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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시작하며 우리 시대의 큰스님, 성철 스님의 길을 따르다_원택
1_대자유인의 길을 걷다 01. 경남 산청 겁외사 - 세속을 떠나 진리와 함께하다 02. 경남 산청 지리산 대원사 - 동정일여 경지에 들다 03.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 -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다 04. 부산 금정산 범어사 내원암 - 거침없는 운수납자 시절 05.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 백련암 - 세월의 흐름에 의연한 고목처럼 06.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운부암 - 평생의 도반 향곡 스님을 만나다 -성철 스님과 나의 법연 전 범어사 주지 흥교 스님 - 스승을 존경하고 대각성취로 보은하다 금정총림 범어사 유나 인각 스님 -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2_마음의 눈을 뜨다 07.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08.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삼일암 - 중노릇과 사람노릇은 다르다 09. 충남 예산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원 - 청담 스님을 만나다 10. 충남 서산 간월도 간월암 - 외딴섬 토굴에서 보낸 두 철 11.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 - 자원하여 공양주를 하다 -성철 스님과 나의 법연 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 - 큰스님의 은혜를 생각하다 해인총림 해인사 율주 종진 스님 - 본분을 지켜 수행자답게 살아라 3_부처님 법대로 살다 12. 경북 구미 태조산 도리사 태조선원 - 불교개혁의 의지가 태동하다 13. 경북 문경 사불산 대승사 대승선원 - 묘엄 스님, 김병룡 거사와의 인연 14. 경북 문경 사불산 대승사 묘적암 - 청정승가 구현을 위한 고뇌 15.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 - ‘봉암사 결사’의 큰 걸음 내딛다 16. 부산 기장 월내 묘관음사 - 향곡 스님 회상에서 인홍 스님을 만나다 17. 경남 고성 청량산 문수암 - 문수도량에서 전란을 피하다 -성철 스님과 나의 법연 전 조계종포교원장 혜총 스님 - 어른스님 뜻 따라 여법한 수행 기원한다 영축총림 통도사 서운암 선덕 정광 스님 - 후학의 의견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다 4_성철 사상을 펼치다 18. 경남 통영 벽발산 안정사 천제굴 - 부처가 될 수 없는 이의 집 19. 경남 창원 불모산 성주사 - 불공의 참뜻 일깨우다 20.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 - 두문불출하고 제자를 기르다 21. 서울 삼각산 도선사 - 대학생들과의 법연을 이어 가다 22. 경북 문경 운달산 김룡사 - 일반 대중에게 절문을 활짝 열다 -성철 스님과 나의 법연 조계종 원로의원 대원 스님 - 참선의 바른길을 일깨워 주셨다 부산 태종사 조실 도성 스님 - 한국불교 앞날의 초석 다지셨다 5_향훈으로 남다 23.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 - ‘백일법문’으로 법을 널리 펴다 24. 부산 해운대 청사포 해월정사 - 유훈 널리 알리는 도량으로 거듭나다 25. 부산 중구 고심정사 - 신도가 기증한 터에 세운 절 -성철 스님과 나의 법연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 우리 불교의 기틀을 다지셨다 해인총림 유나 원각 스님 - ‘백일법문’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순례를 마치며 다시 해인사에서,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
性徹,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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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외사에서 걸어 나오다 성철 스님이 태어난 1912년은 공교롭게도 경허(鏡虛) 스님이 열반한 해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문득 다시 사찰을 돌아다보게 됐다. 1912년은 조선 불교계의 크나큰 별이 지는 해이자, 한국 불교계의 크나큰 별이 뜨는 해였던 것이다. 이 역시 어찌 우연이라고 하겠는가.--- p.23
경내를 빠져나오는데, 수행하기 위해 대원사를 찾은 젊은 성철 스님의 환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교통이 발달한 지금이야 생가에서 대원사로 오는 길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지만, 성철 스님이 대원사로 찾아올 때만 해도 첩첩산중을 하룻낮 동안 걸어야 했을 것이다.--- p.31 경내를 빠져나오는데, 수행하기 위해 대원사를 찾은 젊은 성철 스님의 환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교통이 발달한 지금이야 생가에서 대원사로 오는 길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지만, 성철 스님이 대원사로 찾아올 때만 해도 첩첩산중을 하룻낮 동안 걸어야 했을 것이다.(31쪽) 1천 6백년 한국불교사는 물론이거니와 중국불교사에서도 ‘출가시’를 남긴 예는 찾기 어렵다. 게다가 성철 스님의 출가시에는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라는 구절에서 알 수있듯 호방한 대장부의 대기대용(大機大用)한 자세가 깃들어 있다.--- p.36 성철 스님이 수행한 내원암은 일주문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개울 옆 산길로 약 1.5km를 더 올라가야 했다. 중간에 청련암을 만나게 된다. 내원암은 ‘제일선원’이라 일컫고 있다. 근현대 고승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도량이기 때문이다.--- p.46 백련암을 둘러본 뒤 돌아 나오는데, 다시 한 번 하세월의 온갖 풍파를 버티며 서 있는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질곡의 근현대사에서 오로지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깨달은 뒤에는 불법 홍포에 매진했던 성철 스님의 행장을 떠올리게 한다.--- p.54 성철 스님이 오도한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으로 가는 길. 때마침 부처님오신날 전이어서 절 입구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사찰 입구 양변은 벚꽃이 만발해 가히 벚꽃터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부는 바람에 화르르 흩날리는 꽃잎은 찰나의 미학을 담고 있었다.--- p.85 성철 스님의 행장에서 정혜사가 지닌 또 하나의 의미는 당신의 견처(見處)를 점검했던 사찰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성철 스님은 29세에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칠통을 타파하고 오도송을 읊음으로써 일대사인연을 마쳤다.--- p.103 현재 해인사 백련암에는 스님의 책이 간직돼 있다. 