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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의 고유성을 회복하다
감정의 매듭 걱정 /두려움 /미움/ 불안/ 슬픔/ 우울/ 억울함/ 열등감/ 원망/ 절망/ 짜증 악습의 매듭 불평/ 경솔함/ 과도함/ 무분별함/ 무절제한 말/ 이간질/ 이기심/ 자기 자랑과 과시/ 자기합리화/ 조급함/ 험담/ 회피/ 거절 칠죄종의 매듭 교만/ 분노/ 탐욕/ 나태/ 인색/ 시기와 질투/ 음욕 2장 관계의 다양성을 존중하다 인간관계 오해/ 단죄/ 무관심/ 무심함/ 배반/ 보복/ 불목/ 불친절/ 선입견/ 섭섭함/ 완고함/ 우유부단함/ 폭언/ 완벽주의 하느님과의 관계 냉담/ 무서움/ 과거의 기억/ 무지/ 변명과 핑계/ 분심/ 불순종/ 불신/ 생각/ 자애심/ 죄책감/ 집착/ 착각/ 포기/ 소통의 부재 3장 가정 안에서 행복한 나로 서다 가난/ 애착/ 과도한 기대/ 대화 부족/ 무책임/ 병마/ 불신앙/ 비교/ 권위와 신념/ 비난과 질책/ 성공과 질주/ 유년기 상처/ 자아 상실/ 중독/ 트라우마/ 자기비하/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 맞벌이 가정/ 한 부모 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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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자신 고유성의 회복
- ‘정작 나는 없었다’ 20여 년 동안 방송국을 누비며 열심히 산다면 되리라는 하나의 생각으로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던 저자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 각혈을 하며 달려간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는 절망적인 답을 했다. 모든 것은 무너졌다. 망가진 육신으로 찾아 들어간 동네 수도원 경당에서 주님과 마주한 그 시간, 저자의 첫 기도는 회개였다. 그리고 정작 나는 없었음을 깨닫고, ‘하느님과 나, 나 자신과 나, 가족(이웃)과 나. 관계의 치유와 회복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 40년 신앙이 반석이 아니라 모래성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다 망가진 육신으로 찾아 들어간 동네 수도원 경당. 주님과 마주한 그 시간, 나의 첫 기도는 회개였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열심히 사는 것이 사랑이고 희생인 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착한 딸, 좋은 아내, 훌륭한 엄마, 능력 있는 작가로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이룬 업적을 묻지 않고, 내 안에서 하루라도 행복한 적이 있었더냐? 나의 행복이라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나로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 주님의 뜻을 외면했던 것이다. 내가 맺어온 하느님과 가족, 이웃의 관계가 왜곡되었음을 인식했다. 모든 관계에 애를 썼지만 정작 나는 없었던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매듭이었다. ---「1장 나의 고유성을 회복하다」중에서 ‘나를 찾아야 했다’는 깨달음, 이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나의 본성을 담은 모습을 찾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본래에 빚어주신 작고 여린 영혼! 화려한 꽃과 같이 되겠다는 허영을 버리고 본래의 내 모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나 자신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만나며 풀어 나가야할 매듭은 내 안의 감정, 나쁜 습관으로서 악습, 그리고 칠죄종이었다. 매듭풀기 과정에서 만나는 나의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나의 고유성 찾기가 시작된다. 우선 마주하게 되는 내 감정의 매듭. 열등감. 짜증, 걱정, 두려움 등과 같은 모든 나의 감정의 매듭은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할 대상이다. 그것들은 직시하고 풀어 나가야 할 매듭이다.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강한 척 포장하며 거짓 자아를 만들어 냅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여러 얼굴을 지닌 열등감의 매듭을 풀어주소서. 자기 약점에 주눅이 든 이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시어,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약점마저도 복음의 도구로 삼으신 주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소서.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2코린 12,9) ---「1장 나의 고유성을 회복하다」중에서 내 감정의 매듭뿐만 아니라, 내게 배인 나쁜 습(習) - 불평, 이간질, 무분별, 과도함, 험담 등과 같은 것들은 악습의 매듭이 되어 나를 강하게 옭아매고 있다. 