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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역사의 시작
제1장 기준과 위만 제2장 왕조와 왕준 제3장 당 태종과 연개소문 제4장 계백과 김유신 제5장 장보고와 문성왕 제6장 왕건과 견훤 제7장 소손녕과 서희 제8장 묘청과 김부식 제9장 최충헌과 만적 제10장 김방경과 김통정 제11장 최영과 이성계 제12장 정도전과 이방원 제13장 세종과 최만리 제14장 세조와 김종서 제15장 이산해와 정철 제16장 이순신과 와키사카 야스하루 제17장 김상헌과 최명길 제18장 인현왕후와 장희빈 제19장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제20장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 제21장 존 하지와 이반 치스치아코프 제22장 매슈 리지웨이와 펑더화이 저자 후기 |
BOK,KOH-ILL,卜鉅一
복거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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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을 중시하고 혈통을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은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밖으로 열린사회를 지향하고 있어요. 우리와 인종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많이 귀화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다문화 가정'이란 말이 일상적으로 쓰입니다. 즉 이 땅에서 영구적으로 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의사 표시만 있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가세트(Jose Ortega y Gasset)는 삶의 본질을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보았고 "한 국가가 존재하려면, 그것이 미래를 위한 목적을 지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설파했어요. 국적 취득의 일반적 관행들은 이런 견해를 따르는 셈이죠. 그런데 혈통을 따져 과거에 조선 땅에 들어와 살면서 한민족의 성립에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기여한 사람들을 이방인들로 여기는 태도는 이치에 어긋나고 해롭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역사 교과서들은 그런 태도에 바탕을 두고 쓰였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그런 태도를 받아들이거든요. ---제1장 〈기준과 위만〉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권력의 총량이 고정되었다고 생각해요. 총량이 고정된 권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자기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자기 사람들로 정권을 꾸미고 경쟁자들에게 권력이 새어 나가는 것을 경계하죠. 그러나 권력은 그렇게 고정된 것이 아니에요. 임금은 자신의 지도력으로 권력을 창출합니다. 지도자의 권력은 자신의 국가 운영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와 지지도에 비례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권력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중략) 권력은 궁극적으로 통치를 위한 수단입니다. 권력 자체에 눈길이 매이면, 돈 자체에 현혹되어 투자하지 못하는 수전노의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죠. 다른 사람들과 권력을 나눔으로써, 임금은 권력을 한껏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써서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제3장 〈당 태종과 연개소문〉 당시 세상을 가장 잘 보았다는 그 학자들 가운데 노예제도에 바탕을 둔 사회의 문제들과 한계들을 성찰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속한 양반 계급의 비정상적으로 큰 특권을 해치지 않는 개혁을 생각했습니다. 실학파에서 가장 숭상받는 다산(茶山)의 경우, 조선 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양반인 수령들이 중간 계급인 향리들의 농간에 넘어가서 실정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노예제도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깨달음이 그렇게 어려운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였나요?---제9장 〈최충헌과 만적〉 역사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편견과 이해를 알게 모르게 반영합니다. 역사가들도 자기 민족과 나라에 대한 편향을 지니므로, 역사적 평가는 늘 외적의 침입에 대해 끝까지 싸운 사람들을 높이게 마련입니다. 외침에 대한 저항은 아무리 어리석고 해롭고 이기적이었어도, 후세가 기리지요. 조선이 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였으므로, 그런 민족주의적 편향이 유난히 깊은 것도 어쩔 수 없지요. ---제10장 〈김방경과 김통정〉 ? 민주 사회의 정당정치와 왕정 사회의 붕당정치는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권력을 얻으려 애씁니다. 그러다 보니, 권력을 주는 사람들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왕정 사회에선 국왕의 뜻을 무조건 따르게 되고, 민주 사회에선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의 뜻을 무조건 따르게 됩니다. 