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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우리에게 한글은 무엇인가
1부 민권-한글과 더불어 성장한 민주주의 ‘알려야 할 의무’와 ‘알권리’를 말하다 표준어 정하기 말의 표준화, 소통의 민주화 표기법과 대중, 규범의 유통기한 * 영어 시대, 우리말로 말할 권리와 의무 2부 자주-한글로 지켜야 할 주체성의 한계 국어 순화의 이데올로기 생활 속 언어로 외래어 자리잡기 생활 속 언어로 고유어 자리잡기 한글 표기로 본 외래어 인식 한글 표기를 통해 본 한자와 한자 문화권 * 광화문 현판에 새겨진 정치역학 3부 평화-한글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모색 Corea 되찾기의 복고주의 독립운동으로서의 한글운동 한글인도주의와 한글제국주의 통일시대 남북 언어의 통일과 공존의 방식 다문화 시대, 소수자의 언어적 권리 * 한글소유권 책을 마치며│국어정책의 갈 길을 생각하며 지은이의 말 인물색인 참고문헌 찾아보기 |
崔炅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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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언의 말살을 의미할 수도 있는 표준어 정립이 곧 우리말의 발전일 수 있을까’라는 홍기문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는 근대적 가치관이 도전받는 현실에서, 언어의 표준화라는 근대적 논리의 유효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표준화된 한국어를 열망하며 단일한 말로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던 더 넓게는 국가주의에 매몰되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기도 하다. 한국어는 지역에 따라, 나이에 따라, 계층에 따라, 심지어는 성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 1부: 말의 표준화, 소통의 민주화」 중에서
이승만이, 형태주의 표기법이 역사적인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그는 20세기 초의 상황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해방 이후 정립된 한 국가의 표기법을 개혁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관습을 존중하고 대중들에게 편리한 표기법을 만들기 위해 개혁을 추진했겠지만, 이승만이 주도한 철자 개혁이 실패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국어의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승만이 파악하지 못한 대중의 국어의식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형태주의 표기법을 정착시킨 조선어학회의 활동 역사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1부: 표기법과 대중, 규범의 유통기한」 중에서 맞춤법의 원칙을 절대화하다 보면 사전 편찬자는 새로운 단어를 사전에 올릴 때마다 갈등하게 된다. 관습적으로 쓰이는 표기를 사전에 올릴 것인가, 아니면 맞춤법에 따라 낯선 표기라도 사전에 올릴 것인가. 만약 사전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고 맞춤법 규정이 별도로 공식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편찬자는 표기 규칙을 염두에 두고 표기를 결정하되 관습화된 예외 표기를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명색이 저도 학교를 다닐 만큼 다녔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 ‘동탯국’이란 표기는 생각도 못해봤습니다”라는 경험담이 공감을 얻는 상황이라면 사전편찬자는 ‘동태국’을 표제어로 삼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1부: 표기법과 대중, 규범의 유통기한」 중에서 ‘~인 것으로 판단된다’나 ‘~로 이해된다’ 같은 표현이 자신의 태도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 글쓰기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피동형을 이용한 표현의 기법일 뿐, 이런 점을 들어 피동 표현을 적대시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이다. 말은 나쁘게도 쓰이고 좋게도 쓰이는 법, 말 자체에 선악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국식 표현과 그렇지 않은 표현으로 이분한 후 정 체가 모호한 한국식 문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외래 요소가 문제가 되는 것은 외래 요소가 우리말의 소통 질서를 교란할 때다. 그렇다면 외래 요소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말의 소통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외래 요소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 정리를 위한 정책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2부 국어 순화의 이데올로기」 중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고유어와 외래어는 그 단어를 이해하는 토대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고유어는 어근을 통해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어휘라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외래어는 해당 외국어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 이러한 가능성이 차단된다. 대부분의 외래어는 원어에서의 단어 구성이나 어휘체계와 상관없이 우리말에서는 독립적인 단일어로 인식된다. 따라서 외래어에 대한 체계적 이해는 근본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외래어 쓰기는 신중해야 한다. 