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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의 끝나지 않을 순례기] 재미 한인작가이자 『영원한 이방인』 데뷔 이후 미국 현대 문학 대표 작가 이창래. 그가 20대 청년의 성장소설로 9년 만에 돌아왔다. 섬세한 문장과 탁월한 심리묘사로 정평이 나있는 그답게 이번 소설 역시 청춘의 성장통과 갈등, 그리고 운명들을 명징하게 표현해냈다. -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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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Chang-Rae Lee,이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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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이라는 웅장한 뷔페가 제공하는 수많은 식탁과 음식 및 음료 코너를 최대한 들러 보고자 지난 학기를 쉬었다. 나는 그 뷔페가 그토록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인 줄 몰랐다. 그토록 영광스러운 동시에 비참한 곳, 영웅적인 동시에 슬픈 곳인 줄도 몰랐다.
--- p.17 흔히 사람들은 순간을 살라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미래나 과거를 보려 들지 말고, 그 모든 걸 더해 보지도 말고, 현재라는 풍성하게 무르익은 과일을 맛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면 인간은 그 순간에 머물게 된다. 중독자처럼 자신을 속이고 포기해 버린다. 그 모든 달콤함이 썩는 것 외에는 아무 변화도 일으킬 수 없게 될 때까지. --- p.29 밸은 어떤 선언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선언이라도 말이다. ‘이게 나의 유일한 삶이고, 난 이 삶을 살아 낼 거야.’라는 선언. --- p.120 모든 사람의 인생이 그렇듯 내 인생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야. --- p.194 나는 퐁의 충직한 후배이자 새로운 친구로서 다시 조율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열쇠의 홈에 신선한 날이, 더 선명하고 뚜렷한 날이 찾아온 듯했다. 뜻밖에도 재미있게 쓰일 준비가 된 채로. 정말로 원한다면, 우리는 모두 마스터키 아닌가? --- p.355 지금의 나는 어느 장소를 떠올리면 반드시 그곳의 향기를 함께 떠올린다.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는 늘 그렇게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던바처럼 평범한 지역에도 향기가 있다. 던바는 보통 차가운 버터 덩어리처럼 전혀 냄새가 나지 않지만, 떼 지어 마을을 포위한 조경사들이 방금 깎은 풀 냄새와 투 스트로크 엔진의 알싸한 배기가스로 공기를 습하게 만들 때는 예외다. 대학교의 오래된 참나무 책상 서랍을 열면 피어오르는, 먼지 낀 곰팡이 냄새와 말라붙은 맥주, 빨지 않은 플리스의 냄새. 앞서 말했듯 오아후섬에는 은하수처럼 펼쳐진 탁 트인 푸른 바다라는 필터를 수 킬로미터나 거친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선전의 거리에서는 젖은 아스팔트와, 억제할 수 없는 지하의 하수도 냄새가 난다. 마카오에서는 과열된 카지노의 조명과 쏟은 화이트 러시안과 네니타의 냄새, 그리고 뭐, 뻔한 냄새가 난다. 그 모든 건 영원히 기억에 남아 있다. --- p.427 나는 나 자신을 그냥 그녀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그냥 찰흙이 되고 싶었다. 퐁이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했던 말처럼, ‘신발 뒤축에 묻은 흙먼지’처럼 말이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 p.451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한 번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보다는 다른 걸 하고 싶었다. 오래 할 수 있는 걸. 계속해서 오래, 아주 오래 공기를 꿰뚫을 수 있는 음을 낸다든지. --- p.454 그런데도 이게 내 운명인 걸까? 좀 더 눈물이 나는 형태이기는 해도? 아니면 고통이 곧 쾌락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니지만 고통이 나를 데려갈 수 있는 막다른 지점에, 내가 불가결해지는 영역에, 누군가의 어두운 꿈이라는 기계 속의 핵심적인 톱니바퀴가 되는 지점에 끌리는 걸지도 몰랐다.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느니 어둠에라도 속하고 싶은 것이다. --- p.463 네 안에는 어떤 절박함이 있어, 틸러. 일종의 허기가 있지.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해? --- p.467 나는 바다에 붙어 조류에 휩쓸리는 단 하나의 조개였다. 고립되었다가 물에 잠겼다가 거친 파도에 두들겨 맞았다가를 번갈아 겪다가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다. 상관없었다. 나는 온전히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았다. --- p.603 나는 우리가 수확을 걱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씨앗을 심기를 바란다. 그 식물들이 우거지기를. 