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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노벨, 카툰 여행 검은 구두 도깨비 시장 숨 이코노미 농(Non) 비즈니스 마루 체크아웃 수저 오름 3시 48분 이목 오피스텔 라벨 코튼 뫼비우스 서플리먼트 스크립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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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눈이 집중된 곳엔 검정색의 긴 코트를 입고 매끈하게 닦인 구두를 신은 중후한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많은 인파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오래되거나 몇 번씩 쓰다 남은 물건들,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물건들을 주말에만 반짝 판매하는 도깨비 시장에 저런 남자가 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 p.29 준호는 특별하게 좋아하는 요소가 없었다. 지나가는 말로 목선이 예쁘다고 했던 것을 들은 이후 큐빅이 여러 개 달려있는 화려한 귀걸이를 몇 개 샀던 적이 있을 뿐이다. "화려한 귀걸이를 사서 가끔 만날 때 하고 가." --- p.41 하루에 할당된 임무를 끝내고 팀원들과 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방콕에서 온 나몬은 산맥들이 신기하다고 했다. "태국은 치앙마이같이 위쪽 지방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산을 볼 수가 없어요. 방콕에서만 살았던 저는 우주에 나와서야 처음으로 산을 만난 거예요." --- p.75 신#9 D, 방 안 정남(75세, 남)은 생각할 거리에 대해 고민했다. 세 평 남짓한 방 안에 누워있으면서 어떤 것을 생각할지 계속 떠올렸다. 생각할 거리가 없으면 문득 가슴이 답답해올 때 해결할 수가 없었다. 저번 주에는 꽃문양이 그려진 천장에 대해 생각했고, 그 전 주엔 경로당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고 그 전에는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손자들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은 일정하게 찾아오고 흘러갔지만 그 속에 부유하는 섬이 되는 기분을 정남은 매일 느꼈다. 때론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가 자신에게만 많은 시간이 주어진 건 아닌 지 의심할 때도 있었다. -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고 베개 옆에 있는 리모콘을 들어 빨간 버튼을 누르는. - 침대, 티비, 장롱이 전부인 방에 티비소리가 가득 채워지고. -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식탁 위에 있는 물컵을 쳐다보는. 정남 저 물은 누가 따랐던가? - 인서트 - 1부 신#20, #21, 앞방에 있던 아내가 나와 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식탁 위에 올려두는 모습, 살짝 열린 앞방을 힐끗 보고는 멈칫하다가 이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 p.187 신#19 D, 현관/ 한적한 거리 오랜만에 가방을 맸다. 가방 안에는 ‘임나연’이라고 이름이 적힌 약봉지들과 사과도 챙겨 넣었다. 보호사 선생님 없이 외출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주말이라 길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다독였다. 오빠가 신발을 신겨주고 현관문을 열어주니 따듯한 봄내음이 불어왔다. 활짝 핀 꽃들이 많진 않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 좋았다. 평소보다 보조기구를 잡는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 보조기구를 천천히 옮기며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 --- p.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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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떠오르는 단어를 세 개만 말해주세요.”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숫자인 3. 세 개의 단어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를 보며 저자는 ‘갑자기 질문을 받아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아서 세 개로 정했어요.’ 라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저희가 갑자기 어떤 질문을 받으면 이 물음을 왜 물어보는지 궁금하잖아요. 근데 정말 신기했던 건, 사람들에게 ‘세 개의 단어를 말해주세요.’ 라고 했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혹은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그 짧은 시간 자신에게 집중했을 때 나오는 단어만 툭하고 말이죠.” 그래서인지 소재로 사용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지하철, 돼지, 피로, 아침, 향수 등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들부터 동화책, 섹스어필, 회상, 물, 알람 등 조금은 독특한 단어들의 조합도 볼 수 있었다. 그 단어들을 종합해보니 요새 좋아하는 관심사는 무엇인지, 요즘 기분은 어떤지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떤 답변들을 뱉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주 짧은 순간, 자신에게서 튀어나온 단어들은 평소 생각하던 무의식에서도 나오고, 스쳐지나갔던 상황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얘기해준 단어들을 모아보면 세상을 살아가며 느꼈던 개개인의 흐름을 담고 있더라고요.” “ 책에는 꿈, 노인, 시선, 감정에 대한 17편의 소설과 그에 대한 만화, 그리고 뒤쪽에는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대본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제작자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라 생각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를.” - ‘ 인트로 ’ 중에서 세 개의 단어, 세 가지의 형식. 단편 소설, 칸 일러스트, 대본집까지. “이번 책은 장르를 구분짓기가 참 힘들죠?” 책을 살펴보고 있던 나에게 그녀가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총 세 가지의 장르가 오밀조밀하게 섞여있는 형식의 책은 처음 보는 터라 눈을 크게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부터, 그에 관련된 만화형식의 일러스트, 그리고 실제 대본집처럼 여기저기 페이지 마커가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독서를 위한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탐구하는 자세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형식을 한 권의 책에 모아서 출간한 이유가 있을까. “사람들이 이야기를 읽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전의 내용과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상상하며 완독 이상의 무언가가 펼쳐졌으면 했어요. 구체적인 시각 효과를 담당하는 일러스트와, 직접 배우가 되어 지문을 읽어볼 수 있는 대본집 형식이 그 상상을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고요.” 책은 1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 단어를 조합해 작성했기에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라기보다, 단어가 들어간 특정한 상황을 그려놓은 관찰집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로인해 다양한 상상이 가능했는데 저자의 말대로 일러스트는 조금 더 섬세한 상상을, 대본집은 실제 소리내어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독자의 다양한 몰입을 위해 만든 일러스트 그림들은 본문 내지에 할애한 것이 아니라, 아코디언북 형식으로 만들어져있어 팝업북같은 효과를 내고 있었다. 17편의 그림들을 직접 손으로 펼쳐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소장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따스한 에세이스트에서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엔터테이너로! 그리고 변함없는 가내 수공업 출판사까지. 지현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따스함을 간직한 에세이일까 기대했다. 하지만 도착한 메일의 장르 상단에 선명히 ‘단편 소설’이라는 글씨를 보고 내가 알던 작가가 맞는지 혼동이 될 정도로 새롭게 느껴졌다. 그녀를 만나 책을 처음으로 읽어 보았을 때 그녀를 떠올리며 익숙했던 감정들이 신비로운 물음표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에세이, 작품집과는 다른 스타일로, 우리가 몰랐던 그녀의 숨겨진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책은 다채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책 이상의 의미를 주기도 했는데, 평소 그녀의 책을 좋아하던 독자들이라면 새로운 시도가 아주 반가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내수공업으로 유명한 아홉프레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이번 책에서도 아코디언 일러스트 종이를 직접 붙이고, 수록된 스티커와 클립, 책포장까지 직접 했다고 하니 다채로운 메시지를 찾아보는 재미도 독자들에게 또 다른 선물이 될 것 같다. 그녀가 인트로에 남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기사를 마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