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001 백혈병 환자, 생과 사의 경계에 서다 중학생 태권도 선수가 되다 017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백혈병 027 오진이라고 끝까지 믿어 버리기로 했다 035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042 내가 가장 약할 때 나를 지켜준 사람들 051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 056 나를 살린 긍정의 힘 064 #002 뉴욕에서 또 다른 길을 찾다 뉴욕에서 사는 법을 배우다 073 행복을 가득 채운 맨해튼 브런치 080 태풍이 만나게 한 소중한 인연 086 어학연수로 인연을 맺다 095 맨해튼에서 존경받는 태권도 사범이 되다 101 브루클린 대학원생이 되어 진정한 나를 찾아 나가다 111 아르바이트로 주방 일을 시작하다 118 홈레스토랑 원테이블을 시작하다 125 #003 피렌체에서 진짜 삶을 만나다 나의 첫 이탈리아는 피아첸차와 사르데냐 섬이었다 135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낭만을 섬기다 142 카사노바의 반전에 놀라다 150 곤돌라의 도시 베네치아 155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 161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잔 168 요리는 삶이고, 삶이 곧 요리다 174 자유여행 트립아이에 이탈리아를 담다 181 쉴 때에도 낭만을 담는 이탈리아 사람들 190 #004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낭만을 품다 왜 그들은 유독 행복해 보일까? 199 미미옥, 서울 쌀국수를 개발하다 204 캠핑에서 인생의 결을 느끼다 211 건강한 삶이 주는 의미 219 실질적인 부의 가치를 아는 진짜 부자가 되다 224 결혼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230 돈 많이 버는 아들보다 책 쓰는 아들이 되고 싶다 235 이탈리에서 행복한 인생을 배웠다 240 |
|
학창 시절부터 10년 넘게 해온 태권도를 접고 요리에 빠져 셰프의 주방에 들어갔을 때, 노동의 강도는 운동과 비슷했지만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투어가이드 스타트업을 할 때도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너무 행복하게 이탈리아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 살았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살고 있다. 지금도 서울 쌀국수‘미미옥’주방에서 10시간씩 서서 육수를 뽑아내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p.12
원장님은 초지일관 하나만 말씀 하셨다. 밥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물로도 못 고친다. 100세 시대는 이미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신약의 개발로 가능해졌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로써 우리가 건강하게 삶의 영위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아니요”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약은 더 이상 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허봉수 원장님은 약물 오남용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 병원에 가서 약을 먹기 전에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 p.45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란 말이 백 번 맞다. 아무리 오진이었다고 하더라도 1차 항암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몸속에 들어온 독소를 다 빼내야 했다. 절에 있으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사실 일주일 쓰다가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쓰면서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려 더 이상 쓰기 힘들었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의 진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나이 스무 살에 절에 들어와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평생 내려 마셔야 할 것 같은 녹즙을 매일 내려 마시며 초가집에 갇혀 일기를 쓰는 내 모습이 눈물 한 방울로 표현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끝까지 철저하게 식단을 지키면서 새벽 운동과 기도를 병행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매일 아침마다 산속을 뛰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각을 맑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투병 생활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하루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살 길은 점점 좁아진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마주하자 나의 생존 본능은 마치 초능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살아야만 했다. p.48 내 몸이 아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강한 의지와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최면이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픈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면 최대한 환자의 입장에서 먼저 배려해 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이 시기에는 환자를 아무리 배려해도 부족하지 않을 테니 보호자의 무한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부디 지금 백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p.68 뉴욕에 와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겸손해졌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끼와 능력이 넘처 나는 인재들도 많았다. 그저 새로운 환경에 새롭게 태어나서 적응해 나가는 느낌이라 내가 아팠던 과거를 까마득하게 잊는데 아주 좋았다. 뉴욕은 나에게는 아픈 과거를 무덤덤하게 해 주었고 앞으로의 새로운 인생을 스케치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p.75 언어를 목표를 하고 가면 생각처럼 생산성 있는 어학연수가 안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더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목표를 언어보다 그 나라와 친해지기 위해 문화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언어는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과 만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언어가 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그때가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p.98 우선 미국과 한국의 엘리트 체육에 대한 교육 체계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운동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가장 달랐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 운동부라고 하면 공부를 당연히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못 해서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오로지 운동만 시켜서 공부를 못 하게 되는 것이다. p.114 내가 이 책에서 자주 이야기하려는 것이 ‘취미론’이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3가지가 있다. 