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1장 배낭 혁명 2장 무상의 정복자 3장 설동 4장 플레인 제인, 주류가 되다 5장 에스프리 드 코르 2부 6장 나의 북쪽은 어디? 남쪽으로 날아가다 7장 지구 먼저! 8장 개척자 마을 9장 시베리아에서 호랑이를 쫓다 10장 이상한 나라의 두 외국인 11장 연어 전쟁 3부 12장 빛나는 물의 땅 13장 푸말린 공원 14장 파타고니아의 심장부에서 15장 강의 살해자 16장 무사시 작전 17장 강의 수호자 4부 18장 앵무새를 위한 인형극 19장 파타고니아 국립공원 탐방로 20장 파타고니아에서 기습당하다 21장 더그 톰킨스, 새로운 시대를 열다 22장 폭풍 속의 섬 작가의 말 작가 노트 인터뷰 목록 참고 도서 감사의 말 |
Jonathan Franklin
강동혁의 다른 상품
|
더그 톰킨스가 스물한 살에 처음 창업한 노스페이스라는 이름의 가게는 그가 평생에 걸쳐 세계적 기업으로 바꿔놓은 막강한 브랜드 중 첫 브랜드였다. 틀을 깨는 것이 그의 주특기였는데, 그의 절친이자 의류회사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의 말에 따르면 더그는 무엇보다 규칙 어기기를 좋아했다. “기업가로서의 더그를 이해하고 싶다면 비행 청소년을 연구하세요. 더그의 행동에서 그런 방식이 보이거든요. 뭐가 이따위야? 내 방식대로 하겠어! 그게 더그였어요.”
---p.13 톰킨스와 쉬나드는 이 모험이 평생의 우정을 단단히 쌓고, 각자 훗날 겪게 될 사업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 발은 산에, 한 발은 자연을 존중하는 사업을 만들겠다는 신념에 딛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대담한 꿈을 꾸면서도 그들은 이 우연한 여정 덕분에 쉬나드는 파타고니아 의류회사의 리더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나눔을 실천하게 되고, 더그는 자기 세대의 가장 위대한 환경운동가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수 년 뒤, 설동에 갇혀 지냈던 인생 최악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본은 그들의 끈기와 시련에서 깊은 가치를 발견했다. “나는 역경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그 순간은 동시에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죠.” ---pp.87~88 집에서 더그는 미친 완벽주의자였다. 주방 선반을 똑같은 토마토소스 깡통 여러 개로 장식했는데, 각각의 라벨이 완벽하게 줄을 맞춰 진열됐다. 그는 집안 곳곳에 놓인 정교한 꽃꽂이를 사랑했으며, 미술 수집품도 소중히 여기며 정기적으로 작품을 사들였다. 그림과 조각상을 포함한 그 수집품은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정확한 조명을 받았다. 더그의 딸들은 ‘예술’에 대한 그의 엄격한 기준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들은 벽에 뭘 걸 수 없었어요. 더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애들 방을 장식했죠. 회색과 흰색으로만.” 수지의 말이다. “더그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싶어했어요.” ---p.105 그러나 에스프리의 젊은 직원들은 톰킨스를 이해했고, 직장을 ‘작은 유토피아’나 ‘캠프 에스프리’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활약했다. 더그는 거리감이 느껴지긴커녕 다가가기 쉬운 사람이었다. “결국 문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하며, 일상의 구체적인 일들에 참여하는 겁니다. 그래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 수 있죠.” 더그의 말이다.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은 모두 무심하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이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에 너무도 자주 무심해 보이는 것처럼.” ---pp.132~133 불과 오 년 전만 해도 톰킨스는 밀라노 디자인계의 거장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 그는 심층생태학의 선구자들에게 구애하고 있었다. “나는 환경운동에 완전히 몰입한 채 아침을 보내다가, 정오쯤에 덜컥 현실로 돌아와 사업 운영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무언가 바뀌어야 했어요.” 톰킨스의 말이다. “내 인생을 자연보호와 환경 관련 작업에 바칠 목적으로 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직도 이상합니다. 내 마음이 정말로 소속된 곳인 ‘지구 먼저!’와 함께하지 못할 만큼 사업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니 말이죠.” ---p.154 톰킨스는 직원들에게도 에스프리 옷에 “필요하지 않다면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톰킨스는 전복적인 메시지가 선풍적인 마케팅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다. 그게 반문화였기 때문이다. 놀란 주거래 은행 담당자와 임원들이 톰킨스에게 따졌다. 누군가는 화를 내며 “사람들한테 우리 제품을 소비하지 말라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톰킨스는 이런 소란을 아주 좋아했다. (…) “내 메시지는 소비자에게 소비를 줄이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물론 자유시장 경제라는 개념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겠지만요.” 그가 말했다. “반응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광고업계까지 즉시 이 메시지에 주목했습니다.” ---p.168 칠레 당국이 톰킨스를 감시하며 괴롭히고 위협하는 동안, 안데스산맥 반대편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환경단체가 돈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가진 이 미국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인들은 일반적으로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반미 감정이 심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이 나라의 환경운동가들은 톰킨스를 깊이 존경했다. 