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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음악을 배우고 가르쳐온 저자가 동네 음악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로 음악의 언어를 이해하는 법을 들려준다. 음악을 통해 배워나가는 매일의 이야기를 통해 음악이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한다. 인생에서 나만의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해 줄 책.
2021.02.23.
예술 PD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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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악흥의 한때
Var.1ㅤ유리알 슈베르트, 나의 마들렌 | Var.2 습관처럼 좌절, 연습 | Var.3 노래하는 횡격막 | Var.4 깊은 밤을 향하는 오르페우스처럼 | Var.5 무대위의투명풍선 | Var.6 첼로를 감싸는 화려한 스카프 | Var.7 그대는 나의 안식 2부 연주자의 해석 노트길을 잃다 Var.8 길을 잃다 | Var.9 음과 음 사이, 마음이 피어나는 곳 | Var.10 초견 | Var.11 삶을 듣는 순간 | Var.12 앙상블, 타인은 음악이다 | Var.13 우리는 음악으로 무엇을 듣는가 | Var.14 은유, 여행의 시작 3부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를 건져 올리는 법 Var.15 메트로놈과 시간의 윤곽선 | Var.16 ㅤ600년의 춤, 폴리아 | Var.17 반복의 아름다움, 베토벤, 인생 변주곡 | Var.18 리스테소 템포: 동일한 속도로 | Var.19 피에로의 우울한 춤, 달빛의 사라방드 | Var.20 음악이 시간에 새긴 인상 | Var.21 북극을 향하는 속도 4부 음악일기 Var.22 존 다울런드: 언제나 다울런드, 언제나 슬픔 | Var.23 쿠프랭: 깊은 암흑의 시간에서 부르는 노래 | Var.24 슈트라우스: 마지막 매듭이 피워 올리는 꽃 | Var.25 파이프 오르간: 인간으로부터 한 걸음 멀리 | Var.26ㅤ하프시코드: 하프시코드의 불꽃놀이 | Var.27 클라리넷: 감각의 경계에서 | Var.28 트라베소: 그 무해한 식물성 소리 | Var.29 피아노: 틀린 음을 소화하는 법 | Var.30 라벨의 왈츠: 건반 위의 머뭇거림 | Var.31 블로흐의 〈유대인의 삶〉: 이방인의 기도 | Var.32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 840번의 반복, 고행 속의 희망 | Var.33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환희의 시, 환희의 노래 Coda 오늘은 오늘의 음악을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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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습할 작품을 꺼낸다. 악보를 펼쳐 어제는 어디서 좌절했었는지 확인한 뒤, 오늘 나를 힘들게 만들 구간은 어디가 될지 예상해본다. 어제와 다른 곳에서, 어쩌면 같은 곳에서 좌절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좌절이 충분히 쌓이고 나면, 어느 순간 스르르 해결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 p.26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살다 보면 외부 세계와 나 사이에 담장이 생긴다. 하지만 이 담장의 높이를 무시하고 양쪽을 날아다니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음악이다. 감정을 언어로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감각의 형태로 직접 보여주는 음악의 힘은 외국에 살 때 더욱 빛난다. 대가들의 표현법을 빌려 내 감정을 보다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을 때면 음악은 내가 평생에 걸쳐 갈고닦은 소통 수단, 모국어만큼 편하지만 세상 누구와도 통하는 또 다른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 p.49 작곡가의 의도가 악보에 쓰여 있지 않다고 해서 연주자 마음대로 연주해도 좋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바흐가 살던 당시의 연주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악보에 적을 필요조차 없는 규칙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따로 표시가 없어도 마지막 음 바로 앞에 오는 음에는 반드시 장식음을 넣었고, 속도에 따라 다른 종류의 장식음을 사용했다. 그러니 현대를 사는 연주자가 악보에 적히지 않은 당시의 방식을 이해하려면 따로 공부를 해야만 한다. --- p.67 포도주를 잔에 따라 향을 맡고 입안에 머금은 채 혀를 굴리며 느끼는 일. 바로 마실 수도 있 지만 일단 참고 최대한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즐기는 시간. 선생님이 원하는 초견은 그런 것이었다. 선생님은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훑어보고 큰 구조를 파악한 다음 연주를 시작할 것, 음표를 하나하나 읽지 말고 화성을 파악해서 연주할 것을 요구하셨다. 악보를 분석한 뒤 초견을 시작하면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펼쳐진다. --- p.73~74 앙상블은 타인을 통해 음악 세계를 확장한다.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부딪쳐 깨질 때 마음을 열면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를 맛볼 수 있다. 타인은 지옥이라 했던가? 앙상블에서 타인은 내가 보지 못하는 저 너머의 세계를 가져다주는 선물 같은 존재다. 타인은 또 다른 음악이다. --- p.90 처음 요가 수업을 받은 날, 요가 선생님은 새로운 동작을 알려줄 때마다 “하나-둘-셋-넷”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그 차분함에 익숙해질 무렵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스스로 숫자를 세며 동작을 반복합니다.” 