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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제1장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비 조선 개국을 못 본 향처鄕妻! 신의왕후 한씨 - 건국 시조 태조의 원비 살아서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었지만 죽어서 조선 최초의 폐비가 된 경처京妻! 신덕왕후 강씨 - 건국 시조 태조의 계비 그대가 너무 먼 곳에 잠든 정순왕후 송씨 - 제6대 왕 단종의 비 원손을 낳은 장순왕후 한씨 - 제8대 왕 예종의 원비 부덕한 아버지를 두어 단명한 공혜왕후 한씨 - 제9대 왕 성종의 원비 칠거지악七去之惡에 걸린 폐비 윤씨 - 제9대 왕 성종의 폐비 7일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 - 제11대 왕 중종의 원비 왕을 잃어 버린 장경왕후 윤씨 - 제11대 왕 중종의 제1 계비 천장遷葬을 하면서까지 왕 곁에 잠들려 했던 악비 문정왕후 윤씨 - 제11대 왕 중종의 제2 계비 원비의 아들이 많아 왕 곁을 차지할 수 없었던 장렬왕후 조씨 - 제16대 왕 인조의 계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경왕후 김씨 - 제19대 왕 숙종의 원비 인현왕후 민씨가 부러운 인원왕후 김씨 - 제19대 왕 숙종의 제2 계비 왕 곁을 계비에게 빼앗긴 단의왕후 심씨 - 제20대 왕 경종의 원비 아직도 왕을 기다리는 우허제右虛制와 정성왕후 서씨 - 제21대 왕 영조의 원비 제2장 왕 곁에 잠든 왕비 시동생이 무서웠던 정안왕후 김씨 - 제2대 왕 정종의 비 왕을 만든 여장부 원경왕후 민씨 - 제3대 왕 태종의 비 가슴앓이 하다가 죽어간 소헌왕후 심씨 - 제4대 왕 세종의 비 죽고, 죽고, 또 죽은 현덕왕후 권씨 - 제5대 왕 문종의 비 최초로 여왕 노릇한 정희왕후 윤씨 - 제7대 왕 세조의 비 왕위를 도둑맞은 안순왕후 한씨 - 제8대 왕 예종의 계비 후궁들의 멘토 정현왕후 윤씨 - 제9대 왕 성종의 제2 계비 그래도 지아비 곁을 찾은 폐비 거창군부인 신씨 - 제10대 연산군의 비 억울하게 지아비를 잃은 인성왕후 박씨 - 제12대 왕 인종의 비 마마보이 지아비를 둔 인순왕후 심씨 - 제13대 왕 명종의 비 적자를 낳아주지 못한 의인왕후 박씨 - 제14대 왕 선조의 원비 적자(영창대군)를 낳아준 인목왕후 김씨 - 제14대 왕 선조의 계비 날벼락 맞은 폐비 문성군부인 류씨 - 제15대 광해군의 비 삼궤구고두三?九叩頭로 항복 례를 한 왕의 비 인열왕후 한씨 - 제16대 왕 인조의 원비 꾸지 않았을 꿈을 이룬 인선왕후 장씨 - 제17대 왕 효종의 비 가장 행복한 명성왕후 김씨 - 제18대 왕 현종의 비 죽어서도 여인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지아비를 바라보아야 하는 인현왕후 민씨 - 제19대 왕 숙종의 제1 계비 자녀를 낳을 수 없어 안타까웠던 선의왕후 어씨 - 제20대 왕 경종의 계비 원비를 어이없게 만든 당돌한 계비 정순왕후 김씨 - 제21대 왕 영조의 계비 왕비가 되어서야 마음을 놓았을 효의왕후 김씨 - 제22대 왕 정조의 비 안동 김씨에게 세도정치의 물꼬를 터준 순원왕후 김씨 - 제23대 왕 순조의 비 왕 곁에 계비와 함께 잠든 효현왕후 김씨 - 제24대 왕 헌종의 원비 왕 곁에 원비와 함께 잠든 효정왕후 홍씨 - 제24대 왕 헌종의 계비 강화도 농사꾼의 아내 철인왕후 김씨 - 제25대 왕 철종의 비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명성황후 민씨 - 제26대 왕 고종의 비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순명황후 민씨 - 제27대 왕 순종의 원비 망국의 슬픔을 겪어야 했던 순정황후 윤씨 - 제27대 왕 순종의 계비 제3장 왕 곁에 잠들 수 없었던 후궁 좋았다가 망한 공빈 김씨 -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희비가 교차된 인빈 김씨 -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으로 승차陞差한 희빈 장씨(장희빈) -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 아들에게 콤플렉스를 제공한 숙빈 최씨 -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 정조 덕분에 수지맞은 정빈 이씨 -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사도세자와 정조에게 죄인이 된 영빈 이씨 -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삼간택을 거쳐 후궁이 된 수빈 박씨 - 제22대 왕 정조의 후궁 명성황후 민씨를 배신하고, 고종의 승은을 입은 순헌황귀비 엄씨 - 제26대 왕 고종의 후궁 글을 마치며 부록1〈조선왕계도〉 부록2〈조선의 왕릉 42기〉 부록3〈조선의 원 13기〉 부록4〈조선왕릉 상설도〉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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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죽은 원비 공혜왕후 한씨와는 달리 질투심이 많았다. 그 질투심으로 인하여 그녀는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기 시작했다. 유난히 여색을 밝혔던 성종 때문에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나 그녀의 행동이 도를 넘었던 것도 사실이다. 야사에 의하면 성종이 그녀의 처소에 들르지 않고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그 후궁들을 질투한 나머지 잡아다가 죄인처럼 추궁하고, 문초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가 성종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성종과 말싸움 중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왕대비이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사서 폐비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그녀와 경쟁 관계에 있던 성종의 후궁들이 인수대비를 찾아가 그녀를 비판하며 폐위를 부추겼다는 설도 전해온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등으로 폐비 윤씨는 결국 1479년(성종 10년) 왕비에서 폐위되었다. ---「칠거지악七去之惡에 걸린 폐비 윤씨 - 제9대 왕 성종의 폐비」중에서
