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괴롭다면, 숨고 싶다면, 나는 왜 이 일을 할까? 왜 굳이 드러낼까. 표현할까. 지난 7년간 망설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걸까? 이 질문이 있었기에 드러내는 쪽으로 몸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나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까. 편견을 먹고 자라는 성장 위주의 언어가 아닌, 편견을 해체하고 세계를 돌보는 언어. 배제가 아닌 연대의 언어. 나를 자유롭게 한 언어. 당신에게도 꼭 닿길 바라는 이야기들. 자유들. 그 이야기를 전할 때만큼은 익숙한 문장을 뒤로하고 용기 낼 수 있었다.
---「프롤로그 우리는 그림자로 간다 : 숨은 말을 찾으러」중에서
내가 일부러 자극적인 단어를 쓰는 건 아니다. 그저 나에게 화두인 이슈를 포장하지 않고 표현하는 거다. 나누고 싶어서, 나눠야 살 것 같아서. 그저 내 소매 끝에 매달린 먼지를 떼듯,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뿐이다. 그럼 다른 누군가 입을 뗀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또 다른 이야기를 부른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꺼내지 않은 말 속에 숨어 있던 뱉고 싶은 말을 배운다. 꼭 직면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누군가 꺼낸 말들 사이에서 내가 꺼내지 않은 말들을 돌아본다. 그렇게 함께 해방하는 감각을 배운다. 말만으로 모든 것에서 자유롭긴 어렵지만, 꺼내지 않고 시작되는 자유는 없으니까. 내 해방이 당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당신의 해방이 내 해방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운다. 당신이 입을 떼는 그 순간에.
---「당신이 입을 떼는 순간」중에서
글을 쓸 때 ‘쓰다’가 아닌 ‘읽히다’로 동사가 확장되면 읽는 사람을 고려하며 섬세해질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의 존재는 나 중심의 ‘말하기’를 ‘들리기’로 확장하게 해주었다. 마이크는 혼자 잡고 있지만, 내 말이 독백이 아닌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도록 도와주었다. 그 감각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부지런하고 섬세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말이 들리는 여기는 허공이 아닌 곳. 복잡한 역사를 통과한, 어떤 절박함으로 이 자리에 모인, 여러 결을 가진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감각을 익혔다..
---「말하기의 편집자」중에서
나는 오해한다. 쉽게 오해한다. 두려움은 오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미움도, 적의도, 분노도 오해일 수 있다. 설사 그게 오해가 아닌 진실이어도 나에게는 소통할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를 겁이 난다는 이유로 미리 차단하고 싶지 않다. 일단 진심으로 표현한다. 언젠가 상대에게 내 말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샤워하다가, 밥 먹다가, 변기에 앉아 있다가, 혹은 자기와 사랑하는 이들이 차별이라는 벽 앞에서 멈칫하거나 다쳤을 때. 어떤 순간이든 그에게 이 말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 가정법을 안고 계속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쉽게 두려워하지만, 결국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느끼는 순간은 온다. 내 오해가 깨졌던 순간들처럼, 내 두려움이 억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처럼. 그렇게 두려움과 오해를 넘어 말을 건넨다.
---「가정법의 시간」중에서
줌파와 엄마의 울음이 겹친다. 나는 말이 되지 못한 그녀들의 울음을 들으며 자랐다. 슬픔의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나 또한 말이 되지 못한 울음을 삼키거나 뱉으며 살았으니까. (…) 살면서 많은 순간 울었다. 화나서, 억울해서, 슬퍼서, 그리워서, 행복해서 눈물 흘렸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는 부끄러움이 남았다. 울음 뒤에는 꼭 죄송하다는 말을 붙였다. (…) 나는 당신의 슬픔을 하나하나 파고들고 싶지 않다. 오늘 하늘이 너무 맑거나 흐려서 눈물이 흐를 수도 있고, 아픈 기억을 직면하는 괴로움으로, 사무친 그리움으로, 이유 모를 슬픔에 잠길 수도 있다. 다만 당신이 울음을 참거나 홀로 삼키지 않길 바란다. 당신에게 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길 바란다. 그 울음이 독백이 아니라 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울음 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꺼내 자기만의 언어로 재해석할 관계가 곁에 있길 바란다. 당신의 울음을 듣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어떤 울음은 가장 적극적인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울음은 가장 적극적인 말」중에서
아, 우리는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지. 서로의 약함과 변화를 공유하는 사이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몸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가 생겨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만나고. (…) 우리가 지금 모인 건 다양한 변수를 거쳐 우연히 다가온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서로의 마음, 기분, 몸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그 시간을 건넌다.
---「엉덩이는 무사한가요?」중에서