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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_ 엄마가 조금씩 사라진다
#1 고독한 보행자 | 집 고치는 남자 | 털게의 속살 | 성교육 | 달려야 산다 | 상상의 우주 #2 비가 | 엄마 없이 보낸 일주일 | 프랑스 식당의 엄마 | 60년대 여배우 | 엄마는 뚱뚱해서 못 날아 | 검은 구두 | 찰나 속의 영원 #3 영정 사진 |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 | 모래의 열매 | 에어컨 전기료 | 부활절 달걀 | 김치와 꽁치 | 충족되지 않는 욕망 #4 엄마가 갖고 싶은 것 | 엄마 눈이 잘 보였음 좋겠다 | 심인성 우울증 | 취미 따윈 필요치 않아 | 아버지의 롱코트 | 빛나지 않는 졸업장 | 밤새도록 나는 울었네 #5 철들 수 있을까 | 사는 게 즐거워 | 그 옷만은 안 돼요 | 형제의 난 | 달빛은 숙명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 비행기가 날 때마다 | 아무도 앞을 막을 수 없어 | 우리 집의 진짜 주인 #6 된장찌개 하나 먹는 일 | 카레라이스 | 나는 고아가 아니야 | 하얀 면화송이의 행렬 | 아프지 말아요 | 넌 닥터야, 정신과 의사야, 슈퍼맨이야 | 꽃이 피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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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원한 단짝, ‘엄마’라는 그 이름
컨텐츠팀 김수빈 (shuubiny24@yes24.com)
2013.05.01.
정확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엄마 없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아니 정확하게는 하기 싫은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새로운 안경을 맞추며 어울리는 안경테를 골라야 할 때나 망가진 핸드폰을 들고 대리점을 찾을 때, 혹은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교환하러 갈 때에도 늘 엄마와 함께 해야 마음이 놓이고 더 당당히 내 요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빽이 되어주는 사람, 없던 능력까지 발휘해서 더 나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나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이고, 그래서 “생각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하면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까,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서 분리되지 않으면서 독립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엄마와 내가 늘 서로를 아끼며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사이 좋은 모녀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이게 어울린다, 저게 어울린다 하며 예쁘게 차려 입고 외출 준비를 하다가도, 심기를 건드리는 말 한마디에 금방 토라져 집을 나선지 5분만에 서로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원수 보듯 씩씩거리며 되돌아오는 기복 심한 모녀이기도 하다. 신기한 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에 등장하는 모자(母子) 사이도 엄마와 나 못지 않게 들쑥날쑥하며 충동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이지만, 그 저변에는 ‘언제나 내 편’이라는 강한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아빠와는 다르게, 나를 직접 품고 영양분을 몸으로 전달해 준 엄마와의 관계는 자녀의 성별을 막론하고 애틋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엄만 외할머니가 해준 음식 중에 생각나는 거 있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을 꼽으라면 단연 저 문장이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엄마가 해 준 음식 중에 좋아하는 것을 대라면 망설임 없이 서 너개는 거뜬히 읊을 수 있지만, 단 한 번도 엄마가 좋아하는 외할머니의 음식에 대해서는 물어본 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매년 돌아오는 엄마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도 순전히 내 취향만을 반영한 비싸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을 생각만 했지, 진정 엄마의 취향을 반영한 음식점을 가 본적 기억은 없다.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읽었더라면 불과 몇 일 전이었던 엄마의 생일을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고 또 쉽게들 말한다. “있을 때 잘하라”고. 분명 머리로는 알겠는데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너무도 힘들다. 지각 3분 전 지하철 역에서 회사를 향해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가며 ‘내일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5분 더 일찍 일어나야지’라고 다짐하는 것처럼, ‘내일은 꼭 엄마한테 상냥하게 말해야지’, ‘이번 주말엔 꼭 엄마와 시간을 보내야지’ 하는 생각들은 하루가 지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이런 나의 유약한 다짐조차도 모두 이해하고 사랑스럽게 봐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엄마가 아닐까?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를 읽으며 나는 더욱 확신을 가졌다. 