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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제5장 함열 3부잣집과 준치 _ 014 익산 왕궁리의 백제 부엌 _ 020 미륵사지 항아리 _ 022 관음사 시주미 _ 024 호산춘 _ 027 고군산군도 어전(漁箭) _ 030 군산 꽁당보리 _ 033 군산 박대 _ 035 음식점 건물, 문화재가 되다 - 군산 빈해원과 조양식당 _ 037 군산 째보선창과 고창 동호 뱅어젓 _ 041 군산서 교편을 잡은 방신영과 《조선요리제법》 _ 045 석정 이정직과 진안 우렁 각시 _ 050 완주 농가 레스토랑 _ 057 이순신과 봉동 생강 _ 059 봉동생강 상인과 올공쇠 _ 062 한국 전통식품(민속주) 명인 1호 조영귀 씨 _ 065 병중에 완주 고산의 아들로부터 죽력과 빙어회를 받은 유진한 _ 072 어버이에게 기러기를 드린 장개님과 수박을 바친 박진 _ 079 봉동 뒤주 _ 089 진안 돈적소와 애저 _ 091 운장산 씨 없는 곶감 _ 093 진안 매사냥 _ 095 진안군과 소주 _ 097 어의 전순의 _ 101 진안 효자 이광범과 오성복 _ 103 제6장 천렵과 무주 어죽 _ 112 무주 도리뱅뱅이 _ 119 장수 장사명과 진주소씨 효자려의 잉어 _ 121 심포항과 망해사 _ 126 경주김씨 집안의 4백여 년 된 송순주 담그는 김복순 씨 _ 128 진묵대사와 고시레전 _ 137 김제 학성강당의 백조화춘 _ 143 김제 순채, 언제부터 사라졌나 _ 148 곰소 젓갈 _ 152 부안 양잠 _ 155 소나무 장작으로 아홉 번 굽는 죽염제조장 허재근 씨(효산스님) _ 158 부안현감 원근례 산 고래 못 잡아 파직하다 _ 167 허균과 부안의 방풍죽 _ 172 서울 누이에게 부안 생선과 게를 보낸 유형원 _ 180 강흔 부안현감, 꿩과 사슴을 안줏거리로 삼다 _ 186 차 유적지 원효방 과 선운사 등 차 생산지 _ 189 변산팔선주 _ 204 제7장 춘향전의 음식, 월매 밥상 _ 208 최명희의 ‘혼불’과 음식 _ 213 남원 유차 _ 220 남원 미꾸리 _ 223 남원 월매집과 깍두기 _ 225 고로쇠와 변강쇠 _ 228 실상사 항아리 _ 231 돼지고기를 먹지 않은 전주부윤 윤효손 _ 233 순창고추장과 만일사 비 _ 236 청국장 _ 239 순창 안시내 호랑이와 고사리 _ 241 순창 율란 _ 247 임실 쥐눈이콩 _ 249 심상봉 목사 _ 251 임실 치즈의 대부 지정환 신부 _ 255 한국치즈과학고 _ 259 임실 얼음창고 _ 261 소세양, 임실현감 이수완에게 은어를 선물받다 _ 264 회를 먹고 쑥국을 끓인 이문규 _ 274 《변강쇠전》에 나오는 임실 곶감 _ 282 병장 오익창, 병사들에게 ‘동과(冬瓜)’를 먹여 갈증 해소 _ 286 여강이씨 남편 김진화에게 두부장을 보내다 _ 295 제8장 《부풍향다보(扶風香茶譜)》의 진원지 고창 선운사 _ 300 ‘보리의 고장’ 고창 _ 303 고창 보은염축제 _ 305 고창 풍천장어 _ 308 고창 음식 속담 _ 315 고창과 부안의 칠산 앞바다 _ 319 고창현감 이원, 부안태수 김윤제, 소세양에게 새우젓과 생선을 선물하다 _ 323 강천수, 복달임의 풍류를 읊다 _ 329 세종, 윤회에게 과음하지 말라고 하다 _ 334 고창 바지락라면과 군산 짬봉라면 _ 337 고창 가죽잎나물과 남원 부각 _ 342 정읍 천원다원(茶園) _ 347 전봉준이 먹었다던 죽력고 _ 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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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귀하디 귀했던 시절에는 그 약간의 쌀조차 섞어 먹을 수 없었다. 쌀 한 톨 섞지 않고 보리로만 지은 밥을 우리는 ‘꽁보리밥’이라 했다. 여기서 ‘꽁’은 ‘오로지 그것으로만 되었다.’는 뜻을 가진 접두어다. 때문에 이 ‘꽁보리밥’을 지역에 따라 ‘강보리밥’, ‘깡보리밥’, ‘꽁당보리밥’ 등으로 불렀다.
