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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의 황혼에 서게 된다면 문득 가던 걸음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것이다. 더구나 하룻밤 사이 남편을 잃고 이제 자신의 불도 다 타서, 머지않아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면 작가로서는 더욱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힐 것이다.
남편이 이루고자한 보이지 않는 과학의 길, 허망하게 가버리는 단 한 번의 삶으론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 저자는 첫울음부터, 싹트고, 봉오리 맺고, 개화하고, 시들고, 낙화하는, 한 생명 전부를 펼쳐놓는 거대한 시도에 몰입한다. 눈물범벅이 되어 남편이 찾던 무엇인가를 꼭 찾도록 도와주고 싶고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온 남편을 위로하고 싶어 시작한 과제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 안타까운 남편을 그리며 50년 함께 한 생명이 그려가는 사색의 무늬와 고운 빛깔에 눈부셔하며 지나온 길을 조각조각 이어간다. 그리고 저자는 남편과 뗄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하고 자신이 일생을 일렁이는 물 그림자 유혹에 홀려 미친 듯이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렁일렁 보일 듯, 만져질 듯, 건져질 듯 했던 잡히지 않는 꿈의 유혹들, 그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일생을 통해 시로 적어두었던 것을 펼쳐놓는다.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떠나 하버드 박사이던 미국에서 남편과의 첫 만남부터, 촉망받던 이론 핵물리학 과학자로, 한국의 한 시대를 풍미한 [율산]의 탄생에 발 벗고 나서 미국에서 한 시대의 획을 그은 남편으로, 목장 생활을 즐기던 자연인으로, 그리고 병마와 싸우며 그림자의 유혹 같은 자연계와 물질 현상을 어떻게든 증명해보려는 물리학자로 마지막까지 남편의 삶과 고뇌를 담았다. 잘 자라준 믿음직한 네 딸들의 아버지로 농장 생활 등 남편의 헌신과 사랑이 시와 접목되어, 단지 한 인간의 역사가 아닌 미주 이민사이며, 미주 과학자의 역사이며, 드러나지 않은 한국 기업 [율산]의 미국 역사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동안 실제보다 몇 배 더 몰입 되어 커진 슬픔에 힘겨워하면서도 세상에 고마운 작별 인사를 하고, 저물어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어 조바심하며 이 세상 다녀갔다는 증표로 남겨보는 한 개인의 역사, 자신이 살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세워놓기 위해 마지막 본분까지 마침표를 찍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여든 셋을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을 단 한 권의 책에 담아보려는 무모한 도전이나 한편 한 밤의 꿈처럼 짧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저자, 늦둥이 대학생이 되어 고고학자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밤 근무 간호사로 일하며 신장 이식 등 생사를 넘나드는 남편의 병환을 10여년을 지키며 가장으로서의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차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늘어진 빈 시간을 백지 앞에 자세를 굳히고 “오! 잘 만났다.” 하는 심정으로 기억의 바다에서 낚시질을 한 저자는, 이젠 더 들락거릴 문도 없다는 것을 서글퍼하며 자신의 이름 석 자 안에 숨어있는 '나'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으로 한 인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한 여자의 일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하며, 한편 얼마나 단단한 지 알 수 있게 된다. 청천벽력 같은 남편과의 사별 후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선에 서서, 깊고 슬픈 밤 홀로 길을 찾으며 너무도 아까운 남편을 부르는 애절한 사부곡, 이 책은 평생을 따라붙었던 그림자만이라도 남겨두고 떠나고 싶은 한 인간이 자신 내면의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 묻고 또 묻는 허무에 대한 간절한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