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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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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온 전보를 받았다. ‘모친 사망. 장례는 내일 치를 예정임. 삼가 조의를 표함.’ 이것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어제였나 보다. --- p.9
그다음은 모든 일이 순식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생각나는 일은, 마을 입구에서 담당 간호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곱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가 기묘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너무 천천히 가면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빨리 가면 땀이 나서 성당에 들어갔을 때 오한이 날 수 있죠.” 간호사의 말이 옳았다. 해결책은 없었다. --- p.25 멀리 건물 입구에서 살라마노 영감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그는 허둥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는 개와 함께 있지 않았다. 노인은 사방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빙빙 돌고 어두운 복도를 들여다보려 애쓰면서 두서없이 중얼거리더니 빨갛게 충혈된 작은 눈으로 다시 거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레몽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영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혼잣말로 “더러운 놈, 냄새나는 놈”이라고 중얼거리는 걸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초조하게 왔다 갔다 했다. 개가 어디에 있느냐고 내가 묻자 노인은 나한테 느닷없이, 개가 도망가버렸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p.50 그러자 그는 삶의 변화에 흥미가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도 삶을 바꿀 수는 없고, 어디에 살든 결국은 그게 그거이며, 나는 이곳에서 사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장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항상 핵심에서 비껴나는 대답만 하고 야망도 없으며 사업을 할 때 그런 성격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일하러 돌아왔다. 나는 사장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삶에 변화를 주어야 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나도 학생일 때는 야망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학업을 그만두어야만 했을 때 그런 것들이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 pp.54~55 그리고 그 순간 아랍인은 일어나지 않은 채 칼을 꺼내 햇빛 속에서 나에게 겨누었다. 금속에 반사된 빛이 마치 긴 칼날처럼 내 이마를 베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혀 있었던 땀이 한꺼번에 흘러내리며 눈꺼풀에 미지근하고 두터운 막을 씌웠다.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눈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이마를 때리는 심벌즈만 한 햇살과 마치 창날처럼 내 앞을 날아다니는 칼의 눈부신 반사광뿐이었다. 모든 것을 불사를 듯한 빛의 칼날이 내 속눈썹을 물어뜯고 고통스럽게 눈을 쑤셔댔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이 비틀거렸다. 바다는 두텁고 뜨거운 숨결을 실어왔다.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불비를 쏟아 내리는 것 같았다. 내 온몸은 바짝 긴장했고 권총을 손에 꽉 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손잡이의 매끄러운 배를 느꼈다. 건조하면서도 귀가 멍해지는 폭발음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 pp.74~75 나는 나도 다른 수감자들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를 그렇게 대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을 감옥에 가두는 거죠” 하고 간수장이 말했다. “그것 때문이라니, 무슨 뜻이죠?” “자유 말이에요, 그게 이유죠. 당신에게서 자유를 빼앗은 거예요.”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군요. 그것 말고 벌이랄 게 뭐가 또 있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렇죠, 당신은 이해하는군요. 다른 수감자들은 이해를 못 하거든요. 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죠.” 그렇게 말하고 간수장은 돌아갔다. --- pp.95~96 그때 검사는 내 쪽으로 돌아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비난을 퍼부었는데, 사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을 별로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검사가 그토록 가차 없이 몰아붙이는 것에 놀랐다. 나는 그에게 다정하게, 거의 애정을 담아서 나는 그 어떤 일도 진심으로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오늘 혹은 내일, 앞으로 일어날 일만을 생각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아무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었다. 내게는 다정하게 대하거나 선의를 보일 권리조차 없었다. --- p.122 다른 사람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신이 말하는 신이 결정했거나, 살아 있는 사람들이 결정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운명이 결정했거나, 내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내가 이런 운명을 맞이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처럼 ‘내 형제여’라고 지껄여대는 수많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도 이런 운명에 처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는가? 모든 사람은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 세상엔 특권을 가진 사람밖에 없다. --- p.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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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의 항변
알제에서 선박 회사 사원으로 일하는 청년 뫼르소는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숨졌다는 전보를 받고 무덤덤하게 이틀간의 휴가를 낸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졸음과 더위, 피곤을 느낄 뿐, 눈물 한번 흘리지 않는다. 양로원의 직원과 인부들은 그를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뫼르소는 별 탈 없이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이튿날 해수욕을 갔다가 우연히 옛 직장 동료 마리를 만나 함께 코미디 영화를 보고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하는 등 자신의 본능과 욕망이 이끄는 대로 무심하게, 어찌 보면 순진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뫼르소는 이웃 레몽의 치정 사건에 휘말려 한 아랍인을 그저 태양 때문에 죽이게 된다. 마침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고,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지극히 태연했고 그 직후 연애를 시작했다는 패륜적인 증언이 나오면서 운명의 수레바퀴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죽을지언정 거짓 고백을 거부한‘부조리한 인간’뫼르소 1942년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문단에서 ‘종전 후 최대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방인》은, 모든 것에 무관심한 삶을 살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으면서 삶의 의미를 깨달은 청년 뫼르소의 이야기를 다룬다. 카뮈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며 부조리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소설은 제1부와 제2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주인공의 행동과 주변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제2부에서부터 주인공의 내면 의식이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주인공 뫼르소는 첫 등장 때부터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는 어머니의 나이는 물론이고 어머니가 어제 죽었는지 혹은 오늘 죽었는지도 모른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다음 날부터 연애를 시작하고 나중에는 ‘심벌즈만 한 햇살’과 ‘창날처럼 내 앞을 날아다니는 칼의 눈부신 반사광’ 때문에 별 원한도 없는 아랍인을 살해하고 만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종일관 담담하다. 이른바 정상인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재판이 시작되고 뫼르소가 자신의 인생을 고찰하는 제2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그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말하지 않고 순간의 욕망에 충실한, 어떻게 보면 매우 순수한 인간이다. 사실, 아무리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그 생각만 할 수는 없다. 적어도 뫼르소는 그러했고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를 보인 것이다. 그 결과 뫼르소는 사회로부터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대중과 자신의 간극을 깨달으며 자신의 삶을 부조리했다고 정의한다. 이 ‘부조리’야말로 《이방인》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카뮈는 세상이 이성(사법제도)이나 전통적인 가치관(종교) 따위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비루먹은 개가 평생 같이 산 아내보다 소중한 존재일 수도 있으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그리고 그 부조리함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도 부조리인 것이다. 뫼르소로 대표되는 부조리한 인간은, 이 부조리를 응시하고 주어진 세상에 반항하면서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긍정한다. 그런 자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경험을 동등하게 여기므로, 도덕과 법률을 중시하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세상의 규제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또한 타인의 인정을 구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뫼르소는 ‘반항하는 인간’이자 이 사회와 외따로 떨어져 있는 ‘이방인’이며 작가가 1955년에 스스로 밝힌 대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이기도 한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은 부조리와 실존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속도감 있고 감각적인 문체를 이용해 탁월하게 그려낸 명작이다.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거짓을 뿌리치고 삶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