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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하는 일본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페이퍼로드 201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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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론 ‘중국화’라는 새로운 역사관
변해가는 일본, 바꾸어가는 역사인식
‘중국화’란 무엇인가
‘중국화’란 정말 무엇인가
이 책의 내용과 효과

제1장 끝나버린 역사_송나라와 고대일본
2011년, 중국에 닮아가는 세계
냉전과 역사의 종언 : 1989년의 세계
끝난 것 치고는 불행한 역사
근세에서 끝난 역사 : 나이토 고난의 중국론
송나라 중국류 : 경쟁사회 생존 기술
송나라 중국류 : 권력사회 통제 기술
송나라를 모방하지 못한 일본
최초의 사무라이? : 정설 겐페이전쟁
중국문명 대 일본문명 : 대립하는 5개의 쟁점

제2장 승리하지 못한 ‘중국화’ 세력_원·명·청나라와 중세일본
‘저 전쟁’ 속의 원구
제국 몽골리아 대 군국 일본 : 13세기의 글로벌 분쟁
‘보통의 왕권’을 목표로 : 정설 남북조
명나라는 중국판 에도시대?
세계를 바꾼 ‘은의 대행진’ : 16세기라는 분수령
청나라는 ‘중국화’ 사회의 궁극적 형태

제3장 우리들이 좋아하는 에도_전국시대가 만든 도쿠가와 일본(17세기)
백성은 사무라이를 고용했는가?
일본인은 중국인과는 다른 ‘근세’를 선택했다 : 나이토 고난의 일본론
자민당도 민주당도 전국 다이묘의 후손
전후 민주주의도 전국시대의 유산
일본식 통일권력의 행방 :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먹는 문제를 해결한 신분제 : 17세기의 에도
‘중국화’의 방파제? : 봉건제론
중일은 ‘섞지 마라 위험해’ : 부론 효과란 무엇인가

제4장 이런 근세는 싫어_자멸하는 도쿠가와 일본(18-19세기)
맬서스의 덫에서 빠져나가는 방법 : 18세기의 에도
차남 이하를 내팽개치는 나라?
무딘 칼로 할복을 : 한직 무사의 비애
매일이 백일 전투 : 근세 농촌의 고충
에도시대는 주체사상의 꿈을 보았는가 : 북한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중국화의 길은 선의에서…… : 정설 간세개혁
알 카에다화 하는 일본? : 19세기 에도

제5장 개국은 했지만_‘중국화’ 하는 메이지 일본
값싼reasonable 혁명? : 메이지유신
새로운 2단계 혁명론
천황이 중화의 황제가 되다 : 송나라화 하는 일본 1
군현이 할 수 있는 것은 군현에게 : 송나라화 하는 일본 2
‘왜 일본만이’라는 우문 : 역사인식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저 훌륭한 에도를 한 번 더? : 자유민권
늑대는 실을 뽑고 돼지는 죽어! : 식산흥업
중국화 대 재에도시대화 : 두 번째 분기점
애매한 일본의 수상 : 정설 메이지헌법
아름답지 못한 일본의 의원 : 정설 제국의회
부론으로서의 민본주의 : 다이쇼 포퓰리즘과 쇼와 민주주의
펑크록Punk Rock화 하는 일본? : 양명학 속의 아나키

제6장 우리의 에도는 푸르렀다_‘재에도화’ 하는 쇼와 일본
반세기 후의 ‘아버지 죽이기’
떠오르지 못하는 태양 : 조합은 봉기이다
새로운 촌락ムラ과 집안イエ : 공업화된 봉건제
에도시대화 하는 세계? : 총력전, 사회주의, 케인스 정책
‘아름다운 에도로’ : 정설 쇼와 파시즘
부론으로서의 군국주의 : 40년 체제와 ‘성공한 사회주의’
‘쇼와유신’의 역설 : 교과서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제7장 근세의 충돌_중국에 패한 제국 일본
에도 계곡의 나우시카?
돌아온 조선 출병 : 식민지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쇄국 외교
장기로 잘못 알고 바둑을 두다: 중일전쟁 1
중국에 패한 오랑캐? : 중일전쟁 2
중국화의 꿈이여 다시? : 정설 ‘대동아전쟁’
그들이 남겨준 것 : 일본 애니메이션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제8장 너무 오래 지속된 에도시대_영광과 좌절의 전후 일본
‘부흥’의 두 가지 길
‘보통국가’의 좌절 : 60년 전의 ‘정권 교체’
부론으로서의 전후 민주주의 : 55년 체제와 평화헌법
냉전은 긴 평화인가? : 핵보유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봉건유제로서의 중선거구제 : 다나카 가쿠에이
Japan as only one?
중국화 하는 세계 : 1973년의 전조
중국화 한 세계 : 1979년 혁명
모듈module화 한 세계 : 한자, 코란 그리고 한류
일본만이 에도시대 : 버블 경제