그야말로 무던히도 지지고 볶으며 싸웠던 엄마와의 시간들이 결코 아픈 상처나 후회가 아닌, 서로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주는 행복한 추억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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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경 수술을 받은 날 저녁, 엄마는 모니터로 목격한 수술 장면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수술 중에 의사가 모니터 보겠냐 그래서, 본다 그랬어. 왜 수술할 때 얼굴 덮는 거 있잖아. 포장 같은 거. 그거 열어줘서 옆으로 모니터를 봤어.” “그걸 어떻게 볼 생각을 다 했어?” “다리만 마취됐지 전신마취는 아니니까.” 엄마는 당당한 반역자 소녀 같았다. “의사가 그러는데, 내 무릎이 방이라면 세 면의 벽지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래. 무릎뼈 가운데 하얀 연골이 걸레처럼 흐트러져서 막 너불너불 붙어 있는데, 의사가 가위로 막 자르고 뜯어내고 그러더라고. 또 뼈 사이에 있는 걸 기계로 박박 긁어내고 그러기도 했어.” “그걸 다 봤어? 무섭지 않았어?” “무섭지 그럼 안 무서워? 그렇지만 저래서 내가 아팠구나, 그랬지. 그리고 그때 잘 봐둬야 나중에 의사가 설명할 때 알아듣잖아.” 엄마의 서사에는 늘 빠삐용 같은 통 큰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어서 나의 소심함으론 그 신발 끈도 풀 수 없었다.--- 고독한 보행자(p.15) 이윽고 커다란 접시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게가 놓였다. 색깔은 밀도가 촘촘한 스테이크나 메마른 갯벌과 비슷했다. 나는 참선하듯 조용히 게 다리를 들어 가위로 오려냈다. 가장자리가 잘려나간 게 껍질을 펼치자 특대 맛살처럼 두툼한 속살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부서지지 않게 어르듯 게살을 포크로 집어 들었다. 엄마 얼굴에도 나처럼 기쁨의 강물이 흘렀다. 나는 게살을 먼저 엄마에게 공양했다.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입에 넣었다. 나도 엄마가 주는 게살을 도리질 치며 받아먹었다. 표준적인 별일 없는 삶이었는데 정원의 장미가 갑자기 나에게 인사하는 것 같은 경이로운 맛이었다. “엄마, 진짜 맛있지, 그지?” 내 입에서 설탕에 조린 듯한 말투가 났다. “응.” “나, 털게 태어나서 평생 처음 먹어본다. 엄마는?” “나도.” 우리는 웃었다. 엄마가 맛있어하니까 더 기뻤다. 나는 씩씩하게 커진 동작으로 더 큰 게 다리 살을 발라냈다. 입술과 혀 빼고 모든 감각이 마비되었다. 화나는 일, 받아야 할 선물, 아직 못 받은 사과, 여전히 부산항에 머물고 있는 내 새 차, 원고 마감, 길 잃은 기러기 같은 장래의 근심은 사라지고, 세상에는 오직 엄마와 나와 게살뿐인 것 같았다. 결국 게가 다족류라는 것만 한 행복도 없었다.--- 털게의 속살(pp.38~39) 그렇게 오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왔지만,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충돌은 5만 번도 넘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렷해진 게 없다. 우리의 고집은 삿갓조개처럼 단단해서 도저히 양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서로 변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에. 어쩌면 직관적인 체계로 무장한 엄마와, 성인기에까지 쉴 새 없이 몸을 흔드는 틱 장애의 나, 둘 다 프로이트 정신병리학의 상속자 같다. 질병은 단순한데 원인은 복잡한. 그러나 내 나이 남자가 과자 부스러기로 어질러진 방을 치우는 문제로 엄마와 분쟁하는 것은, 분명 나이를 더한 만큼의 연옥의 순환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p.127) 다음 날 아침,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꽁치조림을 해주셨다. 아아, 그것이야말로 매일의 생활이 만드는 판타지였다. “우와, 엄마는 도대체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그렇게 전부 다 알아?” “엄마가 돼 자식이 좋아하는 걸 모를까?” “우리 엄마는 마법사구나, 마법사.” “나만 못한 엄마가 어디 있을라구?” “전부 다지, 전부 다!” 나에겐 아직도 세상에 진입하려는 풋냄새가 난다. 늘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어캣처럼 시간을 살피며 누구라도, 심지어 작은 돌멩이 하나도 떠나길 바라지 않으니까. 명백한 일들이 빗나가면 추억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추억으로도 되돌아갈 길을 찾지 못할 때, 그 자리는 그동안 엄마가 해준 음식이 대신할 것이다.--- 김치와 꽁치(p.154) “나가서 나머지 한 권도 마저 찾아봐야지.” 엄마는 기쁨을 아끼려는 듯 단숨에 7층 아래로 내려갔다. 이쯤 되면 엄마는 여자 제임스 본드였다. 그녀가 서대문구에서 일상만으로 바쁘게 사는 건 에디트 피아프가 걸그룹에 들어간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실수였다. 딱 7분 후 엄마는 조금 실망한 기색으로 돌아왔다. “한 권은 암만 찾아도 없네.” 엄마는 세일즈맨처럼 싹싹하거나 의논성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때로 도토리 광주리를 발견한 다람쥐처럼 사랑스럽다. 오늘 같은 날이 자주 왔으면 좋겠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p.156) 엄마는 주기적으로 안구에 주사를 맞았다. 엄마가, 눈이 아프고 저리고 시리다고 할 때마다 나는 고작 “빨리 자. 모든 병엔 자는 게 가장 빨리 낫는 방법이래. 얼른 자”라고 말할 뿐이었다. 마트에서 블루베리 몇 봉지와 칼로리가 제일 낮은 무지방 우유를 사들이며 법석을 피워봐도 엄마의 저조함은 당장 기쁨으로 바뀌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냉장고에서 블루베리와 우유를 꺼내 수시로 약처럼 먹으면 아주 끝내주게 효험을 볼 거라고 말했다. 태산이 무너져도 콧바퀴조차 씰룩하지 않고 모든 것에 시큰둥, 주석보다 단단한 엄마의 얼굴 피부가 살짝 움직였다. “우리 아들 고마워. 최고야. 착해. 