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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조명하 의사 의거의 의미
제1장 조명하 의사 약전 제1절 조명하 의사 약전 【해설】 01. 조명하 의사의 이력 02. 조명하 의사의 가문 03. 조명하 의사의 유년 시절 04. 조명하 의사의 소년 시절 05. 의지의 꿈속의 공직생활과 청년 조명하 의사 06. 모친과 측근에 뜻 알리고 출가 07. 웅비의 꿈을 안고 원수의 나라 일본에서의 활약 08. 의거 현지 타이중(타이완)에서의 활약 09. 운명의 날, 1928년 5월 14일 10. 조명하 의사 타이중경찰서로 구인되다 11. 한 달 간의 철저한 보도관제 속에서 배후인물 조사 : 가족, 측근의 고통 12. 의거 후 타이완 교민들의 고통 13. 특별공판으로의 회부와 사형선고 14. 조국 광복에 생명 바쳐 : 순국(교수형) 15. 말없이 환국한 조명하 의사의 유해 【필자의 말】 조명하 의사의 전기를 펴내면서 제2절 조명하의 타이완 의거와 그 의의 【해설】 01. 머리말 02. 성장 가문의 배경 03. 항일 의식의 형성 04. 타이완 항일 의거 05. 항일 의거의 의의 06. 맺음말 제3절 조명하 의사에 대한 사형 판결문 제4절『 유방집』 속 조명하 전 【해설】 제2장 조명하 의사가 처단한 황족 구니노미야 제1절 일본 자료로 본 구니노미야 척살 사건 【해설】 01. 타이완에서의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 02. 훙거 제2절 구니노미야의 인물상 【해설】 01. 황실을 곤란에 빠뜨린 구니요시 왕 02. 궁중 모 중대 사건의 전말 03. 구니요시 왕에 대한 훈계 제3장 타이완의 신이 된 구니노미야의 작은 아버지 요시히사 친왕 제1절 문명의 상징 요시히사 친왕 【해설】 제2절 일제 도덕 교과서 해설서에 실린 요시히사 【해설】 소학교 수신서 해설(1937. 5) 1. 요시히사 친왕의 약력 2. 타이완 정벌 중의 업적 3. 산댜오 곶 상륙 4. 고난을 물리치고 진군하게 하시다 5. 산댜오태령의 험산준령을 넘다 6. 타이완 북부 진압 7. 지안비산(尖筆山) 공격 8. 빗발치는 탄환 속, 장화(彰化)의 용전(勇戰) 9. 열병의 유행과 친왕의 인자 10. 친왕 발병 11. 병을 무릅쓰고 진군하게 하시다 12. 친왕 훙거 【국민의 각오】 제4장 조명하 의사 기념사업의 현황 제1절 조명하 의사 의거 90주년 기념으로 고시패 설치 제2절 타이베이 한국학교에서 조명하 의사 새 동상 제막식 거행 맺음말 |
Yuji Hosaka,ほさか ゆうじ,保坂 祐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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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5월 14일, 일본 황족이자 당시 육군대장인 구니노미야(일본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장인)가 타이완 주둔 일본군 특별검열사(特別檢閱使)로 파견되어 타이중 주둔 일본군의 검열을 마치고 타이베이로 향했다. 구니노미야의 승용차는 타이중역(臺中驛)으로 향하던 시립도서관(현 합작금고 모퉁이) 앞에서 천천히 가고 있었다. 이 때 조 의사는 많은 환영인파와 경비원 사이에 숨어 있다가 커브 길에서 서행하는 승용차에 뛰어올라 구니노미야를 자격(刺擊)했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조 의사는 현장에서 헌병들에 의해 체포되면서 “대한민국만세”를 크게 외치고 “대한을 위해 복수한 것”이라고 그의 자격 이유를 많은 군중 앞에서 소리치며 알렸다.
--- p.20 1928년 7월 18일 일제는 조 의사의 의거는 배후인물이 없는 ‘단독 범행’으로 단정했다. 조 의사는 타이완고등법원에 설치된 특별공판에서 가네코(金子) 재판장으로부터 ‘황족위해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오전 9시 30분). 1928년 10월 10일 조 의사는 수감 중인 타이베이 형무소장 시즈하타(志豆機)의 사형집행 선언으로 오전 10시 12분 사형대에 올라 교수형으로 24세를 일기로 순국했다(사형집행 15분 후인 10시 27분 사체 확인). --- p.21 그러므로 조국 광복을 위한 그의 충성심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며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애가 깃들어 있다. 조 의사는 이러한 가훈을 항상 선친으로부터 들었으며 또한 동향인 애국지사 안중근(安重根), 이재명(李在明), 김구(金九), 노백린(盧伯麟) 등의 애국 애족의 정신을 항상 흠모해 왔다. --- p.28 신천군청 서기로 임용된 약관 스물 둘의 조 의사는 이제 그의 강직한 성품과 가훈을 배경으로 그의 꿈의 의지가 굳어갔다. 더욱이 젊은이로서 불의 하에 굴할 수 없음과 조국의 시련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들과 토론을 하는 등 동료들을 규합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 p.36 속담에 범을 잡기 위해서는 범의 소굴인 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격으로 일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조 의사는 항상 동향인 안중근, 이재명 의사의 인격과 의거를 존경해 왔던 때라 일제의 괴수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처단해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할 것을 결심했다. --- p.44 조 의사는 자격 후 접근하려는 왜병과 왜경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부르고 당황하고 있는 군중들을 향해 혼연히 웃음을 지으며 “당신들은 놀라지 말라. 대한을 위해 복수하는 것이다.”라고 크게 외친 후 현장에서 태연하게 왜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 p.56 공이 크게 ‘한국 독립 만세’를 외치고 웃으며 군중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놀라지 마시오. 나는 한국을 위해 원수를 갚는 것일 뿐이오.” --- p.140 2019년 5월의 조 의사 동상 제작에는 처음으로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다. 지난 1978년 타이베이 한국학교에 설치된 흉상은 타이완 교민들의 성금으로, 1988년 서울대공원 입상은 조 의사의 후손들이 마련한 자금으로 제작되었다. 이것이 조 의사 현창 사업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p.233 그러므로 일왕과 왕족이라는 존재는 일본에 있어서는 단순한 왕가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근본이자 본질이었다. 즉, 의거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그 가치를 논할 때 조명화 의사의 의거는 안중근 의사,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동격으로 ‘4대 의거’로 뽑힌다. --- p.2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