그의 자연보호 계획이 칠레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아르헨티나에서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pp.267~268 더그의 호기심을 사로잡은 것은 지도에 있는 공백이었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구도 걷거나 보거나 냄새 맡은 적 없는 지역을 그가 발견할 수 있을까? 더그는 탐험하는 동안 특히 마음에 든 장소들은 비밀로 간직했다. 공중에서 그런 구역을 발견하면, 가능할 때마다 조용히 그곳을 매입했다. 길이 없고 접근이 불가능하면 더 좋았다. 그는 자연이 세계 자본과 단절되어 현대 산업화사회의 단기적 요구에 방해받지 않고 진화할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p.326 다양한 환경단체가 이제는 강을 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지역에서 댐 반대 캠페인을 조직하는 데 주력했다. 카우보이 집단이 ‘댐 없는 파타고니아’ 로고로 장식된 깃발을 흔들며 말을 타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TV 뉴스 보도가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칠레의 쟁쟁한 환경운동가들과 수백 명의 열정적인 자원활동가들이 이 시위에 참여했다. 톰킨스는 수많은 방식으로 에스프리 시절의 마케팅 실력을 되살려냈다. 에스프리에서 그는 카탈로그에 아드레날린과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더했다. 고객조차 더 큰 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꼈다. 이제는 파타고니아와 칠레 전역에서 그때와 같은 재능이 수천 명의 칠레인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단, 이제 톰킨스는 일회용 옷가지와 단기적인 패션 유행 대신 자연을 선전했다. ---p.380 2013년, 일흔번째 생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더그 톰킨스는 공황에 빠졌다. (…) 그는 자신의 시간이 다 됐다고 느꼈다.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아.” 그는 어느 개인적인 편지에서 고백했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세계 종말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내 몸안의 어떤 힘이, 유전적인 무언가가 아름다움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 톰킨스는 점점 더 광활한 야생지를 지켜야 한다고 확신했다. 세계 인구가 칠십억을 넘어선 상황에서, 그는 온전한 생태계를 매입해 새로운 국립공원을 만들 기회가 빠르게 사라져간다고 느꼈다. ---pp.411~412 호수 가운데 쪽으로 멀리 끌려가며, 보일스는 부질없는 노질을 계속했다. 톰킨스는 일인용 카약의 뒤쪽 끝에서 몸을 끌어올리려 애썼다. (…) 카약이 더 가라앉았다. 보일스는 저체온에 빠진 톰킨스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직 모자를 씌워주었고, 톰킨스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더그는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며 보일스와 함께 연안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어디에 상륙해야 할지 큰 소리로 조언했다. “톰킨스는 자신이 살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보일스의 말이다. “톰킨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포기하고 죽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p.448 더그가 죽고 며칠 지나지 않아 크리스는 칠레에서 어떤 현상을 목격했다. 더그가 더이상 살아 있지 않은 지금, 많은 이들이 그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적들조차 그랬다. 톰킨스를 괴롭히는 것은 칠레의 국민 스포츠였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모든 의심을 걷어냈다. 음모론이 사그라졌다. 더그 톰킨스의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났다. 그는 낙원을 매입하기 위해 열심히 싸웠고, 그 모든 것을 내주기 위해 죽기 살기로 분투했다. ---pp.466~467 더그 톰킨스는 늘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느꼈다. 그는 친구이자 이웃인 스티브 잡스와 논쟁했던 1980년대 초반부터 기술과 세계화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정치인, 친구, 기업가 앞에서 수십 년간 강연해왔다. 하지만 그는 늘 리더십이 아래에서, 거리에서, 민중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했다. 언제나 반항아이자 선언보다는 행동을 강하게 믿는 사람이었던 톰킨스의 유산은 그가 보존한 수백만 에이커의 땅만이 아니었다. 그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더그 톰킨스는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다음 혁명의 씨앗을 뿌렸다. ---p.486 |
|
“성공의 정점에서 그는 왜 가장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는가”
세계적 브랜드의 창립자라는 자본주의의 최정상에서 인생의 가치와 신념이라는 다른 산을 오르기까지 스물한 살의 더그 톰킨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술집과 스트립 바 사이에 작고 허름한 가게를 열었다. 이름은 ‘노스페이스’. 산의 북쪽 면, 가장 거칠고 까다로운 등반 루트를 뜻했다. “남쪽 면은 햇빛에 눈이 부드럽고 따뜻하죠. 난 어려운 면이 더 좋아요. 거칠고 얼어붙은 면이요. 난 인생에서도 바로 그 길을 택합니다.”(12쪽) 그의 생애 전부를 관통하는 말이다. 노스페이스는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인과 독창적인 장비로 빠르게 성장했다. 톰킨스의 곁에는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가 있었다. 고교 시절 암벽등반으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야생을 함께 탐험하고 기업 철학을 나눈 인생의 단짝이었다. 그러나 “모든 규칙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을 열망”했던 톰킨스는 돌연 노스페이스를 매각한다. 