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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영등포 구치소 시절
당신이 다녀간 오전의 가을 하늘 제2부 공주교도소, 여름 그리고 가을 이 바람결에 우리의 지난겨울이 불어오고 제3부 공주교도소, 겨울 둘이라는 따스한 마음을 조금씩 지피면서 우리는 왜 정든 땅을 버렸는가? 제4부 공주교도소, 봄에서 출감까지 사랑은 우리가 지상에 남길 유일한 발자취 삶은 언제나 구비쳐 휘도는 물길 |
蔡光錫
남자는 대학 4년생이었고 여자는 신입생이었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조금씩 시간을 보내는 만남이 계속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날 무렵, 남자는 중뿔나게도 무슨 거창한 신념의 깃대를 흔들어 대더니만 훌쩍 벽돌담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1975년 5월 말의 일이었습니다. 남자로서는 시대가 낭만을 누릴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듯 싶습니다. 그러나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 낭만은 야금야금 담 안의 세계와 담 밖의 세계를 관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는 드러내놓고, 마침내는 삶의 중심을 차지할 만큼 그 벽돌담을 사이에 둔 기이한 사랑은 서로의 것이 돼버렸습니다.
--- p.4~5 당신이 다녀간 오전의 가을 하늘은 유난히도 높푸러 보입니다. 가만히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손을 대어 봅니다. 부실 듯 화안한 햇살 속에 당신의 웃음이, 부모 형제 친지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스쳐갑니다. 그러나 아직은 감상과 눈물을 예비하고 저축할 때입니다. 지난 3년간 최전방 방책선상에서 조국의 일각을 지키면서 가을과 별과 햇살의 서정 속에서 내 의지와 사랑의 내재적 힘을 기르며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했던 그 똑같은 반복을 세월은 내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p.15 정숙 씨의 어머님이 넣어주신 담요. 그것이 갖는 의미를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오거든 우리 딸을 위해 보다 열심히 살아라’ 하는 당부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실로, 조그마한 선물이라 했지만 내가 이제까지 받아본 어떤 선물보다도 가슴 깊이 파고드는 은혜로움을 느끼게 해준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때가 오면 그 은혜로움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리라고 믿으면서 우선 이 정도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못난이’니 ‘Unlovely Friend’니 하는 칭호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견해로는 그것은 분명히 좋지 못한 어투입니다. 자학은, 때때로 자기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숙 씨의 경우에는 공생(共生)의 입장에선 또 하나의 분신에 대한 실례입니다. --- p.92 빛 속에서 어둠을 경계하고 어둠 속에서 빛의 씨앗을 보는 안목을 가질 때, 어떠한 어둠도 결코 어둡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고 어떠한 빛도 밝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빛과 희망에 안주할 때 우리는 쾌락주의에 빠지기 쉽고, 우리들이 어둠과 절망 속에 잠겨들 때 우리는 패배주의에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희망과 절망의 중층적인 구조를 우리들의 인식의 영역 안에 확보할 때, 나는 삶 속의 희망, 삶 속의 빛, 삶 속의 은혜를 봅니다. --- p.100 엊저녁에는 만기출소하여 만나는 꿈을 꿨습니다. 어떤 때는 매일같이 만나는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생활의 단조로움 속에 우리 둘이 닿는 그 끈이 가장 크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참고, 다시 기다리는 삶에 익숙해진 탓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 봄에 만날 것을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자기를 책하지 마시고 항시 넉넉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아주시길 빕니다. 부모, 형제와 친구, 제자와 더불어 모든 이웃 속에서 예수는 우리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월 초에 다시 쓰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p.273 이승에서 그대를 만나 남다른 기쁨을 맛본 그 이유만으로 저승길에서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기죽지 않는다 천년왕국이니 영생의 낙원이니 내세는 휘황한 행복뿐이라지만 그대에게 못다한 사랑이 허물이 되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한들 그게 어찌 나를 미혹할 수가 있단 말이냐 삶은 언제나 구비쳐 휘도는 물길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삶은 구비치며 그대의 심장에 나의 심장을 잇대어 출렁거리는 물길로 이어왔느니 살지라! --- p.378~379 |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바로 그 冊, 40년 만에 다시 출간되다.