그것들은 너무나 익숙하여 어쩌면 그것이 매듭임을 알 수 없는 것들이고 일상에서 아무런 반성함 없이 행해지는 생각과 행동이 된다. 과도한 노동은 머무름과 쉼을 빼앗고, 넘치는 열정은 관계를 해치며 질병을 만듭니다. 지나친 신앙심 하느님께 인정받고 싶은 자기만족의 욕망입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조금 더’의 욕심이 매듭이 되었습니다. 약하고 공허해지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채우려는 이들을 도우소서. ---「1장 나의 고유성을 회복하다 ‘과도함’」중에서 감정의 매듭, 인습의 매듭을 넘어 저자의 기도는 다른 죄와 악습을 일으키는 근원, 즉 칠죄종(교만/ 분노/ 탐욕/ 나태/ 인색/ 질투/ 음욕)으로 인해 생겨난 매듭을 풀어나가는 기도로 이어진다. 일상 속에서 마치 나의 당연한 감정이고 추구할 바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행하는 것들은 곧 악행과 불행을 낫게 됨을 인지하고 반성하며, 자선과 인내와 절제와 겸손과 같은 가치들을 회복하고 다시 익히고자 기도해 나간다. 저희는 두 벌의 옷, 두 켤레의 신발이 있어도 없는 이의 빈손을 채우기보다, 한 개를 더 채우지 못해 안달합니다. 일과 사람에 대한 욕심은 족쇄가 되었습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탐욕의 죄가 남긴 매듭을 풀어주소서.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화해하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신 복음을 살아내게 하소서. 잠시 빌려 쓴 세상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릴 때, 사랑과 나눔의 열매로 응답하게 하소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3) ---「1장 나의 고유성을 회복하다 '탐욕'」중에서 2. 관계의 치유와 회복 -세 번 넘어진 나, 세 번 배반한 베드로, 세 번 넘어지신 예수님 나의 고유성을 회복하는데서 시작된 저자의 기도는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반성으로 나아간다. 이 길에서 저자는 용서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깨달음 속에서 예루살렘 주님 무덤에서는 유다의 질병인 ‘과도한 자기단죄’와 ‘인색한 자기용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관계의 치유와 회복의 길이며, 궁극적으로는 이 또한 부활의 길임을 깨닫는 기도의 여정이 이루어진다. 내가 용서해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 한두 번 넘어지면 일어설 수 있지만 세 번 넘어지면 주저앉기가 더 쉽다. 똑같은 악습으로 여러 번 넘어지는 나와 타인을 용서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예수님도 세 번 넘어졌고 세 번 일어나셨다. 넘어진 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공감하는 분이다. 넘어짐을 견디지 못한 유다는 절망했고 베드로는 희망했다. 그 일어섬은 자책과 수치의 감정을 뛰어넘은 용기였다. 누구나 일어서기만 하면 부활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2장 관계의 치유와 회복 저자 서문」중에서 이런 인식에 따라 저자는 진정한 관계의 원형은 나와 타인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됨을 느끼고, 자신의 부서진 과거가 주변의 양들을 공감하고 돌볼 수 있는 빛이 되기를 기도한다. 행인이 폭행을 당하거나 연약한 노인이 쓰러져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참견이라 여기며 지나쳐버립니다. 외롭고 슬프고 분노하는 이들의 무너진 마음에도 침묵합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저희의 무심함을 용서하시어, 나자로의 죽음을 보시고 눈물을 쏟으신 예수님의 연민이 나와 이웃의 삶 안에 흘러넘치게 하소서. 말 한마디, 눈길 한 번, 마음 한 자락, 사랑으로 건네는 선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천 명을 먹이신 측은지심의 기적을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마르코 6,34-42) ---「2장 관계의 치유와 회복 ‘무심함’」중에서 3. 행복한 나로 서다 - 행복 나로서 다시 서게 되는 것은 이웃과 함께하는 삶에서 이루어진다. 저자의 기도는 공동체 안에서 행복한 나로서 다시 서는 참된 행복의 길로 이어진다. 오롯한 나에 대한 인식,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나와 타인이 만나는 공동체 안에서 나로서 존재하는 사회적 자아로서 그것은 기도 안에서 사랑을 이룬 겸허한 자로서 태어남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정의 어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아뢰어야 했다. 가정에 닥친 질병, 상처와 불신 이 모든 것들을 정화 시키는 시간이 필요했다. 저자의 가정 역시 흙을 갈아엎는 시간을 겪어 나가야 했음을 고백한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지나 순교와도 같은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체험해 나가게 되었고 타인과 연대하는 존재로서의 나, 가정 안에서 행복한 나로서 존재하게 되었고, 이어서 이웃들을 위한 돌봄을 실천하는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라파엘 천사를 통해 매듭을 풀어 주신 하느님의 뜻을 묵상하며 토빗의 가족처럼 간절히 기도했다.