수확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수확은 우리가 함께 땅을 일구는 데,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데, 우리의 나지막하고 음악적인 콧노래에, 활기차게 먹고 마시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수확은 무작위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 예컨대 빅터 주니어가 히말라야 산봉우리처럼 쌓아 올릴 수 있을 만큼 만들어 둔 머랭이나 밸이 베개에 남기는 따뜻하게 움푹 팬 자국, 플란넬 천 깊숙한 곳에 붙은 그녀 머리카락의 고소한 냄새 같은 것들에서 어느새 형태를 갖춘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역으로 작용하는 연금술이라도 된 것처럼 사라진다. 그 모든 생명의 황금이 흩어져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세상에 맞게 나 자신을 만들고 싶다. 이 세상이야말로 나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세상이다. --- p.687 |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리까지 떠나 버린 이의 여정을 그린 소설 * 『영원한 이방인』, 『척하는 삶』 작가의 최신작 * 김연수(소설가) 어수웅(조선일보 기자) 강력 추천 *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선정 『타국에서의 일 년』의 주인공은 20대 청년 ‘틸러 바드먼’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네.’라는 대답의 순수한 화신이었다.”라고 평하는 그는 한국인의 피가 아주 조금 섞인, 거의 백인과 구분되지 않는 혼혈인이다. 대학교 도시 ‘던바’ 출신인 틸러는 자산가가 많은 이 도시의 친구들처럼 어려서부터 유복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 관리직인 아버지 덕에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틸러가 느끼는 결핍은 주류가 아닌 인종이나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무한히 펼쳐지는 허무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던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경험에서 나온다. 틸러는 사라진 어머니를 대신해 싱글대디로 자신을 돌봐 온 아버지의 사랑도 추상적이라고 느끼며 부자 관계에서 언제나 선을 지킨다. 그는 분명 상대적으로 평탄한 상황에 있었지만, 자신이 속한 곳에 완전히 뿌리 내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고여 있는 물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그 물이 흐르지 않는 한 가만히 있겠으나 누군가가 건져 내면 쉽게 건져질 수 있는 존재였던 셈이다.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느니 어둠에라도 속하고 싶은 것이다.”(463쪽) “나는 늘 내가 태어난 직후부터 어정쩡한 것들의 강에 담긴 것만 같았다. 그냥 괜찮음이라는 투명한 잉크가 내게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일부 사람들은 즉시 그 점을 알아챈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결국 나에 대해 알고 나서 ‘아, 그렇군.’ 하는 표정을 잠시 짓는다. 보통 그 표정은 출구로 안내되는 전주곡이었다.”(551쪽) 마치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는 사람처럼, 어디서도 감정적인 애착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던 틸러에게 어느 날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이자 거대 제약회사 베이더가스의 실험실 화학자 ‘퐁’이 나타난다. 부유하고 지적이며 자신과 달리 모든 면에서 노련한 퐁에 대해 틸러는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퐁을 잘 몰랐지만, 그의 말투와 움직임에는 충실함이 있었다. 동네를 자기 뒷마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로지르는 태도에서 확신이 느껴졌다. 그는 테라스의 갈라진 모든 틈을, 새로 피어난 모든 수국 꽃송이를 소유한 듯했다. 흩날리는 나뭇잎 한 장이나 자갈 한 개의 예외도 없이, 그 모든 것이 퐁이라는 사람의 존재 안에 섞여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65쪽) “나는 나 자신을 그냥 넘겨주고 싶었다. 퐁이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얘기할 때 한 말처럼, ‘신발 뒤축에 묻은 흙먼지’처럼 말이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451쪽) 퐁 또한 틸러에게 미묘한 유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네 안에는 어떤 절박함이 있어, 틸러. 일종의 허기가 있지.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의 동료들과 함께 해외 투자 여행에 동행하기를 제안한다. 자신의 초라한 현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떠나고 싶었던 틸러는 큰 고민 없이 퐁의 조수로서 그 여행에 따라나선다. 마치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파도를 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회오리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사람처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서. 그리고 중간기착지인 하와이를 거쳐 중국 선전, 마카오, 홍콩 등 동아시아의 화려한 무역 도시들을 배경으로 어딘가 수상하고 때론 기이하기까지 한 이들의 여정이 펼쳐지는데…….