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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_ 최랑에게서 조선의 여성을 다시 본다
흐름도_ 최랑과 이생이 만나고 헤어지고 함께 읽는 사람들 01. 이생, 담장 너머로 최랑을 엿보다 02. 최랑, 이생에게 마음을 건네다 03. 소녀, 소년을 만나다 04. 소년, 소녀의 방에 들어가다 05. 봄·여름·가을·겨울, 시간은 맞물려 흐르고 06. 찢겨진 사랑,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다 07. 또 다시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08. 이생, 두문불출하고 사랑에 탐닉하다 09. 이승에서 저승까지 이어진 영원한 사랑 〈이생규장전〉 원문 / 독서토론을 위한 질문 / 덧붙이는 글_ 조선 여인들에 대한 오해 김시습과 그의 시대 연보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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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순: 나에겐 충격이야. 조선 시대 여성이 이 정도로 남녀 사이의 사귐을 주도하는 작품이 있었다는 게.
--- p.19 캐순: 아렌트의 말이 맞는다면, ‘먹을거리’와 관계된 일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 노예나 다름없겠네. 범식: 서양인들의 생각에 따른다면 그렇게 되겠네. 뭉술: 그러면 서양의 부자인 귀부인들은 뭐하고 살았지? 범식: 정치활동 같은 공적인 일은 허용이 안 되었고, 집안일은 노예나 하녀들이 하는 일이어야 했으니 말이야. 캐순: 아, 이제 입센이 지은 『인형의 집』이 이해된다. 왜 ‘노라’가 인형으로 있거나, 성적인 대상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이야. --- p.31 뭉술: “그대 의심치 말길. 어두워지면 만나리.” 최랑, 멋있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기의 선택을 믿고서 밀고 나가다니. 캐순: 그런데도 이생은 ‘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어. 얘는 왜 이렇게 담대하지 못하지? 범식: 그래도 최랑의 말을 따라 담장을 넘었잖아? 뭉술: 담을 넘었으면 넘은 태가 나야지. 아직도 담 틈으로 엿보는 것 같잖아? 캐순: 그래서 제목이 “이생규장전(이생이 담장 너머를 엿보다:”인가보다. --- p.48 범식: 현실적인 잣대를 중시하는 이생에 반해, 최랑은 자기 자신의 느낌과 감성을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캐릭터야.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아. .... 캐순: 이 소설의 작가인 김시습은 세상을 이생과 같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과 최랑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으로 나눠 본 것인가? --- p.58~59 우주(宇宙)의 ‘우’는 공간을 뜻하고, ‘주’는 시간을 뜻해요. ...『설문해자주』에 다음처럼 나오거든요. ‘위아래와 사방을 ’우‘라하고, 과거현재미래를 ’주‘라 한다“ --- p.76 범식: 두 그림에서 시간과 공간의 속성을 좀더 밝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공간이 광활함과 장대함을 느끼게 한다면, 시간은 유장함과 깊이를 느끼게 한다는 식으로 말이야. 캐순: 시간이 깊이를 느끼게 하는 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어서 그럴 거야. 범식: 견딤은 결국 개별적인 것이겠지? 그래서 시간의 상징으로 한 그루의 고목을 그렸을 것 같아. 이에 반해 공간은 전체적이야. 강물, 산, 하늘이 온통 하나가 되어 있으니까. --- p.77 캐순: 동감! 공간과 시간 즉 우주를 응축한 그림과 시가 최랑의 다락방에 걸려 있었다는 점이야. 최랑은 그런 정신과 기상 속에서 살았다는 거지. 그랬기에 최랑이 그처럼 당당하고 주체적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야. --- p.80 조선 전기에도 부자 노비가 있었어요. .. 성종 16년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백성들의 굶주림이 큰 문제로 떠올랐을 때, 진천에 사는 임복이라는 노비가 곡식을 2천 석이나 내놓은 일이 있을 정도로 부자 노비도 있었어요. --- p.94 범식: 그래서 조선에선 꼬맹이 때부터 남편과 아내는 서로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쳤어. 꼬맹이들이 읽었던 『사자소학』에 ‘부부는 구별이 있으니,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여라’라는 글귀가 있거든. ‘서로 손님처럼 대하는 것’보다 더 상대편을 존중하는 인간관계가 있을까? 캐순: ‘부부유별’의 핵심이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여라”였구나! 