그러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몸들이 조금씩 흐트러지며 자신만의 시간을 찾아갔다. 일정한 속도로 숫자를 세는 음악 연습은 요가와 닮았다. ‘하나’와 ‘둘’ 사이의 침묵을 견디며 소리를 낼 자리를 만들고,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음미하는 훈련. --- p.112~113 속도를 기억하는 것은 즐겁다. 벚꽃 잎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속도,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의 속도,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속도, 여름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다가 점점 빨라지며 시원한 소나기가 되는 속도,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리는 속도, 주인을 알아보고 달려오는 강아지의 속도, 강한 어깨를 가진 투수의 투구 속도 등.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할 때 속도도 함께 기억한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마다 멜로디를 떠올릴 때 함께 들려오는 속도가 있다. --- p.144 “네가 연주하고 있는 그건 가브리엘 포레가 연주했던 악기야.” “그건 바흐가 제작을 감독했던 오르간이야. 양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악기를 보호하려고 파이프를 모두 숨겨뒀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가져다 꽂았지!” 영화 같은 에피소드를 품은 역사의 증거물. 짧게는 백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파이프오르간의 깊이 있는 울림을 그 어떤 최신식 악기가 따라올 수 있을까. 오르간 건반에 손을 올리는 순간 느껴지는 지난 역사와 현재의 시간이 만나면 강렬하고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뚫고 지나간다. --- p.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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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악기에서 손을 떼고 노래부터 해봐. 그러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네가 어떤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지. 어색하다고 피하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 수 없게 돼. 그래도 노래하기가 어색하다면 숨을 크게 쉬어봐. 그 숨에 실린 너의 마음을 느껴보는 거야. 거기서 너만의 음악이 시작되거든. _본문 중에서
횡격막, 음악의 언어를 이해하는 비밀의 열쇠 음악 수업 때 쓰는 말들은 대개 추상적이다. ‘노래하듯’ 연주하라는 둥, ‘수채화처럼 투명한 소리’를 내라는 둥…… 선생님은 분명 쉬운 한국어 단어를 써서, 단순 명쾌한 문장으로 설명해주셨는데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선문답 같은 말들을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횡격막에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악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연주자의 호흡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은혜야, 노래해 노래.” 나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노래를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 었다. 그저 노래하라 하시니 좀 더 부드럽게 연결하라는 뜻인가 보다 생각했을 뿐. 그러면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 주셨다.”_본문 중에서 악보가 소리가 되기까지 일상에서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표현을 쓰는 상황이 있다. 두 가지 사안이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줄기에서는 같으니 사소한 차이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고 싶을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차이’가 음악이라는 언어의 본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악상기호 중 피아노(p)는 피아니시모(pp)보다 조금 더 큰 소리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만큼 더 큰 소리인지 알려주는 단서는 악보에 없다. 연주 속도를 나타내는 악상기호도 마찬가지다. 리타르단도(rit.)는 점점 느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인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속도를 늦추라는 것인지 작곡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결정은 연주자의 몫이고, 선택 가능한 조합의 수는 무한대다. 악보라는 기호는 너무나 성글어서 연주자는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여 악보의 빈 곳을 채우며 최종적인 소리를 만들어야만 한다. 연주자의 모든 사사로운 결정이 소리에 투영된다는 뜻이다. (중략)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내가 좋아하는 도구로 어떻게 표현할지를 궁리하는 시간. 주어진 모든 재료를 늘어놓고 가장 어울리는 조합을 찾는 시간. 안타깝게도 그 재료 들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악보에 쓰여 있지도 않다. 그것은 소리의 강도나 소리와 소 리의 연결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소리의 색채가 되기도 한다. 이 무수한 선택지를 팔레트 위에 펼쳐놓으면,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_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