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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를 알아보기
후기: 가자에 대하여 참고 문헌 |
Isabella Ham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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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현장이 아닌 멀리서 지켜보는 우리는 그 같은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애써 거리를 둠으로써 스스로를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가? 이 시점에 인간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고통 속에 머문다는 뜻이다. 계속 거기에 머물도록 하자. 그곳에서야 말로 더욱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 본문에서
나는 문학적 아나그노리시스란 속죄의 순간이 아니라, 한계나 오류와 마주치는 난처한 순간에 가장 진실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생각에, 우리가 소설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계시나 계몽이 아니라, 지식이 닿을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는 것이다. 스스로 무언가에 대한 오류를 깨닫는 과정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타자성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본문에서 서사라는 형식이 우리를 위로하고 장차 노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도해 줄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의 자유’라는 아직 끝나지 않은 기획의 지평에서 타자의 빛이 나타나는 순간에, 스스로 형태를 바꾸고 중심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본문에서 컬럼비아 대학교로부터 ‘에드워드 사이드 추모 강연’을 의뢰받은 이사벨라 함마드는, 사이드가 남긴 수많은 유산 속에서 ‘전환점’에 주목하기로 결심한다. “서사적 시간에서 위기란 끝이 서서히 스며드는 징후로 보이지만, 현실에서 끝은 언제까지나 물러나는 지평선에 불과”(본문에서)하므로, 우리는 끝(해피엔딩이나 종말)이 아닌 전환점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환점은 분절 없이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오직 회고적으로 체험될 뿐, 정작 그 순간을 체험하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위기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위기란 무엇인가? 바로 약 두 달 동안 공세를 펼치며 “세계에서 가장 기후 변화에 취약한 국가 스무 곳의 연간 탄소 발자국을 모두 합친 양보다 많은, 최소 28만 1000톤의 이산화탄소”(본문에서)를 대기로 방출한 이스라엘과 그들의 포화(砲火)에 송두리째 불타 버린 팔레스타인이다. 사실상 유럽, 서구 전체가 공모한 반유대주의의 피해자로서 면죄부를 받은 이스라엘은 특히 미국과 영국의 비호를 받으며, 전력(戰力) 면에서 완벽히 열세인 팔레스타인을 물리적으로, 그리고 서사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함마드는 이토록 묵살당한, 거의 절멸의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의 현실(“이스라엘이 10월 7일에 발생한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자기방어를 한다는 주장은, 그들이 이미 점령한 인구 집단을 상대로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어처구니없는 명분이다. 대규모 학살과 민간 인프라의 파괴, 노골적인 대량 추방 논의 앞에서 이런 주장을 지지하기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어린이 1만 명을 죽이는 것은 자기방어가 아니다.” - 본문에서)을 환기하며, 여전히 타자로 남아 있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마드는 소설가로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한 가지 흥미로운 제안을 건넨다. 함마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서사를 분석하며 거론한 아나그노리시스, 즉 깨달음과 인지의 순간을 호출한다. 요컨대 문학의 진정한 가치란, 바로 전환점이 되는 인지의 순간을 독자의 영혼과 우리 세계 속에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아나그노리시스를 체험하는 일은, 결국 타자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팔레스타인 문제, 더 나아가 모든 말살과 압제의 위세가 들끓는 현장에서 우리는 더욱 아나그노리시스의 순간을 모색해야 하며, 이때 문학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