어떤 때 너무 깐깐하고, 엄마 말 안 듣는 것만 빼고.” 그날의 햇살은 길가에 버려진 밝은 유리조각 같았다. 잔상이 오래 남는 빛. 삶 그대로를 받아들이건 변화를 꿈꾸건, 우주를 아우르는 제1의 법칙은 모든 것이 항상 똑같이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진실은 타협될 수 없고, 결국 우리는 힘든 작별을 하며 일생을 보낼 것이다.--- 엄마 눈이 잘 보였음 좋겠다(pp.178~179) 바깥세상의 삶, 자기 야망이 부르짖는 신랄한 요구에 끝없이 응해야 하는 피상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그러니까 난투극 직전의 아침에 나는 다시 물었다. “엄마는 나하고 사니까 좋아?” “그래, 왜?” “뭐가 좋은데?” “내가 너 말고 누구한테 가서 살아?” “단지, 그것 때문에?” “그래.” “매력 없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 아들하고 사니까 좋지. 내가 너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죽도 못 먹었을 거야.” 행복했다. 그러다 다리를 찰싹 맞았다. “너, 다리 흔드는 게 얼마나 나쁜 건 줄이나 알아?” 엄마에겐 내가 중년 남자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나, 딴 데선 안 그래. 집이니까 이러는 거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안 새!” 또 한 대 맞았다. 엄마가 없으면 나는 고아지만, 지금은 하나도 고아가 아니다. ---나는 고아가 아니야(pp.314~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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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그 후 10년간의 이야기
10년 전,『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는 고백이었다. 누구의 엄마든, 엄마를 구전하는 이야기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한 작은 혁명이었다. ‘어머니라는 우주를 조촐하게 기록한 아들의 글’은 낯선 이미지와 생경한 언어들을 조합한 『지큐 코리아』 이충걸 편집장 특유의 미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에세이가 되었다.그 후 10년이 흘렀다. 독자들은 책과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그리고 가끔 이 사랑스러운 모자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했다. 우리의 엄마가 그렇듯, 조금 더 늙고 조금 더 아프실 엄마와 100년이 흘러도 철들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은 어떻게 서로의 삶을 보듬고 있을까…. 예담에서 출간된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는 그 마음에 대한 화답이다. 2002년에 나왔던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의 개정증보판으로 ‘지금’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10년간 ‘엄마 병’은 열 가지가 넘게 생기고 아픈 엄마를 업고 응급실에 달려가는 일이 잦아졌지만, 아들은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생각에 붙잡혀 울고 있지만은 않았다. 함께 시장에 가고, 텔레비전을 보고, 예쁜 옷을 사드리고, 작아서 못 입겠다 하시면 가차 없이 화를 내며 여전히 곁에 있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가 여전히 전개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기록했다. 엄마의 좋은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되뇌며. “그러니까 이충걸은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을 발명했다고 말해도 좋다”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는 지금껏 세상에 나온 엄마에 관한 얘기들과는 지점이 좀 다르다. 희생과 헌신의 세레나데로 누선을 자극해 눈물 바람을 만들지도 않고, 잠든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는 엄마의 옆얼굴에 대한 참회도 없다. 엄마의 고난과 역경에 바치는 헌사나 상패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오히려 엄마의 정면 얼굴에 대한 뚜렷한 관찰과 어딘지 엇박자이되 묘하게 리듬이 딱딱 맞는 두 사람의 즐거운 생활, 쾌활한 연주에 가깝다. 이충걸의 엄마는 자식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 위해 된장을 담그고 고등어를 굽지만, 피곤하다며 늦잠을 자는 아들에게 “나는 네 나이 때 네 세 배 일했다!”고 일갈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만 같은 아들은 아픈 엄마의 머리맡을 애타게 지키다가도, 예후가 좋아지면 또다시 늦은 귀가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하얀 면화송이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 나팔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순간, 두 사람은 함께 기쁨을 나눈다. 모자지간보다는 친구 사이, 보살피고 공양하기보다는 서로의 삶을 지켜보고 기억해주는 동지로서 함께한 긴 세월을 축복하며. 아침 밥상에 꽁치조림이 올라오자 “우리 엄마는 마법사구나, 마법사!”를 외치는 아들과 생일선물로 무얼 갖고 싶냐는 질문에 “즐거움!”이라고 대답하는 엄마. 이들의 앞으로 10년 후 이야기가 다시 궁금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어느 날, 이충걸은 엄마표 된장찌개를 흉내내려다 이내 포기한다. 혹여 자신을 양육한다는 책임으로부터 엄마가 편안해질까봐, 그래서 무력해질까봐. 그러니 이충걸의 어머니는 더없이 사적인 어머니지만,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의 모든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