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1년 0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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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92쪽 | 852g | 152*225*28mm |
ISBN13 | 9788972917373 |
ISBN10 | 8972917370 |
출간일 | 2021년 0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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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92쪽 | 852g | 152*225*28mm |
ISBN13 | 9788972917373 |
ISBN10 | 8972917370 |
동아시아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에즈라 보걸 교수가 바라본 중일 관계 객관적인 시각으로 중일 관계의 역사를 짚어보고 미래의 협력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다 하버드 대학교 석좌 교수이자, 동아시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걸의 이 책은 1,500년에 달하는 중국과 일본의 교류의 역사에서 주요한 전환점들을 살펴보고, 그것이 중일 관계에 미친 영향을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검토한다. 『덩샤오핑 평전』과 『재팬 애즈 넘버 원』으로 각각 중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저자는 이번에는 중일 관계의 역사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시도한다. 이 책은 6세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세 번의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양국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로 인해서 양국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그 여파를 촘촘하게 재구성한다. 양국이 역사를 직시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세계의 질서 안정과 번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역설한 저자는 이 책을 마지막으로 2020년 12월 별세했다. 독자들은 그가 남긴 이 책을 통해서 중국과 일본과 결코 별개일 수 없는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고, 한중일 삼국의 미래에 대한 시각도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
서문 제1장 일본 문명에 대한 중국의 기여, 600-838년 제2장 혁신적인 배움을 동반하지 않은 교역, 838-1862년 제3장 서구의 도전에 대한 대응과 관계 재개, 1839-1882년 제4장 조선을 둘러싼 대립과 청일전쟁, 1882-1895년 제5장 중국의 근대화에 일본이 준 교훈, 1895-1937년 - 폴라 S. 해럴과 함께 제6장 타이완과 만주의 식민지화, 1895-1945년 제7장 정치적 혼란과 전쟁으로 가는 길, 1911-1937년 - 리처드 딕과 함께 제8장 중일전쟁, 1937-1945년 제9장 일본제국의 붕괴와 냉전, 1945-1972년 제10장 협력, 1972-1992년 제11장 중일 관계의 악화, 1992-2018년 제12장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주요 인물 전기 감사의 말 주 출처 및 더 읽을 만한 책들 인명 색인 |
하버드 석좌교수로서 동아시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걸은 저서 [덩샤오핑 평전]과 [재팬 애즈 넘버 원]이라는 책을 통하여 중국과 일본의 현대사에 정통하다는 점을 입증한 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은 1,500년에 달하는 두 나라의 교류의 역사에서 주요한 전환점들을 살펴보고, 그것이 중일 관계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시도에서 비롯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이 빠진 것이 약간 서운할 수 있으나, '한국과 일본' 또는 '한국과 중국'에만 익숙한 우리로서는 오히려 주변국이자 한국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두 나라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주목할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중국과 일본의 관계 역시 오랜 시간 형성된 것이기에 과연 에즈라 보걸은 어떻게 그에 대하여 접근하고 서술하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면서 동시에 읽는 입장에서 어떠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통해서 깊이 배운 세 번의 시기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일본이 중국 문명의 기초들을 배운 600년부터 838년까지와 중국이 일본에게서 배운 1895년부터 1937년까지, 1972년부터 1992년까지가 그 시기들이다. 1895년부터 1937년까지의 다양한 측면들을 다룬 제5장부터 제7장까지를 제외하고는 연대순으로 장들을 배열했다. 이 시기에는 중요한 새로운 국면들 - 중국의 일본 문물 학습, 일본의 식민주의, 전쟁으로 이어진 정치 - 이 너무도 다양하게 나타나서 3개로 된 별개의 장에서 다루기로 했다.