여기에 ‘서로 사랑하라’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p.124 “이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인격의 자연스러움에 따랐기에 가능했던 일인지, 인간의 감성으로는 차마 견딜 수 없는 일이었지요” --- p.134 범식: “모든 것이 한바탕 꿈 같았다”는 생각 말이야.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생각해. 지금껏 있는지도조차 몰랐던 문을 발견하고, 그 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라는 거지. --- p.145 캐순: 공자님은 배움, 익힘, 기쁨 이 세 낱말에 공부의 핵심이 들어 있다고 본 거네. 아내와 남편이 한자리에 앉아 시를 지어 주고받는 것 속엔 틀림없이 배움, 익힘, 기쁨이 다 들어 있어. 그러니 이거야말로 공부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 p.154 범식: 수양대군의 구테타를 보고서 과거시험을 작파하고 떠돌이로 살며, 새로운 진실에 눈을 떴던 김시습의 눈뜸은 이생의 눈뜸이기도 하다는 거지. --- p.158 야옹샘: ... 칸트는 신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여 ‘요청으로서의 신’이라고 했죠. 범식: ... ‘사람이 신을 필요로 하니까, 신은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 그거 재미있네요. 야옹샘: 그 점 윤리학에서 아주 중요한 거니까요, --- p.166 야옹샘: ... 김시습은 이 세상을 제대로 살지 않은 사람은 죽음 이후에 자신을 씻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여겼다는 거예요. ... 범식: 귀신과 함께 살겠다는 결심은 쉬운 게 아니야. 크나큰 선입견에서 벗어났을 때나 가능하지. 그런 점에서 이생은 저승이 아닌 이생에서 자신을 깨끗이 했다고 할 수 있겠다. --- p.168 캐순: 첫 번째가 개인과 가족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였다면, 두 번째는 나라와 나라,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발생했지. 이런 때 개인과 가족의 힘 정도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밝혀졌고. --- p.171 밤식: ... 최랑의 환영이 왔을 때, 사회적인 체면치레 같은 건 다 팽개치고 오직 아내인 그녀와의 사귐에만 충실했으니까. 캐순: 사귐? 그 말이 정곡을 찔렀다는 생각이다. 그 자리에서부터 ‘건강한 개인’이 시작될 거라고 나는 생각해. --- p.172 “이생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온갖 연기의 삶 속을 헤매던 자가 집착을 놓아버린 깨달음의 상태, 그것을 죽음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 p.180 캐순: 단테는 그 유명한 『신곡』에서, 자신을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까지 경험하게 한 게 베아트리체였다고 말했지.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그랬던 것처럼, 최랑은 이생의 연인이자 스승이었어. 범식: 서양인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최랑이 있었어! --- p.182 “조선의 여인들은 남성들이 금 그어 놓은 선 안에서만 머물려 했던 것은 아니다. 한계적이지만, ‘가치’라는 측면에서 남성의 영역에 침투해 들어갔다. 비록 국정 운영까진 진출하지 못했지만, 남성들이 최고의 가치로 높이 받든 ‘성인과 군자’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조선의 여인은 분명히 했다. ---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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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읽는 고전] 여섯 번째 책은 최초의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에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을 야옹샘과 세 친구가 함께 읽는다. 열여섯 살 최랑(최씨 낭자)과 열여덟 살 이생(이씨 선비)의 사랑 이야기이다. 책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 집단과 집단의 충돌, 그리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벽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당당히 자기 삶을 펼친 주체적인 여성, 최랑에 주목하였다. 특히 김시습이 형상화 했던 최랑이 소설 속 인물에 머물지 않고, 임윤지당, 강정일당 등 성인과 군자로 추앙받았던 조선 시대 여인들의 모습이었음을 살펴본다.