제9장 ‘긴 에도시대’의 종언_혼란과 방황의 헤이세이 일본
돌아온 메이지유신 : 정계 재편
군현화 하는 일본 : 정치개혁
중국화 하는 제왕학 : 정설 고이즈미 왕조
유교화 하는 일본 외교 : 야스쿠니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막다른 골목의 ‘긴 에도시대’ : 정설 격차사회
‘두 번째는 비참한 희극으로……’

제10장 이제야말로 ‘중국화’ 하는 일본_미래의 시나리오
‘중국화’ 위협론?
인권은 봉건시대의 선물이다
중국화 하는 민주주의
중국화 하는 지방자치
또 하나의 ‘예속으로의 길’? : 기초소득보장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중국화의 3단계론 : 일본의 미래 예상도 1
북한화 하는 일본? : 일본의 미래 예상도 2
인구 개국이라는 선택 사항 : 외국인 참정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미래가 있는 중국화를 목표로 : 헌법 개정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결론 탈post ‘3·11’의 역사관으로
바뀌지 않은 과제와 변화해가는 미래
참고문헌
언급한 영상작품 일람표
‘중국화 하는 일본’ 관련 연표

한국어판에 붙이는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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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요나하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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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Yonaha,よなは じゅん,與那覇 潤

1979년 생이며 2002년 도쿄대학 교양학부 초역(超域)문화과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지역 문화연구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아이치현립대학 일본문화학부 역사문화학과 준교수로 재직하며 일본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동아시아로 열린 시야 아래 역사학의 새로운 화법을 모색하1979년생, 역사학자(일본 근대사, 동시대사). 2007년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박사 과정 수료, 박사(학술). 그 해부터 2015년까지 지방공립대학 준교수로 교편을 잡은 뒤 질병 휴식을 거쳐서 2017년 사직. 이후에는 재야에서 활동
1979년 생이며 2002년 도쿄대학 교양학부 초역(超域)문화과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지역 문화연구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아이치현립대학 일본문화학부 역사문화학과 준교수로 재직하며 일본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동아시아로 열린 시야 아래 역사학의 새로운 화법을 모색하1979년생, 역사학자(일본 근대사, 동시대사). 2007년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박사 과정 수료, 박사(학술). 그 해부터 2015년까지 지방공립대학 준교수로 교편을 잡은 뒤 질병 휴식을 거쳐서 2017년 사직. 이후에는 재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강의록 『중국화하는 일본』(문춘문고, 원저 2011년), 『일본인은 왜 존재할까』(슈에이샤문고, 원저 2013년), 질병 휴직의 경위를 담은 『지성은 죽지 않는다』(문예춘추, 2018년) 등 화제서 다수. 2020년 『마음이 아프면 안 되나요?』(사이토 다마키와 공저, 신초신서)로 제19회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수상.
고 있다.
역자 : 최종길
1967년생이며 영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역사인류학 연구과를 졸업(학술학 박사)하고, 현재 동의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재임중이다. 전공은 일본 근현대 사회운동사ㆍ사회사상사ㆍ근대 일본의 관료 및 관료제이다. 역서로는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 『일본 부락의 역사』, 『전후 일본의 공산당사』, 『포스트 전후 사회』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10쪽 | 594g | 153*224*30mm
ISBN13
9788992920889