- p. 11 中에서 -
위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6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파악할 수 있으며, 교류하는 상황 속에서의 위치 변화가 어떤 역사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의 부제가 '1,500년 중일 관계의 역사를 직시하다'이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언급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 일본 문명에 대한 중국의 기여 : 600 ~ 838년
저자는 중국으로부터 중요한 문화 도입이 이루어진 이 시기가 일본의 지도자들이 더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 중앙집권화 된 행정구조를 구축할 때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문자언어, 불교, 유교 등의 문물은 일본의 중앙집권화에 정치, 사상, 문화적인 측면에 기여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일본의 중국 문물 수용은 중앙 정부에 의하여 주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중국으로의 사절단 파견을 중단할 무렵 일본은 어느 정도 중앙집권화를 이루었으나, 이후 전국적 징병제를 없애고 지방 관리들이 자체 민병대를 보유하도록 허용할 정도로 다시 지방이 힘을 얻기 시작하하였다는 점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문물이 19세기와 20세기에 서구 문화가 유입된 이후에도 존속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물이 중국군의 진격 또는 대규모 이주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에즈라 보걸은 이 시기의 일본의 문물 유입이 다양한 중국의 문화 요소들을 익히고 일본으로 건너간 소수의 한국인들, 일본을 찾은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중국인들, 그리고 장안에서 유학한 소수의 일본 승려들과 관리를 통해서 들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의 문물 수입이 중앙집권화 체제의 기틀을 포함하여 방대한 범위에 영향을 끼쳤음을 감안한다면 이토록 소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대목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중국 문물 유입 과정에 한국도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이 일본에 전해준 것이 중국의 문물로 인식하는 서구의 관점도 엿볼 수 있다.
2. 혁신적인 배움을 동반하지 않은 교역 : 838 ~ 1862년
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일본은 중국으로부터의 문물 수입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다. 당시 일본 지도자들은 일본의 정부 구조와 사상, 문화가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면서 중국과 견줄 만하다고 믿었으며, 중국의 황제를 일본의 왕보다 더 높은 "천자(天子)"로 인정해야 하는 조공관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의 중국의 상황은 일본에게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었다라는 점도 이러한 상황 형성에 기여했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755 ~ 763년) 이후 쇠퇴하였으며, 이후 이민족의 침입과 더불어 분열 양상이 심화되어가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양국 간의 평화로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는 공감대는 형성이 되었지만, 더이상 조공관계가 아닌 교역관계만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러한 흐름에 예외가 있었으니 명나라의 건국과 더불어 두 번의 전쟁을 들 수 있다. 먼저 명나라(1368 ~ 1644년)의 건국은 중국에 강력한 세력이 등장하였음을 의미하는 반면 이 시기의 일본 막부는 세력이 약화된 상황이어서 중국으로 조공을 보내서 그 권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1403년부터 1547년까지 일본은 다시 중국에 조공을 보내어 의례적인 종속관계로 돌아가는 데에 동의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일본의 중앙 집권자들이 자신들의 세력 상황에 따라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활용하였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13세기 말에 이루어진 원나라의 일본 침공과 16세기 말의 일본이 중국을 공략하기 위한 조선 침공이 바로 그것이다. 두 전쟁 모두 전쟁을 일으킨 쪽의 목적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양국에 대한 서로의 이미지가 변질되었다. 중국은 과거 유학온 일본의 승려 또는 지식인층을 통하여 일본을 "현명하다"라는 이미지로 바라보았으나, 왜구의 난동과 전쟁으로 인하여 "흉폭한"으로 차츰 변질되었으며, 일본 역시 중국과의 전투를 통하여 과거 존경으로 바라보던 중국에 대한 경외심이 줄기 시작했던 것이다.
3. 근현대에서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 : 1839 ~ 2018년
리뷰에서는 하나의 시기로 구분하였지만, 책에서는 이 시기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여러 부분으로 세분화하여 상세히 다룬다. (실제 책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관한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19세기에 일본이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기존의 관계의 우위가 뒤바뀌었으며, 양국의 본격적인 전쟁과 전후 그 짧은 시기에 또 다시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 시기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각 단계별로 보다 상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은 그동안 막연히 생각했던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달리 바라볼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이후 그들이 목표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일본의 전략을 오로지 주변국에 식민지화 또는 침공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근대화 이후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만주를 장악하였으며, 동남아시아 및 중국 본토로 침공한 사실이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하였다.