‘최랑’의 주체적인 삶 ... 단테 『신곡』의 ‘베아트리체’처럼 김시습은 소설 첫 대목에, 이생이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어느 날 담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고 적는다. 이생이 최랑이 사는 별당을 엿본 것으로 제목 [이생규장전(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의 풀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은 최랑의 시에서 ‘길 가는 저 도련님 뉘 집 도련님인가? … 구슬 드리운 발 걷어차고 담장 넘어갈거나.’라며 담장 안을 엿보는 이생보다 ‘담장 밖으로 뛰어넘어 가겠다’는 최랑의 적극성이 돋보인다. 책은 이런 최랑의 주체성, 적극성에 초점을 두고 해석한다. 사랑도 최랑이 이생을 리드한다. ‘의심치 말길, 어두워지면 만나리’(46쪽), ‘꾸지람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52쪽), ‘함께 정분을 맺도록 합시다’(62쪽) 등 최랑은 직진이다. 반면 이생은 ‘좋은 인연인가 안 좋은 인연인가’(42쪽)라며 망설이고, ‘이 봄소식 새 나가면’(49쪽)이라고 눈치 보고, ‘잘못 들어온 무릉도원’(55쪽), ‘앵무새 알게 하지 마오’(56쪽)라고 자책한다. 최랑과 이생이 나누는 시와 상황 묘사를 꼼꼼하게 살핀 세 친구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에 이르는 두 인물의 태도를 인생관까지 확장하여 해석해 볼 수 있다. 최랑과 이생은 세 번 헤어진다. 이생이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언질도 없이 시골로 쫒겨 갔다. 반면, 최랑은 식음을 전폐하고 부모에 호소하여 이생과의 인연을 허락받고 마침내 혼인에 이른다. 책은 최랑이 부모로 표현되는 전통 사회의 관념을 극복하는 데 주도적이였다고 해석한다. 두 번째 헤어짐은 최랑이 겁탈하려는 홍건적의 잔당에 맞서다 죽임을 당한다. 개인과 한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이자 재난이다. 최랑은 후일 ‘하늘로부터 받은 인격의 자연스러움을 따랐기에 가능했’(134쪽)다고 이생에게 전한다. 책은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의미인 ‘정조’ 때문이란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 최랑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죽음에 맞섰다고 해석한다. 귀신이 되어서도 최랑은 적극적이다. 대화 중 뭉술이는 ‘단지 시체를 수습해 묻어달라는 게 아니라 같이 살자는 거잖아?’(139쪽)라고 죽은 최랑의 적극성을 인정한다. 세 번째는 김시습의 생사관이 펼쳐놓은 저승의 법도다. 최랑의 영혼은 흩어진다. 최랑은 이생의 연인이자 스승으로 이생을 완성한 후에 흩어졌다. 지은이는 단테의 『신곡』에서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까지 경험했던 것처럼, 최랑을 이생의 베아트리체, 나아가 한국 문학의 베아트리체로 높이 평가한다. 주체적인 삶을 산, 여인들 ... 조선의 여자 선비들 책은 [조선 여인들에 대한 오해]라는 덧붙이는 글에서, 조선 시대 여성들이 국정 운영의 주체로서 나서지 못한 한계는 있었지만, ‘가치’라는 측면에서 ‘성인과 군자’라는 남성의 영역에 침투했다고 말한다.(216쪽) 『윤지당유고』를 지은 임윤지당이 ‘시퍼렇게 날 선 칼’에 새긴 호연지기(218쪽)를 지녔고, 조선 성리학의 주요한 논쟁에 자신의 학설로 도전했으며, 송능한의 부인 한씨를 비롯하여 당대 여성 인물을 발굴하는 전기를 남기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또 ‘여성도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강정일당의 기록 『정일당유고』에서 예학에 대한 주장, 진리 앞에서 남녀 구별이 없다며 남편을 매섭게 나무라며,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마음공부의 기록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문으로 경지를 이룬 조선 여인들을 들고 있다. 삼종지도, 부부유별 등 성차별적 해석이 풍문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조선 여인이 쓴 다양한 기록들을 접해 보고 새롭게 알아보기를 권한다. 김시습의 생사관을 읽는다 [이생규장전]은 죽음 이후를 무대로 한다. 책은 ‘저승이 존재할까?’라고 질문한다. 공자는 ‘삶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알 수 있는가’라고 불가지론을 펼치고, 칸트는 이 세상에서 실현되지 않은 정의가 저 세상에서는 실현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며, ‘요청으로서의 신’(165쪽)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지은이 이양호는, 김시습의 생사관은 죽음 이후에 죄를 씻을 행위가 필요하지만, 결국은 흩어지는 것이라고 전한다. 최랑이 죽어서 귀신으로 이생과 살게 되는 이유를 김시습의 생사관(生死觀)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앗, 한시(漢詩)가 이렇게 멋지구나 원본 한문소설에는 한시(漢詩)가 많다. 특히 최랑의 다락방에 걸린 두 폭의 그림에 딸린 한시와 사계절의 심상이 잘 담긴 16편 한시가 절정이다. ‘안개 낀 강 위에 첩첩이 쌓인 산 봉우리’라는 뜻의 [연강첩장도]와 ‘그윽하니 텅 빈 묵은 나무’란 뜻의 [유황고목도]를 공간과 시간으로 해석해 가는 세 친구의 대화가 나온다. 전통적인 동양화를 감상하고 그에 어우러진 한시의 맛을 음미하며, 소설적으로 최랑이 갖춘 주체성의 근원으로 확장하며 해석한다. 동양화와 한시 감상에 대한 본보기로 추천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