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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
추방당한 신들 디아나 여신 옮긴이 후기 한국어판 편집자 해제 하인리히 하이네 연보 찾아보기 |
Heinrich H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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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묻으면서 사람들은 노래했다. “아래로 들어가, 아래로 들어가. 세상은 너에게 고통이고, 너는 고통스러운 세상을 더 이상 쫓지 않아도 돼.”
---p.10 이 난쟁이에 대한 전설은 거인에 대한 전설과 유사하며, 이 두 가지 전설은 한때 다소간 평화롭게 이 땅에 살다가 지금은 사라진 두 개의 상이한 종족이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p.13 이 노래는 스칸디나비아의 밤처럼 무섭고 섬뜩하며 음침하지만, 또한 그 속에는 사랑이 빛나고 있다. 이 사랑은 생생한 달콤함과 불타오르는 심정에 있어서 비할 바가 없으며, 활활 불타오르다가 마침내 북극의 빛처럼 솟아올라서는 격정적인 빛으로 온 하늘을 뒤덮는다. ---p.35 이교의 시대에는 공중을 날 수 있는 공주들과 귀족의 여성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고상한 행위로 여겨지던 이러한 마법이 후에 기독교의 시대에는 마녀의 혐오스러운 행위로 간주되었다. ---p.47 그들은 놀란 가슴을 가라앉힐 때까지 몇 잔의 술을 비워야만 했다. 칼 대장장이는 “부엉이는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새이고 마땅히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야 한다”고 엄숙하게 다짐을 했다. ---p.52 그리고 악마는 교황을 데리고 가면서 웃으며 교황의 귀에 대고 “너는 내가 논리학자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을 거야”라고 속삭였다. ---p.59 악마는 세속적 화려함과 감각적 기쁨, 육체성의 대표자일 뿐만 아니라 인간 이성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 이성은 물질의 권리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p.60 위대한 왕(솔로몬 왕을 뜻한다)의 숭고한 시 다음으로 비너스와 탄호이저 사이의 대화보다 더 불타는 사랑의 노래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노래는 마치 사랑의 전쟁과 같으며, 그 속에서는 붉디붉은 심장의 피가 흘러나온다. ---p.86 거처도 먹을 것도 없었던 이 가련한 망명자들의 대부분은 이제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도시의 막노동일을 구해야만 한다. 이러한 처지에서 신성한 숲을 빼앗긴 몇몇 망명자들은 이제 우리 독일에서 벌목꾼으로 하루벌이를 하고, 신의 음료 대신에 맥주를 마신다. ---p.120 종교의 위안이 너에게 도움이 될까! 지상의 모든 위대한 것들에는 눈에 띄지 않는 쥐들이 달라붙어 있다. ---p.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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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주의에 의해 매도당한 인간적 본능의 권리를 복권하려는 시도
기독교가 지배했던 중세는 정신주의적인 시대였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정신주의의 지배가 끝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를 능동적으로 의식한 하이네는 감각주의의 복원을 새 시대의 대안으로 내세웠다. 기독교의 원리이자 중세의 규범이었던 정신주의는 물질과 감각, 인간의 욕망을 악으로 보아 단죄하고 정신의 권리만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려 한다. 하이네는 감각주의를 정신주의의 이러한 월권에 대한 저항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감각주의는 정신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신주의에 의해 매도당한 인간적 본능의 권리를 복권하려는 시도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큰 화두는 특권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이 가졌던 특권을 거부했지만, 젊은이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구세대의 특권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특권 내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 반드시 올바른 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정말 플렉스가 솔직한 자기표현일까? 계몽주의가 유미주의를 넘어 탐미주의로 타락했던 것처럼 플렉스는 부자가 아니면 부자처럼 보이자는 허무적 발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 혁명은 중세의 종언과 자본주의의 확립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오래 전 칼뱅이 허용했던 사적 이윤의 추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하이네가 갈망했던 물질과 감각의 자유는 정말 복권되었는가? 아마도 하이네라면 맹목적 이윤 추구라는 또 다른 정신주의를 지적할 것이다. 고대 세계가 감각주의적이었던 것은 문명의 초창기에, 그리고 문명이 어느 정도 발전한 뒤에도 인간이 그 자신에게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사회, 아파트와 부동산에 대한 무분별한 투기를 솔직한 인간 본성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회의 다수에게 고통을 강요하면서 소수만이 부를 독점하는 것은 맹목적인 이윤 추구에서 비롯된 탐욕일 뿐이다. 탐욕은 정신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하이네가 요구한 감각주의는 정신주의의 탐욕스러운 월권을 거부하려는 노력이었다. 전설과 민담 속에 왜곡된 채 남아 있는 인간의 본성 하이네는 오랫동안 전해져온 전설과 민담 속에서 왜곡된 채 남아 있는 인간과 인간의 본능적 권리를 발견한다. 비두킨트 전설에 등장하는 노파는 기독교라는 낯선 종교가 강요할 금욕과 인간적 욕망의 포기, 궁핍을 경건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두려워 산 채로 땅 속에 묻혔다. 고대 세계의 재주꾼이며 부의 창조자였던 평민들은 난쟁이가 되어 땅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기독교적 정신주의가 지배하는 지상에는 그들이 살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발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난쟁이 왕의 이야기는 우리도 인간이고 싶다는 안타까운 절규를 전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루터가 논쟁을 힘겨워했던 악마는 논리학자였다. 돌, 나무, 물의 정령이 물질적?육체적 향락을 표현한다면, 악마는 인간의 이성을 상징한다. 이성은 물질적 풍요에 대한 갈망과 향유, 그리고 육신의 욕망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독교는 악마를 탄압했다. 그러나 쾌활하고 활력 넘치는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기독교의 요구대로 소멸될 수 없었다. 기독교가 이교의 신들을 저주하고 추방해버렸지만 피조물이 아닌 신들이 죽지 않은 것처럼,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본성이기 때문이다. 추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사랑한다면,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종교는 물론 민담과 설화는 그것을 믿거나 전승해온 사람들의 현재의 표현이거나 아니면 과거의 생활방식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고대의 예술 작품들, 신상들에서 발견되는 관능적이지만 밝고 쾌활한 생활방식을 혐오했기 때문에 그 신들을 악마라고 선언하고 파괴했다. 사랑의 상징이었던 엘프도 기독교에 의해 죽음의 요정으로 변했다. 기독교의 저주는 고대의 정령들을 추악하고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전설과 민담 속에서 이들이 사랑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추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추한 것을 사랑한다면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