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발간사 -최영찬 연구소장
제1부. 방촌 황희의 삶과 학문 방촌 황희의 생애와 현실인식 -김경수 방촌 황희와 유교 -황의동 방촌 황희의 예인식과 현대사회 -한기범 방촌 황희의 ‘정승 리더십’ 연구 -세종의 인재쓰기에 초점을 맞추어 -박현모 ‘황희정승 납거미 유언’ 설화고 -황인덕 제2부. 옥동서원?태악서원 연구 옥동서원의 학맥과 학풍 -이해준 축옹 황효헌의 삶과 문학에 대한 조명 -이규필 태악서원의 역사와 그 의의 -이해준 율촌 박배의 생애와 학문 -곽호제 제3부. 방촌 황희의 후예들 지천 황정욱의 생애와 현실인식 -김경수 지천 황정욱 문학에 나타나는 강건 -이재숙 독석 황혁의 시대상황과 생애 -김문준 강한 황경원의 시세계: -세 편의 사(辭)와 기행시를 중심으로 -유영봉 부록1. 방촌황희 연보 부록2. 방촌황희 학술연구목록 |
방촌황희선생사상연구의 다른 상품
|
태악서원(台嶽書院)은 세종시 동면 명학리에 위치하며, 1856년(철종7) 창건되어 방촌 황희선생과 율촌(栗村) 박배(朴培)선생을 제향한 서원으로, 1871년(고종 8) 훼철되었다고 遺墟碑에 전해져 왔을 뿐이었다. 태악서원의 세종시 명학리는 방촌 황희의 5세손이자 대사헌을 지낸 黃事孝의 셋째 아들 황첩(黃堞)이 세거지로 삼아서 장수황씨 호안공파들의 연기지역 입향지가 되었는데, 연기군의 기호서사(岐湖書社)에 배향되었던 방촌선생을 태악서원에 배향하고, 이후 16세기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때, 淸州 東林山에 은거했던 율촌선생을 태악서원에 추배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담은 자료 『栗村實記』가 율촌선생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 새롭게 발굴되고, 오늘날 세종시 역사문화 유산의 학술적 자료로서 재조명 되어 그 의의가 크다.
-곽호제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은 방촌의 후손으로 조선 선조 때의 인물로 문장·시·서예에 능하여 관각삼걸(館閣三傑, 장사룡, 노수신, 황정욱)로 꼽히는 위상을 지녔던 학자 관료이다. 허균은 그의 시에 대해, ‘굳세고 힘차며 깊고 드넓다’라면서, 천년 이래 절창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경수 지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지향점은 經學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義理思想과 樂天知命이었다. 때문에 정치적인 고립, 붕당간의 정쟁과 모함 속에서도 굳건하게 지탱할 수 있었다. 지천의 한시(漢詩)에도 평소 그가 추구한 정신지향이 그대로 표출되어, 우뚝하고 웅장한 자연 경물의 무궁함 속에서 장대하고 강인함, 굳건함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재숙 강한(江漢) 황경원(黃景源)은 영조와 정조의 조정에서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인물이며, 對明義理를 固守한 文章家로서, ‘삼백 년 이래로 없었던 글’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당대의 여덟 문장가(吳瑗?李天輔?南有容?李德壽?趙最壽?趙龜命?林象元)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유영봉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