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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나와 ‘나’
영원하라 부엉이 과거는 흘러갔다 머릿속 그림 니체에게 박쥐는 박쥐다 내 영혼은 어둡다 소혜素蹊 안부를 묻다 가위 낡아 가는 중 나 이렇게 이쁜데 전갈자리 민달팽이 제2부 · 유폐된 시간 천장天葬 닿는 것, 스치는 것, 고향의 겨울밤 익명으로 전환 끝나지 않는 산책 진술서 부음 때 이른 매장 우수, 아이아 어디 외딴 어촌에서 첫사랑 그 가수는 어디서 나처럼 늙어갈까 대포항의 먼 새벽 금등지사金?之詞 제3부 · 홀로 있는 풍경 매미 울음 듣네 빈집 야간 등반 우기 실없는 기약 인도가는 길 할매 바람 산등성이엔 빈 나무가 아름답다 꿈속의 잠 혼자 사는 집 마른 기억 남아 있는 불빛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달의 뒷면 제4부 · 신파극처럼 천년-052309-폭설 부정한 남자 풍크툼 아무 것도 아닌 풍경화 다시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내란의 예감 사우르스 카르마KARMA 불안한 까닭 디아스포 우리 동네 신파적인 은행나무 우又 남천을 건너거든 여백 해설 되돌아보는 영혼(이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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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진 자리 모로 눕다』는 무엇을 담았는가?
금등지사(金?之詞)를 엿보다 금등지사는 사도 세자의 죽음에 대해 영조가 쓴 글입니다. 역사의 악몽이지요. 당대에 이 글은 금서였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모든 것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깊게 묻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끔직한 과거가 정조가 살았던 시대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좌지우지하는 시간의 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선의 시집은 역사의 악몽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과거를 드러낸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과거가 오늘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열려진 서사입니다. 이 시집은 현재, 오늘, 지금, 여기에 관한 시인의 오랜 천착을 담았습니다. 시인은 과거를 영원 억겁의 시간으로 여기며 현재와 연결시킴으로써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시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현재를 재발견하는 가운데 과거의 양상은 고착된 사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담게 됩니다. 과거 그랬으니 어쩔 수 없이 오늘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한정적 사유에서 벗어나려는 구도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과거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경험을 이 시집은 담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이 시집은 유폐된 자아를 어떻게 구해낼까 하는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를 어떤 공간에 가두고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관념에서도 그렇지만 공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시인은 그 유폐된 자아를 역사의 공간에서 찾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다 역사의 흔적으로 남을 수 없기에 우리의 서사는 늘 지워지고 망각됩니다.. 시는 그것을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해방을 꿈꾸는 것입니다. 시집 해설에서 되돌아보는 영혼 양선의 이번 시집은 서너 권의 시집에서 뽑은 선집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기나긴 시간을 한 가지 논리로 꿸 수는 없다. 한결같은 것은 없기에 부침을 거듭했을 시간의 궤적을 탐색하는 일은 힘겨운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식으로 여독을 풀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산책 삼아 읽기를 앞서 권한다. 그의 시집은 다면체 프리즘이다. 그것을 통해 굴절되고 분산되는 삶의 꿈틀거림을 보게 될 것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흔적과 천천히 마주하는 순간 설레며 매운 먼지 가득하리라. 양선은 되돌아보는(retrospective) 자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 회귀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어디론가 가던 길이다. 그 도중에 오던 길을 다시 바라볼 뿐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흘러와 미래로 가는 게 맞는가. 그렇다면 오늘 지금은 무의미하다. 곧 사라질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시간이란 헤아리는 영혼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과거를 살지 않았다면 다가올 미래를 살 수 없다면 그 시간은 영혼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거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후설은 철학적으로 시간에 관해 사색한다는 것은 결론 내릴 수 없는 의식의 ‘되새김질’과 같다고 했다. 이 의미 없는 시간의 반복을 삶生이라 한다면 목숨命은 너무 허무하지 않는가. 이때 시인은 어때야 하는가. 고백하는 일밖에 없다. 마음속에서 과거의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로 존재하는 나밖에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따라야 한다. 시인은기억하며 직감하고 기대하며 시의 뼛조각에 기울고 차오르는 달의 행로를 새겨 넣는 자다. 양선의 시집은 그 달의 뒤편이다 양선의 시 쓰기는 오랜 시간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이 시집은 할머니 손에 놀았던 버들채 농籠과 같다. 시간의 비늘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함을 열고 마주하는 시들이 금등의 진실처럼 극적이지는 않다. 그만큼만 뒤돌아보게 개켜 있다. 그의 시는 뒤주에 가둔 나를 다시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정조는 아버지를 기려 사도 세자를 장헌이라 추종하였다. 그 순간 사도 세자는 또 다른 ‘나’로 시간을 가로질러 재생했다. 양선도 그런 생의 지속을 꿈꾸고 있다. 거기에 뒤돌아보는 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