책 속으로

송이라는 왕조는 당나라까지의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도입한 글자 그대로 ‘획기적’인 왕조이며, 나아가 그 송나라에 도입된 사회 체계가 중국에서도 그리고 (일본 이외의) 전 세에서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일본이 당나라 시기까지는 중국에서 배웠지만 송나라 시기부터는 별로 배우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 왠지 모르게 당연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대사건입니다.
(……)
당나라까지는 중국을 의식적으로 모방하려고 한 일본이 웬일인지 이 송나라 이후 중국의 ‘근세’에 대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가마쿠라鎌倉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는 중세의 동란기에 계속 옥신각신한 끝에 ‘에도시대江戶時代’라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근세’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근대가 곧 ‘근세의 후반기’이기 때문에,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사회체계가 오늘날의 중국에 지속되고 있듯이 일본에서도 에도시대의 그것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이른바 기나긴 에도시대).
그런데 지금은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일본 독자적인 ‘근세’, 즉 에도시대의 존재방식이 종언에 이르렀고, 그 결과 일본사회가 마침내 송나라 이후의 ‘중국 근세’와 동일한 상태로 이행-‘중국화’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 제목(중국화 하는 일본)의 진짜 의미입니다.--- p.13 「서론 ‘중국화’라는 새로운 역사관」

송나라 이후 새로운 중국사회의 핵심이 신분의 자유화와 귀족에 대한 정리를 가능하게 한 과거제도에 있다면 거꾸로 ‘왜 고대 일본은 과거를 도입하지 않은 것일까’라라고 되물어보아야 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잘 몰랐기 때문에 현재의 직장에 취직할 즈음에 고대사를 전공하는 동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결과 겨우 대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송나라 성립 당시의 일본은 과거제를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미디어가 성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과거는 전 국민에게서 지원자를 모집하는 시험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능력이 높은 관료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의 희망자가 일상적으로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시험과목을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참고서의 대량 인쇄가 가능해야 하고, 또 그것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유통망도 필요합니다. 의욕과 재능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사전에 공부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 즉 지적·인적·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관료의 세습을 폐지하고 지금부터는 시험의 상위합격자를 채용합니다”라고 하더라도 ‘공부하지 않은 바보’가 ‘더 공부하지 않은 바보’를 누르고 상위에 합격할 뿐입니다. 그러면 국가는 파탄이 나고 맙니다. 과거의 전면적인 도입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풍부한 종이와 진보된 인쇄기술을 완비한 것은 당시에 출판 최선진국이었던 송나라 중국뿐이었습니다.--- pp.41-42 「1장 끝나버린 역사-송나라와 고대일본」

일본에서 전국시대로 불리는 16세기는 실은 전 세계적인 전국난세戰國亂世가 됩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왜구 마피아 외에 모피와 조선인삼의 교역로를 장악한 만주 마피아(이후의 청나라), 동남아시아의 은 유통로에 입각한 대만 마피아와 이슬람 마피아, 새로운 참가자인 남만南? 마피아(유럽인)가 움직였으며, 유럽에서는 이 비등하는 화폐욕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와 결부되어 예를 들면 면죄부 판매나 금욕주의에 대한 시비를 둘러싸고 기독교가 분열하여 가톨릭 대 프로테스탄트의 유혈 낭자한 종교전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대혼란을 어떻게 수습했는지가 각각의 지역 장래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계 속의 어떠한 지역이라도 1600년경에 만들어진 사회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해라”라고 모든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예외는 북미나 호주와 같은 이민국가 뿐입니다). 즉 일본이라면 에도시대, 중국에서는 명나라를 대신한 청나라, 유럽에서는 종교전쟁을 수습한 이른바 ‘베스트팔렌 체제’=근대주권국가 체제입니다.--- pp.66-67 「2장 승리하지 못한 ‘중국화’ 세력-원·명·청나라와 중세 일본」

‘재미도 할 일도 없는 세상을 재미있게’라는 유언으로 유명한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가 만든 기병대의 주력은 농가의 차남 이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보통 살아가는 재미도 없는, 오직 ‘전쟁이 희망’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돌적으로 분투하여 내전을 선동하고 마지막에는 막부군마저 격퇴시킵니다. 오늘날에도 피 끊는 젊은층의 과잉인구에게 적절한 돌파구(정치적인 위치나 경제적인 몫)가 주어지지 않을 경우 극우·극좌의 혁명이나 테러로 빠져버릴 경향이 있다는 점이 ‘청년층의 팽창Youth Bulge’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 입각하면 예를 들어 성전Jihad을 내세워 전면적으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종류의 이슬람 원리주의 사상은 먼저 테러행위를 실행한 뒤에 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이른바 테러의 ‘결과’이지 결코 ‘원인’이 아닙니다. 관군으로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산화한 기병대 사람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초혼사招魂社가 생겼는데 이것이 이후에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로 결실 맺습니다.--- pp.115-116 「4장 이런 근세는 싫어-자멸하는 도쿠가와 일본(18-19세기)」