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위로하고, 임종자를 정성껏 보살폈다. 고통 속에 갇혀 있던 내가 돌봄이 필요한 이웃과 연대하는 연대적 삶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살려고 매달린 하느님, 살려고 붙잡은 기도였다. 우리는 하느님과 기도를 사랑한 가족이 되었다. 카나 혼인 잔치의 기적,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그때를 겸허히 기다리기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3장 가정 안에서 행복한 나로 서다 저자 서문」중에서 가정 내에서의 나의 행복을 찾는 것은 곧 공동체 안에서 나의 행복이 기반이자 매듭을 풀어 나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무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온전한 나로서의 만남에서 시작한 나의 모습은 이제 타인과의 관계를 거친 후, 사회 안의 개인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느끼고 소명을 다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내가 된 것이다. 저희의 삶에도 역할과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가 그렇습니다. 사회와 신앙공동체의 소명이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책임은 더 소중합니다. 작은 일상이지만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밖에서는 남의 시선 의식하며 최선을 다하면서 집에서는 무책임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부모의 무책임이 자녀를 불안하게 하고, 부부의 무책임이 실망과 불목을 조장합니다. 이런 일상의 작은 매듭이 가족의 평화를 깨트립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가정 안에서 무책인하게 행동하는 매듭을 푸시어, 하느님의 질서 안에서 일상의 책임을 기쁘게 해내게 하소서. ---「3장 가정 안에서 행복한 나로 서다 '무책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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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한 복판에서 모든 행위를 멈추고 나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계와 치유와 회복의 길로, 행복한 나 자신을 찾아나가는 길로 걸어가는 소박하고 풍미있는 기도문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매듭을 경험한다. 사실은 그 매듭은 많은 것들이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에도 알지 못한다. 일상의 매듭을 바라보게 되며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기도해나가는 『일상의 소소한 매듭풀기』는 매듭이 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일상 속 자신과 주변에 대한 반성과 사랑을 겸허한 기도문으로 담아냈다. 저자의 매듭풀기는 지독한 병마 앞에 세상과 담을 쌓고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예수님의 살과 피, 성체성혈을 약이라 믿고 기도하며 나 자신을 보기 시작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는 곧 나의 고유성을 회복함으로, 하느님께서 빚어주신 본래의 미약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진정한 내 모습 찾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어서, 작가의 기도는 관계에 대한 인식과 반성으로 나아간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기도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과도한 자기 단죄와 인색한 자기 용서라는 잘못을 깨닫는 것이다. 저자에게 이 깨달음과 기도는 곧 부활의 길로 가는 것과 같이 다가온다. 끝으로, 저자의 기도 여정은 내가 속한 가정 그리고 공동체 속의 나에게로 돌아와 완성된다. 홀로 존립할 수 없는 개인, 그것은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며 행복하고, 이웃과 연대함으로써 행복하게 된다. 나, 타인, 그리고 다시 공동체 속에서의 나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치유와 회복과 행복으로 나아가는 저자의 아름답고 간절한 기도문은 어쩌면 일상 속에서 그 존재조차 몰랐던 매듭을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되고,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함께 반성하도록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