요즈음 문제가 된 민중주의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면, 정당들이 합리적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것이 긴요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진지한 성찰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겠지요.---제15장 〈이산해와 정철〉 안타까운 것은 일본 지식인들이 일본군이 해외에서 보인 잔악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문화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뒤틀려서 그렇게 흉포한 야만성을 드러내는지 살핀 일본 지식인이 있었다는 얘기를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성찰은 일본 문화가 보다 건전하게 진화하는 데 긴요합니다. 물론 이웃 나라들과 건전한 관계를 맺는 데도 필수적이지요.---제16장 〈이순신과 와키사카 야스하루〉 외국에게 정복되면, 모두 삶이 비참해지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목숨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 기구가 여전히 움직여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복된 나라의 관료 조직은 정복자에게 봉사함으로써 실제로는 피정복민들의 삶을 덜 힘들게 만듭니다. 강홍립 장군께선 이런 '행정적 부역(administrative collaboration)'을 하신 것이고, 덕분에 당시 조선 사람들은 덜 비참해진 것이지요.---제17장 〈김상헌과 최명길〉 민족주의는 국가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열정이지만, 자칫하면, 나라를 고립시키고 문화의 발전을 방해합니다. 요즈음 내가 척화비(斥和碑)를 세울 때 했던 얘기를 하면서 자신을 애국자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것이니 좋다”는 얘기는 자연스럽지만, “우리 것만이 좋다”는 얘기로 기우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이니 우리 것으로 만들자”는 진취적 태도입니다.---제19장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시대정신(Zeitgeist)’이란 말은 18세기 후반부터 주로 독일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이 말은 인류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드러난 중심적 특질들이 있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자연히, 시대정신은 역사에 대한 견해를 반영한다. 인류 역사가 보편적 법칙을 따라 발전한다는 주장이 밀려나면서, 시대정신도 뜻이 바뀌었다. 요즈음은 ‘한 사회가 어떤 시기에 가장 근본적이라고 여기는 사회 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설정한 과제’라는 뜻 정도로 느슨하게 쓰인다. 한 사회의 모습이 경로 종속적(path-dependent)으로 진화하므로, 비록 실체가 뚜렷하지 않고 엄격하게 정의하면 사라져 버리지만, 가볍고 느슨하게 약호 정도로 쓰면 나름으로 쓸모 있는 개념들에 속한다. 시대정신은 당대인들의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당대인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여긴 문제가 꼭 중요한 문제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설정한 과제가 진정한 과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노예제도다. 신라 말기부터 개항까지 천 년 넘게 이어진 노예제도는 인류 역사에서 노예제도의 이상형에 가장 가까울 만큼 엄격했다. 생산성이 아주 낮은 양반 계급의 존재는 노예들에 대한 ‘일상적 약탈’로 가능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추출적(extractive)인 사회는 윤리적으로 병들을 뿐 아니라, 정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천 년 동안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그런 노예제도를 엄격히 시행하는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당대인이 시대정신을 인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어쩌면 자신들의 지식 체계를 과감히 깨뜨리는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만난다. 물론 그런 지적 성취는 정치적 지도력을 만나야 실제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가상 대담들은 긴 세월에 은원(恩怨)의 감정들이 많이 씻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자연히, 개인적 대립보다 사회적 힘들의 상충이 부각되었고 대결 자체보다 개인적 및 사회적 화해가 강조되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요체를 경계조건이 비슷한 경우를 찾아내는 것이라 했을 때, 현대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의 선출은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라이벌들의 대결이다. 이 책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화두를 제공할 수 있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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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최고의 맞수들이 펼치는 팽팽한 설전舌戰!