일견 독재적인 전제정부보다도 재야의 민주화 세력들이 거의 항상 외교문제에 관해서는 강경파로(전문용어로 ‘對外硬’) ‘정의가 우리나라 편에 있는 이상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대로 타협하지 말라’는 형태로 정부의 ‘유약柔弱외교’를 비판하는 구조가 메이지 시기에 정착한 이후 ‘저 전쟁’까지 지속됩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야당활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던 상황하에서 ‘정부의 공식견해보다도 더 애국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형태로 정부비판을 행하는 것이 탄압을 피하기 위한 적절한 전략이었다는 사정도 있습니다(수년 전 중국의 ‘반일데모’ 역시 그러한 전형입니다).
나아가 더욱 파고 들어가면, 반드시 ‘독재정권이 민주화 세력을 압살하고 무모한 전쟁으로 돌진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 세력이 정책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함에 따라 이전 정권 담당자의 결과 중시의 균형적 사고가 민간 여론의 일방적인 동기 중시 강요 노선에 말려들어 승산이 없는 전쟁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측면이 일정 부분 존재합니다(의회제 민주주의는 펑크록 가수에게도 한 표의 권리를 주는 시스템이니까요). 이것은 ‘자유민권운동이나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훌륭하지만 번벌전제나 군부독재는 안 된다’고 하는 고등학교까지의 교과서와는 정반대의 시점입니다만, 애석하게도 일본근대사의 성과가 명확하게 밝혀온 사실입니다.--- p.153 「5장 개국은 했지만-‘중국화’ 하는 메이지 일본」

주자학을 전형으로 하는 근세중국에서 유래한 유교사상은 전 세계의 어디든 공통하는 진리는 단지 하나뿐이다(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의 가르침이다)라는 보편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보잘 것 없는 일본의 의회가 복수의 당파로 나뉘어 장황하게 논쟁하고 있는 모습은 의미가 없습니다. 세계에 비교할 바 없는 천황의 마음을 체현하는, 세계에 군림하는(중화 황제처럼) 천황의 발아래에 거국일치 체제가 만들어진다면, 이거야말로 너무 좋지 않은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하여 군국주의 시대가 대두합니다. 알기 쉽게 한마디로 한다면, 대학 수준의 전문 일본사에서는 군국주의를 ‘군부가 행하는 사회주의’라고 합니다. 아니, 슬로건만 봐도 사회주의적이지 않습니까. ‘사치는 적이다’라고 하니까요.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男는 이렇게 하여 총력전체제 하에서 1940년 전후에 정착한 국가주도의 재정운영과 기업통치의 존재형태를 ‘40년 체제’로 이름붙이고 그 특징은 집단마다 ‘담장으로 나누어진 사회주의’에 있었다고 합니다(『1940年?制』). 재향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농촌지역을 통괄하고, 도시지역의 노동자도 회사마다 공장마다의 산업보국회에 묶여 분할되고, 각각의 내부에서 운명공동체 의식을 강화하여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체제! 우리는 이것을 묘사하는 데 더 편리한 용어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에도시대에서 유래한 ‘봉건제’와 ‘근면혁명’입니다.
노구치 논의의 요점은 이 40년 체제는 전쟁동원에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부흥에서도 이른바 ‘호송선단 방식’(회사가 망하지 않게 국가가 돌봐주는 방식)이나 ‘일본적 경영’으로 계승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전후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로 불린 이유도 역시 에도시대에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겠죠.--- pp.175-176 「6장 우리의 에도는 푸르렀다-‘재에도화’ 하는 쇼와 일본」

