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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벌레고개
김이 탄 날 안바바와 다섯 명의 도둑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말라 죄와 벌 토우의 집 작가의 말 |
Kwon Ye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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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를 끼고 형성된 모든 동네가 그렇듯 삼벌레고개에서도 재산의 등급과 등고선의 높이는 반비례했다. 아랫동네에는 크고 버젓한 주택들이 들어섰다. 아랫동네 주민은 대부분 자기 소유의 집에 살았고 세도 안 놓았다. 마당도 넓고 자동차도 있고 식성이 까다로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정원사에 운전기사에 음식 솜씨 얌전한 식모나 보모도 있어야 했다.
--- p.11 삼벌레고개에서 행해지는 모험의 등급도 고갯길의 등고선에 따라 나뉘었다. 아랫동네 소년들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고 부모 몰래 불량 냉차를 사 먹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축이었다. 반대로 윗동네 소년들은 극히 불온하고 위험해, 모험이라기보다 범죄에 가까운 짓거리에 물들어 있었다. 결국 소년다운 모험은 삼벌레고개 중턱 소년들의 몫이었다. ‘높이의 모험’과 ‘넓이의 모험’은 중턱 소년들이 즐기는 모험의 씨실과 날실이었다. --- p.13 스파이놀이를 하면서부터 은철은 삼벌레고개가 돌연 불길하고 을씨년스러운 기운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과 같이 있으면 고추 끝이 저릿할 만큼 모든 일이 흥미진진하게 돌아갔다. 높이의 모험과 넓이의 모험 따위는 댈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임무가 또 생각났어.” “뭔데?” “동네 사람들 이름을 알아내는 거야.” “왜?” “그래야 언제라도 독약을 만들 때 그 사람 이름을 막바로 외울 수 있을 거 아니야?” --- p.52 기름기를 많이 섭취한 육식이의 음성이 가장 감미로웠다. 재봉틀 의자에 앉아 낮은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부르던 새댁은 육식이의 바리톤이, 그리워라 안니 로리, 하고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미끄러져 내릴 때면 자신의 가슴마저 무너져 내리는 듯해 재봉틀을 구르던 발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 옛날 거닐던 강가에 이슬 젖은 풀잎 사랑하네 아니 오리 언제 나오려나 아득히 지난날 가슴에 스민 꽃 그리워라 아니 오리 꿈속에 보이네 --- p.161~162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태풍이 잦더니 구월 초까지 사나운 바람이 불었다. 더위를 식히는 바람이 삼벌레고개를 쏴아 훑고 지나가던 구월 초순 어느 날 밤 뚜벅이할배가 죽었다. 자연사라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기에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삼벌레고개가 온통 어수선했다. --- p.165 “그자들이 왔어요. 조사만 받고 바로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덕규는 말을 흐렸다. 새댁의 얼굴이 그다음 말을 하도록 해주지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 새댁이 말없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처음 그녀의 손을 잡던 십삼 년 전의 그날처럼 손에 땀이 배었다. “다녀오리다.” “다녀…… 오셔야 해요.” --- p.252 원에게서 원은 아버지가 딴 여자와 도망친 경우와 감옥에 갇힌 경우 중 어느 편이 더 나은지 알 수 없었다. 언니의 교과서에서 산사태와 눈사태에 대한 내용을 읽고 무거운 흙 속에 깜깜하게 갇히는 산사태와 차디찬 눈 속에 꽁꽁 얼어 갇히는 눈사태를 상상해보고 어느 것이 더 무서울지 알 수 없었던 때와 비슷했다. ‘사태’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는 것 같았다. --- p.259 원에게서 사라져버린 것은 말뿐이 아니었다. 표정과 몸짓도 증발되었다. 원은 생기 없는 얼굴로 느리고 뻣뻣한 동작을 했는데, 그것은 동생 희의 모습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그 곁에서 은철은 눈물을 글썽이며 뭐라고 뭐라고 쉬지 않고 얘기를 했다. 스파이놀이를 하던 얘기도 했고 은행놀이를 하던 얘기도 했다. 난쟁이식모 얘기, 뚜벅이할배와 똥순할매 얘기도 했다. 그러나 안바바와 새댁 얘기는 하지 않았다. --- p.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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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벌레고개’ 어린아이들이 자라는 법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에 안기는 온기 산꼭대기에 바위 세 덩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 ‘삼악산’이다. 그 남쪽 면은 경사도 완만하고 바위도 적어서 산복도로를 냈다. 그리고 애벌레처럼 그 도로 옆으로 집들을 지었다. 우물집 둘째 아들인 은철이네 집에 새댁네 식구가 이사를 온다. 새댁네 가족은 ‘안 영’ ‘안 원’ 두 딸까지 넷이다. ‘은철’과 새댁의 둘째 딸 ‘영’의 직업은 ‘스파이’. 마을 우물에 빠져 죽은 처녀들의 수가 왜 ‘구십삼’인지 밝혀내고, 벽돌을 갈아 만든 독약으로 누군가를 벌하기도 하며, ‘새댁’ 혹은 ‘누구 엄마’로 부르고 불리던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낸다. 하지만 ‘개발기술’과 ‘귀밝이술’의 발음이 똑같은데 어떻게 어른들은 그걸 구분해내는지, 어른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 투성이이다. 마을 사람들의 고민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고, 다른 듯하지만 비슷하다. 커가는 아이들, 남편의 월급, 새로 이사 온 새댁의 가족사 등. 마을 여인들의 하루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가 인생의 큰 고비가 되었다가 운수패를 두고 나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는 남자들이 한 명씩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번번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삼벌레고개는 작게 진동한다. 원이네는 막내딸 ‘희’가 태어나면서 다섯 가족이 된다. 딸들의 이름을 이어붙이면 ‘영원희’. 하지만 가족의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김밥을 몇 줄 살뜰히 챙겨 산에 오르려던 어느 날, 덕규는 처음 보는 사내들의 부름을 받고 따라가 원이가 교복 입을 나이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시종일관 큰 요동 없이 차분하게 진행되는 이 소설은, 삼벌레고개 마을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 아래를 고요히 흐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위태롭다. 밥을 먹는 것, 학교를 가고 출근을 하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 내부의 균열과도 같은 고통을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덕규가 양복 입은 사내를 따라간 것처럼.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 (「작가의 말」 중에서) 이처럼 고통은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에는 극복할 수 없다. 작가는 『토우의 집』을 통해 우리가 통과해야만 하는 긴긴 성장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말 나는 여전히 그들의 고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들의 고통, 이를테면 어떤 커다란 반죽 덩어리 같은 고통에서 부드러운 물풀 같은 손이 슬그머니 내 목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자기와 비슷하지만 자그만 어떤 것, 그러니까 자기의 새끼 비슷한 고통을 살그머니 끄집어낸다. 세상에, 도대체 언제 이런 게 내 속에 들어앉아있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