하지만 청일전쟁으로 인하여 중국과 일본의 역학적인 관계에 변화가 생겼지만, 중국이 일본을 근대화 모델로 삼으면서 전문지식의 외부 공급자로 일본을 선택하였다는 점과 일본 역시 아시아의 먼로주의를 표방하며 중국과의 협력을 통하여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를 꾀하였다는 점은 근대화 이후의 일본이 오로지 무력에 의한 세력 확장만을 표방한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후 일본의 군부와 끊임없이 전쟁을 주장하단 과격한 우파는 이 사상을 "대동아 공영권"으로 내세우면서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근현대사의 초기에 일본이 중국의 근대화에 협력하면서 새로운 전략적 구축 단계를 맺으려는 시도 역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동아시아는 결국 황인종과 백인종 사이의 인종 투쟁에 직면할 운명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모두 백인종이 증오하는 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고노에는 정부가 현재의 유럽 중심 외교 정책에서 벗어나 자연적 동지인 중국과 전략적 관계 구축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했다.
- p. 171 中에서 -
귀족원 의장 출신이던 고노에 아쓰마로의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그가 실제로 중국의 근대화 교육 및 교류에 지원한 행적은 당시 일본의 정책을 훗날 그들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이미 역사에서 판명이 난 것처럼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면 상호협력을 통하여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 과정에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중국 역시 일본과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만주에 주둔한 관동군이 일본 내각의 통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쟁을 획책하고 확대하였다는 점과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는 수상과 각료에 대한 군부의 암살 또는 쿠데타의 사례가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부분 때문에 일본의 전쟁에 대한 책임론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후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한국이 독립한 이후의 일본의 관계를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실 한국은 독립 이후 반일을 내세우면서 일본과 별다른 교류가 없다가 1965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설픈 전후 보상문제 처리는 오늘날까지 반일감정이 이어지고 있으며, 경제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필요했다는 주장 역시 오늘날까지 상반된 평가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비하여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좀 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전후 일본은 중국보다는 타이완과의 교역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었지만,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중국 역시 전후 경제 복구와 발전을 위하여 일본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중간에 미국의 간섭과 통제로 인하여 이들의 바램은 훗날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해빙의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이들 관계 복원은 양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중국 역시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 때문에 반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반일감정을 억누르거나 폭발시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특히 반일감정은 중국이 경제 회복에 성공한 이후에 더욱 강해졌고, 최근에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한 영토 분쟁으로 다시금 그 골이 깊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중국의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이 둘의 역학 관계에 따라서 통제되거나 분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으로부터 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과 교류의 시점에서는 그러한 감정이 대외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경제 회복에 성공하고 이제는 미국과 경쟁하며 패권을 차지하려는 시점에서는 반일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영토 회복과 내부 결속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제목처럼 한국에 관한 내용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로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또 우리에게 적용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각각의 관계를 살펴볼 때, 최대한 우리쪽에 유리한 해석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에즈라 보걸의 시선에서는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파이가 그리 크지 않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무조건 민족의식의 고취와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역사가 아니라 보다 냉철하게 우리의 지나온 길과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관계의 변화가 둘의 위치에 좌우된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이들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책 제목에서 한국이 소외되었다는 아쉬움보다는 우리 주변국의 관계사를 통하여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 책을 읽어본다면 우리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국과 일본>>, 짧고 건조한 제목이다(원제도 동일하다, CHINA AND JAPAN). 요즘 출판 트렌드를 고려해 볼 때 딱딱함 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원제 그대로인 이 제목에서 저자의 뚝심 있는 동아시아 연구자의 자세, 오랜 연구를 종합한 일종의 포스가 느껴진다(그는 작년 12월 9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만큼 내게 이 책은 진지한 연구자의 오랜 동아시아 연구의 결과물로 느껴진다.
에즈라 보걸, 한국에 널리 알려진 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대표적 동아시아 전문가로 관련 분야의 정부 분석관으로 일했을 정도로 폭넓은 시각을 지닌 사람이다. 또한 하버드대에서는 동아시아를 주제로 오래도록 강의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2년 전 중국현대사에 관심이 있던 중 벽돌책 <<덩샤오핑 평전>>을 통해서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책 내용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 책 덕분에 현대 중국의 건설자들과 그들이 이룬 현대 중국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 듯하여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는 기억만은 뚜렷이 남아 있다.