전후 역사상 가장 중대한 의미를 가진 조문은 9조라기보다는 오히려 96조로 “헌법 개정은 중·참 양원에서 각각 2/3 이상의 의원이 찬성하지 않으면 발의할 수 없다라는 조문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9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1/3 의석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호헌을 지상명제로 하는 한 3당제가 무너지고 ‘1과 1/2 정당제’로 바뀌어도 사회당은 어떤 곤란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설픈 욕심을 버리고 정권(과반수)을 노리지 않게 된 만큼 헌법만 지킬 수 있다면 좋아, 라고 정해 버리면 만만세일지도 모릅니다(실제로 사회당은 1958년을 마지막으로 이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부터 과반수 미만의 후보밖에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동일한 것을 자민당 쪽에도 말할 수 있는데 개헌만 포기한다면 항상 과반수를 사회당이 양보해주는 것이니만큼 이처럼 편안한 여당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보수합동이 이루어진 1955년 이후에 호헌 이념을 사회당과 그 외의 야당이 차지하고, 정권의 실익을 자민당이 가지는 절묘한 분할 상태로서의 ‘55년 체제’가 성립합니다. 역시 미시마와 같은 낭만주의자에게는 기가 막힐 불순함이었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정말 잘 만들어졌습니다.
즉 전후 민주주의란 새로운 부론이었던 것입니다. 헌법 9조란 형태로 ‘중국화’한 이념이 남는 한편 마치 ‘무사가 부를 상인에게, 상인이 권위를 무사에게’ 양보한 에도시대의 부활인 것처럼 ‘정권 선택에서는 항상 자민당이 이기고, 헌법 논쟁에서는 항상 사회당이 이기는’ 지위의 일관성이 낮은 정계 구조가 고정화 됩니다.--- p.208 「8장 너무 오래 지속된 에도시대-영광과 좌절의 전후 일본」

고이즈미 정권은 ‘중국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고이즈미 개혁을 저지했다고 생각하지만 격차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베 내각을 계승한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자민당 정권도, 또 이를 대신한 민주당의 하토야마나 간 정권도 모두 개혁 노선을 명백하게 수정하여 격차 시정이나 생활보장을 강하게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격차의 진정한 원인이 ‘봉건제’의 종언이라는 일본 역사상의 거대한 분기점에 있다는 것을 간과한 점에서는 모두 똑같습니다. 아소 정권 하에서 선거대책의 핵심이었던 ‘정액급부금定額給付金’도, 민주당의 간판정책이었던 ‘자녀수당’도 모두 사실상 ‘세대’(집안)를 단위로 하여 지원한다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며, 더구나 그 ‘세대’에는 자녀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입니다(정액급부금은 자녀가 있으면 증액되며, 자녀수당은 말 그대로 아이가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에도시대 그대로라면 어느 쪽이든 좋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에도시대는 벌써 끝났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쪽도 거액의 재원을 투입하면서 효과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국민의 불평등감을 선동하는 결과로 끝난 것입니다.--- p.248 「9장 ‘긴 에도시대’의 종언-혼란과 방황의 헤이세이 일본」

블로그(인터넷)라는 중국적인 네트워크 사회에 적합한 수단으로 인기를 얻은 가고시마현 아쿠네阿久根시 다케하라 신이치竹原信一 시장의 사례는 시사적입니다. 철저하게 의회를 경시하고 인민재판처럼 블로그를 운영하며 의원을 ‘비인기 투표’에 내몰아 규탄투쟁을 합니다.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기다리지 않고 ‘이상한 법률은 무시해도 되잖아’라며 온라인에서 선거활동을 행합니다. 관례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공무원을 해고·강등시키며 노동조합을 몰아내고 사법 판단이 내려져도 따르지 않고 사법기관의 권한을 부정합니다. 장애인들의 생존권을 부정한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케하라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하더라도 서민의 편에 서서 기득권과 싸우는 개혁자라고 생각하고 지지해주는 주민의 태도입니다. 즉 일본에서 법의 지배나 인권이나 의회정치의 정착도는 고작 이런 정도일 뿐입니다. 중국사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요.
물론 다케하라 시장은 결국 지역에서도 비판이 거세지면서 물러났습니다만 그런 식의 정치를 더욱 교묘하게 연출하여 조금은 국민에게도 ‘몫’이 있는 것처럼 풀어내는 정치가가 나타났을 때 일본의 유권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요.--- pp.259-260 「10장 이제야말로 ‘중국화’ 하는 일본-미래의 시나리오」