에베레스트보다 까다롭다는 피츠로이산을 등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쉬나드를 비롯한 친구 몇 명과 파타고니아까지 2만 5천 킬로미터를 달려가 피츠로이산을 등정한다. 이때 겪은 극한의 고난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평생 그의 가치관을 지배하게 된다. 원정에서 돌아온 톰킨스는 아내 수지와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를 세워 다시 한번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정상에 선 그는 자신이 만든 패션 제국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약 1조 원 가치의 에스프리 지분을 매각한 후 파타고니아의 외딴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긴다. “은행가 중 한 명이 ‘그래서, 더그. 이 많은 돈으로 뭘 할 겁니까?’라고 물었죠. 더그는 말했어요. ‘당신들이 저지른 일들을 모두 되돌려놓으려고요.’”(171쪽) 톰킨스는 전례 없는 계획을 세운다. 자연 파괴가 자행되는 파타고니아의 땅을 대규모로 사들여 국립공원으로 조성한 뒤, 국가에 통째로 기증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생태 복원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단순한 자선가가 아니었다. 직접 경비행기를 몰며 땅을 매입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을 밀어붙여 멸종위기 동물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를 되살리는 ‘야생복원’을 도모하였다. 칠레 정부와 기득권층의 중상모략에도 굴하지 않았다. 2015년, 톰킨스는 칠레의 한 호수에서 카약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마침내 칠레 국립공원 협약이 성사되었다. 약 2,800만 에이커, 1,700마일에 걸친 ‘공원의 길Route of Parks’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한 개인이 국가에 한 최대 규모의 토지 기부였다. 더그 톰킨스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람이었다. 험준한 북쪽 면, 즉 노스페이스는 톰킨스의 삶 자체였다. 그는 암벽을 등반하고 카약으로 오지를 탐험하고, 경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누빌 때, 그렇게 야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 한편 페라리를 몰면서 환경보호를 외치고, 가족은 등한시하면서 지구를 구하겠다고 나선, 모순투성이 인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랭클린이 수많은 증언과 수천 페이지의 기록으로 복원한 톰킨스의 생애는 완벽한 인간만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부순다. 이 책은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때로는 잔인할 만큼 완고했던 한 인간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을 때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점투성이 인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니 오히려 그 결점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끝내 관철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 『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는 이렇듯 복잡하고 모순적인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이 믿는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는가를 보여주는 모험 서사이자 지금의 방식이 아닌 삶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고하고 강렬한 응답이기도 하다. |
|
여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스페이스와 에스프리라는 걸출한 브랜드를 일군 뒤, 그 영광을 뒤로하고 홀연히 자연으로 간 사람입니다. 암벽 등반을 사랑하고, 카누로 습지를 탐험하며 전 세계의 원시를 누비던 그는 각성합니다. 인류로 인해 훼손된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일평생 이룬 부와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놓은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한 사람의 삶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일깨웁니다. 그의 시대에는 한 개인이 이처럼 큰 일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제 각 개인이 증강되어 조직보다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경량문명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문명에서 개인은 더그 톰킨스처럼 스스로의 삶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모두의 삶이 기록되는 시대, 고유한 삶의 서사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 송길영 (『시대예보』 시리즈 저자, 마인드 마이너)
|
|
타인의 삶에 오랜만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기이하고 엉뚱했다. 벅차오르는 흥분감이 터져 나왔다. 전 재산을 들여 산 땅을 칠레 정부에 국립공원으로 기부한 더그 톰킨스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다. 그가 돌연 사업을 정리하고 모험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같은 산악인으로서 이 재미난 모험에 함께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혁명을 실현한 사람. 새로운 문을 열고 세계를 확장하는 추진력을 선보인 전략가. 옳은 일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액션. 톰킨스는 파타고니아의 숨은 보석과도 같은 ‘토레스 델 파이네’ 암봉과 닮았다. 개발을 강요하는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며 거칠고 단단한 신념을 고집스럽게 지켜낸 맑고 투명한 에너지에 전염되길 바란다. - 김영미 (노스페이스 소속 산악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