특정 독자층을 상대하지 않는 이상 외래어는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 「2부 생활 속 언어로, 외래어 자리 잡기」 중에서 효율성과 실용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이들의 ‘실용주의’는 특정 계층의 편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말하는 ‘실용’과 ‘효율’은 ‘관습’을 부정하고 ‘경쟁’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실용주의자들은 대중들의 낯설어함과 곤혹스러움을 개의치 않는다. ‘일반인들이 낯설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선점한다는 것은 더 큰 권력을 쥘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공교육으로 소화할 수 없는 시험으로 수험생들을 줄 세우기 하려는 것, 영어 성적으로 모든 구직자들을 줄 세우기 하려는 것 등이 이들의 ‘실용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 2부: 한글 표기를 통해 본 한자와 한자문화권 」 중에서 그런데 ‘한글이 여러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라는 사실이 ‘한글이 그 언어의 표기에 가장 적합하거나 유일한 문자’라는 사실로 뒤바뀌는 과정은 분명 비이성적이다.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 사용의 당위성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다른 문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부추기며 오해와 편견을 낳기 때문이다. 한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는 그 언어공동체가 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선택하는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한글 보급 혹은 한글 세계화 과정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한글처럼 우수한 소리문자가 세상의 모든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소외된 천재의 강박’과 ‘한글제국주의의 애절한 탐욕’이 배어 있다. 그래서일까? 한글의 우수성을 남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노골적이고, 이러한 바람이 크기에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가 과장되어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 「3부: 한글인도주의와 한글제국주의」 중에서 겨레말큰사전은 근대 어문 개혁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줄기차게 추진해온 우리말사전 만들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업이다. 분단 극복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명실상부한 우리말사전을 갖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그 역사적 의미가 ≪괴테사전≫과 ≪양안사전≫보다 깊고도 넓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편찬 사업비(약 15억 원) 지원을 승인해달라는 시인의 호소를 경제 규모 세계 15위인 대한민국에서 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3부: 통일시대 남북 언어의 통일과 공존의 방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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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를 넘어 열린 한글 사용을 생각한다
한자를 쓰면 안 된다, 한글만 써야 한다, 외래어는 고유어로 바꿔야 한다, 한글 표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한글을 세계에 수출하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언어 문제에 대한 논쟁의 저변에는 한글과 관련한 역사적 경험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고, 이는 언어 문제를 언어의 문제가 아닌 ‘정신’과 ‘가치관’의 문제로 만들곤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언어와 문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기도 했지만, 본질에 대한 성찰이 없는 관심은 갈등과 혼란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글의 역사적 의미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 삶에서 언어와 문자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때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그리고 언어와 문자를 정신과 가치관의 문제보다는 생활의 문제로 보자고 말한다. 그래야만 한글을 둘러싼 담론과 정책이 민족 문제를 끌어안으면서 민주주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어민족주의를 걷어내고 한글을 둘러싼 역사적 선택의 과정을 톺아보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새로이 만든 문자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한문’에 대비하여 ‘언문’이라고 불렀다. 근대화가 되어 민족과 국가의 의미가 새로워지면서 ‘속되다’를 함의하는 언문이라는 표현을 용납할 수 없었고, ‘국문’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국가가 일본에 병합되고 국문과 국어가 일문과 일본어를 뜻하는 이름이 되자, 조선인들은 ‘국문’을 대신할 이름을 찾았고 대한제국의 글 또는 문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한문’을 풀어쓴 ‘한글’이 탄생했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한글’은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는 이름이기도 했고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은 문자의 이름이면서 우리말의 이름이 되었다.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말을 지키는 길이었던 상황에서 말과 글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글과 한국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역사적 경험과 상처를 걷어내고 한글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선택되어왔는가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말이란 생득적인 것이지만 문자는 선택의 대상이며, 그러한 선택은 언제나 역사적 선택이었다. 세종은 소리문자가 필요하다는 역사적 요구에 응하여 문자를 만들었고, 조선 사회는 그 문자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