이 나라의 사람들이 생활기반을 두어온 지역이란 공동체가 그대로 쓸려가 버리는 큰 쓰나미 경험, 나아가 정부나 기업의 공적 기구로는 손이 닿지 않는 대책 부족 속에서 어떤 의미에서 일본인은 처음으로 중국과 같은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생활지역이 그대로 전부 없어지는 홍수·한발·역병 등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고 큰 강이 많은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빈번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은 위기 때에는 ‘한곳에서 가족이 어깨를 맞대는’ 것이 아니라 ‘혈족의 연고를 찾아 제각기 다른 토지로 피하는’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공적인 정부는 사실상 국민의 생활에 대한 보호를 해주지 않으며 영속성 있는 기업 공동체도 빈약했기 때문에 다급해진 때는 기존의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기댈 수 있는 ‘유덕자有德者’ 네트워크에 희망을 의탁해왔습니다(또는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일본사회는 정말로 그러한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원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긴 에도시대’의 붕괴가 불행히도 대지진이라는 비참한 재해에 의해 가속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쓰나미에 모든 생산수단을 잃어버린 연안지역은 물론이고 원전사고로 방사능 오염(및 풍문 피해)이 확대되는 지역에서 더 이상 에도시대의 직분제와 같은 ‘공공사업이나 규제정책를 통한 고용유지에 의해 생활보장을 대체하는’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정말로 지금부터 ‘탈원전’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원전사업의 철수에 따른 지역경제의 정체, 나아가 전력비용의 증대에 따른 일본 전체의 산업 공동화가 가져올 고용의 감소도 시야에 넣어서 지금이야말로 ‘고용에 의존하지 않는 복지’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역이나 직장마다 결성되어 있던 유대를 잃어버려도 또한 우리들은 살아갈 수 있을까요. 혹은 중간집단이 없이 유민화한 국민과 생활의 고삐를 한손에 쥐고 있는 국가가 대치할 경우 여기에는 일본사에서 이전에 없던 전제권력이 나타나지는 않을까요.
위와 같은 문제를 탐구하는 힌트를 이러한 상황의 대선배라고도 할 수 있는 중국의 역사에서 찾아가면서 우리들은 모색을 계속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여기에는 안이한 희망은 없으며 그저 진부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반복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이 진보하고 있다는 사고방식은 단적으로 말해 잘못되었습니다. 아니, 진보한다면 ‘올바른 대답’이 자연스럽게 발견되고 무엇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상적인 삶이 실현된다는 설정 자체가 철저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 pp.278-289 「결론 탈(post) ‘3·11’의 역사관으로」

출판사 리뷰

일본은 ‘차이나 스탠더드’(중국화)를 거부하며
중국화 VS 에도시대화, 라는 ‘문명의 충돌’ 1천년사를 써왔다!

‘중국화’란 무엇인가?

저자 요나하 준은 ‘중국화’와 ‘에도시대화’라는 개념으로 동아시아 1천년 역사를 설명한다. 여기서 ‘중국화’와 ‘에도시대화’는 그저 수사학이 아니라 동아시아 1천년 역사를 일관해 들여다볼 수 있는 개념이다. 요나하 준은 먼저 ‘중국화’라는 말에 대해 오해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센카쿠제도를 시작으로 중국군의 침략이 시작되어 일본이 점령당한다’라든가, ‘화교계 먹튀자본Buy-Out Fund의 적대적 매수로 일본기업이 잠식당한다’라든가, ‘친중국적인 반일 교과서의 역사 서술에 일본의 아이들이 세뇌된다’라든가, ‘귀화나 외국인 참정권을 도구로 삼은 중국인들에게 일본이 점령당한다’라든가……. 이러한 내용을 연상했다면 아쉽게도 다른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로 돌아가라고 정중히 충고한다. ‘중국화’란 인민해방군이나 중국공산당과 무관하며, 지금 세계 모두가 두려워하는 21세기 중국의 부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중국화’란 오늘날 당면한 현실처럼 일본과 중국 사이의 힘의 역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본사회의 존재방식이 중국사회의 존재방식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송나라 때 본격화한 중앙집권과 자유시장경제
당나라가 ‘안록산의 난’과 같은 지방 군벌의 반란으로 쇠퇴하고, 이후 5대 10국 같은 국가 분열상태 속에서 멸망한 이후 중국대륙에서는 지속 가능한 집권체제의 설계를 지향했다. 그 결과 찾아낸 답이 송나라에서 시작되는 중국형 ‘근세(초기 근대)’ 혹은 ‘중화문명’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시스템은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당나라에서 송나라로 바뀔 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무엇보다 먼저 신분제의 철폐와 자유시장경제의 확립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과거(科擧)와 군현제(郡縣制)와 왕안석의 청묘법(靑苗法)이다. 과거와 관현제와 청묘법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둔 토호나 귀족, 군벌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중의 핵심은 바로 과거제. 종래의 기득권은 인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개인의 실력으로만 인재를 발탁하는 시스템이다. 저자는 어떤 면에서는 이 과거제가 현대의 선거보다 낫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외모와 선동으로 인기를 얻는 작금의 선거보다 뒤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군현제는 황제의 명을 받든 관리들이 직접 영토의 구석구석까지 파견을 나가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비로소 중앙집권이 시작되고, 국가의 통합성이 제고되었다. 청묘법은 화폐 장려 정책이다. 물납을 대신해 화폐가 경제생활 전반에 자리를 잡게 했다. 귀족과 사원을 중심으로 한 중세까지의 장원경제는 이로써 막을 내린다. 농민들이 공간적, 시간적 제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송나라는 천년 전에 이미 이동의 자유, 영업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가 활짝 보장된, 무한경쟁의 사회에 도달했다. 이러한 중국적 근세 사회의 핵심은 ‘기회의 평등’으로 결코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지 않는다.