고종은 을미사변으로 왕비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압력으로 음력 8월 22일(양력 10월 10일), 그녀를 폐위하고 서인으로 강등시키기까지 했다. 일본인에게 처참히 살해된 명성황후 민씨는 서인이 된 이튿날인 음력 8월 23일(양력 10월 11일) 다행히 서인에서 빈호를 특별히 내리고, 그해 음력 10월 10일(양력 11월 26일)에는 왕후로 복위시키는 조서를 내려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내의 숭릉崇陵 오른쪽 언덕에 국장을 지내고 그녀에게 숙릉肅陵이란 능호를 내렸다. 숭릉과 내연지 사이에 명성황후 민씨의 초장지 흔적이 남아 있다. 잡목 속에 석물 몇 점이 그녀의 초장지였음을 애써 알리고 있다. 그녀는 비록 세상을 뜨고 없었지만 왕비에서 서인으로 하루 동안 강등되었다가 빈이 되었고, 빈에서 46일 만에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어이없게도 명성황후 민씨는 47일 동안 폐비가 되었었다. 자칫하다가는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처럼 그녀도 영원히 폐비가 될 뻔했다.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명성황후 민씨 - 제26대 왕 고종의 비」중에서 그녀는 궁녀로 입궁하여 후궁에 올랐고, 왕비까지 되었던 왕의 여인이다. 조선왕조 역사상 후궁이 왕비가 된 경우는 여럿 있었지만 궁녀가 왕비에 오른 경우는 장희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궁녀에서 후궁이 되었을 때 수많은 궁녀들이 그녀를 매우 부러워했을 것이다. 왕비까지 되었으니 그녀로 인하여 궁녀들의 꿈과 희망이 한껏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온 부귀영화는 몇 년 못 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신분이 상승된 게 화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왕비의 자리는 아무나 오르는 게 아님을 장희빈이 일깨워 주었다. 숙종은 장희빈을 끝으로 아예 후궁이 왕비에 오를 수 없도록 법을 만들어 버렸다. 숙종이 장희빈에게 질려버렸던 모양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누에는 뽕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 장희빈이다.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으로 승차陞差한 희빈 장씨(장희빈) -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중에서 숙빈 최씨의 원호는 소령원昭寧園이다. 숙빈 최씨는 잠을 자면서도 미소를 지을 왕의 여인이요, 왕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조선시대 자신의 일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여인들 중 으뜸일 것이다. 아마도 그녀 자신이 왕의 여인이 되고, 왕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 살아왔기에 그런 행운이 찾아왔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도 살다보면 일어난다는 것을 그녀 역시 보여주었다. 그래서 세상은 열심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행운은 치우침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녀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7번지 비공개 지역 안의 소령원에 편안히 잠들어 있다. ---「아들에게 콤플렉스를 제공한 숙빈 최씨 -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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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여인들의 숨겨진 비밀 이야기를 엿듣다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은 조선 왕실 여인들의 능?원?묘 답사를 통해 당시 여성들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그동안 조선 왕릉을 소개한 책들은 대부분 왕이나 유명한 왕족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 책은 총 41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아낌없이 활용하여, 41명에 달하는 조선의 모든 왕비들과 왕을 낳은 후궁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무덤의 실제 사진은 물론이고 정사正史와 야사野史 등의 각종 사료까지 동원해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갔던 왕실 여인들의 인생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보여준다. 이러한 장점이 극에 달하는 것은 19대 임금 숙종의 유명한 세 여인,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 숙빈 최씨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리한 필력으로 정국의 변화에 따라 왕비와 후궁의 위치가 뒤바뀌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한다. 사료가 부족한 부분은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보충하며, 현대인이 욕심을 버리고 분수에 맞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왕을 둘러싼 궁중 여인들의 치열한 암투는 무덤에서도 계속된다 일부일처다첩제를 실천한 조선 왕들의 곁에는 왕비 이외에도 수많은 후궁들이 있었다. 왕실 여인들은 죽은 뒤에도 왕을 모시고 싶어 너도 나도 왕 곁에 묻히기를 바랐다. 흔히 ‘왕과 왕비는 부부이므로 같은 곳에 잠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41명의 왕비들 중 27명만이 왕 옆에 묻혀 있다. 왕비의 권력에 따라서 묏자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왕비 능의 위치와 크기는 그녀의 권력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대군을 낳아 후사를 튼튼하게 했거나, 계비로 들어와 왕의 사후에 권력을 쥔 왕비일수록 왕의 곁에 잠들기가 쉬웠다. 반면 왕의 아들을 낳거나 왕의 총애를 받았어도 후궁이라면 결코 왕 곁에 잠들 수 없었다. 한때 적법한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도 숙종과 멀리 떨어진 곳에 묻혀 있었을 정도다.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여러 군데에 흩어져 묻혀 있는 왕실 여인들의 무덤을 모두 소개해준다는 점이다. 각종 사료를 활용해 그들의 한 맺힌 사연을 대신 호소해주기도 하고, 내용의 끝에 상세한 무덤의 주소를 적어 그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왕 곁에 나란히 잠들어 있는 행복한 여인들과 홀로 누워 외로움에 한탄하는 여인들을 모두 만나볼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왕의 여인들의 행복과 애환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남을 느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