없다. 처음 생각과 달리,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입시 위주의 수업을 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 학교 방침에 대한 불만을 아버지와 함께 담임교사에게 말하고, 합당한 절충점을 찾자 다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 전교 1등을 한다. 학교 수업 시간 외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 용돈을 번다. 디자인 학원에 등록해 다니지만, 가정 형편에도 알맞고 자신도 가길 원하는 대학교와 과를 선택해, 가고 싶은 대학에 필요한 수능 성적을 올리기 위해 혼자서 수능 공부에 돌입한다. 수능 공부를 시작하지만 공부에만 몰두하지는 않는다. 남자친구도 사귀고 게임도 하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캐릭터를 만들면서 놀기도 한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한다. 앞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포기하지 않는다. 딸아이가 자기 뜻대로 지내도록 부모가 방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스스로 해내도록 도운 결과다. ‘꿈’, ‘성공’이라는 단어에 아이를 가두지 말자 부모들은 말한다. “넌 실패해선 안 돼. 어떻게든 성공해야 돼. 네가 성공하도록 이 부모가 다 해줄게. 실패할 게 있다면 내가 감당할 테니, 넌 오로지 성공만 생각해.” 되도록 자녀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세상의 험한 일들을 피해 탄탄대로를 걷길 바라서일 것이다. 송상호 목사는 이러한 생각의 틀을 과감히 내던진다. 우리 사회가 단 한 번의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지만, 그것은 성공만을 바라보고 산 사람들이 만들어낸 분위기이고, 본디 실패란 성공 못지않은 가치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는 마땅히 ‘실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녀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삶의 목표와 꿈을 부모가 정해주며, 그 목표를 향해 현재 실천할 것들의 매뉴얼마저도 부모가 짜주면서 “다 너를 위한 일이야”라는 거짓말을 한다. 그건 교육이라기보다는 자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행위이다. 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고등학생 시절 꾸는 꿈은 이뤄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나중에 바뀔 수도 있다. 앞날이 어찌 될지는 자녀는 물론 부모도 모른다. 그런데 꿈에 얽매여 꿈이 현재를 질식하게 만든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꿈은 미래를 위해 꾸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행복하기 위해 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상호 목사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자녀 교육 성공담’이 아닌 ‘자녀 교육 모험담’ 내지는 ‘자녀 교육 실험 이야기’라고 한다. 실험이라고 하는 건 말 그대로 실험이다. 실험은 성공 여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거다. 사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모범답안은 이 세상에 없다. 하물며 자녀의 개성이 천차만별이니 더욱 그렇다. 자기 방식대로 각자 실험하는 것이다. 다만, 자녀가 실험의 대상이 아니라 부모의 자녀 교육 방식이 실험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실험의 주체는 자녀이고, 실험의 대상은 오히려 부모라 할 수 있다. 자녀들이 부모의 자녀 교육 능력을 실험하는 셈이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녀가 부모를 키우는 것이며 부모는 자녀를 훌륭히 키워내기 위해 성장해가야 한다. 훗날 부모가 얼마나 자녀를 잘 키워냈는지, 자녀를 얼마나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조력했는지, 자녀의 홀로 서기를 얼마만큼 잘 전수해줬는지 등을 자녀로부터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자녀들이 누리는 삶의 질이 부모들의 실험 결과를 말해준다. 송상호 목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남다른, 조금은 유별나다 싶은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하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누구의 교육 방식보다 더 상식적이고 건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