중국화 VS 에도시대화, 기회의 평등 VS 결과의 평등
위와 같은 특징들, 즉 중국사회의 존재방식에 일본사회가 닮아가는 것이 바로 ‘중국화’이다. 그렇다면 ‘중국화’에 대비해서 이야기하는 일본적 근세 사회의 원리, 즉 ‘에도시대화’는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 중국화의 핵심이 기회의 평등이라면 에도시대화의 핵심은 결과의 평등이다. 일본에서는 결국 과거제가 자리를 잡지 못했으며, 고정된 신분제 속에서 새로운 인력이 충원되었다. 에도시대화의 특징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설명된다.
①권위와 권력의 분리: 역사상의 많은 정권에서 권위자=천황과 정치상의 권력 보유자(예를 들면, 쇼군將軍)는 별도의 인물이며 또한 현재의 정당이나 기업 등에서도 명목상의 최고위자는 대체로 위신상의 명분뿐으로, 실질적인 운영 실권은 조직 내의 복수의 유력자에게 나누어져 있다.
②정치와 도덕의 일체화: 정치란 그 복수의 유력자들 사이의 이권 분배라고 생각하며, 이권 조정 자체가 위정자의 주요한 임무가 되기 때문에 통치체제의 외부에까지 호소하는 고도의 정치이념이나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의 출현은 있을 수 없다.
③지위의 일관성의 저하: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이외의 자산(권력이나 부)을 획득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역으로 그러한 요구를 표명하는 것은 기피된다. 예를 들면, 지식인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전근대(유학자)에서 근현대(제국대학 교수, 이와나미 문화인)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낮은 편이며, 이것을 (본인들 이외)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다.
④농촌 모델 질서의 정태화: 전근대에는 농업의 세습을 통해 지탱하는 지역사회의 결속력이 극히 높았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규제완화나 자유경쟁에 의한 사회의 유동화를 ‘지방의 피폐疲弊’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⑤인간관계의 공동체화: 어떤 시점에서 동일한 ‘집안’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타 지역에 있는 생가나 친척(중국에서 말하는 혈족)에 대한 귀속의식보다 우선시된다. 가령 어떤 회사(예를 들면 토요타)의 ‘사원’이라는 의식이 다른 회사의 동업자(엔지니어, 디자이너, 세일즈맨……)와의 연결보다도 우선된다.

차이나 스탠더드는 글로벌스탠더드였다
저자는 한때 일본에서 회자되었던 유머를 가지고 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국가는 어디? 바로, 일본!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에 민감한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사회주의국가라는 것이다. 일본사의 고비마다 바로 이 ‘결과의 평등’(에도시대화)에 대해 ‘기회의 평등’(중국화)을 주창하는 세력이 있었고, 이 세력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심지어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문명사적 충돌’은 늘 ‘중국화’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이 책 『중국화 하는 일본』은 그 문명사적 충돌의 순간들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12세기, 다이라노 일가와 미나모토 일가의 대립과 항쟁을 ‘중국화’와 ‘반중국화’의 구도에서 파악하며 시작하는 일본사 강의는 최근의 오자와 이치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개혁, 그리고 오사카발 하시모토 유신 등에까지 이른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대동아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저자는 이 전쟁에 대해 일관되게 ‘저 전쟁’이라는, 한편 가치중립적이고 한편 조롱하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기도 하다)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아시아 진출 역사를 ‘에도시대화’의 수출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1천년 전에 발신되었던 글로벌 스탠더드(차이나 스탠더드=‘중국화’)의 요청. 저자는 이제 21세기의 일본이 어찌할 수 없이 그 글로벌 스탠더드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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