첫째,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둘째,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이다. 취미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의 라이프스타일 차이는 아주 클 것이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를 통해 인생을 즐길 줄 안다면 우리의 삶의 수준은 높아질 수 있다. 나의 진정한 취미는 ‘먹는 것’과 ‘요리하는 것’이다. 나는 뉴욕에 살면서 가장 좋다고 생각한 점은 맛있고 멋있는 가게들이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일에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돌아다녔다. 점심을 두 번 먹어도 괜찮았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가는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정독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뉴욕의 숨은 맛집들을 찾아내서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리스트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뿌듯함도 있었다. 이 정도면 먹는 것과 식도락은 내 취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80 셰프님과의 첫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동양인에게 흔치 않는 풍성한 턱수염과 눈빛이 압도적이었다. 그와 30분 정도 대화를 나눠 보니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면 뭐 하나라도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일하겠다고 나의 포부를 밝히자 나의 이런 태도가 좋은 인상으로 남았는지 다행히 다음날 바로 주방 막내로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p.121 역시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일을 배우다 보니 일을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가 넘도록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 몸이 힘들지만 오히려 힘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주방 지하에 혼자 내려가서 닭 날개 손질만 3시간, 포기 김치만 30킬로그램을 썰어 담기도 했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즐거운 숙제 같았다 p.123 집에서 자주 요리를 하게 되니 친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밥을 먹으러 집으로 가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흔쾌히 와서 얼마든지 먹으라고 했고, 밥이 없어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즐겼다. 일단 우리 집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좋았고, 밥을 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사람 사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집에서 밥을 제대로 해 먹지 않으니 내가 해 주는 집밥을 언제나 맛있게 먹었다. 미역국에 맛있는 김치만 있어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한다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p.126 내가 피렌체에 살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가 보았지만 나에게 가장 이탈리아다운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이탈리아와 친해지기 위해 방학 때 시간만 나면 잠깐이라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녔다. 이탈리아에 올 때마다 모든 도시가 저마다의 개성이 강해서 좋았지만 그중에서 피렌체가 주는 느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분위기는 많이 스며들어 있으면서, 도시 발전도 적당히 되어 있는 곳이다. 완전 도시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골 느낌도 아니었다. 게다가 치안까지 좋았다. 그래서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면 꼭 이곳에 와서 살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p.145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요리는 마치 그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안드레아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안드레아 어머니는 항상 맛있는 이탈리아 가정식을 차려주셨는데 종종 그 맛이 그리워진다. 그중에서도 샐러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싱싱한 채소 잎에 레몬을 조금 짜고 그 위에 소금으로 살짝 간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만든 백식초와 얼마 전에 농장에서 갓 짜온 올리브오일로 마무리한다. 재료는 단순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입 안에서 퍼지는 신선하고 풍부한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탈리아 요리의 기본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간단한 재료를 통해 입맛을 사로잡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p.179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의 첫 사업은 이탈리아 현지 투어 가이드 일이었다. 거창하게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쑥스럽지만 어쨌든 매출과 매입이 발생했던 엄연한 여행 비지니스였다. 이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사람 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계속 보다 보니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과 힘들어 하는 고충을 알게 된 것이었다. p.181 나는 이런 여행의 틈새를 잘 파악해서 젊은 감성으로 가이드 선발만 잘 한다면 괜찮은 투어 사업 아이템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동기부여는 아주 간단했다. 예를 들어 내가 이탈리아 여행을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가이드가 유머가 있고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설명해 준다면 여행의 완성도는 올라갈 것 같았다. p.185 나는 여행을 하면서 내 스스로 행복하다는 감정을 많이 느낀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일상 속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에서 현지 사람들의 표정과 작은 행동을 가장 유심히 살피고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계속 보다 보면 그들이 삶을 얼마나 즐기는지 보인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도 걸어 본다. 그리고 몇 마디를 나눠 보면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 느껴진다. p.201 캠핑은 나를 단순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좋다. 산이든 바다든 일단 가서 텐트를 치고 앉아 있으면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멍하니 해먹에 누워 있거나, 새소리를 듣거나 운이 좋으면 텐트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러고 몇 시간 동안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보면 도시에서 과부하 상태였던 몸과 마음을 털어 비워 낼 수 있다. 이때 비로소 휴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결코 내 인생을 제대로 즐기며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친 일상에서 무조건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