『역사가 말하게 하라』에는 총 22쌍의 맞수들이 등장한다. 계백과 김유신, 정도전과 이방원, 인현왕후와 장희빈과 같은 대표적 라이벌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낙랑국의 왕조와 왕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은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 6·25전쟁의 미·중 양진영 군지휘관 매슈 리지웨이와 펑더화이 등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맞수들이 총출동한 셈이다. 저자 복거일이 마련한 토론의 장에 한데 모인 이들은 저마다의 입담을 과시하며 팽팽한 설전을 벌인다. 개인의 생사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주역으로 참여했던 이들은 각자가 대변하는 세력의 역사적 배경과 당위를 생생히 묘사한다. 가족의 목을 베고 황산벌 전투에 임한 계백 장군은 “어차피 백제군이 패배해서 나라가 망할 것을 확신했다면, 싸우는 대신 일찍 항복하고 협상해 많은 생명을 살리는 길이 낫지 않았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만일 의자왕이 친정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인정하며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설파하고(제4장 〈계백과 김유신〉),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지나친 신라 왕실과 귀족들의 사치를 지적하면서 “나라가 위급한 상황인데, 임금은 겨우 노래책 만드는 일에 간여하고 온 각간이 거기에 매달렸다”며 기병의 배경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제6장 〈왕건과 견훤〉). 한국사를 다루지만 때로는 적군 측 인물이 등장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평가하기도 한다. 예컨대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던 거란의 장군 소손녕은 “사절을 해치는 행위는 인류 문명의 근본 질서를 해치는 일이며, 예물로 바친 짐승들을 굶겨 죽인 일은 비판할 가치도 없는 짓"이라며 고려의 외교적 대응이 형편없이 서툴렀음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제7장 〈소손녕과 서희〉). 그런가하면 최충헌의 사노(私奴)로 노비해방을 위해 난을 도모했던 만적은 “동양은 서양보다 노예제도가 훨씬 엄격했지만, 그래도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느슨했다”며 유독 노예계급의 비율이 높고 국가에서 나서서 속량을 억제하고 주기적으로 도망친 노예들을 수색했던 연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제9장 〈최충헌과 만적〉).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왜적을 상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만들어낸 이순신 장군이 생생하게 묘사한 당시 해군의 상황과 조정의 상황, 전함을 타본 적도 없는 책상물림 문관들의 안목에 대한 불신과 섭섭함의 토로 또한 흥미롭다(제16장 〈이순신과 와키사카 야스하루〉). 때로는 협력자, 때로는 라이벌 관계였던 인물들이 늘 격론을 벌이며 자신이 대변한 세력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 복거일은 오랜 시간이 지나 은원(恩怨)의 감정이 씻긴 이들이 객관적으로 과거를 성찰하게 하며, 일종의 역사적 화해를 도모하기도 한다. 예컨대 세종과의 대화에서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에 반대했던 학자 최만리는 “얼마 전 ‘중요한 것은 언어지 특정 언어가 아니다’라는 글을 읽고 아프게 성찰했다”며 자신의 생각이 얕고 짧았음을 부끄러워한다. 군데군데 유머 감각이 발휘되기도 한다. 숙종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지금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꼭 해보고 싶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며 여러 가지를 나열하다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배필로 삼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공통된 합의에 도달하는 장면은 딱딱하기만 한 역사의 나열 대신, 살아있는 듯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저자의 유머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역사 교과서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틀렸다! 이렇듯 『역사가 말하게 하라』는 다양한 관점과 인물들을 통해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입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리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관점은 기존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반발이다. 복거일은 민족주의적 역사학자들이 단일민족의 신화를 강조하기 위해 왜곡해왔던 역사를 바로잡고 과거와 현실을 직시해야 함을 거듭 강조하며, 논쟁거리들을 제공한다. 먼저 이 책은 단군왕검으로 시작되는 역사의 연대기와 장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문제들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시작하며(제1장 〈기준과 위만〉), 300년 넘게 한반도의 중심 정권으로 융성했음에도 기존의 교과서가 간과 혹은 축소했던 낙랑의 역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조선이 망한 지 200년 만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본격적 고대 국가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낙랑이 발전된 중국 문명의 도관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삼국의 갑작스러운 출현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제2장 〈왕조와 왕준〉). 저자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오래 존속했던 부자연스럽고 잔인한 노예 제도 또한 강하게 비판한다. 