이 책의 부제는 ‘Facing history’로, ‘역사를 마주하기’로 번역할 수 있겠다. 결국 이 책의 목적은 ‘중국과 일본’이 서로의 역사를 마주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공식적 교류를 시작한 5세기 즈음부터 최근 2018년까지의 약 1500년의 교류하고 반목하고 때로는 협력한 복잡한 역사를 밀도 있게 살피고 있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역사의 흐름과 교류의 양태를 기준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1-2장으로 시기적으로는 7세기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서 중국의 당나라의 문물과 문화를 널리 받아들여 광범위한 중앙집권적 행정구조를 구축하는 9세기 초반까지의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널리 배운 시기’(1장). 9세기 중엽 이후 사절단 형태의 공식적 교류보다는 (없진 않았지만)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무역, 불교 승려들의 활발한 이동이 이룬 문화적 교류가 중심이었던 19세기 중반까지의 약 천 년의 시기(2장)를 다룬다.
두 번째 부분은 3~8장으로 두 나라 모두 서구로부터의 강제적 개항을 한 19세기 전반기부터 중일전쟁의 끝이자 일본이 패망하게 된 1945년까의 ‘중일 근대사’로 볼 수 있다. 천 년이 넘는 시기를 앞선 두 장에 걸쳐 서술한 반면 시기적으로는 약 100년이 조금 넘으나 총 6개 장에 걸쳐 서술한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양국의 교류의 양이 증대하고 질적인 측면에서 이전 시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 이 시기에 맺은 두 나라의 관계가 현재의 중일 관계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특히 중일전쟁)을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국과 일본의 근현대사’가 저자의 주 연구 분야이기도 한 만큼 1800년대 이후의 역사는 보다 입체적인 시각에서, 구체적이고 치밀한 서술이 전개된다. 사실 개항기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 자체가 양국 모두 서구 세력의 진입, 정치체제에서의 혼란과 변화, 근대적 개혁 시도의 좌절과 성공, 청일 및 러일 전쟁,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이라는 대격변의 시기이기 때문에 웬만큼의 내공으로는 이 시기의 숲(윤곽)과 나무(세부 내용)를 그려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에즈라 보걸은 이 시기를 중국과 일본 양국의 외부 세력에 대한 나름의 대응 방식과 서로의 교류에 초점을 맞추어 압축적이지만 흥미롭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중일 근대사 개설서로 손색이 없다고 느낄 정도이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1945년부터 2018년까지의 양국의 현대사에 해당된다. 19세기 후반부터 1945년까지는 두 나라의 역사가 워낙 긴밀하게 얽혀있어 역사적 사실들이 서로 연결되지만, 1945년 이후부터 두 나라의 역사는 각자의 과제, 즉 중국은 근대화, 일본은 전후 재건이라는 과업을 수행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두 나라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9~12장은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이러한 현대의 중일관계사를 촘촘히 다룬다.
에즈라 보걸은 중일전쟁 이후 단절되었던 두 나라가 점점 더 서로에게 개방적 태도를 보이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덩샤오핑 등 중국 주석들의 일본 방문, 그리고 천황의 중국 방문에 이르기까지 중일전쟁이라는 역사적 시한폭탄은 마음 한 켠에 둔채, 일본은 그들 나름대로 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고, 중국은 일본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일본에 점점 더 긍정적 태도를 보여준 모습들 말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 중국의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일본에 앞서기 시작하며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다툼, 역사 왜곡 문제 등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교류는 전례 없이 확대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에즈라 보걸은 서로의 역사를 직면하며 미래를 내다보고 교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뜨거운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또한 ‘뜨거워’지길 기대하고 있다. 물론 몇 십년이 걸리는 과제임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한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진 일본에 의한 강제 점령과 중국의 영향력 약화, 한국전쟁에서만 등장한다. 1895년 청일전쟁 직전까지는 중국의 그림자 속에, 그 후에 1945년까지는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음을 고려하면, 한국은 그들 역사 속에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므로 중일 관계사 속에서 한국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것은 이해된다. 하지만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한중일 삼국 중 한국이 빠진 역사를 읽는 것이 내내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쉬움은 이 책이 잘못 쓰여졌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과거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하긴 우리는 이들 중일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지를 받아들인다면 이 책이 무지의 공백을 메울 좋은 선택임은 분명하다.
