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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 우연히 닿는 것 3. 여기가 어딘가 4. 민들레 홀씨되어 5. 스물세 번째 타-칠(작은 식물, 3월)의 달 6. 부락 탐방의 시작과 끝 7. 긴 여정 8. 스물세 번째 닐-치-쪼(큰 바람, 11월)의 달 9. 피드질 10. 내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갈 사람 11. 도정(道程)의 시작 12. 해원(解寃) 13. 마음으로 쓰는 편지 14. 토템 폴 15.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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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부족이 왜 이곳을 성지로 삼았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영혼이 자유로워지죠. 영혼이 자유로워지면 눈이 맑아지고 귀가 밝아져서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지요. 어머니인 대지의 말이 들리고 바람과 구름의 메시지를 전해 받을 수 있고 위대한 정령의 가르침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죠. 그러면서 견딤과 수용을 배우지요. 저의 조상이 이 땅을 성지로 선택한 이유입니다.”
-“저의 부족은 원(圓)을 생명의 고리로 인식하며 살아가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 모든 나무, 모든 식물들은 하나의 원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니까요. 실제로 원은 서로 둥그렇게 이어져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존중하지 않고 수용하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지고 어그러지기 마련이잖아요. 조화롭지 않은 관계란 서로에게 해가 되고 불편만 안겨줄 뿐이죠. 저의 부족은 자연의 신성한 힘을 믿어요.” -변화는 현재를 밀어내고 다음을 끌어오는 미세한 움직임이다. 그것을 감지한다면 그 자체가 바로 치유의 시작인 것이다. 딸은 그렇게 서서히 슬픔을 이겨내고 아픔을 견뎌나갈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부락사람들은 회의가 시작되자 모닥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둘러앉았다. 뒤늦게 온 사람들이 끼어 앉을 때마다 조금씩 원을 넓혀나갔다. 더 늘릴 수 없을 만큼 원이 커지자 또 하나의 원이 겹으로 만들어졌다. 여인들이나 아이들이라고 해서 원 밖으로 물러나 앉거나 쫓겨나는 일은 없었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 아이들이나 여자가 끼어 앉는 일은 흔치 않았다. 아니 숫제 끼어들지 못하게 했고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조금씩 그런 폐단이 없어지고 있었지만 시골에선 일종의 관습처럼 여자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걸 예의로 알았고 아이들은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는 둥그런 원 속에 끼어 앉은 아이들과 여자들을 돌아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로빈이 들려주던 원의 사상을 떠올리며 피드질이 건네주는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부락회의에 아이들도 참석하는 겁니까?” 피드질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었다. “아이들이라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잖소.” 그는 부락에서 자신에게 가장 친절하지 않은 사람을 들라면 서슴없이 피드질을 꼽을 거로 생각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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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타운에서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두산은 다른 여행사와 차별화되는 관광 아이템을 찾기 위해 모뉴먼트 밸리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젊은 나바호 원주민 로빈을 만나게 된다. 나바호 인디언들에겐 성지와 다름없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빛의 향연이라 부를만한 신비로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로빈과의 대화를 통해 두산은 선입견으로 물들어있던 인디언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서서히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 그러던 중 로빈에게서 자신의 부족 추장이 여성, 그것도 동양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깊은 흥미를 갖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할 요량이었지만 두산은 차츰 대자연에 뿌리를 둔 나바호 인디언의 신비롭고도 깊은 사상에 감화됨과 동시에 반대로 현재의 비참하기까지한 안타까운 생활상에 다가가면서, 부족들에게 추장으로서 그들의 언어로 ‘우리들의 어머니’라는 뜻을 가진 네헤마라 추앙받는 한국 여인 순이의 파란만장한 삶에도 다가가게 된다. 대학시절 운동권 활동의 여파로 사회에 정착하지 못해 한국을 떠나온 두산과 미국내 교민사회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철저하게 나바호 부족의 일원으로만 살아온 순이는 각자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조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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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희생양이 된 유랑민들의 슬픔
이 작품은 여성의 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나바호 인디언 부족 추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한국 여인의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웅적으로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네헤마는 나바호 인디언의 말로 '우리들의 어머니'란 뜻이다. 동시에 그들의 추대로 추장이 된 한국인 여성의 인디언 이름이다. 네헤마의 본명은 김순이. 가족과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 소외된 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버림받고 이주한 공간이 어떠한 곳이든 상관없이 주어진 삶의 무게 역시 똑같이 무겁기만 하다. 더구나 그 삶의 현장은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문명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제한된 공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가부장제와 너무나도 닮아있는 미국 정부의 인디언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맞서 네헤마는 부족의 권리를 위해 분투한다. LA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두산은 우연히 나바호 부족의 한 자치구에서 추장으로 추대된 네헤마를 알게 된다. 여행상품화라는 목적과 호기심으로 접근하게 된 네헤마의 존재는 의외로 두산의 삶에 점점 크게 자리 잡게 된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자발적으로 한국을 떠나온 그녀의 삶이 반정부운동 인사로 낙인찍혀 조국에서 버림받은 두산 자신이 한국을 떠나온 사실과 닮아 있다고 느끼는 한편, 네헤마에게서 가부장적인 제도의 희생양이 되었던 자신의 누이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48년이라는 짧은 생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마감한 네헤마는 신분증도 없고 미국에서의 신분조차 불분명한 인물이었다. 두산은 네헤마가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지상에 남겨주고 싶은 마음과 가족을 찾는 그녀의 바램을 간직한 채 한국에 있는 그녀의 가족 찾기를 계속한다. 그것은 동질감을 가지고 연민을 품은 그녀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고 싶어서이다. 나바호어로 친구란 “내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 줄 사람” 이라는 뜻으로, 그는 네헤마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그녀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자 한다. 이 작품은 모국이라는 곳에서 뿌리가 뽑힌 채 사막을 굴러다니는 텀블링 브러시처럼 결국 인디언 보호구역의 한 구석에서 모국을 그리워하다 그곳에 뿌리내릴 환경인자를 갖지 못한 채 일찍 요절한 사람의 비애가 감미로울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더불어 나바호 인디언들의 깊은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슬픔을 딛고 여자라는, 인디언이라는, 이방인이라는 약자의 입장에서 소리 없이 강하게 주어진 생을 살아냈던 여인, 베-나-아리-쪼시(째진눈)이라 불리다 네헤마 (우리들의 어머니)라 불리게 된 여인에 대한 서정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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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여운은 에코페미니즘적 삶을 살다간 네헤마의 캐릭터와 자연에 대한 묘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찮아 보이는 세목에서 실존적 의미를 이끌어내는 통찰력이 현실과 과거를 반추하는 화자를 비롯해서 각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다. 게다가 붉은 절벽아래 부락의 퇴락해가는 황량한 풍경 등 조그마한 변화도 놓치지 않을 만큼 섬세한 작가의 시선과 서정적인 문체의 묘사력은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장 일변도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빈부의 양극화 현상, 지구온난화에 의한 환경파괴,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지향했던 네헤마의 캐릭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 조동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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