서양은 물론이고 동양에서도 유례없이 높은 노예계급의 비율은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폐쇄적이고 추출적인 사회제도의 핵심이며, 그러한 제도가 유지된 배경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저자는 만적의 입을 빌려 통찰한다(제9장 〈최충헌과 만적〉). 같은 맥락에서 수많은 기생들이 비참한 성(性)노예에 불과했음에도 양반 흉내를 내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고 연애시만을 쓴 점을 지적하며, “글을 배웠지만, 세상을 옳게 바라보는 법은 끝내 깨우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이산해와 송강 정철은 과거제도와 붕당의 문제점을 심도 깊게 파헤친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추출적 특질을 짙게 띠었기에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이들은 과거 공부만 하고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아 수많은 ‘과거 폐인’들이 양산되어 사회적 낭비가 심했고, 그렇게 급제한 이들 또한 특정 이념이 아닌 이해관계로 서로 뭉쳤다는 지적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부분이다(제 15장 〈이산해와 정철〉). 또한 저자는 식민통치 부분에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전작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서도 당시의 인구 추세와 실제 생활을 근거로 한 ‘계량적 연구 방법론’으로 경직된 역사관의 민족주의를 정면 비판했던 저자는 이번 『역사가 말하게 하라』에서도 과감한 ‘개념적 돌파’를 시도한다. 지형학적 한계로 건국 이후 주변 강대국에게 휘둘려온 우리 역사에서도 특히 분단 상황인 지금,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아군과 적군을 파악해 응당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비용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일본의 잔혹한 민족성의 근원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도, 6·25전쟁 때 극명히 드러났듯 일본이 대한민국의 전략적 후방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제 22장 〈매슈 리지웨이와 펑더화이). 이 책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올 부분은 통상 애국심과 정의에 불탄, ‘항쟁 영웅들의 집단’으로 알려진 삼별초의 본질이 실은 ‘중앙의 권신을 호위하는 사적 조직’에 불과하다며 기존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시각일 것이다.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고려의 장군 김방경은 “강화의 삼별초는 항몽을 한 적이 없으며 싸움터에서 몽골군과 싸운 적이 없다”며 삼별초가 권신들의 부당한 권력을 지키기만 했지 실제 몽골군과 맞선 적이 없음을 꼬집는다. 또한 삼별초의 저항을 이끌다 자결한 김통정의 입을 빌어 “‘낭만적 애국심’은 자연스러우나, 자연스러운 것이 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부분(제10장 〈김방경과 김통정〉)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해 과거를 통찰하고, 현대와 미래를 진단하다 『역사가 말하게 하라』의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현명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일민족의 환상에서 벗어난 유연한 사고와 개방적 역사관, 무엇보다 민족적 자긍심을 위해 훼손되고 왜곡되어 온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 필요하다. 저자 복거일이 당대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대담을 꾸미며 목표한 바는 분단, 분열의 시대에 통합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시대정신’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거듭 “괴롭더라도 뼈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권력을 쥔 지배계급은 언제나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얽혀있기에, 세종대왕과 같은 드물게 뛰어난 지도자가 아닌 이상 합리적인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고해진 기존의 지식체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시대정신을 읽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이다.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존의 혈연 위주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경계하고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받아들이며 열린사회를 지향하며 발전하려는 포용적 태도이다. 엄밀한 역사 인식과 비판을 통해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답을 찾아야 한다. 특히 남북한이 단절된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 책은 통합을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화두를 제시한다. 저자는 위에서 소개했듯 흥미로운 질문과 관점들을 제시하면서도 특정 방향으로 귀결되는 ‘정답’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대신 각기 다른 입장과 상황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입을 빌어, 승자의 입장에서 기술된 기존의 역사가 놓쳐온 지점들을 되짚고자 했다. 『역사가 말하게 하라』는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를 다루지만, 21세기 한반도의 현실 정치로 이어져 진보, 보수진영을 떠나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역사관과 교훈을 도출해낼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