독재의 어둔 하늘 위로, 감옥 속에서 쏘아올린 청춘의 화양연화 어두운 시대에서 길어낸 우리 시대 최고의 연애 서간문.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의 원형의 담긴 고뇌와 사색의 기록. 민중문학의 문을 활짝 열고 젊은 나이에 산화한 문학의 순교자, 그러나 잊혀진 이름 채광석 민주화운동, 감옥 속에 쏘아올린 빛나는 청춘의 연가 누구나 젊은 시절은 있으나, 아무나 순수하고 고결한 것은 아니다. 어두운 시대, 감방 속에서도 빛나는 청춘, 빛나는 사랑, 화양연화는 가득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연애 서간문. 누구에게나 화양연화는 있고, 삶이 꽃피는 압축된 시간이 있다. 엄혹했던 수인 신분의 신분이었으나, 저자의 편지에는 아주 희망찬 메시지로 넘쳐난다. 채광석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문단 평론계의 한 맥을 형성한 진보적 문학 평론가였다. 그는 용감하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고난당하는 민중 속에서 호흡하는 문학을 찾아내려 노력했으며, 특히 노동자 시인 중에서 그들을 직접 대변하는 작가를 찾는 데 주력했다. 『노동의 새벽』으로 세상에 알려진 박노해라는 무명의 노동자 시인을 발견하고 광맥에서 금을 찾듯 기뻐한다. 대표적인 진보적 문학이론가로 활동했던 그는 198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민족시인 고 채광석 민주문화인장’을 거쳐 그동안 경기도 양평군 팔당공원묘지에서 영면해왔다가 2020년 8월 6일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1971년 강제 징집되어 군대생활을 마치고 복학한 이듬해인 1975년 5월 13일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다. 긴급조치를 항의하는 집회가 서울대에서 열렸는데 주모자로 체포되어 1977년 6월 24일까지 만 2년 1개월간 감옥생활을 한다. 그때는 창살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 둘은 반달할아버지로 유명한 동요 작가 윤극영 선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의 모임에서 만났다. 사랑하는 여인 강정숙과 주고받은 연서는 수백 통에 이르렀고, 그것들은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나듯이』라는 책으로 남는다. 채광석의 사랑은 “언제나 슬픔과 증오의 장막을 찢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는 “한 사람을 사랑과 믿음의 상대자로 택할 때 나는 이미 그의 곱고 아름다운 면뿐만 아니라 어둡고 불안정한 면까지도 믿고 사랑하겠다”며 평범하지만 굳센 결의가 담긴 사랑법을 보이기도 한다. 고통의 시간에 담금질된 사랑만이 빛을 발한다. 감옥 안에서 제한된 장소와 시간에 써내려갔을 채광석의 편지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또 자신의 문학적 열정과 책과 사색을 통한 바깥세상과 투쟁에 가까운 소통을 시도한다. 또한 갇힌 수인의 삶에서 잃지 않는 위트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요절한 시인이요 문학평론가의 순수와 열정으로 가득 찬 연서는 많은 이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은 이 책을 밑줄 그으며 읽고 그 구절을 공책에 옮겨 적었다고 한다. 출판칼럼니스트 고 최성일은 수천을 헤아리는 장서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않고 채광석 시인의 옥중서간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를 들겠다고 했다. 엄혹했던 시절의 연서는 추억을 소환하는 한편, 젊은 세대에게는 순정한 사랑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
채 시인의 사랑은 “언제나 슬픔과 증오의 장막을 찢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는 “한 사람을 사랑과 믿음의 상대자로 택할 때 나는 이미 그의 곱고 아름다운 면뿐만 아니라 어둡고 불안정한 면까지도 믿고 사랑하겠다”며 평범하지만 굳센 결의가 담긴 사랑법을 보이기도 한다. 고통의 시간에 담금질된 사랑만이 빛을 발하랴. 사랑 그 자체는 목숨과 진배 없으니 살아서 두려움 없이 “사랑할지라!” - 신순옥 (『남편의 서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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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옛땅 공주에서 버려진 모든 것들과 함께 뒹글며, 참 여자를 애틋하게 사랑한 사연들은 그 시대를 함께 산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신경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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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필치로 쓰여진 이 서한들은 그러나, 어떤 ‘뜨거움’에 대한 증언이다. 70년대를 치르는 분노와 절망과 사랑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기록인 것이다. - 백낙청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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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편지를 쓰거나, 좋은 글이 있으면 근무 중에 공책에 베껴 적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 …… 채광석 서한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이런 책들을 읽고는 밑줄 그었던 구절들을 공책에 옮겨 적곤 했습니다. 그렇게 옮겨 적은 글을 써 놓은 공책이 다섯 권 정도가 되었습니다. - 도종환 (시인, 국회의원, 전 문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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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을 헤아리는 장서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않고 채광석 시인의 옥중서간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를 들겠다. …… 이 책은 한 젊은이의 연인을 향한 그리움이 밴 연애편지다. -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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