원택 스님에 따르면 성철 스님이 김 거사에게 책을 받을 때가 ‘응화(應化) 2974년 정해(丁亥) 9월’이라고 한다. 서기로는 1947년이 된다. 기록에는또한 ‘증여인(贈與人) 김병룡(金秉龍), 영수인(領收人) 성철’로 쓰여 있다고 한다.--- p.152 성철 스님은 안정사에 자리 잡고 나서 주지에게 양해를 구해 초가를 이은 세 칸짜리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이름을 천제굴이라고 지었다. 천제굴의 뜻은 ‘부처가 될 수 없는 이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미 오도한 성철 스님이 수행처 이름을 천제굴이라고 지은 이유가 뭘까? 겸사(謙辭)일까? 아니면 역설(逆說)일까? 그 이유는 성철 스님 만이 알 것이다.--- p.209 성철 스님은 말버릇처럼 “절집 지붕의 기왓장을 벗겨 팔아서라도 승려교육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만큼 후학양성에 대한 원력이 컸다. ‘실달학원’ 설립도 후학양성의 일환에서 진행된것이다. 청담 스님도 승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었던 터라 이심전심으로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 p.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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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과 열반 20주기를 기리며
우리 시대의 큰스님, 성철 스님의 길을 따르다 이 책은 『불교신문』에 ‘성철 스님의 자취를 찾아서’, ‘성철 스님과 나의 법연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기획기사를 수정?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이 두 기획기사는 모두 불기 2556(서기 2012)년, 성철 스님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기획된 것으로, 6년간 출가수행자 신분으로 성철 스님을 모신 바 있는 이진두 논설위원이 집필을 맡았다. ‘성철 스님의 자취를 찾아서’는 2011년 3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불교신문』에 월2회 연재되었으며, 성철 스님의 ‘탄생-출가-수행-오도-전법교화-열반’ 등 스님의 향훈(香薰)이 서린 도량을 순례하는 이야기였다. 이 책에 소개된 ‘성철 스님이 머문 도량 25곳’은 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성철 스님이 머물던 곳은 대부분이 첩첩산중이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 또한 한 명의 순례자가 되어 반세기 전 성철 스님이 가신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북통만한 걸망을 지고, 들길 산길을 헐떡이며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터벅터벅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걸어서 가셨을 그 길. 가다가 다리 아프면 논둑, 바위틈에서 다리 쭉 뻗고 등 기대어 한 숨 돌려 쉬어가고 가다 쉬어 가셨을 길. 그 길을 이제는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성철 스님이 만드신 ‘사람답게 사는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성철 스님과 나의 법연을 말하다’는 2012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불교신문』에 연재된 글로, 원택 스님과 이진두 위원이 직접 성철 스님과 법연을 맺은 여러 스님들을 찾아뵙고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처럼 성철 스님이 남긴 법음(法音)의 진수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 두 기획기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대중들에게 ‘성철 스님의 길’을 선보이고자 하신 분은 원택 스님이다. 성철 스님 곁에서 20여 년, 스님을 떠나보내고 20여 년 이렇게 40여 년 동안 성철 스님을 시봉한 원택 스님은 이 책의 머리말 ‘순례를 시작하며’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불교신문』에 연재되었던 기획기사가 조계종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많은 분들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내는 데 가장 공로가 큰 이는 다름 아닌 성철 스님을 기리는 모든 사부대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철 스님의 법향(法香)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살아가는 대중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역부족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는 이 책을 내기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_원택 스님 생가(경남 산청 겁외사)부터 열반지(경남 합천 해인사)까지 성철 스님이 머문 도량 25곳으로 떠나는 순례 성철 스님의 탄신 100주년이던 작년부터 성철 스님의 사상과 생애를 돌아보는 순례가 불교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듯, 대중들은 여전히 성철 스님의 뜻을 기리려는 열기로 분주하다. 이 책 또한 성철 스님의 탄신지부터 열반지까지의 수행도량 25곳을 돌며 스님의 발자취를 좇는 순례길 이야기이다. 성철 스님의 수행 도량을 순례하는 내용의 책은 이제껏 출간된 적이 없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성철 순례길 25곳을 소개함과 동시에 그 길에서 성철 스님이 남긴 유훈과 사상을 조화롭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성철 스님은 해인사 도량에서 법의 깃발을 온 누리에 드리우고 평생토록 이룬 모든 것을 남김없이 대중에게 회향하고 가셨다. 그러니 조금도 섭섭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스님을 보낸 것도 아니요,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스님의 육신은 가고 없지만, 스님의 가르침은 때로는 마른 땅에 새싹이 돋게 하는 한줄기 비가 되어서 감로법문을 펼치고, 또 때로는 지상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덮어 주는 함박눈이 되어서 자비법문을 펼치고 있다._본문 318쪽 중에서 이 책에는 성철 스님이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운부암에서 평생의 도반 향곡 스님을 만난 이야기,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에서 지원하여 공양주를 하신 이야기, 서울 삼각산 도선사에서 대학생들과 소중한 법연을 이어 가신 이야기 등 성철 순례길과 관련된 다양한 일화가 실려 있다. 성철 스님은 영원한 진리, 대자유인의 길을 불교에서 발견하고 투철한 참선수행으로 대도를 성취한 분이다. 평생을 ‘부처님 법대로’ 살다 가신 우리 시대의 큰스님 성철 스님의 길을 따르고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성철 순례길에 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