군산 지역에서는 이를 ‘꽁당보리’라 불렀다. 한국전쟁 무렵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꽁당보리밥’은 서민들의 주식 아닌 주식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통일벼’가 처음 등장한다. 이로 인해 쌀 수확량이 급증하면서 ‘꽁당보리밥’도 그렇게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시나브로, 들판에 초록빛 물결이 넘실댄다. 화창한 봄날 저 멀리에서 바라본 보리밭은 새파란 잎사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상춘객들이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면서 싱그러운 추억을 남기는 모양이다.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온통 푸른빛으로 뒤덮여 있는 오늘에서는 겨우내 웅크렸던 보리가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고 어느새 한 뼘 넘게자라 가는 바람에 일렁인다. --- p.33 「군산 꽁당보리」 중에서 운장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 시대 정여립 사건과 관련이 있는 송익필의 자가 운장(雲長)이었던 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송익필에 관련된 전설은 독제봉(운장산 서봉)과 오성대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송익필은 정여립을 체포할 당시 진안 현감 민인백과 같은 서인 계열이었다. 《진안지》에 따르면 산이 높아 항상 구름이 덮여 있다는 의미에서 운장산(雲藏山)이라고 한다는 기록도 있다. 상전면과 정천면 고랭지의 청정 지역에서 생산하는 떫은맛이 있는 생감을 완숙되기 전에 따서 껍질을 얇게 벗겨 대 꼬챙이나 싸리 꼬챙이, 또는 실에 꿰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매달아 전통 제조 방법으로 건조시킨다. 건조된 곶감을 상자에 늘어놓고 밀폐된 상태로 두면 감이 완전히 건조되면서 표면에 포도당(글루코스)의 흰 가루가 생기는 바, 이를 꺼내 다시 한 번 건조시켜서 상자에 넣고 밀폐해 두면 곶감이 되며, 건시라고도 한다. 처마엔 어김없이 붉은 곶감이 달려있다. 햇살 한 줌 탐이 나서 하늘에 손뻗어 움쥐었다. 시나브로 손 안에 든 햇살에 맑은 가락이 흐른다. 오늘 햇살 한 줌, 바람 한 점이 하늘 담은 삶터에서 하늘 닮은 당신을 하늘거리게 만든다. --- p.94 「운장산 씨 없는 곶감」 중에서 예부터 산에서는 송이, 밭에서는 인삼, 물에서는 순채를 제1의 건강식으로 꼽았다. 순채는 무미, 무색, 투명한 우무질에 싸여 있는 비단 띠 같은 금대(金帶)라는 풀이다. 허균은 《도문대작》을 통해 ‘호남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고 해서(海西) 것이 그 다음이다’고 했다. ‘순채(蓴菜)’는 저수지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마구 채집해 지금은 찾아보기 드문 식물이 됐다.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水草)로, 줄기는 원뿔 모양이고 물에 잠겨 있으며 잎은 어긋나고 물 위에 떠 있다. 순채는 연못에서 자라는 수초이지만 옛날에는 잎과 싹을 먹기 위해 논에 재배하기도 했다. 김제는 500년 이상 순채의 명산지였다. --- p.148 「김제 순채, 언제부터 사라졌나」 중에서 퇴기 월매의 딸 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도령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그려낸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월매가 이도령을 위해 영계찜, 어전, 육전, 신선로 등이 오른 화려한 밥상을 차려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월매가 예비사위를 위해 정성껏 차려낸 밥상은 산해진미로 가득할 뿐 아니라, 신선로와 같은 궁중음식까지 올랐다. ‘이 밥상, 월매가 이몽룡에게 차려줬죠.’ 판소리는 우리 전통음식의 보고라 할 만큼 사설(노랫말) 속에 다양한 음식이 등장한다. 《춘향전》에는 국물 있는 탕만 해도 네 종류(외초리탕, 수란탕, 장국, 간장국) 나물은 무려 여섯 종류(청포채, 녹두채, 콩나물, 고사리나물, 미나리나물, 슉운채)가 나온다. 그런 음식들로 구성된 화려한 상차림이 ‘맛과 멋의 고장’ 전주에서 재연됐다. --- p.208 「춘향전의 음식, 월매 밥상」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