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MZ세대에게 ‘디아스포라 문학의 거장’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밀리언셀러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과 함께 1.5세대 한인문학을 이끈 양대 산맥이자, 현대 영미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이창래는 스스로 어디에도 완벽히 속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 누구보다 치열히 세상과 부딪혀 온 작가다. 그로부터 비롯된 깊고 섬세한 통찰력, 아름답고도 날카로운 문체와 탄탄한 드라마 등으로 도스토옙스키, 가즈오 이시구로, 코맥 매카시 등과 비견될 만큼 미 문단은 물론 전 세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그는 이번 신작에서도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진화하는 작가의 면모를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 이 소설의 제목 『타국에서의 일 년』은 우리의 낯선 경험을 은유한다. 젊음이 가져다주는 고뇌와 혼란, 시공간적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이 모두 담겨 있는 이 소설은 특히 ‘나’를 찾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무한히 나아가는 MZ세대 독자들에게 주는 울림이 크다. 이 책은 오랜 시간 프린스턴과 스탠퍼드대학교 강단에서 학생들과 소통하고 교감해 온 작가가 청년들에게 보내는 한 편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부유하는 계절. 디아스포라 문학의 거장 이창래가 이끄는 여정을 따라, 완벽히 낯선 소설적 세계 속 이방인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
오랫동안 이창래의 소설을 따라 읽어 온 독자(맞다, 내가 그 독자다.)에게 이 소설은 다소 낯설다. 처음에는 거부 반응이 들 정도다. 역사에 어떤 빚도 지지 않은 듯 현실의 중력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를 종횡무진하는 미국 대학생의 선택도,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연상의 여인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가는 MZ 세대의 선택도 처음에는 의아하게만 여겨진다. 그럼에도 파도처럼 거침없이 나아가는 문장이 독자를 더 먼 곳까지 가게 한다. 얼떨결에 끝까지 읽은 뒤, 다시 읽으면 파도와 같았던 이 문장이 실은 암반처럼 서사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건 이전의 대학생과 이후의 MZ 세대는 동일 인물이다. 소설은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보여 준다. 자연스레 두 이야기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게 되지만, 그건 쉽지 않다. 이 소설에서 이창래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규칙을 무너뜨리는 듯하다. 반리얼리즘적 피카레스크 소설이라고나 할까, 넷플릭스 시리즈를 넘어서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이 모순 형용과 불가능한 수사가 논란을 불러오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이창래는 이창래를 다시 썼다. 읽으며 많이 놀랐다. -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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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딩(sounding)이란 단어가 있다. 막대 끝에 설치한 저항체를 땅속에 삽입하여 그 흙의 성질을 알아보는 일종의 지반 조사. 이창래는 뉴저지 출신 20세 대학생 틸러를 통해, 당신이 몰랐던 섹스와 음식 그리고 감각과 지성의 심연(深淵)에 재기발랄한 탐침을 꽂는다. 미국의 증인보호 프로그램과 천재 소년 셰프와 엘튼 존과 생명연장 연금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 이 작가의 장편소설 6권 중에 가장 젊고 가장 동시대적이며 가장 낙관적이다. 99.99%의 사람들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돌 뿐이지만, 몇몇 특별한 예술가들은 삶의 진실을 파헤칠 비밀의 구멍을 어떻게든 뚫고 들어간다. 이 남자가 그렇다. -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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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은 우리의 낯선 경험을 은유한다. 작가는 그런 낯선 경험이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것이고, 심지어 우리 자신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없다고. 하지만 그 여행 중에 얻은 ‘칼’ 같은 것을 잘 간직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결정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 그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듯하다. 칼 자체 때문이 아니라, 칼을 손에 쥐고 긋겠다는 우리 자신의 결단 때문에. - 강동혁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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