서구의 탐험가, 상인,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중국과 일본은 중국의 문명이 주도하는 질서 속에 느슨한 관계 속에서 불교와 건축 등의 문화가 중국을 통해 일본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원나라의 일본 정벌 시도. 1894년청일전쟁. 난징 대학살, 대만과 조선 식민지화를 계기로 일본의 만주 정벌을 위한 군사 기지국 설립까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긴장되고 위태로우며 심오하면서도 복잡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런 적대적인 관계속에서도 중국은 자국의 학생들을 일본으로 보내서 신문물과 지식을 배워 중국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2019년에 별세 한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 전문가 에즈라 보걸교수의 마지막 저서 '중국과 일본'에서 일본이 중국 문명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600년 무렵부터 현재까지 약 1천500년에 걸친 양국 관계를 통해 중일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양국 국민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에즈라 보걸 교수는 일본이 중국에게 문명의 기초를 배운 600~838년에는 불교와 건축 등 선진 문물이 승려들이나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고, 서구의 시각에서 일제 침략기인 1895~1937년도 일본이 중국에 근대화를 전한 기간으로 봤다.
일본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와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만난 뒤 협력관계를 모색한 1972∼1992년 중국이 선진국 일본의 기술을 배웠던 역사적 경제적 교류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를 딛고 양국이 더 나은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사를 직시하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 한다. 이책의 저자 에즈라 보걸 교수는 19세기 이후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결코 수평적이지 않았다는데 촛점을 맞춘다.
전근대 시기에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며 자국의 문화적·군사적 우월성을 확신했다.중국은 어떤 이민족에 추월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십년 앞선 문호 개방과 서양 문물을 급속도로 받아 들이면서 번역청 설립에 앞장서면서 서구의 신기술과 문명이 빠른 속도로 일본 열도에 흡수 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신속하게 산업화와 기술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일본은 더이상 중국의 문화를 우러러보지 않았던 것은 물론 더이상 배울게 없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서구의 제도와 사상을 받아 들이지 않았고 서구에서 선진 문물을 학습하고 돌아온 지식인들의 인재 활용에도 관심이 없었다.
일본은 원나라의 규슈 침략과 임진왜란에서의 충돌, 왜구의 중국 침범 같은 일련의 무력 충동을 겪으면서 항상 중국 본토에 스파이를 심어 놓고 사소한 정보까지 입수 하며 철저하게 대비 하고 있었다. 청일전쟁과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겪으면서 압도적으로 군사 우위에 올라선 일본은 1877년 상하이에서만 미쓰이물산, 니폰유센 등 25개 기업이 중국의 지리, 경제, 항구, 도로 정보를 수집하며 만주 정복을 향해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 나갔다.
반면 같은 시기 도쿄에 주재했던 중국 외교관들과 유학생들은 일본 지식인들에게 칭송받는 시집을 출간하거나 귀족들이 주체하는 파티를 돌아다니며 어디에도 활용하지 못하는 문화적 거품,신기루 속에 빠져 있었다.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와서 청제국 몰락의 앞장섰다.
쑨원과 장제스, 저우언라이, 왕징웨이, 리덩후이 등 양안을 이끈 인물 상당수가 일본 유학파로 20세기 초 중국의 엘리트 중 상당수가 일본의 학교나 일본이 세운 중국 내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다.중국은 관료와 유학생을 일본에 보내 일본 메이지 시대의 개발 경험을 배우려고 했다. 해마다 수백명의 관료가 일본을 방문했고, 수백명의 일본인 교사와 조언자들이 중국에서 일했다. 1937년까지 약 5만명의 유학생이 건너갔다. 중일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것은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이었다.
중일전쟁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의 부상과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몰락의 시초를 제공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은 군인사들을 참배 하며 일본의 군국주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1972년 9월 27일 다나카 당시 총리가 베이징에서 저우언라이를 만나면서 변화가 시작됐고 1978년 덩샤오핑의 일본 방문으로 양국의 교류가 시작 되었다. 록히드 뇌물 스캔들로 가택연금 상태인 다나카 전 총리를 방문한 덩샤오핑은 진시황 때 서복이 구하러간 ‘마법의 약’을 찾으러 왔다며 공식적인 평화우호조약 문서 교환을 내밀었다.
다나카를 만난 덩은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며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 다나카 전 총리가 쏟은 노력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했다.
21세기를 즈음해 역사의 중심추는 또다시 심하게 흔들렸다. 아시아에서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서서히 차지하기 시작한 중국은 2005년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진출을 막았고, 2010년엔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추월했다.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을 계기로 중국은 일본 상품 불매와 희토류 수출 제한, 중국인 관광 취소 등으로 일본을 위협하고 있다. 이책의 저자 에즈라 보걸교수는 중일 관계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중국이 반일 감정을 애국심 마케팅으로 활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이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로 협력을 서로 협력해 나간다면 두 나라는 ‘뜨거운 관계’는 아니더라도 ‘따뜻한 관계’ 를 유지 할 수 있을것이라고 전망했다.도는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앞으로 밀접한 교류와 협력을 해나간다고 해도 미국에 크게 위협이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중국과 일본 간의 긴장이 완화되면 서태평양 지역의 안전 증대, 세계의 질서 유지에 대한 양국의 기여는 다른 국가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아베 정권이 '개혁'을 내걸고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융합한 정책을 전개했다고 진단한 뒤 "일본이 성숙한 보수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그간 중시한 전후 헌법 질서나 제도·관습을 중심으로 개혁을 진행해야 하며, 과거를 반성하는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에즈라 보걸 교수는 21세기에 들어서 중국과 일본은 교류가 급격히 늘었음에도 두 나라 지도자가 상대 국가에 대해 느끼는 공감과 신뢰 수준이 여전히 낮은 편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정치인들이 자국민의 충성심을 모으기 위해 상대 국가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전략을 고수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고위 공직자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방문 자제, 교과서에 중일전쟁의 '침략' 사실을 기재 해서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바로 볼것을 당부 했다.
이책은 에즈라 보걸 교수가 근현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전문가인 만큼 전체 분량의 80% 이상을 19세기 이후 근현대사로 연대순으로 구성되었다. 책 뒷부분에는 60쪽 분량의 중국과 일본의 ‘주요 인물들의 전기' 다나카 가쿠에이, 이시바시 단잔, 덩샤오핑, 리훙장 등 두 나라의 현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 14명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에즈라 보걸 교수는 중국과 일본은 미래를 위한 협력 의제를 통해 더 폭넓은 교류를 이어나가야 동아시아 지역에 평화를 유지 할 수 있다고 조언 했다.
2006년 부터 2008년까지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은 상호 양국의 협력 방안을 논의 하는 의제를 내놓았다.
중국과 일본의 관료들이 추진하기로 동의한 의제들에는 다음의 목표들이 포함된다.
-지도자들 각료들 고위급 관료들 사이의 교류와 대화 확대 젊은이들 간의 교류
-중국 인민해방군 과 해군과 일본 해상 자위대의 상호 방문
-북한 관련 문제들에 대한 협력
-에너지 협력(에너지 보존과 환경보호에 관한 협력 포함)
-에너지 문제에 관한 각료급 대화 수립
-농업, 지적재산권, 의약품, 중소기업, 정보 통신 기술 금융 형사사법제도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2007년에 협의 된 이 의제들은 중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와 질서를 위한 출발점으로 커다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중일 관계가 서로의 이견과 입장을 좁히지 못한 채 악화를 치닫게 되면 양국의 막대한 군비 지출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대내외 문제들에 대한 양국 간 협력을 방해하게 되고 심각할 경우 군사적 충돌이나 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호적인 중일 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의 무역, 건설, 과학 연구, 평화 유지, 자연 재해에 대한 대응에서 협력의 틀을 제공하는 지역 조직들을 지원하는 데 힘을 모아야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 이다.
하지만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확인된 SARS-CoV-2의 감염증인 코로나바이러스19가 전 세계를 순식간에 바이러스 확산 감염 공포와 죽음에 휩싸이게 되었다.
코로나 종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중국과 일본 모두 각자 도생의 생존 전략으로 더이상 국제 질서 관계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